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근대의 탄생 : 개화에서 개벽으로』를 읽고
박지영 (원광대학교 원불교학 박사과정)
들어가며
한국학자 조성환 박사의 글이 드디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동안 저자의 대학원 강의나 글에서 편편(片片)히 접했던 내용들이 『한국 근대의 탄생 – 개화에서 개벽으로』(모시는사람들)라는 제목 안에서 하나의 획을 이루며 엮어져 나왔다.
서구의 틀로 우리의 역사나 사상을 설명하는 데에서 오는 한계와 오류가 구체적 사료(史料)와 설득력 있는 논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그 한계와 오류 속에서 폄훼되고 상처받았던 개벽종교(開闢宗敎)를 한국적 근대(近代, modern)를 알리는 논의의 출발점으로 부각시켰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근대를 도모하다 스러져간 개벽종교가 아닌, 앞으로 도모할 미래 활로와 동력을 품은 개벽종교와 마주할 수 있다.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의 저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결함이 발견된 ‘근대’라는 개념을 ‘리콜(recall)’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인은 근대 계몽주의 맹목성이 낳은 폭력, 보편과 합리의 한계를 목도하고 있다. 진정한 근대를 열고 대안적 삶을 찾고자 하는 우리에게 『한국 근대의 탄생 – 개화에서 개벽으로』는 ‘오래된 새 길’을 제시한다. 나는 개벽종교 신봉자로서 이 책에 담긴 근대와 개벽종교 간의 상호관계를 눈여겨보았다.
근대 기획 속에서의 개벽종교
서구 근대의 틀로 바라본 개벽종교는 어떤 모습이었나 살펴보았다. 개벽종교가 태동되던 시기는 세계사적으로는 서구 근대문명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던 때였다. 권리와 책임을 가진 근대적 개인이 탄생하고,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서구 근대성(정치의 민주주의, 경제의 자본주의, 사회의 시민사회)이 확산되었다. 비서구의 전통적 공동체가 근대라는 세계체제 또는 서구문명에 편입되는 과정, 이른바 근대 기획 속에서 개벽종교는 청산되어야 할 야만의 문명으로 인식되었다.
서구적 근대성의 큰 특징으로 정교분리를 들 수 있다.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유교 등으로 분화되는 종교는 종교대로 자기 특성을 가지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으로 분화되는 세속은 세속대로의 특성을 가지는 것이다. 여기서 세속과 분리되는 종교는 초자연, 비이성, 비합리, 감성의 영역과 인간 내면의 사적 영역에 배치됨으로써, 인간 외부의 공적 영역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는 자연히 분리된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고 합리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종교의 영역에서, 참종교와 거짓종교, 문명종교와 미신을 구분하는 또 다른 기준이 끼어들게 된다. 근대적 합리성과는 상관관계가 없는 이 기준에 의해 문명종교와 미신이 판가름되면, 미신은 과학을 기조로 하는 세속의 공격 대상이 되지만, 소위 문명종교는 같은 초자연의 영역에 있으면서도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아 자유롭게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근대 기획 속에서 정교분리의 방향과는 반대로 세속과 깊은 관계를 맺고 민중문화 속에 뿌리를 두고 있는 개벽종교는 미신의 범주에 들지 않으려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이 책 제2부 제2장 「개벽과 개화」에서도 개벽종교가 근대화의 현실을 인식하고 이에 대응한 결과들을 「5. 서학과의 만남」과 「6. 개벽에서 개화로」에서 언급하고 있다.
재발견된 근대 속에서의 개벽종교
이렇게 소외되고 매도당하고 살아남고자 발버둥 치던 개벽종교를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조성환 박사는 동학을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사상’으로서 이해하고자 시도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개벽종교의 사상을 깊이 파고 들어 '생명, 영성, 공공(公共)’의 보편적 가치들을 건져 올리고, 리콜해야 할 근대를 수리(修理)하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중국(유·불·도)이나 서구(Western modernity)의 틀이 아닌 한국의 틀로 한국근대사를 바라보고 새로운 근대를 다시 발견할 수 있다. 이 재발견된 근대 속에서 개벽종교는 한국의 자생적 근대를 연 주역으로 조명받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최제우와 최시형은 유교를 개벽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하게 된다. 모든 가치의 근원을 생명에 둠으로써, 비로소 전통적인 중국적 세계관에서는 탈피했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유교적 지식인들에 의해 혹세무민(左道亂正) 죄로 몰리게 된다. 생명을 주장함으로 인해 생명을 빼앗긴 것이다. (이 책, 109쪽)
격동의 시기에 민중의 아픔을 치유하고 문명의 대전환으로서 개벽을 잉태했던 동학, 그리고 동학을 비롯한 개벽종교가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의 아픔과 한을 치유받는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고 가장 강렬하게 느낀 감상이다.
근대 개벽종교가 새롭게 조명되는 것은 물론,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현대문명에게 개벽종교가 새 길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불어 넣어야겠다. 내 마음, 내 생활, 내 가족, 내 직장, 국가와 세계가 개벽되는 일에 힘써야겠다. 이것으로 우리에게 ‘오래된 새 길’을 열어준 개벽종교의 종조(宗祖)들께 조금이나마 보은이 되기를 바란다.
원불교를 새롭게
개벽종교 중 가장 나중에 나온 것이 원불교이다. 앞선 개벽종교들의 저항과 강성(强性)이 낳은 비극적 결과를 반면교사로 삼아서였을까? 일본의 ‘유사종교’ 탄압에 희생되지 않으려는 노력에서였을까? 지금의 원불교 내부에서는 수운·증산으로부터 이어지는 개벽종교의 유산이 크게 강조되지는 않는 것 같다.
나는 그동안 주로 불교와의 관계 속에서 원불교를 바라보는데 치우쳐 있었다. 하지만 조성환 박사의 눈을 통해 보는 대종경 「변의품」 32장의 법문은 소태산 박중빈의 ‘개벽파’로서의 자기인식이 드러난다.
실제로 원불교경전에는 ‘최제우-강증산-박중빈’을 하나로 묶어서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원불교 창시자인 박중빈의 제자가 이 세 명은 마치 날이 점점 밝듯이 차례대로 개벽하였다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이 대화가 원불교가 창시된 1910년대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이 때에 ‘개벽파’라는 인식이 어렴풋이 있었던 셈이다. (이 책, 26쪽)
지금이야말로 원불교 태동 당시의 특수성을 인식하는 동시에 극복하고, 지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원불교를 고민해봐야 할 때이다. 개벽종교의 맥락 속에 자리매김할 원불교, ‘사실적 도덕의 훈련’과 더불어 초월과 신비 속에서 가슴을 울리는 ‘진리적 종교의 신앙’을 하는 원불교를 만들어 가는 데에 미력이나마 한 몸을 바쳐보고 싶다. 조성환 박사가 강조한 ‘술(述)이 아닌 작(作)’, 나만의 방식으로 원불교를 새롭게 만들어 가고 싶다.
(출전) 『개벽신문』 80호 (2018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