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시리즈.
마지막 때와 심판에 대한 경고
6) 롯의 처를 기억하라 - 구원의 길에서 세상을 돌아보다 소금기둥 됨
성경본문 : 눅 17:28~33
17: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17: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17: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17:31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17:32 롯의 처를 기억하라
17: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여러분, 달리기 시합 해보신 적 있으시죠.
초등학생이든, 육십 넘어 오랜만에 손주 운동회에서 달려보신 분이든 다 아는 게 하나 있습니다.
달리다가 뒤를 돌아보면, 반드시 속도가 늦어지거나 넘어진다는 겁니다.
앞만 보고 뛰어도 힘든데, 고개를 돌리는 순간 몸의 중심이 흐트러지고 발이 꼬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한 사람도 바로 그 순간에, 뒤를 돌아보다가 그 자리에 굳어버렸습니다.
소금 기둥이 되어버린 겁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7장에서 세상 끝날, 즉 당신이 다시 오실 그날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노아의 때처럼, 롯의 때처럼 사람들이 평소대로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다가 갑자기 심판이 임했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딱 한 문장을 명령처럼 던지십니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 17:32).
그런데 이 말씀이 그냥 툭 던져진 게 아닙니다.
바로 앞 31절에서는 "그 날에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세간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라"고 하시고,
바로 뒤 33절에서는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 롯의 처 이야기는 "자기 것을 지키려다가 다 잃어버린 사람"의 실제 사례로 놓여 있는 겁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창세기 19장입니다.
소돔 성이 죄악으로 가득 차 하나님이 심판을 결정하셨을 때, 천사들이 롯의 집에 찾아옵니다.
그런데 롯은 지체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창 19:16).
여기서 우리가 놓치면 안 되는 게 있습니다.
롯 가족이 살아난 건 그들이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지체하고 망설이는 그들의 손을 하나님이 직접 잡아끌어내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나중에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창 19:29).
롯 가족의 구원은 그들의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을 기억하셨기 때문에 주어진 은혜였습니다.
천사들은 이렇게 명령합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창 19:17).
명령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성 밖으로 나온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창 19:26).
여기 "돌아보았으므로"라는 표현이 원문에서는 그냥 스치듯 힐끗 봤다는 뜻이 아닙니다.
애착을 가지고 오래도록 주시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미련이 남아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결혼식장 갈 때 급하게 나오면서도 자꾸 거울 앞에서 서성이는 것처럼,
그의 눈과 마음은 여전히 두고 온 그 집, 그 삶, 그 익숙한 것들에 붙들려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사건을 그냥 옛날 옛적 이야기로 두지 않으십니다.
원어로 "기억하라"는 단어는 한 번 떠올리고 끝내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마음에 새기고 경계하라는 뜻의 동사입니다.
즉 예수님은 "이건 옛날 남 이야기가 아니다, 너희도 매일 이 사람을 떠올려야 한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정직하게 물어야 할 게 있습니다.
롯의 아내는 도대체 누구였을까요.
낯선 이방인이 아니었습니다.
롯의 아내였습니다.
천사가 손을 잡아 이끌어낸 그 가족의 일원이었습니다.
즉, 은혜의 울타리 안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구원의 기회를 눈앞에서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이게 우리에게 참 불편한 진실을 보여줍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손을 잡혀 이끌려 나왔다고 해서 자동으로 마음까지 돌이켜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저도 이 지점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어떤 결단의 자리에서 눈물로 기도하고 돌아서면서도, 며칠 지나면 다시 마음이 옛 습관,
익숙한 편함, 손에 익은 것으로 슬금슬금 돌아가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몸은 앞으로 가는데 마음은 자꾸 뒤를 돌아보는 겁니다.
이게 롯의 아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온 우리 모두가 씨름하는 문제입니다.
예배는 드리는데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옛 관계, 옛 습관, 내려놓지 못한 어떤 것에 붙들려 있는 것 아닙니까.
겉으로는 이끌려 나왔는데, 속으로는 여전히 소돔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면 이 본문은 우리에게 "그러니까 정신 차리고 절대 뒤돌아보지 마라, 의지로 버텨라"고 말하는 걸까요.
저는 그렇게만 읽으면 이 말씀의 절반도 못 읽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의 진짜 핵심은 롯의 아내의 실패가 아니라,
그 실패에도 불구하고 롯과 두 딸은 산으로 도망하여 살았다는 사실에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었습니까.
그들의 의지력이 더 강해서가 아닙니다.
롯도 처음엔 지체하고 망설였던 사람입니다.
차이는, 하나님이 그 손을 놓지 않고 끝까지 붙잡아 이끄셨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결국 우리를 더 크신 피난처로 데려갑니다.
롯 가족이 도망친 곳은 소알이라는 작은 성읍이었습니다.
그런데 소알도 결국 사람이 만든 성일 뿐입니다.
진짜 피난처는 그곳이 아니었습니다.
성경 전체가 가리키는 진짜 피난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소돔에 임했던 유황과 불의 심판은, 훗날 온 세상의 죄를 심판하실 마지막 날의 예고편과 같은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심판을,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은, 우리 안에서 짜낸 굳센 의지가 아닙니다.
우리보다 먼저 우리 손을 잡고 이끄시는 그리스도의 은혜, 그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오직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오직 믿음으로 우리는 심판을 피합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결단이 우리를 구원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붙드신 그 손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크고 거창한 결심 말고, 아주 작고 구체적인 것부터 시작해 봅시다.
오늘, 잠자리에 들기 전에 딱 한 가지만 하나님께 솔직히 아뢰어 보십시오.
"제가 여전히 눈을 못 떼고 붙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저도 압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고백하는 겁니다.
숨기지 말고 이름을 붙여보십시오.
이번 주에는, 그 붙들고 있는 것과 관련된 아주 작은 행동 하나를 내려놓아 보십시오.
시간을 쓰는 방식이든, 자꾸 마음을 빼앗기는 관계든, 굳이 다 끊어내지 않아도 됩니다.
딱 하나, 오늘 실천할 수 있는 만큼만 내려놓아 보십시오.
이번 달에는, 그 씨름을 혼자 짊어지지 마시고 기도 모임에서 믿을 만한 한 사람에게 나눠보십시오.
롯도 혼자였다면 지체하다가 소돔에 남았을지 모릅니다.
손을 잡아준 존재가 있었기에 살았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손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신앙의 본질은 결국 이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뒤돌아보지 않고 잘 버텼는가가 아니라, 누가 우리의 손을 붙잡고 계신가입니다.
롯의 아내는 자기 눈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눈이 아니라, 우리를 붙드신 그 손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 손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도 놓지 않으시는 그리스도의 손입니다.
뒤돌아보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붙드신 그 손을 놓지 마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