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밖에 있는 사람'에서 자기기만과 자기배반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어쩌면 흔한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 쯤이라고 생각했다.
"남과 나를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자신과 같은 가치를 지닌 사람으로 보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문장이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그 동안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는 물음으로 시작된 나의 대인관계에서의 갈등은 결국 타인이 아니라 나로 인해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 보다는 어떤 마음가짐과 어떤 존재방식으로 행동하느냐에 따라 반응합니다."
겉으로는 이해하는 척, 배려하는 척 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타인을 바라보는 나의 숨겨진 마음가짐에 따라 상대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되었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왜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까?"라는 질문은 결국 내가 '상자 안에서' 가졌던 생각이기 때문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갈등의 골만 더욱 깊게 했던 것이 아닐까.
처음 감수성 훈련 실습을 했던 그 날의 어색한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어색함을 이겨내 보려고 몸까지 비비꼬아가며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저 이야기를 지금 왜 하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타인의 감정을 알아차리기 보다는 그 맥락을 유추하기 바빴고, 나도 모르게 상황을 분석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고 했던 것 같다.
특이한 경험도 했다. 타인의 감정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그 흐름을 쫒아 가다보니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공간의 분위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참가자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가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듯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흐름을 나 혼자만 느낀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같이 느꼈다는 사실이 더욱 흥미로웠다.
두 번째 감수성 훈련에 참가한 뒤에야 '상자 밖에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감정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상대방을 나와 같은 가치를 가진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이며, 그에 따라 상대에 대한 마음가짐과 존재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수님께서 '잘 하고 싶다'는 자신의 진심을 '걱정된다'라는 부정적인 표현으로 나타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지적과 상대방의 감정표현믈 '단어 자체'로만 이해하지 말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심을 보려고 해야한다고 하신 것은 우리 스스로가 상자밖으로 나가기 위한 기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라는 생각하게 되었다.
수십 년간 감정을 숨기는 훈련을 더 많이 받았다. 그래서 내가 과연 잘 알아차리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상대방의 감정을 진짜 알아차린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그 경지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한 것이 많다. 그렇지만 훈련을 마치면 내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어 있을지 내 자신에 대해 거는 기대가 크다.
첫댓글 훈련할 때 조용히 있었으면서도 모든 상황을 파악 했네요!
우리 함께 스스로 상자 밖으로 나가는 훈련을 더 열심히 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