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학년도 ( 1 )학기 과제물(온라인제출용)
교과목명 : 교육사
학 번 : 202144-377923
성 명 : 황 주 태
연 락 처 : 010-9610-7979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o 과제유형 : ( 공통 ) 형
o 과 제 명 : 우리나라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 교육사상가 및 실천가 중 1명을 선정하여 그의 생애와 교육사상의 특징을 설명하시오.
-신명조, 글자크기 11포인트, 줄간격 160, A4용지 4매(표지 미포함). -
- 이하 과제 작성
- 목 차 -
Ⅰ. 다산 정약용을 배워야 한다.
Ⅱ. 다산 선생의 교육사상
1). 오직 독서뿐
2). 세상을 구한 책을 읽어라
3). 실학의 산실 규장각
4) 유배지 강진
Ⅲ. 다산선생의 교훈
※참고도서
Ⅰ. 다산 정약용을 배워야 한다.
다산 정약용은 중국 사상에서 벗어나 조선의 주체적인 정신을 불어 넣은 세계적인 대학자이면서도 백성들의 생활에 이로움을 주고자 한 애민 정신과 개혁을 부르짖던 개혁 정신이 깃든 실학자이다.
당시 학자들은 성리학 이외에 다른 사상이나 학문, 실용적인 과학 기술을 억압하고 경시했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들어서자 일과 형식에만 치우친 성리학이 비판을 받고, 현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학문이 대두되었다. 그것이 다산선생을 기점으로 실천하는 실학이다.
정약용은 백성들의 빈곤을 해결하고, 실생활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당시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 분야는 정치 경제 역사, 법률, 뿐만 아니라 수학 문학 군사 지리 의학, 천문, 음악 등 무척 다양했다.
더욱이 다산 정약용은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면서 자신을 지식 세계를 단단히 세웠다. 조선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그가 세운 학문의 목표였다. 정약은 애민 사상과 개혁사상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본보기 큰 영향을 미친다.
다산 정약용의 저서 『목민심서』에서 “지방관(목민관)을 위하여 백성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관이 백성을 위하여 존재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 책에 지방 관리가 백성을 다스릴 때에 어떤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고, 백성들이 잘 살 수 있게 하려면 어떤 정책을 펴야 하는지를 밝혔다. 지방관은 언제나 청렴결백하고, 명예와 재물을 탐내지 않으며, 절대로 뇌물을 받지 마아야 한다. 그리고 백성에게 봉사하고, 국가의 정책을 빠짐없이 전하고, 백성의 뜻은 나라에 알리고, 백성들을 보호하는 것이 관리의 임무라고 밝혔다.
Ⅱ. 선생의 교육사상
1). 오직 독서뿐
천지 만물 중에는 자연 그대로 온전해야 좋은 것이 있다. 이런 것들은 기이하다고, 이러니저러니 떠들 필요가 없다. 오히려 망가진 것이나 찢어진 것을 잘 고치고 다듬어 온전하게 만들어야만 더 요긴하게 쓸 수 있으며 그 공덕을 찬탄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죽을병에 걸린 사람을 고쳐야 훌륭한 의원이라 칭송받고, 위태로운 나라를 구해야 뛰어난 장수라고 이름을 떨칠 수 있다.
대대로 늙은 벼슬아치 집안의 자제들이 관직을 얻고 가문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 집안이라면 평범한 자제라도 능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너희는 폐족이다. 그러므로 더욱더 잘 처신해야 한다. 너희가 슬기롭게 굳건하게 극복하여 본래의 가문보다 더 훌륭하게 만든다면 이것이야말로 기특하고 장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폐족의 자손으로서 잘 처신해야 하는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오직 독서, 한 가지 길밖에 없다. 독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 참맛을 알지는 못한다. 권세 있는 자제라고 그 맛을 아는 것도 아니며, 시골 가난한 천재라고 그 오묘한 이치와 짚이를 옹글게 음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벼슬하던 집안의 자제로서 어려서부터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있고, 도중에 뜻밖의 고난을 당한 너희 같은 젊음이들 만이 진정한 독서를 할 수 있다.
부잣집 자제나 시골 천재들이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게 아니라, 뜻도 모르면서 그냥 읽기만 한다고 하여 다 독서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삼대(三代)를 이어 오지 못한 의원이 지어 준 약은 먹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문장 또한 그러하다. 대대로 글하는 집안이라야 문장을 할 수 잇다는 말이다.
들이켜 보면 내 재주가 너희보다 조금 나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려서는 나아갈 방향을 알지 못했고, 열다섯 살에 서울로 올라왔으나 이곳저곳 기웃거리기만 했을 뿐 얻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 후 서무 살 무렵에 가서 과거 공부에 열중하여 소과에 합격한 뒤, 규장각에서 책을 교열하고 펴내는 일에 바쁘다가 황해도 곡산부사로 부임해서 오로지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 정신을 쏟았다.
