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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8월 14일 수요일
[(홍)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성인은 1894년 폴란드 즈둔스카볼라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에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입회하여, 1917년 성모 신심 단체인 ‘성모 기사회’를 설립하였다. 이듬해 로마에서 사제품을 받은 콜베 신부는 평생을 선교사로 살아가다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였을 때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혔다. 그곳에서 수감자 한 명이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수용소에서는 한 명이 탈출하면 열 명을 지목하여 처형하는 규칙이 있었다. 이에 따라 지목된 열 명 가운데 한 사람이 자기에게는 가족이 있다며 울부짖자 콜베 신부가 그를 대신하겠다며 나섰다. 결국 콜베 신부는 다른 아홉 명과 함께 굶겨 죽이는 아사형을 받고 1941년 지하 감방에 갇혀 세상을 떠났다. 198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그를 ‘자비의 순교자’라 부르며 시성하였다.
말씀의 초대
에제키엘은 환시를 통하여 예루살렘에 닥칠 재앙을 본다. 주님께서는 징벌하는 이들을 보내시어 가차 없이 도성의 사람들을 치게 하시지만 이마에 표가 있는 이들은 죽음의 징벌을 면케 하신다. 그들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거슬러 행한 역겨운 짓에 괴로워하고 탄식했던 이들이다(제1독서). 주님께서는 회개하라는 교회의 권고를 무시하는 이들에게는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대하라고 하신다. 주님께서 매고 푸는 권한을 교회에 주셨기 때문이다. 또한 두 사람이 마음 모아 간절히 청하면 하늘의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당신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복음).
제1독서
<예루살렘의 역거운 짓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해 놓아라.>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9,1-7; 10,18-22
주님께서는 1 내가 듣는 앞에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이 도성의 징벌이 다가왔다. 저마다 파멸의 무기를 손에 들고 나와라.”
2 그러자 북쪽으로 난 윗대문 쪽에서 여섯 사람이 오는데,
저마다 파괴의 무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아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는 서기관 필갑을 차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와서 구리 제단 곁에 섰다.
3 그러자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그때까지 자리 잡고 있던 커룹들 위에서 떠올라 주님의 집 문지방으로 옮겨 갔다.
주님께서는 아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 필갑을 찬 사람을 부르셨다.
4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저 도성 가운데로, 예루살렘 가운데로 돌아다니면서,
그 안에서 저질러지는 그 모든 역겨운 짓 때문에
탄식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해 놓아라.”
5 그분께서는 또 내가 듣는 앞에서 다른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저 사람의 뒤를 따라 도성을 돌아다니며 쳐 죽여라.
동정하지도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마라.
6 늙은이도 젊은이도, 처녀도 어린아이도 아낙네도 다 죽여 없애라.
그러나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건드리지 마라.
내 성전에서부터 시작하여라.”
그러자 그들은 주님의 집 앞에 있는 원로들부터 죽이기 시작하였다.
7 그분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집을 부정하게 만들어라.
그 뜰들을 살해된 자들로 채워라. 가거라.”
그러자 그들은 도성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쳐 죽였다.
10,18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 문지방에서 나와 커룹들 위에 멈추었다.
19 그러자 커룹들은 날개를 펴고, 내가 보는 앞에서 땅에서 치솟았다.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들도 옆에서 함께 나갔다.
그들이 주님의 집 동쪽 대문 어귀에 멈추는데,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그들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20 나는 크바르 강 가에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떠받들고 있는 생물들을 보았다.
나는 그들이 커룹임을 알 수 있었다.
21 그들은 저마다 얼굴이 넷이고 날개도 넷인데,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 같은 형상이 있었다.
