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신학-민중 신학의 모태
기독교 본질 종교 아닌 복음
값싼 은혜-헐값의 용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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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는 “어떤 미친 운전수가 인도 위로 차를 몰아 질주한다면 목사인 나는 희생자들의 장례나 치러주느니 그 자동차에 뛰어 올라 그 미친 운전수로부터 핸들을 빼앗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디이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질문은 평화주의자이며 목사였던 그가, 더욱이 인도의 성자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을 배우려 했던 그가, 어떻게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었다. 마치 ‘평화의 왕’이라 불리는 예수님이 “내가 이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을 때 가지게 되는 의문과 같다. 물론 평화라고 하여 불의를 보고도 모른 척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닐 것이다. 본회퍼 자신도 이런 생각을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하였다.
역사 종교 없는 시점으로 달려
만일 어떤 미친 운전수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인도 위로 차를 몰아 질주한다면 목사인 나는 희생자들의 장례나 치러주고 가족들을 위로하는 일만 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임무라 생가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 자동차에 뛰어 올라 그 미친 운전수로부터 핸들을 빼앗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본회퍼 자신이 본래부터 폭력적인 성품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폭력을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폭력을 스스로 정당화하려 하지도 않았다. 마치 초등학교 운동장에 어느 살인마가 나타나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마구잡이로 총을 난사하고 있을 때 평화주의자나 목사라고 하여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본회퍼의 행동도 그가 스스로가 말하는 “책임 윤리”라는 원칙에서 나온 결과라 이해해야 될 것이다.
사실 본회퍼에게는 너무나도 자상한 면이 있었다. 1944년 성탄절 38세의 본회퍼가 18세 연하의 약혼녀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에게 보낸 다음과 같은 편지에서 그가 얼마나 여리고 로맨틱했던가 하는 단면을 볼 수 있다.
지금 쯤 우리 두 사람의 본가에서는 쓸쓸한 날을 맞이하겠네요. 하지만 나는 여러 차례 이런 경험을 했지요. 내 주위가 쓸쓸하면 쓸쓸할수록, 내가 당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더욱 분명해지네요. 마치 영혼이 고독하면 고독할수록,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알지 못하던 감각이 발달하는 것과 같지요. 내가 한 순간도 외로움이나 고독감을 느낀 적이 없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내가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무엇이 행복이고, 무엇이 불행인가요? 그것은 외부 환경에 좌우되지 않지요. 그것은 한 사람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나는 날마다 당신이 나와 함께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본회퍼의 저술은 초기 몇 작품의 경우를 제외하면 조용한 연구실에 앉아서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게 발표된 것이 아니다. 그의 신학사상은 주로 나치 정권에 저항하면서 행한 강연이나 설교, 편지, 일기, 메모 등을 통해 단편적으로 발표될 수밖에 없었다. 독일에서 나온 그의 저술을 보면 단행본으로 『성도의 교제』, 『행위와 존재』, 『창조와 타락』, 『나를 따르라』, 『신도의 공동생활』, 『윤리』, 『저항과 복종』 등이 있고, 1986년에는 지금까지의 저작을 다시 편집하여 전16권으로 된 전집이 출간되었다. 그 후 그의 약혼자와 교환한 서신이 공개되어 출판되고, 2000년에는 그의 삶을 담은 영화가 제작되어 상영되기도 했다.
그의 저술에서 발견되는 몇 가지 중요한 신학 사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본회퍼의 사상의 근간은 그의 그리스도론이다. 베르린 대학에서 행한 그의 강연은 “그리스도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을 던지고 여기에 대답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그는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를 강조한다. 그리스도가 인간 존재와 역사의 중심이며 신과 자연의 중보자라는 것이다. 그가 옥중에 있을 때도 “그리스도가 누구인가?”하는 질문을 화두처럼 계속 붙들고 있었지만 이제 그는 “그리스도가 오늘 우리에게 누구인가?”라고 질문하고,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pro me)’라기보다 ‘우리를 위하여(pro nobis),’ 결국에는 ‘남을 위하여(pro aliis)’ 산 분이라 정의하고, 특히 그가 “남을 위한 존재(Dasein-für-andere, being-for-others)”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오로지 중생을 위해 존재하는 보살 사상을 연상하게 하는 발언이다.
이것도 그리스도를 ‘따름(Nachfolge, discipleship)’의 문제와 관련되는 사상으로, 키에르케고르를 강의하면서 자극을 받고 만들어낸 말이다. 교회가 “예수 따름”의 숭고한 사명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각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외친다.
해결사 신 등장은 천박한 일
값싼 은혜는 우리 교회의 치명적인 적이다. 오늘 우리의 싸움은 값비싼 은혜를 얻기 위한 싸움이다. 값싼 은혜는 싸구려 은혜, 헐값의 용서, 헐값의 위로, 헐값의 성만찬이다. 그것은 교회의 무진장한 저장고에서 몰지각한 손으로 생각 없이 무한정 쏟아 내는 은혜다. 그것은 대가나 값을 치르지 않고 받는 은혜다.... 죄를 뉘우치지도 않고 죄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도 않으면서, 세상은 자신의 죄를 덮어 줄 값싼 덮개를 값싼 교회에서 얻는다. 값싼 은혜는 하느님의 생생한 말씀을 부정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값싼 은혜는 죄인을 의롭다 함이 아니라 죄를 의롭다 함이다.
