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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의 보이지 않는 시스템과 모순의 미학
[1] 문제의 출발점
“아파트 단지의 보이지 않는 시스템은 어떤 흔적으로 나타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스템은 배관·전선·CCTV·관리사무소 같은 시설만을 뜻하지 않는다. 아파트를 매일 깨끗하고 안전하며 정상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규칙, 노동, 시간표, 기술, 금지, 주민의 습관과 비공식적 타협 전체를 의미한다.
켈러 이스터링(Keller Easterling)이 말하는 ‘기반시설 공간’도 단순한 물리적 시설이 아니다. 공간의 사용과 이동, 행동 가능성을 조직하는 규칙과 작동 성향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아파트의 시스템은 지하에 감추어진 설비뿐 아니라 주차선, 분리수거 방식, 조경 기준, 출입 절차, 안내문, 벤치의 위치, 조명의 밝기처럼 일상환경을 조용히 조정하는 형식으로 존재한다.
참조: Keller Easterling, 《Extrastatecraft: The Power of Infrastructure Space》 강연
https://www.lse.ac.uk/lse-player/extrastatecraft-the-power-of-infrastructure-space
사진의 대상은 시스템이라는 추상적 실체가 아니다. 시스템이 공간을 통과하고 난 뒤 남긴 정돈·삭제·봉합·반복·예외·실패의 표면이다.
[2] 시스템은 사물이 아니라 차이로 나타난다
보이지 않는 시스템은 하나의 고정된 물체로 발견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차이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 청소된 곳과 청소되지 않은 곳
* 물을 준 곳과 마른 곳
* 허용된 주차와 금지된 주차
* 관리된 화단과 스스로 자란 잡초
* 새로 칠한 벽과 바랜 벽
* 사람이 머물 수 있는 장소와 머물지 못하게 만든 장소
* 같은 구조이지만 서로 다르게 사용되는 공간
시스템은 “무엇이 존재하는가”보다 “어떤 곳은 왜 다른 상태가 되었는가”라는 질문 속에서 나타난다. 즉 시스템은 사물의 형태라기보다 상태를 다르게 만드는 힘이다.
[3] 가장 완벽한 시스템은 ‘아무 일도 없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흔적은 보통 균열·얼룩·파손처럼 남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관리 시스템의 가장 강력한 흔적은 오히려 무언가가 사라진 상태일 수 있다.
낙엽이 없는 보도, 쓰레기가 없는 분리수거장, 잡초가 없는 화단, 불법주차가 없는 도로, 물건이 없는 복도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풍경이 아니다. 누군가가 쓸고, 치우고, 자르고, 금지하고, 이동시킨 결과이다.
깨끗함은 중립적인 상태가 아니라 반복된 노동과 삭제의 결과이다. 사진은 남아 있는 흔적뿐 아니라 지워진 것의 흔적, 즉 ‘부재의 흔적’을 찍을 수 있다.
섀넌 매턴(Shannon Mattern)은 도시와 건축을 유지하는 청소·수리·보존·돌봄을 부차적 활동이 아니라 세계를 지속시키는 핵심 실천으로 본다.
참조: Shannon Mattern, 「Maintenance and Care」
https://placesjournal.org/article/maintenance-and-care/
[4] 시스템은 고장 날 때 모습을 드러낸다
수전 리 스타(Susan Leigh Star)는 평소 보이지 않던 기반시설이 고장과 단절의 순간에 가시화된다고 설명하였다. 정전이 발생하면 전력망이, 누수가 생기면 배관이, 엘리베이터가 멈추면 이동 시스템이 갑자기 인식된다.
참조: Susan Leigh Star, 「The Ethnography of Infrastructure」
https://journals.sagepub.com/doi/10.1177/00027649921955326
아파트에서 균열, 누수, 고장 안내문, 임시 테이프, 색이 다른 보도블록은 단순한 결함이 아니다. 정상적인 표면 뒤에서 계속 작동해온 관리체계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그러나 시스템은 고장 이후뿐 아니라 고장을 예상할 때도 나타난다.
