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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K리그를 되돌아봤을 때 제주 유나이티드의 돌풍은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다.
2000년대에 들어와 매년 하위권을 맴돌던 제주는 2010 시즌을 시작하면서 환골탈태(換骨奪胎),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어 플레이오프에서도 전북을 꺾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비록 서울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1무 1패로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지만, 최고의 한해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제주의 비상에는 새롭게 사령탑에 부임한 박경훈 감독(50)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2007년 한국에서 열렸던 FIFA U-17 월드컵에서의 실패로 일선에서 물러났던 박 감독은 전주대 축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축구에 대한 시야와 견문을 넓혔고, 2010 시즌을 앞두고 제주를 맡으면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당초 제주의 객관적인 전력, 그리고 박경훈 감독에 대한 의심스런 시선들로 인해 그 누구도 제주가 K리그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줄 예상하지 못했었다. 더군다나 박 감독이 자신을 보좌할 코칭스태프로 무명이라 할 수 있는 이도영 수석코치와 김영민 코치, 이충호 GK코치를 영입하면서 제주는 당연히 하위권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U-17 월드컵에서의 실패와 2년간의 전주대 축구학과 교수로서의 삶은 박경훈 감독을 한 단계 성숙하게 만들었고,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축구계 내부에서는 인재로 평가받았던 이도영-김영민-이충호 코치의 가세는 팀의 색깔과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놨다.
결국 제주는 축구팬이라면 모두 깜짝 놀랄 만한 성적을 올렸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박경훈 감독은 'K리그 올해의 감독'에 선정되는 기쁨도 맛봤다. 그 어느 때보다 빛났던 2010년을 마무리하고, 새롭게 2011 시즌을 준비하려고 하는 박 감독을 만나 2010 시즌에 대한 소회를 들어봤다. (인터뷰 시점이 12월 중순이라 2010년을 올해로, 2011년을 내년으로 표기함. -편집자 주)
- K리그 올해의 감독상 수상 축하드립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감사합니다. 시즌이 끝나고 나면 홀가분해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더 바빴습니다. 인터뷰도 많이 하게 됐고요. 2011 시즌에 대한 구상과 훈련 계획 등도 세워야하고, 정신없이 보내고 있습니다.(웃음)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해 아쉽지만,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바쁘게 보내고 있네요.
- 2010 시즌 제주는 K리그에서 가장 돋보였던 팀이었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느낌이 어떠신지요?
올해 우리가 굉장히 행복한 한 해를 보낸 것은 사실입니다. 시즌 전에는 6강 플레이오프가 목표였는데, 그것을 훨씬 뛰어넘어 정규리그 2위와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이뤘으니까요. 선수들이 굉장히 훌륭하게 잘해줬고, 매우 만족스런 시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시작입니다. 2011년에는 좀 더 좋은 팀으로 만들어야 해요. 중요한 것은 팬들에게 감동을 주는 축구, 정말 모든 사람이 원하는 축구, 우리만의 축구를 더 발전시켜야한다는 점입니다.
- 올 시즌을 돌이켜보면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실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떤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십니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제가 생각했던 축구를 어느 정도 보여줬다는 점이에요. 삼다(三多)의 축구, 즉 바람과 같이 빠른 공수 전환, 돌처럼 단단한 조직력, 여자와 같은 아름다운 축구, 이런 부분을 선수들이 너무 잘 이해했고, 지속적으로 발전해나갔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상당히 뿌듯하고 기억에 많이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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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새롭게 제주에 합류했던 박경훈 감독-이도영-이충호-김영민 코치(오른쪽부터) ⓒKFA 홍석균 |
- 처음 제주 감독으로 선임되고, 코칭스태프를 구성했을 때 주위에서 우려가 많았습니다.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코치진이었죠. 저로서는 훌륭한 코칭스태프를 구성하겠다는 생각으로 이 진용을 짰던 것이고, 코칭스태프 선임과 관련해서는 구단에서도 전적으로 저에게 권한을 줬었죠. 그렇다 해도 많은 분들이 반신반의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저 역시도 U-17 월드컵에서 실패하고 2년간 현장에서 떠나있었던 사람이었는데, 코치진도 무명의 인물들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전 확고한 소신이 있었습니다. 제 색깔을 내는데 확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주위에서 우려한다고 해도 분명 우리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이도영 수석코치는 훌륭한 지도자가 갖춰야할 능력을 모두 갖고 있죠. 덕망과 이론적 지식 면에서 아주 대단해요. 최근 몇 년간 KFA 지도자강사로서의 역할도 훌륭하게 해냈었죠. 이 코치와는 예전 A급 라이센스 코스를 같이 받으면서 알게 됐는데, U-17 월드컵이 끝나고 제가 전주대 교수로 있을 때 서로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나눴어요. 서로 같은 축구철학을 공유하고 있었고, 당시에 제가 농담조로 "언젠가 프로팀에 가게 되면 함께 일하자"고 이야기했었는데, 그 시기가 빨리 왔죠.(웃음) 김영민 코치는 저와 프로페셔널 지도자 코스(P급)를 함께 받았는데, 그 과정을 통해 김 코치가 갖고 있는 지식과 능력을 봤습니다. 김 코치는 캐나다에서 선수 생활 및 지도자 생활을 했었고, AFC 경기국에서도 근무하면서 세계축구에 대한 정보와 코칭, 특히 피지컬적인 부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어요. 이충호 GK코치 역시 제주의 전신인 부천 시절에 GK코치로서 활동했었고, 저와는 U-17 대표팀에서 함께 하면서 좋은 능력을 보여줬었죠. 친정팀에 대한 애정도 컸고요. 천안시청에서 수석코치로 있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골키퍼 뿐 아니라 필드 선수들도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다방면의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진호 코치는 오랜 기간 제주와 함께 하면서 팀에 대한 부분이나 선수 개개인에 대한 부분에 있어 저에게 많은 조언을 해줬죠. 이렇게 모든 코치들이 역할분담을 확실하게 해주면서 저에게 큰 도움을 줬고, 그 덕분에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이도영, 김영민 코치가 한꺼번에 제주로 가면서 KFA 내부에서는 박 감독님께서 좋은 인재들을 다 데리고 갔다는 농담도 나왔었는데요.(웃음) 아, 그 부분 때문에 사실 걱정을 많이 하기도 했어요. 이도영 코치는 조영증 기술교육국장, 김남표 전임 강사와 함께 KFA 지도자 교육을 책임지고 있었던 분이었고, 김영민 코치도 각급 청소년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등에서 코치와 통역, 비디오 분석 등 1인 다역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인정받았던 지도자였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KFA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려줬어요. 사실 KFA에서 안 된다고 했으면 제가 데려오기가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흔쾌히 승낙해주셔서 감사한 마음 뿐이예요.(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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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7 대표팀 시절의 박경훈 감독 ⓒ이상헌 |
- 오랜 기간 U-17 연령대의 선수들을 지도했고, 또 U-17 월드컵 실패로 인해 좌절을 겪은 상황에서 최고 레벨인 프로 선수들을 만났습니다. 처음 대면했을 때 두려움이나 걱정 같은 것은 없었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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