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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록 상권 상당 대기 19-7. 종문의 강령을 말씀해 주십시오.
[한 스님이 나와 예를 다한 후에 운문선사에게 물었다.
"종문의 강령을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물었습니다.
여기서 종문의 강령이란 운문종의 강령을 물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운문선사 시대에는 5가칠종의 종파가 있었습니다.
운문선사는 종문의 강령이란 것이 없었지만 운문선사의 제자인 나한 계심선사의 제자인 법안 문익선사의 종파인 법안종에서는
淨慧法眼禪師宗門十規論(정혜법안선사 종문십규론)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그기에 보면 종문십규론에서 세 번째 강령을 제창하면서 맥락을 모른다라는 부분을 인용하여 보겠습니다
淨慧法眼禪師宗門十規論(정혜법안선사 종문십규론)
第三 .舉令提綱不知血脈(거령제강불지혈맥)
제3. 강령을 제창하면서 맥락을 모르다
생각건대 선문을 표방하고 법요(法要)를 제창하려 하면서 맥락을 모르면 .모두가 망령되게 이단(異端)이 되고 만다
그 사이에는 먼저 표방하거나 뒤에 제창하기도 하며 불법을 설명하기도 하고 기봉(機鋒)을 단박에 꺾기도 한다. 조사의 법령을 시행함에 있어서는 살리고 죽임이 손아귀에 있어서 혹은 천 길 절벽에서 선 듯 물샐 틈 없기도 하고 혹은 자재한 살림을 잠깐 허락하여 물결을 따르기도 한다. 마치 왕이 칼을 어루만지면서 자유로워진 것을 다행으로 여길 때처럼, 그때그때 쓰면서 주었다 뺏었다 함이 몸에 차고 부리는 듯하다. 파도가 날듯 산악이 서 있듯 하고 번개가 구르듯 바람이 달리듯 하며, 큰 코끼리 왕이 유희하고 진짜 사자가 포효하듯 한다. 그러나 자기의 능력을 헤아리지 못하고 쓸데없이 남의 말을 훔쳐, 놓아 주는 것만 알 뿐 거둘 줄은 모르고 살리기만 하고 죽일 줄은 몰라, 종[奴]인지 낭군인지를 분별 못하고 진짜와 가짜를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옛사람을 모독하고 종지를 매몰하고 사람마다 알음알이 속에서 헤아리고 낱낱이 오음십팔계(五陰十八界) 안에서 찾는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깨달음인 줄을 모르고 가짜반야[相似般若]를 이룰 뿐이니, 머물 것 없는 근본에서 법당(法幢)을 세우고
부처님을 대신하여 법을 펴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듣지도 못했는가? 운문(雲門)스님께서 "온 나라를 통틀어 화두 드는 사람 하나를 찾아보아도 찾기 어렵다"라고 하셨던 것을. 또 듣지도 못했는가? 황벽(黃檗)스님께서 "마대사(馬大師)가 80여 명의 선지식을 배출하였으나 물었다 하면 모조리 구구한 경지일 뿐이고, 유일하게 여산(廬山)스님이란 분이 그래도 약간 나은 편이다"라고 하셨던 것을 이로써 이 자리에 앉아 법령을 드러내고 강령을 제창할 줄 알면 바로 완성된 종장(宗匠)이라는 점을 알겠다.
어떻게 그런 줄 아는가. 듣지도 못했는가. 옛사람이 말하기를 "싹을 보면 토질을 알고 말하는 것을 보면 사람을 알아내니 눈을 깜짝이고 눈썹을 드날리기만 해도 벌써 간파해 버린다"라고 했던 것을. 하물며 남의 모범이 되어서 삼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고 강령을 지어 베포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까지는 이렇게 강령을 지은 사람이 없었음으로 운문선사는 이렇게 답을 합니다.
["남쪽에는 설봉(雪峯)이 있고, 북쪽에는 조주(趙州)가 있다."]라고 합니다. 무유정법(無有正法)이라고 했습니다. 본래공에서 그 어떻한 정법이란 있을 수 없다 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가 있을 뿐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실여상(眞實如常)한 진여(眞如)인데 어디서 종문이 있으며 강령이 있겠는가 다 그것은 그대의 알음알이 견문각지(見聞覺知) 그려내고 조작된 것이다 지금 여기서 눈으로 볼 수 있는 법은 남쪽으로 가면은 나의 스승인 설봉(雪峯)이 있고, 북쪽에는 조주(趙州)가 있다. 여기서 체득되지 않으면 우리 문중에 계시는 설봉스님이나 타 종단이지만 선지식인 조주스님에게 가서 물으면 되는 것이 바로 문중이고 강령인 것이다. 마음을 어디다 두어 공상과 망상을 그려 내느냐며 꾸짓고 계신 것입니다.