* 미끄럼주의 표지판
* 동파 방지 덮개
* 나무 지지대
* 주차금지 고깔
* 금지선을 두른 화단
* 공사를 앞두고 붙인 안내문
* 비가 오기 전에 설치한 임시 물받이
이것들은 이미 발생한 사건의 흔적이 아니라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를 관리하는 흔적이다. 사진은 과거의 기록을 넘어 ‘오지 않은 사건의 흔적’을 포착할 수 있다.
[5] 보수의 흔적은 건축의 시간 봉합선이다
덧칠한 페인트, 교체된 타일 한 장, 시멘트로 메운 균열, 비닐테이프로 감은 배관, 색이 다른 보도블록에는 서로 다른 시간이 접합되어 있다.
새 건축물은 자신의 제작과정을 감추지만, 오래 사용된 아파트는 수리와 교체가 반복되면서 내부의 시간을 표면으로 밀어낸다. 보수 흔적은 단순한 흉터가 아니라 건축물이 계속 현재로 남기 위해 수행한 자기수정의 기록이다.
균열보다 균열을 메운 자리가 더 사회적이다. 균열은 재료의 자연적 노화일 수 있지만, 봉합선에는 “이 상태를 정상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인간의 판단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스티븐 잭슨(Steven J. Jackson)의 ‘고장 난 세계의 사유’는 완전한 세계가 나중에 파손된다고 보지 않는다. 세계는 처음부터 취약하며, 수리·조정·재조립을 통해 임시로 유지된다고 본다.
참조: Steven J. Jackson, 「Rethinking Repair」
https://raley.english.ucsb.edu/wp-content/Engl800/Jackson-rethinking-repair.pdf
[6] 관리인가, 돌봄인가
관리는 대상을 일정한 기준에 맞게 유지하는 행위이다. 돌봄은 대상의 개별적인 상태와 필요에 반응하는 행위이다. 겉으로는 비슷하지만 작동 방식은 다르다.
화단에 물을 주고 부서진 의자를 수리하는 것은 돌봄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든 나무를 같은 높이로 자르고, 정해진 기준에 맞지 않는 주민의 물건을 일괄적으로 철거하는 행위는 개별적 삶을 관리기준에 맞추는 통제가 될 수 있다.
앤마리 몰(Annemarie Mol)은 돌봄을 정해진 규칙의 단순한 적용이 아니라 변화하는 상태를 관찰하고 조정하며 다시 시도하는 실천으로 설명한다. 좋은 돌봄은 대상을 표준상태로 되돌리는 것만이 아니라 대상과 함께 적절한 상태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참조: Annemarie Mol, 《The Logic of Care》
https://www.routledge.com/The-Logic-of-Care-Health-and-the-Problem-of-Patient-Choice/Mol/p/book/9780415453431
관리와 돌봄의 경계는 장치 자체보다 결과에서 나타난다.
* 나무를 보호하는 지지대가 나무껍질을 누르는 경우
* 안전을 위해 설치한 난간이 이동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
* 깨끗한 화단을 만들기 위해 자생식물을 제거하는 경우
* 주민 편의를 위한 규칙이 특정 주민의 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우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잘 관리한다는 것은 대상을 정상상태로 되돌리는 것인가, 아니면 서로 다른 상태를 인정하며 계속 조정하는 것인가.
[7] 청결인가, 삭제인가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는 더러움을 사물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정해진 분류에서 벗어나 ‘제자리에 있지 않은 것’으로 설명하였다. 흙은 화단에 있으면 자연이지만 복도에 있으면 더러움이다. 화분은 집 안에 있으면 생활용품이지만 공용복도에 나오면 적치물이 된다.
참조: Mary Douglas의 《Purity and Danger》에 관한 공간적 해석
https://www.tandfonline.com/doi/full/10.1080/13264826.2013.785579
청소는 먼지를 제거하는 위생행위이면서 사물의 올바른 위치를 다시 결정하는 분류행위이다. 따라서 청결은 위생의 문제인 동시에 질서의 정치학이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흔적은 다음과 같다.
* 전단을 떼어낸 뒤 남은 접착 자국
* 화분을 치운 뒤 남은 둥근 물때
* 낙서를 덮은 다른 색의 페인트
* 의자를 철거한 뒤 생긴 바닥 변색
* 잘려나간 나뭇가지의 단면
* 폐기물 스티커만 남은 빈자리
이것들은 더러움의 흔적이 아니라 삭제행위의 흔적이다.
