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김회직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집 내 집뿐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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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잘 알려진 노랫말이다. 극작가이며 시인이며 배우였던 미국출신의 존 하워드 페인,
그가 프랑스 파리에서의 방랑생활 중에 쓴 짧은 시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이다.
평생 결혼을 하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로 일생을 마감했던 그는 외로운 삶이 전부였기에
가정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느꼈으리라. 어쩌면 그 같은 뼈저린 고독이
이처럼 아름다운 시를 낳게 하지 않았나 싶다.
“집 떠나봐야 내 집 소중함을 안다.”
꼭 그래서 만이 아니라 가끔씩 집을 비울 때가 있다. 일 년에 두어 번, 짧게는 대엿새 길게는 보름가까이
서울 사는 자식들 집을 두루 다녀온다. 집을 비웠다가 돌아오면 늘 살아왔던 집인데도
훨씬 여유롭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가 더 소중해보이고 바람소리
새 울음소리 또한 주인 없는 빈자리를 지켜준 것 같아서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조밀하고 복잡한 도시환경의 긴장감에서 벗어났기 때문일까 역시 내 집만 한 데가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작은 울안인데도 계절 따라 할 일은 많다.
심고, 가꾸고, 거둬들이고, 갈무리하는 자질구레한 일들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때로는 마음만 급할 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서성거리는 날도 있다.
새벽에 일어나 이웃집 닭 우는 소리를 들어가며 컴퓨터자판 두드려 글도 쓰고,
요가 비슷한 맨손체조로 몸도 풀어준다. 동녘이 부옇게 밝아오면 들녘을 한 바퀴 돌아오는
걷기운동도 거르지 않는다. 낮에는 주로 텃밭을 가꾸거나 그림그리기로 시간을 보내지만
가끔씩은 옛 직장 동료를 만나 회포도 풀고, 회원으로 있는 몇몇 문화단체행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추석이 가까워올 무렵이면 서울 대전 등 멀리에서 몰려온 여러 친족들과 함께 가족묘를 단정하게 손질하고,
조상님께 제사를 올리는데 집안의 우애와 화목을 다지는 이날의 친족모임 역시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내세울 것 없는 무명의 황혼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건강하고 성실한 일상, 그것 하나만으로도
행복하고 만족해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또 마무리하는 것이다.
오늘은 늙은 호박덩이 하나를 잡았다. 속을 긁어내고 내년에 심을 요량으로 실한 씨앗 한 움큼을
골라낸 다음 거북이등처럼 두껍고 우툴두툴한 껍질을 깎아냈다. 노랗게 잘 익은 호박속이 달착지근하다.
씹히는 맛이 쫄깃쫄깃해서 더 맛이 나는 떡, 생각만 해도 침이 넘어가는 그 호박꼬지찰떡을 머릿속에 그려가며
납작납작하게 썰어 한가득 대소쿠리에 담아 양지쪽에 내다 널었다. 초겨울 햇볕이 따뜻했다.
그림과 글, 울안 돌보는 일에 정신을 쏟다 보면 어느새 하루해가 저문다. 바쁘게 보낸 날일수록 더 뿌듯하고 흐뭇하다. 집짓고 들어온 지 어언 30년, 손때 묻고 땀 냄새 밴 그 세월이 측은해서라도 집 안팎 보살피기를 게을리 할 수가 없다. 앞으로 살아갈 날 역시 꽃피고 새 우는 집, 즐거운 나의 벗 내 작은 집을 부지런히 만들어 갈 것이다.
그리고 진득하게 사랑해줄 것이다.
첫댓글 부럽습니다. 글, 그림, 일상의 일들, 그 모두를 감싼 집. 지난 달 갑천 가에 있는 집을 팔았어요. 사람과 헤어진 듯 서운했습니다. 리모델링에 청소까지 마친 집이 매매가 안 되어, 나를 기다리나 하고 빈 집에 가서 이별 인사를 했어요. 기다리지 말고 좋은 사람 만나라고. 그러고 계약이 됐지만 정작 그 저녁 동네 순댓국집에서 밥 먹을 때 못 마시는 쐬주 한잔 기울이고 싶었습니다.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잘 읽었습니다.
내가 살던 집을 남에게 넘길때의 마음은 똑 같은 모양입니다. 저 역시도 오래전 도마동 집을 팔고 나서 몇 번이나 보러 갔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살고 있는 고향 시골집은 절대로 팔지 않으려 합니다. 나이 더 들어 자식들에게 의존할 때가 되더라도 가끔씩은 둘러보아야 할 테니까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지안 작가님의 댓글을 뒤늦게 보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올해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쓰세요. 그리고 행복하세요. 아, 참 우리 손자가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에 합격했다네요. 너무 좋아서 팔불출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미안합니다. 겨울건강 유의하시고 안녕히 계세요.
@김회직 와~ 축하, 또 축하드립니다!!! 축복 받으셨습니다.^^ 저도 더불어 기쁩니다. 좋은 기운을 받을 것 같아요. 감사드립니다. 선생님도 더욱 건강하시고, 따스하고 행복한 연말 되세요.*^^*
다정한 선생님의 집, 한번 보고 싶네요. 선생님의 손때가 묻어 반질거릴 것 같아요. 그래도 내 집이 최고인 것 같아요. 집은 공간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사람의 기운이 그곳에 배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와우 손자가 의대 합격을 했다구요. 경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축하드려요~^^
박회장님, 죄송합니다. 어딜 좀 다녀오느라 오늘에야 메일을 열어보았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고맙고, 우리 손자 의대합격을 축하해주셔서 또한 고맙습니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끝마무리 잘 하시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겨울철 건강에 유의하시고 내내 안녕히 계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