22 또 그들의 얼굴 형상은 내가 크바르 강 가에서 보았던 모습,
바로 그 얼굴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지혜 3,1-9 또는 1요한 3,13-18)와 복음(요한 15,9-17)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에서는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 문지방에서 나와”(에제 10,18) 떠납니다. 바빌론에 유배 가 있던 에제키엘이 본 환시이고, 예루살렘의 함락을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에서, 심지어는 성전 안에서도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기에 하느님께서는 심판을 선고하시고, 그 선고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때 결국 하느님께서는 성전을 떠나가시고 성전은 파괴됩니다.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교회 안에서 형제가 잘못할 때 일깨워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그가 “교회의 말도” (요한 18,17) 들으려고 하지 않을 때는 그를 더 이상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 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땅에서 교회는 푸는 권한만이 아니라 매는 권한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풀기만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복음에서 내 마음에 드는 구절만 골라 읽는 것입니다. 들으려고 하지 않을 때, 그것이 차이를 가져옵니다. 예언자를 보내시어 경고하시고, 형제를 통하여 일깨우시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닫아 버릴 때, 남은 길은 멸망밖에 없습니다.
현실에서는 그보다 더 심각한 경우도 있습니다. 듣지 않을 것을 이미 알기 때문에 아예 경고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그렇게 하는 경우가 있다면, 분명 다른 사람도 나에게 그렇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에, 귀를 막아 버린 나는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의 잘못을 알려 줄 때에 어떻게 대응하였는지 돌아봅시다. 이것은 나를 회심의 길로 이끌거나, 아니면 교회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길로 이끌 것입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에 돌아갑시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저 사람 대신 제가 가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교도소나 구치소에 갈 때마다 느끼는 안타까운 일이 한가지 있는데, 재소자들의 가슴에는 하나같이 이름 대신 번호가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민영 소년 교도소 설립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만일 꿈이 이루어진다면, 아이들의 가슴에 번호 대신 이름을 달아주고 이름을 불러주자는 안을 내어놓기도 했습니다.
16670번,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님의 번호였습니다. 수용소 안에서 콜베 신부님의 삶과 죽음은 한마디로 무죄한 어린양의 삶과 죽음, 속죄양으로서의 삶과 죽음이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로 악명 높았던 나찌 수용소 안에서 콜베 신부님은 동료 수감자들에게 마지막 희망이자 위로였습니다.
한 포로가 죽음의 방으로 끌려가며 외쳤습니다. “내 불쌍한 아내! 내 아이들!” 당시 연병장 내에는 수많은 운동장에 포로들이 서 있었는데, 그중에서 한 말라깽이가 걸어 나오며 외쳤습니다.
“저 사람 대신에 제가 가겠습니다!”
그 한 마디로 인해 콜베 신부는 깊은 지하 감방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당시 열 명의 수감자가 함께 갇혀 있었는데, 물 한잔도 빵 한 조각도 없이 죽음의 순간만을 기다려야만 했던 그곳에서 콜베 신부님의 성덕은 더욱 발휘됩니다.
가장 허약했던 콜베 신부님은 의외로 가장 오래 견딥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오직 한가지였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인 동료 수감자들을 향한 극진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콜베 신부님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떨던 동료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자신의 몸을 추스르기도 힘든 병약했던 콜베 신부님이었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서 기도와 위로 속에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나서 자신도 떠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기적과도 같은 일이 생깁니다. 평소에 배급이라고 받던 빵 조각들도 늘 남들에게 양보해서 가장 체력이 바닥나 있던 콜베 신부님이었지만, 15일간이나 굶주림을 견디면서 동료들의 눈을 모두 감겨줍니다. 끝까지 생존해있는 콜베 신부님을 확인한 나찌들은 신부님에게 탄산 주사를 맞힙니다.
콜베 신부님, 살아 생전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과 원죄 없으신 성모님께 온전히 의탁한 투철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신부님의 그러한 신심은 하루하루 피 말리는 수용소 생활 안에서 활짝 꽃피어났습니다. 그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수용소 생활 가운데서도 수감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차라리 죽는 게 더 낫겠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콜베 신부님을 통해서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곤 했습니다.
콜베 신부님은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던 그들에게 끊임없이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었던 것입니다.