공간은 깨끗해진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생활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인가.
[8] 보호인가, 통제인가
울타리, CCTV, 차단봉, 출입문과 조명은 실제로 사람을 위험에서 보호한다. 이를 모두 억압적 통제장치라고 규정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그러나 보호는 언제나 경계를 만든다. 누구를 안으로 들이고 누구를 밖에 머물게 할 것인지, 어떤 행동은 안전하고 어떤 행동은 위험한 것으로 분류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규율 권력은 폭력적인 명령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공간을 구획하고 관찰 가능성을 높이며 이동을 유도함으로써 사람들이 스스로 행동을 조정하게 한다.
참조: Michel Foucault, 「Panopticism」
https://depts.washington.edu/lsearlec/510/Texts/Foucault-Panopticism.pdf
그러나 아파트를 곧바로 파놉티콘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상투적이다. CCTV가 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제 행동을 어떻게 바꾸는가이다.
* 카메라가 보는 곳에서 사라지는 행동
* 사각지대에 모이는 물건과 사람
* 외부인을 막지만 주민에게도 불편을 주는 차단봉
* 아이를 보호하면서 놀이영역을 축소하는 울타리
* 장기 체류를 막기 위해 불편하게 만든 벤치
* 안전을 위해 밝아졌지만 사생활이 노출되는 저층 창문
보호와 통제는 장치에 고정된 의미가 아니다. 누가 그 장치를 쉽게 통과하고 누가 반복해서 제지당하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9] 고장인가, 적응인가
임시 물받이, 테이프로 감은 배관, 벽돌로 받친 시설물은 잘못된 설계와 관리 실패의 증거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구조를 계속 사용하게 만드는 생활의 발명일 수 있다.
고장과 정상은 완전히 반대되는 상태가 아니다. 정상상태란 고장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수많은 작은 고장을 반복해서 수리함으로써 유지되는 잠정적 균형일 수 있다.
따라서 임시조치는 다음처럼 이중적으로 읽힌다.
* 설계 실패의 증거이면서 주민의 적응이다.
* 방치의 흔적이면서 긴급한 돌봄이다.
* 보기 흉한 덧댐이면서 건물의 수명을 연장하는 기술이다.
* 임시적인 해결이면서 제도보다 오래 지속되는 비공식 시설이다.
아파트는 완성된 건축물이 아니라 계속 덧대고 교체하고 우회시키면서 지속되는 수리 중인 과정이다.
[10] 사유화인가, 생활의 흔적인가
복도의 화분, 현관 앞 의자, 난간의 빨래, 공동화단의 개인 작물은 공용공간의 사유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획일적으로 설계된 공간을 실제 생활에 맞게 수정하는 흔적일 수도 있다.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는 제도와 계획이 공간을 조직하는 방식을 ‘전략’이라 하고, 사람들이 그 질서를 자신의 필요에 맞게 변형하여 사용하는 방식을 ‘전술’이라고 설명하였다.
참조: Michel de Certeau, 「Walking in the City」
https://mobilistiek.nl/assets/91.pdf
현관 앞 의자는 통행을 방해하는 개인 점유물이면서 이웃과 대화하는 비공식적 공동공간이 될 수 있다. 개인 화분은 공공질서를 침해하면서 동시에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공간을 관리하는 행위일 수 있다.
의미는 물건 자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 통행을 실제로 방해하는가.
* 다른 주민도 사용할 수 있는가.
* 누가 설치하고 관리하는가.
* 특정 사람의 물건만 철거되는가.
* 개인의 점유가 공동공간을 줄이는가.
* 새로운 공동생활을 만들어내는가.
따라서 개인의 물건을 저항의 상징으로 미화해서도 안 되고 무질서의 증거로 단정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매일 다시 협상되는 경계이다.
[11] 질서의 실패인가, 새로운 질서의 발생인가
보도블록 사이의 잡초, 배수구 주변의 이끼, 주민들이 가로질러 만든 흙길, 고양이 밥그릇은 계획된 질서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들은 단순한 무질서가 아니다. 기존 질서가 수용하지 못한 생명과 행동이 다른 관계망을 만든 결과이다.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는 인간과 비인간을 분리된 존재로 보지 않고 서로 얽혀 함께 세계를 만드는 관계로 본다.
