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오롯한 모습을 간직한 섬 개도 이야기
어느 책에서 우연히 눈에 띠인 개도(蓋島)를 서둘러 방문 대상지로 삼은 건 풍광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섬의 개발을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서였다. 자연에 블도저와 포크레인을 디밀어 뭔가 헤집어야 개발이 된다는 풍조가 이 섬까지 밀려들면 그나마 보존된 자연 경관도 다시 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치자 엉덩이를 방바닥에 붙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마음을 정하고 잘 곳을 찾아보니 개도에는 펜션이나 여관 등 숙박시설이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민박집으로 눈길을 돌렸다. 일곱 가구 정도가 민박을 운영하고 있다는데 어느 집이 적당한지 모르는 터라 요행에 기대며 그 중 한 집에 예약을 했다. 하루 숙박비 5만원. 여수 나로도의 나로비치호텔 숙박비가 5만원인 걸 감안하면 배가 좀 쓰리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개도엘 가는 뱃길은 두 가지가 있다. 여수 여객선 터미널에서 가는 방법과 백야도의 백야 여객선 터미널에서 가는 방법이다. 배 타는 시간이 짧은 백야 여객선 터미널에서 11시 30분 출항하는 카페리호를 타겠다고 결정하고 2013년 2월 13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백야 여객선 터미널에서의 소요시간은 25분인데 성인 한 사람에 편도 4,000원 승용차는 17,000원을 받는다.
여수에서 남쪽으로 22㎞ 떨어진 개도는, 면적이 9.46㎢에 천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섬 이름은, 주변의 작은 섬을 거느린다 해서 덮을 개(蓋)를 쓴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 설과 섬의 두 큰 산이 멀리서 보면 개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그렇다는 설이 있지만 현지의 민박집 주인도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니 유래는 그저 유래로 끝나야 할 듯싶다.
백야 여객선 터미널에서 출항하는 배는 개도의 여석항에 기항하는 탓에 이곳에서부터 섬 여행을 시작했다.
첫 일정은 내가 좋아하는 산행이었다. 봉화산(337.8m)은 섬의 최고봉이라 당연히 빼놓을 수가 없고, 능선 따라 바다와 섬들의 장관을 보며 30여분 걸어 닿는 천제봉(328.5m)을 안 가보면 서운해서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거기까지 갔다 원점 회귀하는 것으로 등산 코스를 잡았다. 항구와 가까운 여석리 등산입구에서.
봉화산과 천제봉을 잇는 이 코스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양쪽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등산길도 재미가 쏠쏠한데다 배 타는 시간도 길지 않아 뭍에서 일일 산행 코스로 새롭게 각광 받고 있다. 다른 지역 이정표가 목표지점까지의 거리를 표시한 것과는 다르게 이곳의 산행 이정표는 소요시간을 적어 놓았다. 산행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게 참 애매하다. 걷는 속도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이 섬에서는 군마를 길러 조달했다는데 산행길에서는 그 흔적을 몇 개 만날 수 있다. 바로 일정 공간을 둘러쌓은 돌담이다. 이걸 목장 흔적이라고 추정하는 건 나그네의 상상이지만 행정기관에서는 고증을 거쳐 안내판 하나라도 세워놓았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바람을 갖는다. 산엘 오르며 놀란 건 등산로를 여기저기 파놓은 멧돼지 자국이다. 지각(地殼) 변동은 화산폭발과 지진, 맨틀 위의 대륙판과 해양판의 움직임 중 하나로 결정된다니 섬 또한 그런 과정을 피할 수는 없을 텐데 그 변화를 다 이겨내고 태초부터 멧돼지가 살았을까? 아니면 까마득히 떨어진 다른 섬에서 왔을까? 왔다면 어떻게 왔을까? 정말 멧돼지가 이 섬에 사는지 민박집 주인에게 물어봐야겠다며 이마에 솟는 땀을 닦았다.
봉화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확 트인 바다와 그 바다 여기저기 올망졸망 솟은 섬들이 미치도록 아름답다. 그 가쁨 사이로 안타까움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섬 여기 저기 보이는 개발이라는 이름의 상처 때문이다. 그런데도 더 개발을 한다니…. 섬을 섬으로 그냥 놓아두기를 바라는 게 단순히 나그네만의 욕심일까? 상처 난 섬을 감싸듯 파도조차 조용하다.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며 상념에 잠긴다. 아스라이 중첩된 연릉(連稜)이 가슴에 싸한 그리움을 몰고 오는 뭍의 산과는 다르게 동그마니 바다 위에 떠 있는 외로운 섬은 또 다른 인연에의 그리움을 불러온다. 그래서일까? 섬산의 정상에 서면 섬의 저 깊은 곳에서부터 한의 소리가 들린다. 거기 마음을 열면, 바위로 된 뼈를 드러내면서까지 파도를 부르는 섬의 외로움을 듣게 된다. 그럼 우리는 왜 외로움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지도 비로소 알게 된다.
가슴을 여미곤 다시 일어나 천제봉을 향해 걷는 나그네의 발길 아래 화산 마을 앞으로 펼쳐진 자그마한 간척지가 눈에 들어온다. 산 위에서 보아 손바닥만 하지 실제 평수로는 4만여 평이나 된다. 사연 많은 개도 간척지. 섬의 간척지에 뭔 사연이냐고? 달콤하고 애잔한 사연이 아니라 소태처럼 쓴 사연이다.