그 때 한 스님이 나와 예를 갖추고 운문선사에게 물었다.
[확철대오(確哲大悟) 한 사람은 일체 법이 공(空)함을 봅니까?"]라고 물었다. 여기서 “확철대오(確哲大悟) 한 사람은”이라는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말로써는 표현할 수 없는 글로써도 표현할 수 없는 마음으로도 그 끝없는 연기법을 바로 본래공(本來空)을 마음으로 밝히신 분을 말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본래공(本來空)이란 불생불멸(不生不滅)을 깨치신 분.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성품(性品)을 체득하신 분. 적정열반(寂靜涅槃)에 드신 분. 색과 연기와 공의 도리를 체득하시어 중도(中道)를 깨치신 분. 등 무어라 해도 그 답을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경계는 오직 본인 만이 체득하는 것이지 그것이 어떻하다라고는 그 어떻한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불보살님들이 확철대오한 현대 불교에서 깨달음의 세계를 득도하신 성우 경허선사의 깨달음의 경지를 잠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경허스님은 오랫동안 많은 제자들에게 중요한 설법(說法)을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전염병이 창궐하는 천안 지역을 지나다가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시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도 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도망치듯 달아나다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꼈다.
그동안 생사(生死)를 벗어나는 법(法)을 많은 제자에게 가르쳤지만,
실제로 죽어가는 사람을 보니 자신이 겁먹고 있음을 느끼고, 정작 나 자신이 생사(生死)에 허덕이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스님은 동학사에 돌아와서 모든 대중에게 "그동안 내가 설(說)한 소리는 모두 허튼소리다. 대중들은 모두 자신의 근기와 인연을 따라 훌륭한 스승을 찾아가라." 말한 뒤 문을 걸어 잠그고 정진했다.
몇 달을 그렇게 정진하던 중에 어느 날 문밖에서, 사미승이 마을에 내려갔다가 어떤 스님이 무비공(無鼻孔)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무슨 뜻이냐고 주지 스님께 묻는 말을 들었다.
경허스님은 이 소리를 듣자마자 확철대오(確哲大悟)하시어, 문을 박차고 나와 오도송을 읊었다.
“홀문인어 무비공(忽聞人語 無鼻孔), 홀연히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고, 돈각삼천 시아가(頓覺三天 示我家), 비로소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다. 선사(禪師)의 깊은 깨달음을 내가 어찌 다 알리 오마는, '콧구멍이 없다.'는 것은 존재는 하지만 숨을 쉬지 않는다는 뜻이 아닌가? 모든 사물이 연기에 의해 한시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이니 자연이고, 자연의 4대 원소(地, 水, 火, 風)가 모여서 내가 되었고, 내가 흩어지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자연과 내가 하나라는 의미가 아닐까?
죽음이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존재가 형상은 바뀌나 질량은 변함이 없으니 내 몸을 이루었던 원소는 죽어도 이 지구상 어딘가에 흩어져 있어, 언젠가는 인연이 닿으면 다른 형상의 자양분이 되어 나타난다. 그러니 나는 살아도 지구에 있고 죽어도 지구에 있는 것이 된다. 현대 과학의 열역학 에너지 보존법칙을 온전히 이해하여, 자연과 내가 하나임을 인지(認知)하는 것이 생사(生死)를 초월(超越)한다는 뜻이 아닐까?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 여기서 한 스님이 물은 “일체 법이 공(空)함을 봅니까?”라고 물은 것은 본래공(本來空)을 체득한 것입니까?라고 묻고 있다.
여기서 본래공(本來空)을 잘 참구해야 할 것입니다.
본래공(本來空) 선문염송 제498칙[了則 ]에서 어떤 스님이 고덕(古德)에게 "어떤 것이 본래의 공입니까?" 하자 "악한 인연이니라(惡因緣)"하고 대답하였는데, 다시 "어떤것이 악한 인연입니까?"하자
"본래 공하다는 것이니라."하고 대답하였다.
