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일과 자일샤프트 / 글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교장
예나 지금이나 산꾼들은 자일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등산장비가 턱없이 귀하던 60~70년대는 더욱 그랬다. 산꾼들은 목숨보다 자일을 더 소중하게 다루었다. 자일은 곧 생명의 줄이라서 그랬다.
자일이 귀했던 시절에 있었던 일화 한 토막을 보면 그 시절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
어느 해 여름 설악산 울산암으로 암벽등반을 간 팀이 있었다. 선등자가 다람쥐처럼 날렵한 동작으로 바위를 오르다 오버행 턱을 넘어서는 순간 갑자기 10여 미터를 추락했다.
“추락!” 단말마의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선등자는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을 스치고 떨어져 대롱대롱 매달린 채 멈춰 섰다.
한 차례 공중곡예를 연출하고 멈춘 추락자를 지켜보던 선배가 “야! 자일 상한데 없냐?” 라고 소리치면서 추락한 후배의 안위보다 자일의 손상여부부터 먼저 확인했다.
“형, 사람 보다 자일이 더 중합니까?”라고 추락한 후배가 볼멘소리로 응답해왔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추락한 후배의 안전보다는 자일이 바위에 쓸려 상할 것을 먼저 걱정하는 선배가 몹시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이런 일은 가난했던 시절 ‘맨주먹 정신’으로 산에 다녔던 60~70년대 클라이밍 세대들이나 이해할 수 있었던 진풍경이다. 그때는 이처럼 자일을 제 몸처럼 아끼며 신주단지 모시듯 소중하게 다루었다.
나와 동료의 체온이 녹아있는 줄이 자일이다. 독일말로는 베르크자일(Berg Seil)이라고 하며 보통은 ‘자일’이라고 생략해서 부른다. 불어로 꼬르드(Corde), 영어로 로프(Rope)라 부르며, 자일을 함께 묶고 등반하는 동료를 자일샤프트(Seilschaft), 프랑스에서는 꼬르떼(Cordee), 영어는 로프드 파티(Roped Party)라고 한다.
우리는 흔히 독일어와 영어를 한데 뒤섞어 ‘자일 파티(Seil Party)’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일본식 관용어로 국적이 불명한 애매한 표현이다. 자일을 조작한다는 의미의 ‘자일 워크(Seil Work)’, 자일에 의한 횡단을 뜻하는 ‘자일 트래버스(Seil Traverse)’ 같은 말들은 임의로 조합한 들온말이다. 최근 들어 등산의 세계화, 국제화 추세로 일상 언어생활이나 등산 활동에서 들온말이나 외국어의 말밑이 분명치 않은 말들이 마구 쓰이고 있다.
자일을 위로 당겨달라는 표현을 ‘짜 먹어’나 ‘자일 업(Seil up)’, 하강용 자일을 던질 때는 ‘낙자(落 자일?)’ 라고 외치기도하며, 자일을 헐렁하게 풀어달라는 표현을 ‘짜일 허’로 표현하기도하고, 자일을 ‘짜’로 부르기도 한다.
등반상황에 익숙지 않은 새내기 바위 꾼에게 ‘짜먹어’ 라는 말을 쓰면 자일을 어떻게 먹어 치워야할지 혼란스러울 것이다. 물론 급박한 상황에서 사용되는 등반구호이니만치 간단하게 줄여 부르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이런 말들은 우리말의 격을 낮추는 비속(卑俗)하고 상스러운 말들이다. 등산문화의 저질화를 부추기는 이런 말들은 다듬어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짜먹어는 ‘줄 당겨’나 ‘줄 올려’ 낙자는 ‘줄 내려갑니다’ 짜일 허는 ‘줄 늦춰’로 표현하면 어떨까. 잘못 쓰이는 들온말이나 외국어, 인터넷 언어 등의 범람으로 우리등산문화가 병들어가고 있다. 들온말이나 우리말의 올바른 사용을 위한 노력이 절실한 때다.
