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의 주산=진산은 어디인가?
혹자는 진도에서 제일 높은 산, 첨찰산을 주산이라고 하나. 주산이라고 명칭할려면 조건이 있다.
주산과 진산은 같다고 봐야 합니다.
한 고을(도시)이 이루어질 때, 배산 임수를 기본으로 합니다.
배산임수( 배산임수 (背山臨水):산을 뒤에 두고 물을 앞에 대하고 있는 땅의 형세)
집을 짓을 때 남향을 원칙으로 하며. 뒷쪽(북쪽)에는 산이 있어야 하며. 고을 형성하는데도 풍수지리가 적용된다. 그러므로 고을이 있는 북쪽 가장 큰산이 주산이 되는 겁니다.
즉 고을의 북산이 주산이다.
그러므로 진도의 주산은 북쪽 철마산이 되며. 임수는 옛 지도를 보면, 현 진도 공용터미널 옆으로 흐르는
진도천으로 바닷물이 들어왔습니다.
옛 지도를 보면 첨찰산이 더 높으나. 북산을 더 크게 그려놨습니다.
이렇게 그리는 이유는 진도읍 고을을 시점(視点)으로 보면 가까운 곳이 더 크기 보이기 때문이며. 북산이 주산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크게 그렸다고 봅니다.
진도 북산을 살펴보면 해발 300m되는 3봉우리가 있습니다. 망적산(299.9m) 철마산(303.9m) 철마산2봉(300m)가 있습니다. 진도군민은 3봉우리를 통칭하여 북산(주산)으로 칭하나. 엄밀히 따지면 북쪽 가장 큰 봉우리가 주산이 되므로 철마산이 진도의 주산이 됩니다.
진도 동밖산장쪽에서 바라본 철마산 봉우리들입니다.
문헌에서 보면 철마산을 진도 고을을 지키는 주산으로 정하여 , 고을 수령이 1년 중 특정한 날짜에 철마산에 마조단을 짓고, 철마신상을 모시고 좋은 행정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냈던 터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진도 고을은 철마산(+북산)을 주산으로정하고 진도 읍성과 철마산성(작은 성 둘레250m)을 세우고, 고을을 형성하였습니다. 철마산의 봉우리에 있는 철마산성은 약 1,000여평 평지이며. 전망이 뛰어나 맑은 날에는 제주도 한라산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큰 보리수 나무와 잡초들이 우거져 흉물이 되어 안타깝습니다. 빠른 시일내에 진도의 주산 철마산을 아름답게 꾸며, 진도군민이 자유롭게 왕래하면 좋겠습니다.
북쪽 제일 높은 봉우리 주산에 마조단을 짓고 철마신성 3개를 모시고 기원과 제사를 지냈다 하여 철마산이라고 불렀다. 진도초등학교 교가에도 철마산이 나옵니다. 북쪽 다음 봉우리에는 진도 주변 해안을 감시하기 위한 군사적인 목적으로 적을 감시하기 위해 곳으로 활용하여, 망적산이라고 불렀다.
진도 고을을 대표하는 진도면(진도읍)을 관리하기 좋게 몇개의 단위부락으로 구분하였는데. 먼저 진도읍성을 짓어 성안, 성내리라고 명명하였고. 물과 농업을 중시하여(農者天下之大本)
진도 고을 성 밖의 통샘이 있고, (통정은 샘물이 통<桶>으로 나온다), 논 가운데 물이 말<斗>로 나오는 말샘이 있었기 때문에 두정(斗井), 이 두 샘 근방을 쌍정리라 명명하였다.
진도읍성에 서서, 사방을 바라보니 철마산. 망적산(북산). 수리봉. 남산이 있어, 각각 품게 하는 마을을 구분하여 통치함을 볼 수 있습니다.
진도읍성 북쪽을 바라보고 망적산과 철마산 중간지점에서. 망적산부터 서쪽으로 보이는 구역을 향교를 품고 있어 교동리 명명하였고. 철마산에서 동쪽으로 보이는 곳에서 제일 높은 수리봉(옛날에는 진도 고을 사람은 큰산이라고 불렸음)과 쌍정리 경계선까지를 동쪽 밖 마을이라 동밖에 동외리라 명명하였다.
쌍정리 경계선에서 남산을 품고 교동리 경계선까지를 남문 거리 남밖에라고 하여 남동리라고 명명한 것 같습니다.
포구리는 고작방조제가 축조되기 전에는 진도읍의 포구마을이었으므로 포구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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