참조: Donna Haraway, 《Staying with the Trouble》
https://www.dukeupress.edu/staying-with-the-trouble
나무뿌리에 들린 보도블록은 자연이 인간의 질서를 파괴한 장면이 아니다. 식물의 시간과 도시관리의 시간이 충돌하며 협상하는 장면이다. 사람들이 잔디밭을 가로질러 만든 길도 설계 실패이면서 몸이 제안한 새로운 동선이다.
새로운 질서를 무조건 긍정할 수도 없다. 고양이 급식소는 돌봄의 장소이면서 다른 주민에게 위생과 안전의 갈등을 만들 수 있다.
새롭게 생겨난 질서는 누구에게 가능성을 열어주며, 누구에게 새로운 불편과 배제를 만드는가.
[12] 시스템은 리듬으로 존재한다
아파트의 시스템은 한 장면보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새벽의 청소, 출근 차량, 택배 도착, 하교하는 아이들, 저녁의 산책, 정해진 쓰레기 배출시간은 같은 공간을 계속 다른 장소로 바꾼다.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의 리듬분석은 도시공간을 고정된 구조물이 아니라 장소·시간·에너지의 반복적 결합으로 이해한다.
참조: Henri Lefebvre, 《Rhythmanalysis: Space, Time and Everyday Life》
https://www.bloomsbury.com/us/rhythmanalysis-9781472507167/
택배 상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주차장이 찼다가 비며, 청소노동자가 지나간 뒤 공간이 다시 무표정해지는 과정이 시스템의 실제 모습이다. 반복은 같은 장면의 복제가 아니라 질서가 다시 수행되는 과정이다.
[13] 모순을 지속한다는 것
동시대적인 작업에서 ‘모순을 지속한다’는 것은 결론을 피하거나 일부러 모호하게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동일한 행위 안에서 서로 반대되는 기능이 동시에 작동한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증거로 보여주는 것이다.
* 누구에게 관리이고 누구에게 통제인가.
* 무엇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배제하는가.
* 지금은 돌봄이지만 장기적으로도 그러한가.
* 시스템의 편익과 비용은 각각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 누가 규칙을 정하고 누가 수행하며 누가 보이지 않게 되는가.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의 ‘감각적인 것의 재분배’라는 관점에서 예술의 정치성은 정답을 선포하는 데 있지 않다. 평소 보이지 않거나 말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던 대상과 노동을 보이게 하고, 익숙한 공간의 의미를 다시 배열하는 데 있다.
참조: Jacques Rancière, 《Dissensus: On Politics and Aesthetics》 서평
https://ndpr.nd.edu/reviews/dissensus-on-politics-and-aesthetics/
모순의 지속은 “모든 해석이 가능하다”는 상대주의와 다르다. 사진 속의 구체적인 위치·시간·인물·장치·결과에 근거하여 하나의 행위가 어떤 조건에서 반대 의미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14] 사진 자체도 하나의 관리 시스템이다
카메라도 아파트 관리 시스템처럼 선택하고 분류하며 제외한다. 사진가는 프레임 안에 넣을 것과 밖으로 밀어낼 것을 정하고, 수많은 사진 가운데 일부만을 작품으로 남긴다.
따라서 시스템을 비판하는 사진이 오히려 대상을 또다시 분류하고 단순화할 위험이 있다. 모든 CCTV를 통제로, 모든 화분을 저항으로, 모든 균열을 실패로 규정하면 사진은 자신이 비판하던 관리체계와 비슷한 방식으로 현실을 정리하게 된다.
사진은 다음 판단을 가능한 한 지연시킬 필요가 있다.
* 아름답다·추하다
* 정상이다·비정상이다
* 관리가 잘되었다·실패했다
* 공공적이다·사유화되었다
* 돌봄이다·통제이다
판단 지연은 평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감각과 관계, 변화가 충분히 나타나도록 기다린 뒤 판단의 근거 자체를 다시 묻는 태도이다.