또 호월공봉(皓月供奉)이 그 선사에게 "알고 보면 업장이 본래 공하고 모르면 묵은 빚을 갚아야 한다고 했는데 2조(祖)께서는 알았습니까, 몰랐습니까?"하자 선사가 "대덕은 본래 공한 도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호월이 다시 "어떤 것이 본래 공한 것입니까?" 하니 선사가 "업장이니라." 하고 대답하고는 송하기를
"거짓으로 있나니 원래 있는 것 아니요, 거짓으로 멸하나 또한 없는 것이 아니다 열반에서 빚 갚는 도리는 한 성품이어서 본래 다르지 않다." 라고 하였다.
라고 적고 있듯이 본래공(本來空)이란 무시이래(無始以來)로 다 공이라는 것을 체득하는것입니다.
그러니 확철대오한 분이야 당연히 본래공을 체득한 것을 운문선사는이렇게 답을 하시어 확연히 밝혀 드립니다.
["소로소로."]란 범어이지만 “그렇고 그렇다”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돌~~!!!!
그 때 또 다른 한 스님이 나와 삼배를 올린후 물었습니다.
["종일 애썼지만 들어갈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스님께서 들어갈 길을 가리켜 주십시오."] 여기서 종일 애썼지만 들어갈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불교의 수행은 오직 마음의 길을 찾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길은 육체적으로 할 수있느냐? 될 수가 없습니다.
몸으로 불교를 하는 사람은 행위불교(行爲佛敎)일 뿐입니다.
행위불교는 의식과 절차에 따라 행하고 있는 기복신앙(祈福信仰)인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가 아니라 무속신앙(巫俗信仰)이며 사마미즘의 대표적인 신앙형태인데 불교의 신앙이 아닙니다. 작금의 사찰의
한국에서 본다면 마음 수행을 하는 스님은 흔히 이판승(理判僧)이라고 하고 행위불교를 하는 스님을 사판승(事判僧)이라고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조계종(曹溪宗)은 육조 헤능선사의 주석처가 조계산(曹溪山)이란 산명을 조사선의 발상지임을 칭하여 조계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조계종은 생겨난지가 얼마 되지가 않습니다. 성철스님이 주도한 정혜결사(定慧結使)이후에 전통으로 전해진 한국불교를 기복신앙과 행위불교인 태고종에서 마음 수행을 하는 통일 종단으로 재편하면서 생겨난 신흥종단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대표되는 것이 기복신앙임으로 그 목표는 마음의 수행보다는 기복과 행위불교에 젖어있는 한국불교는 아직도 마음 수행의 불교을 표현만 하고 있을 뿐 그 긴 역사 속의 사마니즘인 무속신앙과 도교의 신비주위 유교의 사회통념으로 인하여 불교의 근본인 수행불교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아직도 형식과 행위에 관한 율법정도가 남아 있어 대중들은 지금 이 납승이 오직 일승불교라는 말에는 너무나 멀어져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조계종도 사실 증흥조를 조사선 사가어록을 완성하여 한 종단을 만들었든 임제종을 만든 임제 의현스님을 중흥조로 삼고 있습니다 만
아직 그렇게 대중들이 받아 들이지 않기 때문에 선승(禪僧)들은 그러한 여건자체가 되지 않음으로 중생구제라는 대승불교는 아직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눈밝은 제가불자들 사이에서 선불교가 활발하게 일으나고 있음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사료됩니다.
그 당시의 운문종을 세워 활 발발하게 선기방편을 베풀어주시던 운문선사는 “스님께서 들어갈 길을 가리켜 주십시오”라는 청원에 대하여 이렇게 답을 일러주시고 계십니다.
["맞는 근기에는 길이 있다."]라고 하시어 일승 이승 삼승 사승 오승으로 근기에 따라 그 길이 있음으로 처음 발심이 어디에서 시작이 되었든 스스로 행하다 보면 길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근기와 견처에 따라 혜안이 밝혀지면 차츰 항상일로(恒常一路)의 길을 따라 수행정진하다 보면은 근본은 본래공(本來空)이라는 하나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고 계신것임니다. 본불본락(本佛本樂) 하옵소서
그런데 아직 안목(眼目)이 없는 이 스님은 다시 이렇게 묻습니다
["무엇이 불조(佛祖)를 뛰어넘는 이야기입니까?"]라고 묻고 있습니다
여기서 불조(佛祖)란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불과 부처님의 정법을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이어온 조사(祖師)님들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과 그 역대조사를 뛰어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가 바로 자연적인 진실여상(眞實如常)한 진여(眞如)라고 하지만 진여라는 것은 말이며 글이며 생각일 뿐입니다. 그래서 운문선사는 지금 펼쳐지고 있는 자변의 지역적인 공기와 날씨의 영향으로 얻어지는 성품을 착안하여 이렇게 대답을 하십니다.