지금은 바다를 막아 간척지가 된 땅은 섬사람들이 수시로 나가 김을 따고 낙지를 잡고 조개를 캐던 갯벌이었다. 그런데 40여년 전에, 농지를 확보한다는 이유로 방조제를 쌓고 간척지를 만들었다. 물론 보상은 한 푼도 없었다. 그런데 간척지를 만들기는 했으나 논으로 활용할 농업용수가 막막했다. 간척지에서는 바닷물까지 솟았다. 이렇게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이 되다보니 지금까지 잡초만 우거진 땅으로 남아있는 거였다. 더욱 답답한 것은 주민들이, 농사를 짓지 못할 바에야 방조제를 허물어 바닷물이 드나들게 해달라는 청원을 냈지만 대답이 없는 점이었다. 갯벌이었던 그 곳에 다시 바닷물이 드나들면 갯벌은 조개밭이 되어 지도자들이 자나 깨나 입에 달고 다니는 ‘주민 소득 향상’에 기여했을 텐데 말이다. 주민들은 갯벌을 잃고, 행정기관은 국민의 피와 같은 세금을 낭비했는데 땅은 잡초만 자라는 폐사지가 됐으니 어찌 누군들 속상하지 않겠는가!
산에서 내려와 일몰 보기 좋은 장소를 찾을 겸 개도의 명소인 모전 마을 몽돌 해수욕장을 찾았다. 사람이 일부러 만들어도 쉽지 않았을 동글동글한 작은 돌멩이로 가득 찬 해변은 그야말로 자연의 신비를 일깨워준다. 몽돌 해변이 600여m를 이어지니 해변을 걸으며 일상의 찌든 심신을 씻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권할 만한 일이다. 그 해변 끝 큰 돌자락에서 뭔가 열심히 뜯는 할머니 두 분을 만났다.
“지금 뭐 뜯으시는 거예요?”
“저녁에 먹을 해우(돌김).”
바다는 저처럼 섬사람들에게는 밭이요 곳간이다. 그런 땅 4만여 평이 간척지라는 이름으로 그냥 내버려진 걸 보며 저 할머니들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는 뻔한 거였다.
하늘과 바다와 태양이 선물한 멋진 일몰을 구경하고 화산마을에 예약한 민박집으로 향했다. 마을 골목, 올망졸망 예쁜 돌담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화산 마을 중심에는 마녀목(馬女木)이라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이름까지 붙은 까닭이 어찌 없을 건가.
이돌수는 군마를 기르는 마부였는데 복녀라는 어린 딸이 있었다. 어느 날, 복녀가 가장 좋아하는 점박이 말에 앞다리가 부러지는 일이 생겼다. 복녀는 천제단에 올라 천지신명에게 말을 살려 달라고 빌었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에도 꽃이 핀다고 했던가? 산신령이 나타나 천제단 옆 옹달샘에서 가재 세 마리를 잡아 생즙을 내어 말에게 먹이면 반드시 효험이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대로 했더니 과연 말은 부러진 다리가 나았다. 이후 점박이 말이 대장군의 말로 징발되자 복녀는 말과 놀던 자리에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었고 말을 그리다 병이 나 눕고 말았다. 일 년 후, 전장에서 전공을 세운 상처투성이의 점박이 말은 느티나무를 찾아와 죽음을 맞이했다. 놀랍게도 말이 죽은 시간에 복녀도 세상을 떠났다. 말과 복녀는 느티나무 아래 같이 묻혔고 그 때부터 그 나무는 마녀목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반 쯤, 아니 9할 쯤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나는 이런 전설을 좋아한다. 거기에는 선조들께서 동식물은 물론 하찮은 돌멩이와도 정을 나누는 심성을 발견할 수 있어서다. 우리 세대에 이런 전설이 사라지는 각박함이라니!
짐을 풀자마자 민박집 주인에게 가슴에 있던 멧돼지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 피해가 적잖다는 거였다. 엽사까지 불러들여 사냥을 할 정도였다면 한두 마리가 아닌 모양이었다.
이튿날 아침, 개도 양조장을 찾았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왔다는 개도 막걸리가 개도의 명물이 된 탓이다. 섬에서보다 여수를 비롯한 뭍에서 더 인기가 좋은 이유가 궁금했다. 맑은 암반수와 쌀로 빚어지는 이 막걸리는 달착지근하면서도 톡 쏘는 맛으로 애주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단다.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갈 수 없다고 막걸리 잔을 기울였지만 술에는 무식하기로 소문난 나그네로서는 술맛을 평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술잔을 놓고 섬을 돌아보러 나섰다.
개도는 농어업을 겸하고 있는 여섯 마을로 이루어졌다. 이 중에 남동쪽에 자리 잡은 여석, 모전, 호령 등 3개 마을은 바다로 나가 수렵어업을 주로 하고, 북동쪽의 화산, 신흥, 월항 등 3개 마을은 양식어업을 주로 한다. 이는 해풍과 관련된 지리적 여건에 기인한 것이다.
주민들이, 섬 부근에 숭어, 볼락, 우럭, 농어, 돔 등 각종 고기가 많아 연간 5천여 명이 이 섬을 낚시를 위해 찾는다고 자랑하는 걸 보면 개도는 조사(釣師)들에게는 천국이 아닐까 싶다.
섬을 찾은 나그네의 의견 하나를 마무리삼아 덧붙여야겠다. 등산을 위해서든, 낚시를 위해서든 개도에 가시는 분들은 시간을 내어 두 곳은 꼭 찾아보길 권한다. 첫째가 앞에 소개한 모전 마을 앞의 몽돌 해수욕장이고 다음은 청석포이다. 청석포는 해수욕장으로는 인기가 없어 보이는 청석 해수욕장 인근에 있는데 바위와 바다가 어우러지는 풍광은 개도를 돌아본 곳 중에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