[15] 적절한 촬영과 배열 방법
1. 전체보다 전환의 경계를 촬영한다
아파트 전경이나 CCTV 자체보다 하나의 의미가 반대 의미로 바뀌는 장소를 촬영한다. 보호대가 나무를 누르는 부분, 청소가 생활의 흔적을 지운 자리, 화분이 공용통로와 만나는 경계가 여기에 해당한다.
2. 동일한 장소를 반복 촬영한다
한 번 발견한 장면을 찍고 끝내지 않는다.
* 고장이 수리되는가, 방치되는가.
* 임시조치가 영구시설이 되는가.
* 개인 화분이 철거되는가, 공동화단으로 인정되는가.
* 흙길이 막히는가, 정식 통로가 되는가.
* 금지표지가 사라지는가, 더 강한 장치로 대체되는가.
반복촬영은 변화의 결과뿐 아니라 시스템이 판단하고 대응하는 속도를 기록한다.
3. 사건 전·중·후를 연결한다
낙엽이 쌓인 길, 청소하는 과정, 아무것도 남지 않은 길을 연결한다. 균열·임시조치·정식 수리·재발의 순서를 보여주면 시스템이 하나의 과정으로 나타난다.
4. 결과와 보이지 않는 비용을 병치한다
정돈된 화단과 잘려나간 가지, 깨끗한 복도와 철거된 물건의 흔적, 안전한 통로와 이동이 어려워진 사람의 상황을 함께 보여준다.
5. 기록과 문서를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관리 공고, 민원, 수선 날짜, 관리비 항목, 조경·청소 시간표를 사진과 연결할 수 있다. 그러나 문서가 사진의 의미를 완전히 설명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서로 다른 입장의 문서를 병치하면 시스템이 단일한 명령체계가 아니라 협상과 충돌의 장으로 나타난다.
6. 설명문으로 의미를 미리 확정하지 않는다
“통제장치”, “관리 실패”, “주민의 저항”처럼 결론을 제목에 직접 넣기보다 장소·시간·상태를 제시한다. 관객이 장면 사이의 관계를 발견하도록 해야 한다.
[16] 대표적인 선행 사진가와 예술가
1. 미얼 래더먼 유켈리스(Mierle Laderman Ukeles) — 《Maintenance Art》·《Touch Sanitation》
유켈리스는 청소·세척·쓰레기 수거·시설 유지처럼 사회를 존속시키지만 보이지 않던 노동을 예술의 중심으로 가져왔다. 《Touch Sanitation》에서는 뉴욕시 위생국 노동자 약 8,500명을 찾아가 악수하며 도시를 유지하는 노동의 가치를 드러냈다.
유켈리스가 노동자와 행위를 직접 가시화했다면, 노동자가 사라진 뒤 남은 물자국·빗자루 자국·잘린 나무·비워진 분리수거장은 ‘노동의 잔상’이라는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다.
작품·기관: Queens Museum, 《Mierle Laderman Ukeles: Maintenance Art》
https://queensmuseum.org/exhibition/mierle-laderman-ukeles-maintenance-art/
2. 제프 월(Jeff Wall) — 《Morning Cleaning, Mies van der Rohe Foundation, Barcelona》, 1999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청소하는 노동자를 보여주는 대형 사진이다. 근대건축의 완벽하고 투명한 표면이 보이지 않는 청소노동을 통해 매일 새롭게 생산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깨끗한 건축은 본래 상태가 아니라 얼룩과 먼지를 반복해서 제거한 결과이다. 청결은 표면의 속성이 아니라 수행된 노동의 효과가 된다.
작품·기관: Fundació Mies van der Rohe, 《Morning Cleaning》
https://miesbcn.com/calendar/morning-cleaning-jeff-wall/
3. 마이클 울프(Michael Wolf) — 《100×100》
홍콩의 오래된 공공주택 셱킵메이의 동일한 크기와 구조를 가진 방 100개를 촬영하였다. 획일적으로 설계된 공간이 주민의 가구·물건·배치·습관에 의해 서로 다른 생활공간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표준화된 주거와 개별적 삶, 관리 가능한 공간과 넘쳐나는 생활, 획일성과 주민의 전유가 충돌한다.