독서를 하려면 반드시 근본부터 세워야 한다.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할 수 없고, 학문에 뜻을 두었다면 필히 근본부터 세워야 한다. 그렇다면 그 근본이 무엇이냐? 바로 효제(孝悌)이다. 즉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먼저 효제를 힘써 실천함으로서 그 근본을 확립하면 학문은 자연스레 몸에 베어들고 넉넉해진다. 그런 뒤에는 특별히 독서를 따질 필요가 없다.
2). 세상을 구한 책을 읽어라
다산 정약용선생은 말했다. 내가 여러 번 말했듯이 청족은 굳이 독서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존경받을 수 있다. 그러나 폐족은 교양이 없으면 더욱 볼꼴 사나울 것이다. 사람들이 천하게 대하고 세상이 얕잡아 보는 것도 서러운데 하물며 지금 너희는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니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이냐
너희가 끝끝내 배우지 않고 포기해 버린다면, 내 저술들과 간추려 뽑은 글들은 장차 누가 모아서 책으로 엮고 바로잡아 보존하겠느냐? 너희가 이 일을 못 한다면 내 책들은 끝내 세상에 전해지지 못할 것이다.
다산선생은 후학들에게 종종 자신의 책이 전해지지 않으면, 후세 사람들은 단지 나를 탄핵한 사헌부의 글과 죄를 밝힌 기록만 보고 나를 평가할 게 아니더냐? 그리되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취급받겠느냐 아무쪼록 너희는 잘 생각해서 다시 떨쳐 일어나 학문에 힘써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집안에 글하는 전통을 더욱 번창시켜라. 그러면 세상에서 다시금 빛을 보게 될 것이며, 어떤 집안도 우리 집안의 청빈함과 고귀함과는 감히 겨룰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하거늘 무엇이 괴롭다고 주저앉으려 하느냐?
요즘 일부 젊은이들은 원나라와 명나라 때의 경박한 사람들이 가난과 괴로움만 넋두리한 글을 가져다가, 그대로 모방해 시를 짓고는 이 시대의 뛰어난 글이라고 자부하면서 으스대 더구나, 그러면서 남의 글이나 헐뜯고 고전적인 글들을 깎아내리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너희는 반드시 경학을 공부하여 기초를 확고히 다져야 한다. 그런 뒤에 옛 역사책을 두루 읽어서 정치에서 잘한 점과 잘못한 점, 잘 다스려진 이유와 어지러웠던 이유 등 을 알아야 한다. 더불어 실제 생활에 필요한 학문인 실학에 관심을 기울이고 옛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했던 글 등을 즐겨 읽어라,
가슴속에는 늘 백성들을 이롭게 하고 만물을 길러내겠다는 뜻을 지닌 뒤라야만 비로소 참다운 독서를 한 군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이 된 뒤에 때때로 안개 낀 아침, 다 빛 고운 저녁, 짙푸른 녹음, 가랑비 내리는 날의 풍경 등을 보면, 문득 마음에 감동의 물결이 출렁거려 시상이 떠오르고 운율이 흘러나와 저절로 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천지자연의 소리는 맑게 울려 퍼지리라, 이것이 바로 시인이 제 역할을 해내는 경지이고, 살아 움직이는 좋은 시이다. 나보고 너무 허황된 이야기만 한다고 하지 말거라.
최근 수십 년 이래 괴상한 논의가 있더니, 우리 문학을 배척하고 있다. 우리나라 옛 문헌이나 문집은 쳐다보지도 않으니 이야말로 큰일이다. 사대부의 자체들이 우리나라 역사를 알지 못하고 선현의 문집을 읽지 않으면, 비록 그 학문이 높고 깊을지라도 그저 엉터리가 될 뿐이다. 너희는 시집은 서둘러 읽을 필요는 없으나 임금께 올린 상소문, 묘의 비문, 옛사람들이 주고받은 서간문 등은 꼭 읽어 안목을 넓혀야 한다. 임진왜란 이후 당쟁에 관한 기록인 ‘아주잡록’, ‘반지만록’, ‘청야만집’도 두루두루 보아야 한다.
3). 실학의 산실 규장각
다산은 규장각에서 왕의 글이나 물건을 보관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 규장각의 역할을 강화하여 자신을 뒷받침해줄 세력과 인재를 키우는 곳으로 썼다.
사실 정조는 어렵게 왕위에 올라, 아버지 장헌세자가 ‘노론’이라 일컬어지던 당대의 대신들에게 모한을 받아 뒤주에 갇혀 죽은 뒤, 노론은 호시탐탐 정조를 없앨 기회를 노렸다. 할아버지 영조가 방패막이가 되어 주어 왕위에까지 올랐지만, 왕이 되어서는 정조는 늘 노론 세력으로부터 위협을 받았다. 정조에게는 노론의 힘을 잠재우고 개혁을 이끌어갈 새로운 세력이 필요했다.