동료 수사들과 함께 나치에 체포된 후 수용소로 향하는 트럭 안에서의 일입니다. 숨 쉴 틈도 없이 끌려가는 사람들로 빽빽했던 트럭 안에서 동료 수사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기약도 없는 미래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때 콜베 신부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우리는 지금 죽으러 가는 길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길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차까지 타면서 가니 이 얼마나 커다란 행운입니까? 여러분, 이제 우리는 가능한 많은 불쌍한 영혼들을 구하기 위해 더 많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성모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죽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은 어린이처럼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 작은 이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고 하십니다. 욕심이 있는 사람은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은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작은 생명도 죽이지 못하고 살리려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자기를 낮춘다는 말은 자기를 비운다는 말과 같고 자신을 죽인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삶입니다. 자신을 죽이려면 자신을 죽이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모든 선택의 기준은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자아가 죽으면 정말 행복할까요? 하버드대 연구원으로 지내던 37세의 뇌 과학자였던 질 볼트 테일러는 샤워 도중 신비한 체험을 합니다. 갑자기 어지러워 비틀거리다가 욕실 벽을 손으로 짚습니다. 그런데 어디부터가 자기 손이고 어디까지가 욕실 벽인지 구분이 안 되는 거였습니다. 그 이유는 언어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영역인 좌뇌 쪽에 출혈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까 이번엔 자기가 누군지 내 이름이 뭔지 어떤 사람인지조차 점점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례로 시끄러웠던 그녀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고요하고 조용해집니다. 나와 세상을 구분하기 물리적 경계가 희미해지고 그냥 엄청난 우주의 에너지 자체만을 느낍니다. 모든 것과 하나가 된 거 같은 기분을 그녀는 이런 느낌을 마치 요술 램프에서 빠져나온 지니가 된 거 같았다고 표현합니다. 테일러는 이런 경험을 두고 “나의 정신적 에너지가 행복이 넘치는 침묵의 바다를 거대한 고래처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라고 표현합니다.
좌뇌는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재잘거림을 통해서 우리를 삶에서 뒤처지지 않게 해줍니다. 자뇌의 언어 중추가 나는 누구누구, 이렇게 말함으로써 우리의 정체성을 느끼게 합니다. 이때 우뇌는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모든 사람을 인류라는 가족의 평등한 존재로 여기고 국적, 인종, 종교 이런 인간들의 많은 경계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린이들의 뇌를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어린이들은 좌뇌가 덜 활성화되어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온 우주와 하나가 되는 행복감을 느낍니다.
[출처: 하버드대 뇌과학자의 깨달음, 심리학 고양이, 유튜브]
그렇다면 자아, 곧 나가 죽으면 모두가 참 행복을 느낄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자아가 강하면 어쨌거나 세상에서 자기만을 생각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관계의 친밀함에서 오는 행복은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관계가 힘들어 스스로 관계를 위해 자기 정체성을 만드는 자아를 죽이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세계적인 뇌 과학자 애덤 지먼은 자기가 죽었다고 말하는 48세 환자 그레이엄과 만납니다. 그레이엄은 이미 본인이 죽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먹지도 자지도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행복한 표정은 짓지 못합니다. 사실 이는 그가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렵기 때문에 스스로를 죽은 사람으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그는 실제로 무덤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고 합니다.
니콜라스의 부모님은 항상 마약에 절어 있었습니다. 열두 살 되던 해에 니콜라스 엄마와 양아버지는 자주 싸웠으며 어느 날 어머니가 부엌에서 피를 흘리며 경련을 일으키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니콜라스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서너 걸음 다가갔어요. 정상적으로 걷다가 갑자기 꿈속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해졌다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그 후로 니콜라스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몸까지도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상태로 살게 됩니다. 현실은 안개가 자욱하고 꿈 같거나 시각적으로 왜곡된 것처럼 보입니다. 분명히 내 생각인데 내 생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거나 내 감정이지만 마치 남의 감정처럼 멀게만 느껴집니다.
