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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무학대사와 단둘이 만났다. 이성계가 "오늘 하루만 서로 마음속에 있는 걸 터놓자"고 제안했다. 먼저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보고 "대사께선 돼지로 보입니다"며 한수를 날렸다. 그러자 뜻밖에도 무학대사는 "상감마마는 부처로 보입니다"라고 응수했다. 이성계는 자기가 먼저 무학대사에게 무례한 말을 하면 대꾸도 그와 비슷할 거라 생각했다. 약간 열을 받은 이성계가 "대사께선 성질도 없소"라고 되물으니, 무학대사는 "허허, 豕眼見惟豕 佛眼見惟佛(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이라고 돌려쳐 이성계의 말문을 닫게 만들었다. 최고 권력자와 고승(高僧) 간의 유명한 일화에 나오는 '豕眼見惟豕 佛眼見惟佛(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은 원래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다. 부처님을 잔치에 초대한 왕과 간신들이 부처님을 시험하고자 음식을 모두 고기로 준비 했다. 밤을 지새워 새벽까지 먹고 놀다가 사람들을 가르치느라 지치고 허기에 찬 부처님에게 왕이 물었다. "지금 기분이 어떠시오?" 그러자 부처님은 "“豕眼見惟豕,佛眼見惟佛矣" 즉 "돼지의 눈에는 돼지가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고 말한데서 유래했다. 이 말은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진다" "마음 먹기에 달렸다' 등으로 간략히 해석되지만, 본래는 "먹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 善(선)함을 쌓지 않는 인간은 돼지와 같고, 부처의 자비로 세상을 보고 실천하면 부처가 된다"는 뜻이다. 최근 울산시장 측근의 비리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를 두고 자유당과 경찰의 갈등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먼저 불을 지른 건 자유당 대변인이다. 그는 "경찰이 급기야 정신 줄을 놓고 정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닥치는 대로 물어뜯기 시작했다"며 "정권의 사냥개 광견병에 걸렸다.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날선 공격을 퍼부었다. 이에 격분한 경찰은 내부망과 SNS를 통해 '豕眼見惟豕,佛眼見惟佛矣' 고사 명언을 들고 수천개의 인증샷을 찍으며, "우리는 사냥개나 미친개 아니다. 대한민국 경찰관이다"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조직 전체가 집단 항의에 나선 양상이다.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말은 1976년을 전후해 서슬퍼렇던 박정희가 대남 도발을 일삼던 북한 김일성을 향해 국민적 단결과 적개심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냈던 전투적 언사다. 여기까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당인 자유당이 자당(自黨) 유력시장 후보를 흠집내려는 시도에 맞서 ‘견제구’를 날리고, 경찰이 이에 맞서는 ‘기싸움’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입이 거칠기'로 소문 난 자유당 대표가 "우리 당이 적극적으로 검토해왔던 검경 수사권 조정 방안을 개헌논의 과정에서 전면 백지화 하겠다"고 대변인을 두둔하면서 경찰을 압박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자유당은 지금껏 불합리한 수사 구조를 국민을 위해 바로 잡으려고 검경 수사권 조정을 논의한 게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맘 내키는대로 주기도 하고 뺏을 수 있는 선물쯤으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놀라운 발언이다. 만만한게 뭐라고 했던가. 만약 검찰이 잘못된 수사를 했다해도 그 따위 수준의 막말을 했을까 묻고 싶다. 명색이 야당 대표라는 정치인이 국가조직인 경찰을 대하는 저급한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낸 셈이다. 원내대표가 급한 불을 꺼보려고 나섰지만, 민주당을 비롯한 각 정당은 "경찰을 폄훼한 데 대해 사과하라"는 공세를 늦추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네티즌들도 경찰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등 분위기는 자유당의 예상과는 전혀 딴 판으로 흐르고 있다. 14만명이 넘는 경찰도 공무원이기 전에 개인적으로는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유권자들이다. 그기에다 그들 가족이나 일반직원, 퇴직경찰, 해양경찰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상당할 걸로 예상된다. 울산지방경찰청장이 "정치적 고려가 없었다"다는 거듭된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논란은 지방선거를 앞둔 자유당이 잘만 활용하면(?) 얼마든지 자신들이 원하는 '프레임'으로 끌고 갈수도 있었다. 논란의 종지부는 유야무야 되겠지만, 결국 자유당 지도부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채 나가도 너무 멀리 나가는 바람에 경찰 표를 한방에 날려버린 건 좀체 돌이키기 어려워 보인다. 나아가, 어떤 측면에서는 자유당이 '수사권 조정'을 놓고 경찰측에 꼬리를 잡힌 꼴이 됐다. 자기네들 맘에 내키는대로 검경 수사권 조정을 인식한다는 게 들통났으니 앞으로 그들이 내뱉는 말은 진정성이 없다고 볼수 있다. 더욱 기가 찬 건 이런 지도부에 아무말도 못한 채 그저 맹종하는 무기력한 모습의 자유당 분위기다. 그러니 늘 "정권을 통째로 넘겨주고도 반성도 인적 쇄신도 없는 정당"이라는 지적을 받는 모양이다. 그동안 당 내부는 물론, 보수 진영에서조차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를 향해 "말의 품격을 지켜달라"는 요구가 적지 않았다. 일부 수도권 후보들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 입 좀 가만 있으라"는 주문도 여러차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갈수록 품격은 커녕, 독설을 멈추지 않는 60대 중반의 대표와 그를 쏙 빼닮은 50대 초반의 대변인. 그들이 이번처럼 '똥볼'(악담)을 계속 차는 한, 자유당의 지방선거 승리는 점점 절망으로 향해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