한편, 규장각을 거쳐 간 관리들은 대부분 개혁을 주장하는 실학자들이었다. 검서관들은 대부분 북학파 출신의 학자들이었고, 초계문신으로 뽑힌 학자들도 개혁 성향이 강한 젊은 유생들이었다.
정조가 즉위하자마자, “과인은 사도세자 아들이다.” 라며 소리쳤다. 이 말에 사도세자의 죽음에 개입했던 노론은 등골이 서늘했다.
다산선생이 서울 생활을 시작한 1776년은 정조가 왕위에 오른 해였다. 52년에 걸친 영조의 시대가 가고 스물다섯의 젊고 패기 넘치는 새 왕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한데,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인 자들은 왕을 우습게 여길 만큼 권세를 부리고 있었다. 왕을 우습게 아는 신하들은 왕을 죽이려고 자객을 보냈고 독살을 시도했다. 정조는 자기를 지켜주고, 함께 할 수 있는 신하가 필요했다.
그때, 정약용이 정조에 눈에 들었다. 인재들이 왕의 곁으로 하나 둘 모이고 있었다. 정약용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실용적인 학문을 발전시키는 한편 왕을 모시고 개혁에 앞장서겠다는 꿈을 꾸었다. 그러려면 열심히 공부하고 지식과 지혜를 쌓았다.
4) 유배지 강진
1801년 11월 5일 정약전, 정약용 형제는 귀양지를 향해 강진으로 향했다. 나주 율삼정 삼거리 갈림길에서 곧장 죽 가면 흑산도로 빠지고, 왼쪽 길로 꺾어서 내려가면 바로 강진이다. 그는 길을 떠난 후 아내의 야위어진 얼굴을 떠올리며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맛난 음식과 약을 정성껏 올려서 얼른 기운을 차리게 해 드려라.
귀양살이로 집안은 가난해졌고 자식들도 힘들어했다. 정약용은 마음이 아팠다. 시간이 흘려 다산은 제자들을 받아 학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강진 아전들의 자손인 손병조, 황상, 황취, 이청, 김재청 등을 가르쳤다.
다산 선생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머리 좋은 걸 최고로 치지 않았다. 아이들의 장점을 이끌어 내어 그 점을 격려하며 다독거려 주었다. 다산의 제자 중에 황상은 머리는 안 좋았지만 시를 짓는 데는 자질이 있었다. “너는 좋은 자질이 갖추었으니 공부에 정진하여라. 머리만 믿고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머리가 아둔해도 파고 또 파고든다면 꽉 막힌 재능도 찾을 수 있다. 요는 네가 얼마나 부지런히 하느냐에 달렸다.”
정약용의 한마디에는 제자에게 엄청난 큰 힘이 되었다. 황상은 스승의 이 말에 크게 감동하여 평생 교훈으로 간직하고 공부에 힘썼다.
다산 정약용은 제자를 가르칠 때 선배들의 견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스스로 의문을 품고 자기 생각을 말하게 했다. 미심쩍으면 의문이 풀릴 때까지 사색하고 토론하게 했다.
한편으로 세월은 잡지 않아도 절로 흘려, 다산은 중풍으로 인하여 맑은 정신이 흐트러진 가운데서도 본격적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여름 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겨울 추위에도 책 스는 일 몰두했다.
다산 정약용은 이렇게 하면 깊은 지식에 이를 수 있다는 교육사상가였다. 다산이 남긴 수많은 책들 중에서도『다산문답』은 이런 학문하는 법을 보여주었으며, 『여유당전서』의 여러 저작에도 이런 내용의 흔적이 남아있다.
Ⅲ. 다산선생의 교훈
다산 정약용의 저서는 일생동안 542권의 책을 남겼다. 다산선생은 우리 문학사에 큰 획을 그으신 분이다. 유배지에서 온 다산은 유교 경학 연구서를 비롯해 철학, 정치, 경제, 법률, 농업, 문학, 의학, 예술 등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서 방대한 저술을 남긴 대학자이자 사상가이다.
엄격하지만 뜨거운 심정으로 아들들에게 전한 가르침과 형제간의 진한 우애 그리고 제자들에 대한 예리한 조언과 애뜻한 정이 구절구절 들어 있는 편지글, 애달프게 가난한 백성들, 질병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 글을 익히는 사상가, 학자, 유생들에게 학문의 뿌리가 되고, 어린 아들의 죽음에 애달파하는 슬픔을 토로하는 평범한 아버지이며, 주막의 노파가 하는 말에도 귀 기울이 줄 아는 인간의 삶에 겸손함을 보인 다산은 학문을 하는 우리 학생들 뿐 아니라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평생의 유산이자 삶의 지침이 되어 줄 것이다.
※참고도서
•안길정(2008. 10.29). 『시대의 어둠을 밝힌 개혁 사상가 정약용』. 도서출판 아이세움.
•글쓴이 햇살과 나무꾼(2004. 8. 26). 『개혁을 꿈꾼 학자 정약용』. 어린이중앙.
※ A4용지 편집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