등반역사가 시작된 이래 자일처럼 깊은 뜻을 지닌 언어도 찾기도 어렵다.
일반인들은 등반에 필요한 나일론 소재의 단순한 밧줄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으나, 알피니스트들은 이 용구가 갖는 깊은 의미를 다른데서 찾고 있다. 자일은 알피니스트들의 몸과 영혼을 하나로 묶어주는 결속의 상징이자 생명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산꾼들에게 자일은 구원의 손길이나 다름없다.
수십 길 발밑 벼랑에 눈길을 주면 아찔한 현기증이 일고 팔다리가 바들바들 떨린다. 수직으로 곧추선 바위벼랑. 중력에 저항하며 홀드를 더듬어 잡는다. 팽팽한 긴장감으로 두 다리는 후들거리고, 몸은 굳어 움직이지 않는다.
“야! 무얼 꾸물거리고 있어, 그것 밖에 못해” 위에 있는 선배의 호통에 마음만 급하다. 가까스로 끌어올린 양발이 후들거리며 곧 떨어 질 듯한 불안감이 온몸을 감싼다.
“줄 당겨!” 추락직전 다급한 외침에 자일이 당겨지고, 체중이 팽팽하게 줄에 실리는 순간 짜릿한 전율이 온 몸을 감싼다. 휴! 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줄을 당겨준 동료와 눈길이 마주칠 때 긴장감은 일시에 사라지고, 푸근한 안도감을 느낀다.
한 가닥 섬유질 자일을 꿰고 있는 동료 사이를 관류(貫流)하는 믿음과 사랑의 끈, 이것이 자일의 실체다.
산꾼들은 아무하고나 자일을 함께 묶지 않는다. 자일을 함께 묶는 일은 위험을 공유해야하고, 생명을 담보하는 행위와 등반기술의 보완적 의미가 전제되어야하기 때문에 동료에 대한 믿음과 정신적 유대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진정한 자일샤프트는 자일의 움직임이나 흐름만 보고도 동료가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등반을 하고 있는지 자일을 통하여 그 느낌을 전달 받을 수 있다.
최근 성행하는 인터넷 동호회의 산행을 보면 등반당일 아침에 인사를 나누고 즉석 파트너가 되어 함께 자일을 묶고 등반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과연 그들은 자일샤프트로서의 끈끈한 애정과 신뢰가 있는 것일까.
산꾼들은 어떤 위기상황 속에서도 동료와 함께 묶인 자일을 자르거나 풀지 않는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자일샤프트다. 그러나 위급한 상황 속에서 동료가 매달려있는 자일을 자른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일이 실제로 있었다.
이미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영국의 생존실화소설 <허공 만지기·Touching the Void>의 주인공 조 심슨의 시울라 그란데(Siula Grande·6344m)에서의 생환기가 그렇다. 정상에 오른 두 사람은 하산 길에 한 사람이 다리가 부러진 채 절벽에 매달리고, 한 사람은 추락자의 무게로 딸려 나갈지 모르는 절박한 순간에 둘을 연결한 자일을 칼로 잘라 동료를 떨어트리고 각자 살기 식으로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는 내용이다.
반면 ‘사람 잡아먹는 괴물’로 알려진 공포의 벽 오거(Ogre·7285m)에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 보닝턴과 스코트의 생환기는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자일샤프트의 휴먼 드라마다.
두 사람은 해질녘에 정상에 올랐다. 곧 자일을 타고 하강이 시작되고 스코트가 박빙에 발을 헛디뎌 추락하면서 두 발목이 부러졌다. 캄캄한 밤에 두 사람은 7300m 고도에 고립되었다.
그들과 베이스캠프 사이에는 험악한 바위지대와 돌바닥의 빙하가 가로막고 있었다.