[출처: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가 된, 소위 '걷는 시체 증후군'으로 불리는 전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정신질환, 심리학 고양이, 유튜브]
이런 경우는 자아가 사라져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사실 자아가 사라진 게 아니라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기를 감추어 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없으면 반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관계를 맺기 위해 현실에서 반응하고 느껴야 할 주체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자아를 죽여나가는 방향은 세상을 끊는 방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을 포용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을 어린이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자아가 지나치게 강해지지 못하는 환경에 자기를 밀어 넣습니다. 바로 부모라는 존재의 품입니다. 그 품 안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기, 배고파요!”라고 말할 때 그 아기가 자기일 수 있습니다. 왜 제3자로 자기를 표현할까요? 부모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믿어야 합니다. 아이가 자기를 부모와 함께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스크루지 영감은 돈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색하고 이기적이며 탐욕스러운 노인이었지만, 자신이 죽었을 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회개하여 모든 사람을 잘 받아들이는 존재가 됩니다. 그는 살았지만, 죽었다고 믿고 살게 되었기에 착해졌습니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함이 아닌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되기 위해 자아를 잊어야 합니다. 하늘 나라는 이 행복이 지속되는 나라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신문사에 있을 때입니다. 제게 가장 중요한 일은 구독자를 늘리는 거였습니다.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서 본당을 찾아가서 홍보하였습니다. 홍보하면서 교우들에게 창세기의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를 벌하시려고 했을 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 이렇게 청하였습니다. “하느님 저 도시에 선한 사람이 50명만 있어도 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50명만 있어도 벌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50명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점점 숫자를 줄여서 이야기 했습니다.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까지 내려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10명을 봐서라도 벌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신문 구독자가 50명만 넘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였습니다. 정 어려우면 40명만 넘어도 좋겠다고 부탁하였습니다. 이렇게 신문 구독자가 있으면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 하실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교우 분들은 저의 이야기를 듣고 기쁘게 구독신청을 하였고, 기부금도 내 주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유일한 가톨릭 신문이라고 하면서 도움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5년 동안 팬데믹도 있었지만 그래도 임기를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후임 신부님이 10월에 신문홍보를 위해서 온다고 합니다. 저도 50명은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입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그런데 밀밭에 가라지가 자라듯이, 이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에 ‘악’이 들어왔습니다. 교회는 그 악을 죄의 뿌리라고 합니다. 죄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이 하느님과 멀어지려고 하는 성향입니다. 죄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의 결과입니다. 자유의지는 두 가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하느님을 찬양하며,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문화, 문명, 예술이 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방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전쟁, 폭력, 야만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처럼 이 세상을 벌하지 않으시는 것은 선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들이 하느님께 돌아 올 수 있도록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살신성인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몰로카이의 다미안 신부님은 나병환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였고, 본인도 나병환자가 되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자신을 저격한 청년을 찾아가서 용서하였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아프리카 수단에서 선교하였습니다. 신부님의 삶을 기록한 ‘울지마 톤즈’는 씨앗이 되어 많은 학생이 사제의 길을 가도록 이끌었습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콜베 신부님은 죽어야 할 사람을 대신해서 죽음을 선택하였습니다. 198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그를 ‘자비의 순교자’라 부르며 시성하였습니다. 신부님은 포로수용소의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였습니다. 죽음의 공포를 넘어 희망을 전하였습니다. 신부님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셨고, 천국에서 빛나는 신앙이 별이 되셨습니다. 신부님은 이웃을 위해서 대신 죽음을 선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콜베 신부님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욕망이라는 열쇠를 굳게 쥐고 있습니다. 교만이라는 열쇠를 굳게 쥐고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라는 열쇠를 굳게 쥐고 있습니다. 그런 열쇠로 세상의 문은 열 수 있겠지만 천국의 문을 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욕망은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많은 생명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병들어 가는 지구에서는 인간 역시 병들기 마련입니다. 하느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서 계획한 것들, 생각한 것들을 실천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성인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Maximilian Mary Kolbe)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연도 : 1894-1941년
같은이름 : 꼴베, 막시밀리아누스, 막시밀리안, 막씨밀리아노, 막씨밀리아누스, 맥시밀리안, 맥시밀리언
1894년 1월 7일 폴란드의 즈둔스카볼라(Zdunska Wola)에서 태어난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Maximilianus-Maria Kolbe, 또는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는 라이문두스(Raimund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1910년 9월 4일 콘벤투알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면서 막시밀리아누스라는 수도명을 택하였다. 이곳에서는 그는 중등 교육과 수련을 받고 1911년 9월 5일 첫서원을 했으며, 1912년 12월 로마(Roma)에 가서 공부를 계속하였다.