["포주(蒲州)에서는 마황(魔黃)이 나고, 익주(益州)에서는 부자(附子)가 난다."]라고 하시어 지역별로의 그 영향적 토질이나 날씨등에 따라 “포주라는 지방에는 마황이 나고 익주(益州)에서는 부자(附子)가 난다.“고 직설적으로 설파하십니다.
그래서 “지장스님은 모든 것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다.”라고 하셨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스님은 이 성품론 마져 인식을 못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또 묻습니다.
["무엇이 교(敎)의 뜻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여기서 “교(敎)의 뜻”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부처님의 3승 십이분경인 팔만사천대장경의 뜻을 물은 것입니다.
그 수량만큼이나 수많은 경전을 한 번 읽어 보기만 해도 수십년을 읽어도 다 일지못할 것이며, 그 뜻을 혜아려 알려면 너무나 한없는 노력으로도 다 읽지 못할 것이며 역대조사님들의 선어록(禪語錄)이 있으니 그 선어록은 사실 선지식의 지도없이는 가히 그 뜻을 혜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실참참선수행으로 바로 마음을 알아 깨닫는 것이 불교의 근본 뜻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수많은 것을 어찌 일설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운문선사는 이렇게 답을 하십니다.
["어지럽게 일어나 오면 무어라고 말하지?"] 그 많은 경전과 전등록에서 그 뜻을 이렇게 물어오면 내가 무어라 대답할 수 있겠는가 그중에 한가지라도 읽어 보다 의문이 생기면 그 의문점을 물어보아야지 이렇게 "어지럽게 일어나 오면 무어라고 말하지?"라고 하여 그 경전에 대한 자네의 견처나 안목(眼目)을 물으면 대답하마라고 꾸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스님은 또 이렇게 무작정 물고 늘어 집니다.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계속 물고 늘어지니 운문선사는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소귀에 경 읽기지."]라고 하십니다. 불법에 대한 견처나 선어록에 대한 안목(眼目)도 없는 그대같은 초심자에게 내가 말을 해 보아야
소귀에다가 경을 읽어주어 그 뜻을 설명하는게 낳지 그대같은 천제에게 무어라고 해야하겠느냐고 쫓아 내 버립니다.
“소귀에 경 읽기지” 라는 말은 이것이 보편화 되어 아직 기초불교도 수행도 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경을 읽어 주어야 알아듣지를 못한다는 비유로 많이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때 또한 스님이 나와 예를 다한후에 이렇게 묻습니다.
["현묘한 기틀 한길을 어떻게 체득해 알아야 합니까?"]라고 묻고 있습니다. 여기서“ 현묘한 기틀 한길”이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바로 들어면 깨달을수 있는 항상일구(恒常一句)을 묻고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정이난 한 기틀을 가지고 물어야 하는데 바로 깨달음을 얻을 현묘한 기틀 한길을 물었으니 그것은 자기 스스로 시절인연을 만나 깨닫는 것인데 내가 지금 여기서 어떻게 말할 수 있느냐 혹시라도 시절인연이 닿으면 그대가 깨달을수도 있을 것이다. 그 시절인연 닿는 것이 이럴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이렇게 한 마디를 합니다. ["30년 뒤에."]ㅎㅎㅎㅎㅎ
성불인연 맺으소서 옴 바아라 믹~!!!!!!!!!!!
조사선(祖師禪) 운문록(雲門錄)을 들어시어
인연성불(因緣成佛) 하시어서 붓다(佛陀) 같이 살아가소!
일승법문을 시절인연삼아 인연성불 하옵시고 대원성취 하옵소서 !
원오선원 명상쉼터 천안시 두정동 611_1번지 5층(041)551 8546
무명 납승 원오선사 010 8748 6006 옴~바아라 믹!!!_()_
탁발성원 보시구좌 농협 351 1042 1598 93 대한불교 정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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