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서는 초안이 없다. 다만, 초안처럼 읽을 뿐이다.
[시민포커스=조한일 기자]
집게 4
강애심
사월에 백수 됐네
갈 곳 더 많아졌네
오름에 올라 보네, 백수들이 또 있네
웅덩이 집게들처럼 다닥다닥 저 산자고
풀잎에 숨어들면 차라리 편한 걸까
산자고도 살자고 여기까지 왔구나
섬 하나 뚝 떼어놓고 저만 가는 저 뱃길
내 사랑, 내 시간을 누가 물고 갔는지
게딱지만 한 전세금 저당 잡혀 돌아서면
발 디딘 땅 한 평마저
각서를 쓰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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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이 아닌데 내 집인 것처럼 사는 일은 내가 아닌데 나인 것처럼 사는 것이라 낯설고 부자연스럽다. 우리를 둘러싼 많은 것이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때 약간의 독소를 우리는 품게 된다. 또 잇몸 위에 살짝 송곳니를 숨기고 적잖은 스트레스로 때론 면역력을 기르며 전투력을 높힌다. 시인의 ‘집게’ 시리즈 중에 네 번째 ‘집게 4’에 나타난 ‘백수’라는 단어에는 ‘실업자’에는 없는 더듬이가 있다. 그러므로 전자는 능동 주어가 되고 후자는 수동 주어가 된다. 또 보어는 ‘갈 곳 더 많아졌네’라는 역설적 자기 보존적 서술이다.
봄에 오름에서 보이는 ‘산자고’. 장가 못 가 걱정이던 아들에게 시집온 며느리가 등창이 생겼는데 며느리에게 마치 별 모양으로 생긴 산자고 잎을 짓찧어 붙여서 낫게 해 줬다는 “자애로운 시어머니”라는 산자고를 ‘집게들처럼 다닥다닥 저 산자고’로 표현하며 백수와 산자고를 동격이라는 등식에 넣고 있다.
시인은 ‘풀잎에 숨어들면 차라리 편한 걸까’라며 ‘산자고’의 지형학적 보호막과 ‘백수’의 은둔적 보호막을 사슬로 묶고 있다. 하지만 시인의 시선은 이미 먼 곳을 향해 ‘섬 하나 뚝 떼어놓고 저만 가는 저 뱃길’로 진솔한 심정을 나타낸다. 이 작품의 심장 같은 포지션을 담당하는 표현이다. 이미지가 분명히 형상화된 하나의 자기 기술記述이다. 뱃길이 섬을 버리는 듯 표현하지만 섬이 뱃길을 버리는 모습이다. 뱃길은 변하지만 섬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사랑, 내 시간’의 행방을 두고 미궁으로 빠지는 인간적인 의문과 ‘전세금 저당 잡혀 돌아서면’이라는 표현만 잘라 놓고 읽어도 전개의 클라이맥스로 다가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발 디딘 땅 한 평마저 각서를 쓰라 한다’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땅을 딛는 일이 생의 주 기능이며 ‘각서’를 쓰는 일은 끊임없는 자기 서술의 보편적 사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서술이 나를 보호해주지 않지만 그런 모습으로 사는 집게의 일기장은 바닷물에 젖지 않는다.
각서는 초안이 없다. 다만, 초안처럼 읽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