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작가님께서주신글]
방탄소년단 대표 방시혁
방시혁(房時爀,1972년 생)은
서울지방노동청장과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을 역임한 방극윤(房極允)의 장남이다.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했다.
여동생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한 뒤 보석 디자이너로 활동 하고 있다.
음악 분야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중학교 시절 밴드 활동을 하면서였다. 그리고 악기의 생생한 소리에 흠뻑 빠졌다고 한다.
공부도 잘하고 말 잘 듣는 모범생이었던 그는 부모의 뜻에 거스르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었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활동을 해서 상도 많이 받았다.
왜 이름이 방탄소년단인가?
음악의 본질은 정서함양인데 왜 섬뜩한 ‘방탄’을 사용했을까?
그래서 방시혁 대표에게 물었더니,
브람스의 잔잔한 살롱 뮤직이라면 모를까, 베토벤 쇼펭 슈베르트, 어떤 음악도 절정의 순간을 클라이맥스로 장식합니다.
젊은이를 상대로 움직여야 하는 음악을 ‘맹“하게 특징이 없는 그저 그런 음악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총 맞은 것처럼을 백지영에게 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공전의 대 히트였습니다.
방탄은 총알이라도 맨손으로 막겠다는 젊은 패기입니다. 강한 의지로 버텨내겠다는 각오가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여담으로 한마디
음악은 인위적으로 만든 정교한 작업이다. 그러나 장도리로 못 빼는 소리나 치과병원 이빨을 가는 소리는 음악의 영역이 아니다. 음악과 소리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롯시니의 오페라 ‘윌리엄 텔 서곡’에, 말을 타고 달리는 광활한 웨스턴 뮤직이 나온다. 서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스위스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요한 스트라우스의 ‘맑고 푸른 도나우 강’은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인데, 도나우 강과는 관계가 없다.
마카로니 웨스턴의 장고처럼 냉정한 사내가, 피아노에 앉아 쇼팽을 연주한다면 어떨까?
정치나 할 일이지
대통령 후보 시절 빌 클린턴은 색소폰 연주로 명성을 얻었다.
독일의 헬무트 수상은 유능한 피아니스트였다.
김대중 대통령 경제고문이었던 유종근은 서울합주단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했다.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은 KBS교향악단 신년음악회에서 차이콥스키 행진곡을 지휘했다.
노회찬 의원은 첼로를 잘 연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허주의 아침산책
내 친구 명자 이야기
방시현 엄마인 명자는 하얀 피부, 자그마한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인상이 좋은 애였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그 애는 언니 앞에서 초등학교 교과서를 줄줄이 외웠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명자는 이처럼 열심히 하는데, 너는 하지 않는다며, 언니로부터 핀잔을 들었다.
명자는 어렵다는 서울대 문리대 영문학과에 합격을 했다.
명자와는 우연히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살게 되었다.
명자는 시아버지 남편 그리고 두 남매와 함께 살고 있는데. 근엄하신 어른을 모시느라 그런지, 명자 얼굴에는 언제나 긴장이 감돌았다.
명자 집에 놀러갔는데, 기타에 푹 빠져있는 아들이 엄마 친구가 왔다고 기타 연주를 해주었다.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다.
명자도 걱정이 되는지 기타만 끼고 산다고 툴툴거렸다.
그래서 전교 1등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그래도 명자 아들인데.
아들의 대학 진학
기타를 끼고 살던 명자 아들이 어느 대학에 지원했는지 궁금했다.
꼬장꼬장한 할아버지께서 한 달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고집하셨다고 한다.
고등학교에서도 마지막까지 법대 진학을 종용했다.
판검사가 되는 게 '인생의 큰 성공'이라고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서울대를 지원하면서도 법대를 외면하고 본인이 원하는 문리대 미학과를 선택했다.
어려운 순간에 마지막으로 아들 손을 들어준 것은 엄마인 명자였다.
고비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주신 엄마 덕분이라고 공을 엄마에게 돌렸다.
아들은 대학 시절 작곡 분야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런 생활을 즐기는 것 같았다.
내 친구 명자 아들이 바로 방탄소년단을 만들어낸 방시혁 대표다.
겸손한 명자는 벅찬 아들이라는 이런 감동을 조용히 소화하고 있었다. 역시 명자다.
그런 아들을 둔 영광은 아무나 누리는 게 아니다.
입시철이면 자식들 때문에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답은 확실하다.
진로 선택에 제 1순위는 본인이 가장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분야다. 즐기는 자에게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확실한 성과와 그 증거는 내 친구 명자에게 돌아온 아들의 성공이다.
송명견 동덕여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
첫댓글 아들은 대학 시절 작곡 분야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런 생활을 즐기는 것 같았다.
내 친구 명자 아들이 바로 방탄소년단을 만들어낸 방시혁 대표다.
겸손한 명자는 벅찬 아들이라는 이런 감동을 조용히 소화하고 있었다. 역시 명자다.
그런 아들을 둔 영광은 아무나 누리는 게 아니다.
입시철이면 자식들 때문에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답은 확실하다.
진로 선택에 제 1순위는 본인이 가장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분야다. 즐기는 자에게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확실한 성과와 그 증거는 내 친구 명자에게 돌아온 아들의 성공이다.
송명견 동덕여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