그는 로마의 프란치스코회 국제 신학원에 머물면서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보나벤투라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무렵 23세였던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는 여섯 명의 동료와 함께 신학원장 신부의 허락하에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회'(Militia Immaculatae)라는 모임을 결성하였다(1917년 10월 16일).
이 모임은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을 철저히 봉헌하고, 세계의 복음화를 위해서 활동하는 일종의 신심 단체이다.
1914년 11월 1일 종신서원을 하고, 1918년 4월 28일 사제품을 받은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는 1919년에 고국인 폴란드로 돌아왔다.
귀국 직후 크라쿠프(Krakow)의 프란치스코회 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동료 수사들은 물론 대학생들과 군종신부들 안에서 기사회 조직을 만들었다.
1922년부터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Rycerz Niepokalanje)라는 잡지를 발행함으로써 매스 미디어를 통한 사도직을 시작하였다.
이 잡지는 초기에 그로드노 (Grodno)에서 발행되다가, 1927년에는 '원죄 없으신 성모의 마을'(Miepokalanow)이라는 수도생활 공동체에서 발행하였다.
이 마을은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신부가 바르샤바(Warszawa)에서 40km 떨어진 방대한 지역에 설립한 공동체이다.
그리고 1930년에는 일본 나가사키에도 이와 비슷한 형태의 수도원을 세웠다.
그 후 중국, 한국, 인도에도 공동체를 세우려고 했으나 외부적인 이유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폴란드 내에서 유명해진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신부는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동료 수도자들과 함께 나치에게 체포되어 수용소에 갇혔다가 곧 풀려났다.
이후 그는 가난한 이들과 박해받는 유대인들을 '원죄 없으신 성모의 마을'에 거주토록 하면서, 이들을 보호하고 돕기 위해 노력하였다.
1941년 그가 "자유"라는 기고문을 발표하자, 나치는 유대인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2월 17일 그를 체포하여 바르샤바의 파비악 형무소에 감금했다가 2월 28일 '죽음의 수용소'라고 불리는 아우슈비츠로 옮겨졌다.
이곳에서 그는 저명한 가톨릭 신부라는 이유로 더욱 혹독한 매질과 고문과 처벌을 받으면서도, 동료 수감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끊임없이 격려하였다.
그러던 중 1941년 7월 말경, 한 수감자가 수용소를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치는 한 명이 탈출하면 그 벌로 열 명을 처형하였다.
나치에 의해 지목된 열 명의 처형자 중 한 폴란드 사람이 자기에게는 가족과 아이들이 있다고 울부짖자 이를 본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신부는 자원해서 대신 죽겠다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결국 그는 다른 아홉 명과 함께 지하 감옥에 갇혀 아사형에 처해졌다.
다른 동료들이 모두 굶어 죽을 때까지 2주 이상을 물과 음식 없이 생존한 그에게 나치는 결국 독극물을 주사했고, 이로써 그는 1941년 8월 14일 아우슈비츠의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오늘날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 신부가 죽음을 맞이한 감옥은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1948년 그에 대한 시복 절차가 시작되어 마침내 1971년 10월 17일 교황 복자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2년 10월 10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가 '자비의 순교자'(Martyr of Charity)라는 칭호와 함께 그를 시성하였다.
성 막시밀리아누스 마리아 콜베 신부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매우 깊었으며, 성모 마리아에게 특별한 공경을 바친 성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성 에우세비오(Eusebius)
활동년도 : +4세기경
신분 : 신부, 증거자
지역 : 로마(Roma)
같은 이름 : 에우세비오스, 에우세비우스
4세기 후반부에 로마에서 살았던 성 에우세비우스(또는 에우세비오)의 생애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아리우스파(Arianism) 황제이던 콘스탄티우스를 반박했던 사제였고, 교황 펠릭스 2세(Felix II)를 공적으로 지지하였으며, 교회의 공식 집회가 금지된 후부터는 자기 집에서 미사를 집전했던 용감한 사제였다. 이 때문에 그는 자기 집에서 체포되어 7개월 후에 운명하였다. 그는 아피아 가도(Via Appia)에 있는 칼리스투스(Callistus) 묘지에 안장되었는데, 묘비명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하느님의 사람인 에우세비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