세상은 흑백의 논리로 통하지 않습니다. Yes 아니면 No 라는 가정은 너무나도 잔인합니다. 무엇이든지 완벽하게 옳은 것도 없고 100% 검은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의견을 모으는 과정은 항상 멀고도 험란하기만 합니다. 세상은 이런 속사정을 잘 알기라도 한다는 듯 꼬인 매듭이나 갈등을 풀어주는 하나의 수단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가위, 바위, 보' 입니다. 정이 많은 우리 한민족의 경우에는 한번으로도 부족했던지 다시 '삼세번'이란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가위, 바위, 보!" "다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단 결정됐으니 따르기로 하자!"
그렇습니다. 우리는 흔히들 쉽사리 결정되지 않는 것을 마지막 수단인 '가위, 바위 보' 로 결론 짓습니다. 아님 다수결로 결정 짓겠지요?
이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완벽한 것이 없다. 이겼다 하더라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니 이긴자 항상 겸손을 잃지말고 따르는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할 것이며 패한자는 따르되 당당하게 의견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에서 김동길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북한산 정상은 하나지만 그 정상에 오르는 길은 무수히 많습니다. 정릉길로 가건 구기터벌 쪽에서 오르건 수유동쪽에서 출발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내 의견이 중하면 남의 의견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정체된 한 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둘로는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워 뻗기만 할 뿐 일어 설 수가 없습니다. 둘은 흑백논리로 맞섭니다. 영원한 평행선을 그어 만날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셋은 안정적입니다. 맞서도 항상 결판이 납니다. 의견을 물으면 항상 2 : 1 로 갈라지기 때문입니다. 삼형제가 싸우면 항상 형이 진다고 하지요? 왜? 형편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편 넷은 불안합니다. 의자가 항상 삐걱거리는 것은 다리가 넷이기 때문입니다. 셋이면 어떨까요? 요지부동이라 안정적입니다. 그런데도 왜 넷으로 만들었을까요? 의자를 기울여 좌로도 우로도 간섭을 해야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3 : 1 로 확실하게 기울기도 하지만 2 : 2 로 팽팽하게 겨루게 되는 일이 보통입니다.
아무튼 세상은 셋만으로 구성되지 않는 한 항상 다툼이 있고 多口異聲으로 시끄러우며 복잡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다양성을 인정하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하며,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입은 하나요, 귀는 둘이며 눈은 앞에 있고 귀는 뒤에 있음이니 그 이유는 남의 말 듣는 것을 내 말하는 양의 배로하고 (경청의 자세 견지) 번개를 내리친 뒤 천둥소리를 내라 함이다. (말보다 주먹이 먼저) |
출처: 안촌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까만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