작품·전시: Michael Wolf, 《100×100》
https://kochgallery.com/exhibitions/michael-wolf-copy-art-2007/
4. 정연두(Yeondoo Jung) — 《상록타워》, 2001
서울의 한 아파트에 사는 32가구를 동일한 구조의 거실과 같은 앵글로 촬영하였다. 같은 건축구조가 가족의 구성과 장식, 가구, 자세에 따라 서로 다른 삶의 공간으로 바뀐다.
대량생산된 주거공간이 삶까지 완전히 표준화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건축은 동일하지만 거주는 매번 다시 발명된다.
작품·기관: 아트선재센터, 《상록타워》
https://artsonje.org/collection/%EC%83%81%EB%A1%9D%ED%83%80%EC%9B%8C/
5. 박찬민(Chanmin Park) — 《Intimate City》·《Blocks》
박찬민은 한국 아파트와 공동주택의 획일성·익명성·집합성을 탐구하였다. 아파트의 이름이나 창문을 지워 건물을 생활공간이라기보다 불투명한 거대 블록처럼 보이게 한다.
멀리서 본 전체 구조가 도시의 표준화와 익명성을 보여준다면, 공용공간의 수리 자국·개인 화분·안내문·금지선은 그 구조가 실제 생활과 만나는 미세한 접촉면을 드러낸다.
작가·작업: 박찬민 공식 웹사이트
https://parkchanmin.com/about/cv/
6. 최중원 — 《아파-트》
충정아파트와 회현시범아파트 등 한국의 초기 아파트를 촬영하며 근대적 주거 이상이 시간 속에서 노화하고 변형된 모습을 기록하였다.
낡은 외벽·증축·변색·생활의 흔적은 한때 획일적으로 지어진 건물이 사용과 수리를 거치며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고장인가 적응인가’라는 문제와 직접 연결된다.
작품·전시: 최중원, 《아파-트》
https://www.yna.co.kr/view/AKR20120708040100005
7. 카밀로 호세 베르가라(Camilo José Vergara)
베르가라는 같은 건물과 거리를 수십 년 동안 반복 촬영하여 쇠퇴·보수·철거·재사용의 과정을 추적하였다. 동일한 위치와 유사한 구도를 유지함으로써 작은 간판, 창문, 벽, 식물의 변화가 도시 시스템의 시간으로 전환된다.
작가·프로젝트: Camilo José Vergara 공식 프로젝트
https://www.camilojosevergara.com/About-This-Project/1
8. 한스 하케(Hans Haacke) — 《Shapolsky et al. Manhattan Real Estate Holdings》, 1971
하케는 뉴욕의 건물을 촬영하고 부동산 등기·거래·담보자료를 함께 배열하여 평범한 건물 뒤에 숨은 소유관계와 자본의 연결망을 드러냈다.
사진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도시공간의 경제적 통제구조를 사진·문서·지도와 결합해 가시화하였다. 외형적 흔적을 행정·경제 시스템과 연결하는 대표적인 선례이다.
작품·기관: MACBA, 《Shapolsky et al. Manhattan Real Estate Holdings》
https://www.macba.cat/en/obra/r3102-shapolsky-et-al-manhattan-real-estate-holdings-a-real-time-social-system-as-of-may-1-1971/
9. 마사 로슬러(Martha Rosler) — 《If You Lived Here…》, 1989
로슬러는 주택·홈리스·젠트리피케이션·도시계획을 사진만이 아니라 문서·지도·토론·주민과 활동가의 참여로 구성하였다. 주거문제를 건축의 외형이 아니라 정책과 경제, 제도, 주민의 발언이 얽힌 사회적 장으로 제시하였다.
작품·기관: Dia Art Foundation, 《If You Lived Here…》
https://www.diaart.org/exhibition/exhibitions-projects/martha-rosler-if-you-lived-here-exhibition
10. 서도호(Do Ho Suh) — 《Rubbing/Loving》
서도호는 오랫동안 거주한 뉴욕 아파트의 벽·문·손잡이·스위치·배관에 종이를 씌우고 색연필로 문질러 공간의 표면을 떠냈다. 건축의 형태보다 몸의 접촉과 기억, 손때와 요철을 공간의 피부처럼 드러냈다.
손때가 묻은 문손잡이, 닳은 계단, 자전거 바퀴가 남긴 선과 흙길은 단순한 낡음이 아니라 몸과 건축이 함께 만든 형상으로 읽을 수 있다.