갈비뼈가 부러진 보닝턴과 양 다리가 부러진 스코트가 5일 동안 굶으며 생명의 자일을 함께 묶은 채 서로를 챙겨주며 벌레처럼 기어서 내려와 하산 6일 만에 죽음의 늪을 벗어나는 생지옥 같은 하산과정의 이야기다.
이렇듯 가슴을 찡하게 하는 소설 같은 생존실화는 외국 산꾼들에게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우리 산꾼이 주인공이었던 일도 있다. 국내 정상급 거벽등반가 박정헌의 소설 같은 생존실화 <끈>이 그렇다. 이 등반기는 촐라체(Cholatse·6440m) 북벽에서 하산 중 사고를 당한 두 사람의 생사를 넘나들었던 9일간 사투기다.
정상을 밟고 하산 중이던 후배 최강식이 크레바스에 빠지면서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갈비뼈가 부러져 중상을 입은 박정헌은 크레바스에 빠져 두 발목이 부러진 채 자일에 매달려있는 후배(78kg)의 몸무게를 지탱하는 것은 죽음과 같은 고통이었다. “이 자일을 끊어야 하나…”아주 짧은 순간 지극히 인간적인 갈등이 밀려왔다.
그러나 목숨을 잃는다 해도 후배 최강식을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사력을 다해 최강식을 끌어 올린다. 이 시점부터 두 사람의 생존을 위한 사투가 시작된다.
이들은 5일 동안 굶주리며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서 사투를 벌인 끝에 조난 5일 만에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다.
대신 박정헌은 동상으로 8개의 손가락과 발가락 2개를, 최강식은 9개의 손가락과 발가락 대부분을 잘라야 했다.
이들의 생환은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은 채 부상한 동료와 연결된 자일을 끝내 자르지 않고 함께 살아 돌아오는 휴먼 스토리이자 분투였다.
이들의 등반은 끝났지만 이들이 묶고 있는 동행의 끈은 아직도 풀지 않은 채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런 것이 진정한 의미의 자일샤프트다.
“동반자(同伴者)의 선택은 등반의 선택만큼이나 중요하다”라고 말한 레뷰파의 금언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m
‘동료 사이를 관류(貫流)하는 믿음과 사랑의 끈’ 이것이 바로 자일의 실체다. 사진 손재식
첫댓글 "쿠르디카"는 등반에서 파트너쉽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등반에서 참된 즐거움은 루트 자체에도 있지만 그보다 멋진 파트너와의 조화에 있다..... 내가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을 선호하는 것은 대규모 등반에서는 마음에 맞는 파트너를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쭈구리~~책좀 읽었네....<히말라야 거벽 등반 대표 주자로 불린 보이치에흐 쿠르티카가 1982년에 안나푸르나 남벽 등반 중 낙석에 맞아 사망한 자일 파트너 매킨타이어를 잃고 한 말이다.>
선인올때 산서 좀 갖다줘.......등반은 무리고 나도 수양 좀 하자 책 값은 하지...
책값을 할거라면 뭐하러 아쉬운 소리하냐? 걍~ 돈 주고 사지....
책값으로 종로서 술한잔 사겠다는 뜻인데.....돈 굳었군.....
.내가 어떤사람의 쟈일파트너로 역활을 제대로 해낼수잇을까 ...아직 조화와 즐거움을 논하기전에 두려움과 부족함에 용기가 안선다..교육으로 이런생각이 없어질진 아직 미지수이지만...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초심을 지키며 기본에 충실하기만 하면 누구와 줄을 묶던 본인은 최선을 다하는 거야. 자신의 부족한 부분은 꾸준한 등반과 연습을 통해서 채우면 되고....등산학교의 교육은 밥상에 올라오는 종류와 먹는 방법만 갈켜줄 뿐 밥과 반찬을 만드는 과정은 산악회에 소속되어 산에 다니면서 배우는거야!
용욱 친구말에 전적으로 동감 ~!!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