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즈타운 와카디프 빙하호수
-뉴질랜드 남섬 ②(기행수필)
강물은 파랗다 못해 옥빛이었다. 한국의 깊은 에메랄드빛 가을 하늘을 옮겨 놓은 듯했다. 퀸즈타운의 와카디프호수는 호수길이 84㎞, 최고 수심399m로서 남섬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다. 뉴질랜드에서 제일 예쁜 호수인 와카디프 호수는 동쪽 레인지(2343m) 바위산을 모산으로 하고 있어서 호수에 비친 산 그림자[山影]가 나를 강으로 이끌었다. 나는 빠르게 강물로 걸어갔다. 흰 모래사장의 갈매기들은 날개를 푸득거리며 이국 소녀가 던져 준 모이를 먹으며 저희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과 야생 조류들이 함께 공존하는 아름다운 곳이 바로 퀸즈타운 와카디프 호수였다. 한가히 강물에 떠있는 흰 요트는 주위 산과 어울려 한 폭의 풍경화였다. 햇빛에 반사되어 찰랑이는 금물결이 보석과 같았다. 빙하 호수에 손을 넣어보았다. 부드럽고 서늘했다. 이곳은 한여름 날씨임에도 빙하에서 흘러온 물이라 손이 시렸다. 바지를 걷고 차가운 강물에 발을 담갔다. 갈매기, 청둥오리, 이름 모를 수많은 철새들이 반기며, 우리들 보란 듯이 물속으로 자맥질을 하고, 주위를 빙빙 돌며 이곳을 찾은 이방인들을 환영해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색다른 동물의 세계였다. 강을 따라 산책로에 들어섰다.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여름 날씨이건만 습도 없는 바람이 인간의 오염된 땀을 순식간에 거두어갔다. 아름드리 삼나무들이 이방인들을 맞았다. 100m높이를 자랑하며 하늘로 치솟은 나무를 쳐다보면 그 끝이 감감했다. 다섯 사람이 손을 잡고 둘레를 재어야 손끝이 맞닿았다. 우리나라 나무보다 성장속도가 3-4배나 빠르게 자란다는 뉴질랜드, 우리가 사는 땅에 이곳의 기후를 옮겨 놓고 싶은 부질없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 중간에 있는 작은 연못들은 여러 종류의 수련이 피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반겨주었다. 여기도 야생청둥오리들의 천국이었다. 사람들이 손바닥에 먹이를 올려주면 스스럼없이 받아먹었다. 오리들은 인간이 베풀어주는 호의에 꽥꽥 소리를 지르며 연못을 선회하였다. 사방 천지에 꽃들이 만개하여 오가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였다. 장미화원, 달리아화원, 이름 모를 야생화가 만발한 정원, 그곳에 우리나라에서는 심거나 기르지도 못하는 양귀비꽃도 한 모퉁이에서 요염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겼다. 야생조류들이 활동하지 않는 한적한 강 모퉁이로 이동했다. 제트 보트를 타고 와카디프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퀸즈타운의 비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보트가 잔잔한 빙하호수에 흰 물보라를 그리며 신나게 달리다 급히 멈춘 보트는 그 자리에서 몇 바퀴를 돌며 물벼락을 튕겨 배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강물을 뒤집어썼다. 모두 긴장하고 간담이 서늘하여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요트운전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한 시간 반 동안 중간 중간에서 묘기를 선보이며 자기가 최고인 양 엄지손가락을 위로 쳐들며 박수를 유도했다. 승선한 일행들은 뉴질랜드까지 와서 빙하 물을 뒤집어쓰고 목욕을 하였다. 일행들은 그래도 즐거운 듯 환하게 웃었다. 강을 따라 펼쳐지는 때 묻지 않은 계곡의 자연은 전혀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였다.
콘도라를 타고 전망대에 올랐다. 446m의 높이에 위치한 스카이라인 레스토랑에서 바라보는 와카디프호수와 퀸즈타운의 정경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레인지 산봉우리에 흰 구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나무 한 포기 보이지 않는 검붉은 바위산으로 강한 인상을 주는 2,343m 높이의 레인지 산,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고 내려온 성지 시내산처럼 느껴지는 성스런 산이었다. 이곳이 바로 마오리족 말로 아오테아로라(Aotearoa)이다. 길고 하얀 구름이 산중턱에 걸쳐있어 뉴질랜드가 신비한 땅임을 알리고 있었다. 와카디프 호수 S-커브의 강변을 따라 세워진 저층 하얀 주택과 수림, 강가에 매어둔 흰 요트가 액자 속에 들어있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하늘 아래 산과 맑은 물, 그리고 푸른 초지가 어우러져 마치 하나님이 만든 아름다운 삶터 모습이었다.
시내에 들어서니 바람이 부드러웠다. 달콤한 향을 가진 듯한 청정공기는 아시아에서 온 나그네의 오염에 찌든 심폐기능을 정화시켜 주는 것 같았다. 그동안 끙끙거리며 훌쩍대던 콧물들이 어느새 사라졌다. 도로변과 집집마다 장미가 있었고, 이름 모를 수많은 꽃들이 활짝 피어 고운 미소로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꽃을 보면 세상에서 심난했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저절로 향기에 취하고 상큼한 녹차 맛처럼 마음이 개운해졌다. 꽃을 사랑하는 민족, 그것은 온유의 상징이며 평화이고, 행복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자의 여유였다.
오늘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휴양과 관광을 하고자 이곳까지 찾아와 북적거렸다. 각각 생김새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여유롭게 걷고 있었다. 강변 광장에서 마술사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웃기고 있었다. 나도 사람들 틈에 끼어들었다. 그곳 사람들과 같은 세계인이 되기 위해서였다. 이곳 사람들은 마술사의 어설픈 연기에도 그저 마냥 즐거운 듯 박수를 치며 배꼽이 빠지게 큰소리로 웃었다. 나도 덩달아 따라 웃었다. 여기에 모인 세계인들은 행복한 사람들만 모인 것 같았다. 활짝 핀 장미꽃 같은 환한 얼굴들이었다. 크라이스처치에서 서던 알프스 산맥을 넘어 무려 500㎞ 달려와 만난 세계 제일의 관광 휴양도시 퀸즈타운. 이름 그대로 너무 아름다워 영국여왕에게 드리고 싶다는 도시다. 와카디프 강변을 따라 보이는 것마다 그림 같고 옥빛 호수는 평안해 보였다. 영국 BBC방송이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보아야 할 곳 4위로 선정된 작은 도시 퀸즈타운은 하나님이 만들고 사람들이 가꾼 지상낙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