작품·자료: Smarthistory, 《Rubbing/Loving》
https://smarthistory.org/do-ho-suh-rubbing-loving/
11. 라라 알마르세기(Lara Almarcegui)
알마르세기는 도시의 공터·폐허·철거지·건축자재를 조사하고 목록화한다. 완성된 건축보다 용도가 사라졌거나 아직 정해지지 않은 공간에 주목한다.
관리되지 않은 장소를 단순한 무질서로 보지 않고, 식물·동물·주민의 비공식적 사용이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열린 공간으로 해석한다.
작가·강연: Canadian Centre for Architecture, 《Lara Almarcegui on the Lives of Wastelands》
https://www.cca.qc.ca/en/events/92030/lara-almarcegui-on-the-lives-of-wastelands
12. 루이스 발츠(Lewis Baltz) — 《The New Industrial Parks near Irvine, California》
발츠는 익명적이고 기능적인 산업건축의 벽·주차장·빈터를 냉정하고 중립적인 형식으로 촬영하였다.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표면을 통해 산업과 자본이 공간을 조직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형식을 그대로 반복하면 “현대도시는 획일적이고 비인간적이다”라는 익숙한 결론에 머물 위험이 있다. 거대한 구조보다 그 구조가 생활과 충돌하며 변형되는 작은 흔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품·기관: Canadian Centre for Architecture, 《Lewis Baltz: The New Industrial Parks》
https://www.cca.qc.ca/en/events/2777/lewis-baltz-the-new-industrial-parks-near-irvine-california
[17] 선행작업과 구별되는 확장 가능성
선행작업들은 각각 다음 영역에 집중해왔다.
* 유켈리스·제프 월: 유지관리와 보이지 않는 노동
* 마이클 울프·정연두: 표준화된 주거와 개별적 생활
* 박찬민·루이스 발츠: 획일적 건축과 도시 시스템
* 최중원·베르가라: 노화·수리·소멸의 시간
* 한스 하케·마사 로슬러: 부동산·주택정책·행정 시스템
* 서도호: 몸과 공간의 접촉이 남긴 표면
* 알마르세기: 방치된 틈과 새로운 비공식 질서
이러한 선행작업을 종합하면 아직 확장할 여지가 큰 영역은 다음과 같다.
한국 아파트의 공용공간에서 하나의 행위가 돌봄과 통제, 청결과 삭제, 보호와 배제, 고장과 적응, 사유화와 공동체적 실천 사이를 이동하는 과정을 장기간 추적하는 작업이다.
[18] 최종 의미
아파트 단지는 이미 완성된 하나의 시스템이 아니다. 제도적 관리, 보이지 않는 노동, 주민의 생활, 사물의 노화, 물·식물·동물의 작용이 서로를 끊임없이 수정하는 복수의 시스템이다.
사진에 나타나는 것은 시스템 자체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흔적이다.
* 정상적인 모습을 만들기 위해 제거된 것
* 고장을 예방하기 위해 미리 설치된 것
* 파손을 봉합한 시간의 이음매
* 주민이 공식적 공간을 다시 사용한 흔적
* 관리기준과 개별적 필요가 충돌한 자리
* 인간의 계획을 비인간 존재가 수정한 표면
* 관리노동이 끝난 뒤 남은 부재와 잔상
따라서 중심 질문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아파트 단지는 정상적인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무엇을 끊임없이 지우고 있는가. 그 지움은 어디에서 실패하며, 그 실패의 틈에서 주민·사물·식물·동물은 어떤 새로운 생활 질서를 만들어내는가.
또한 사진은 다음 질문을 함께 품어야 한다.
하나의 관리행위는 언제 돌봄에서 통제로, 청결에서 삭제로, 보호에서 배제로 전환되는가. 그리고 사진은 그 전환을 성급하게 판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는가.
이 작업의 사진미학적 의미는 숨은 시스템을 단순히 폭로하는 데 있지 않다. 동일한 흔적 안에서 서로 반대되는 의미가 발생하는 조건을 보여주고, 평범해서 보이지 않던 관리·수리·삭제·협상의 과정을 다시 감각하게 만드는 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