그러면서 그는 루터가 말한 은혜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결합을 통해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께 완전히 복종함을 전제로 한 은혜라고 하였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하고 우리는 “까마귀처럼 ‘싸구려 은혜’라는 시체 주위에 모여, 그 시체의 독을 받아 마신 결과 우리에게는 예수를 따르는 삶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우리 나름대로 표현해 보면, 값비싼 은혜는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인데 반해, 값싼 은혜는 예수의 십자가를 ‘타고’ 가려는 것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남 위해 사는 것이 참된 신앙
본회퍼는 감옥에 있을 동안 어느 모로 보나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 그들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들은 감옥의 힘든 삶이나 연합군의 폭격 속에서도, 심지어 사형 선고를 받고도 결코 ‘종교적 위안’을 구하지 않았다.
본회퍼는 이런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결국은 비종교적 내지 탈종교적인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미래를 이끄는 선구자들이라는 것, 그리고 역사는 결국 종교가 없는 시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는 이와 같은 시대에 예수의 기별이 어떻게 의미 있게 전달될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교란 그리스도교가 입고 있는 일종의 ‘외투’로서, 이제 그것을 벗어 던져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보았다. 이런 사실을 감안할 때 어떻게 “우리는 이 ‘성년의 세계’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종교적 해석’을 창안할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던졌다.
본회퍼는 자기가 던진 이 질문에 체계적인 답을 주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글을 통해 이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하는 것을 미루어 알 수는 있다. 그는 인류의 역사가 신화의 ‘고대 시대’를 지나, 종교의 ‘형이상학적 시대’를 거쳐, ‘성년의 세계(world come of age)’에 들어섰다고 보았다. 칸트가 말한 이 용어를 빌려 쓰기는 했지만 칸트 식으로 지금이 도덕적으로 더 훌륭해졌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 사람들이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신’이라는 가설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말하자면 이제 우리는 ‘세속 도시’에서 살게 되었다는 뜻이다.
특히 그는 중세의 연극에서 앞뒤 이야기의 흐름이 맞지 않을 때 신을 등장시켜 문제를 해결할 때처럼 ‘기계에서 튀어나온 신(deus ex machina)’ 같은 신은 이제 필요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나 한계에 부딪쳤을 때 불러들이는 도구로서의 신, 주변으로 밀려났다가 필요할 때마다 가끔씩 해결사로 등장하는 신은 안 된다고 보았다.
본회퍼는 참된 신은 초월적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삶 중심에 계시는 분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를 두고 우리는 ‘하느님 앞에,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없이’ 산다고 표현했다. 이런 하느님은 고난 받고 약한 하느님으로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결국 신의 고난에 동참한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처럼 신의 고난에 동참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서 볼 수 있듯이 본회퍼는 성년의 세계, 세속화된 세계에 사는 우리가 복음을 ‘비종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가 믿음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결코 아니다. ‘비종교적’이라는 말은 카를 바르트가 종교와 복음을 대비시켰을 때의 의미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바르트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은 다른 종교와 달리 종교가 아니고 복음이라고 주장했다. 본회퍼도 이런 주장을 배경으로 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종교의 테두리에서가 아니라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참된 신앙을 위해 새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형이상학적이고 내세 중심주의적인 상징체계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오늘 내 삶을 역동적으로 이끌어 줄 새로운 영성의 차원을 희구한다는 뜻으로 “나는 종교적이 아니라, 영적이다(I am not religious, but spiritual).”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2차대전 이후 등장한 사신(死神)신학, 세속화신학, 상황윤리, 평화신학, 해방신학, 한국의 민중신학 등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본회퍼에 대한 이해와 오해에서 촉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그가 공리공론의 신학자가 아니라 그의 신학을 직접 삶으로 옮긴 실천의 신학자라는 데 크게 감명을 받는다.
하버드 대학교 하비 콕스 교수의 다음과 같은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테겔 군인 구치소 19호 감방의 수감인이 성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내가 아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완전한 인간적인 존재에 가까웠고, 그는 아직도 우리 모두에게 들려줄 가치 있는 무엇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에버하르트 베르게 지음 김순현 옮김, 0『디이트리히 본회퍼』, 하비 콕스 지음 오강남 옮김, 『예수 하버드에 오다』, 유석성, “디이트리히 본회퍼” 등을 참조했음)
첫댓글 1. 만일 어떤 미친 운전수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인도 위로 차를 몰아 질주한다면 목사인 나는 희생자들의 장례나 치러주고 가족들을 위로하는 일만 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임무라 생가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 자동차에 뛰어 올라 그 미친 운전수로부터 핸들을 빼앗아야 할 것입니다.
1.1. [지범개차((持犯開遮))]라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미친 운전수의 핸들을 빼앗는 행동이.. 청허, 사명.. 犯이나 開에 해당히는 것이라고 봅니다.
2. 본회퍼는 감옥에 있을 동안 어느 모로 보나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 그들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들은 감옥의 힘든 삶이나 연합군의 폭격 속에서도, 심지어 사형 선고를 받고도 결코 ‘종교적 위안’을 구하지 않았다.
본회퍼는 이런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결국은 비종교적 내지 탈종교적인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미래를 이끄는 선구자들이라는 것, 그리고 역사는 결국 종교가 없는 시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고 믿었다.
2.1. 참된 보살행은.. 상대에게 불교를 믿으라고 강권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상대가 흥미를 느끼고 스스로 다가가는 것은 막지 않겠지만..()..
동감입니다. 좋은 말씀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