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의 유가족들이 다 떠나고 천막이 다 철거되어도 우리 다윤이를 찾을 때까지
나는 여기를 떠나지 않을 겁니다.”
평화로운 삶을 꿈꾸며 귀농민으로 해남에서 살던 다윤이의 외삼촌 김성운씨는 지난 4월 16일 이후
그 꿈이 산산조각 되었습니다.
그날 팽목항으로 달려 온 이후 일곱 달이 지나도록 그는 돌아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현재 팽목항에 가라앉아 버린 세월호 어느 구석인가에서 시신으로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은
남현철 (2-6반) 허다윤 (2-2반) 조은화 (2-1반) 박영인 (2-6반) 양승진, 고창석(교사)
권재근(52세) 권혁규(권재근씨의 아들 6세) 이영숙(51세)씨 등 9명입니다.
우리가 방문한 11월15일 현재는 세월호수색중단결정이 난 이후였고 세 가족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같은 날 팽목항에서 멀리 떨어진 진도체육관에서는 대책회의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창자가 끊어지는 이들의 슬픔은 정부의 거짓말과 무책임한 대처로 더욱 짓이겨졌다고 했습니다.
살아있는 목숨인지라 밥도 먹고, 실없는 농담도 나누고, 헛웃음도 날리지만 가장 씩씩해 보이는
어머니가 한밤중에 팽목항 등대에 기대어 통곡하고 있는 장면을 수시로 바라봐야 했다는 말을 하며 다윤이 삼촌의 눈은 또 젖었습니다.
“이제 저희는 정부를 믿지 않아요, 여러분들만 믿습니다.”
그 믿음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역전의 용사’ 원풍노동자들은 팽목항을 찾았던 것이지요.
우리 팀에게 설명을 하던 삼촌은 중간 중간 말을 잇지 못하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습니다.
이어서 박순희 부지부장님이 일어나셔서 원풍노조를 소개하고 35년 동안 우리도 싸우고 있다고,
그리고 우리가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다고 격려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삼촌과 자원봉사 하시던 분들도 우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가를 알고 난 후
한결 친밀한 느낌이 통했고요.
모두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준비해간 음식들과 생필품을 전달하고 돌아서는데 바다는
무정하게 검푸른데 노란 리본이 펄럭이는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는 분들도 보였습니다.
비교적 따뜻한 날씨였지만 팽목항의 바닷바람은 훨씬 차갑더라고요.
서울에서 거의 6시간가량, 이곳까지 달려오는 동안 가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두렵고 불안했을지,
그리고 이 길을 죽은 자식의 시신을 싣고 돌아가며 얼마나 서럽고 원통했을지,
더구나 시신도 찾지 못한 체 저 막막하고 추운 바다에 가족을 두고 돌아서는 마음들이 어땠을지
먹먹하기만 했습니다.
이제 이 날 우리의 만남을 이야기해볼까요?
11월 15일, 아침 7시 5분 용산역에서부터 영등포 수원 대전 조치원등을 거치면서 최종 인원은
23명이 되었습니다.
반가운 얼굴과 더불어 영등포에서 철원의 땅콩과 사과가 나오더니
수원에서 40줄의 김밥과 대형보리차가 등장하고
누군가의 가방에서 귤이 나오고
조치원에서는 마중까지 나가서 순대보따리를 받아들고
천안에서는 따끈한 호두과자가 등장했고 계룡에 이르자 떡보따리가 올라왔지요.
열차 안에서 캔 맥주가 거품을 튀기고 고소한 순대가 새우젓과 함께 개봉되고
역마다 일행이 합류하며 반가운 인사로 왁자지껄하니 주변의 승객들에게 눈총을 받기도 했지만,
참을 수 없는 감정들이니 어찌하겠습니까.
드디어 일단 기차로는 최종목적지인 장성에 내리니 해바라기 같은 웃음을 머금은
우리의 전남 동지들이 대기해있었습니다.
어찌 색깔도 맞춘 건지 25인승 노란 승합차에 멋쟁이 기사님이 반겨주셨고요.
아니나 다를까 맛깔스런 홍어무침에 막걸리도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면면은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최금숙동지가 물색해서 예약해둔 식당에 앉아 입맛대로 콩나물국, 선지국 등에
김수연동지가 준비한 홍어회를 곁들여 먹는데 반가운 얼굴이 쑥 들어섰습니다.
방지부장님 국회의원 때 보좌관을 하셨던 최경환님, 이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이기도 했지요.
함께 점심을 나누고 보니 계산도 이분이 다 하셨더라고요.
점심을 대접해주고 가신 후 현재 최경환비서관의 사무실 사무국장님이 팽목항 안내 등
끝까지 동행하며 도움을 주었습니다.
사실 원풍 동지들이라면 누구나 마음으로는 수없이 팽목항을 찾았겠지만 못 가보던 차에
직포과의 임원을 맡은 임선호, 이화숙 동지의 노력으로 꾸려졌고 정선순조합장, 김금자회장을
비롯하여 황선금, 양승화, 노금순 등 임원님들과 타부서 동지들, 전남의 동지들까지 합류하여
잘 다녀온 것 같습니다.
보이게, 보이지 않게 이리저리 애쓰고 마음보탠 모든 분들 감사드리고
이런 의미 있는 활동들이 종종 이루어져 또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장남수 이화숙 공동 작성
첫댓글 공동작성이아니죠~~ㅎ 역시 남수언니 글솜씨는 짱입니다요 감히 명함도 내밀수없네요 그날의 생생한 표현 감동입니다~~
모두 함께 만든 감동!! 메모해준 내용으로 구성한 글이니 공동이 맞지요~
직포동지들 팽목방문기 글을 보는 순간 또 눈물이 핑 도네요.
너무 먼 곳이라는 핑게,
바쁘다는 핑게,
가 본들 무슨 소용이야 했던 핑게,
그 보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 무슨 위로를 할 수 있겠나? 등등...핑게,
그럼에도 그분들과 같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이땅에 발을 딛고 사는 한사람으로서 마음은 빚진 듯 불편했습니다.
직포과 동지들 덕분에 팽목항에 가서
억울한 세월호 영혼들을 위해 머리를 숙여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직포회장, 총무, 함께 동행했던 동지들 수고 많았어요..^^
우리는 늘 핑계를 앞세우며 애써 눈을 돌리며 사는 것 같아요.
그래도 기본을 잃지않고 사는 이 정도면 잘 사는 것 아닐까요?
함께 해주셔서 감사요~
수고하고 고마운친구들많지만 일일이 이름불러주지못해서운타고 마세요 그중에고창영숙이도 자기부서도아닌데도 손수담근 복분자후원해주어서 잘먹었어요,기차역에슬때마다 보따리보따리를 들고올라와반갑게맞이했던동지들 원풍에있던시절이 그때가천국이었다고 말을했는데 그날그기차의 분위기도 천국이 아니었나싶군요 ,마냥행복했읍니다 .기차안에서예기입니다,,,오징어 ....오래도록 징그럽게 어울리며살자고,,,,,,,,,,,,,,,,,,,,,,해당화...해가갈수록당당하고 화려하게살자고,,,,,,,,,,했던건배사 생각나지....고마워 건강들잘챙기면서 살자..
아, 그러게요, 복분자술 아주 진하고 맛있었는데 고걸 빼먹다니~
역시 부조합장은 아무나 하는게 아닙니다요^^
직포과ᆞ정말뜻있고의미있는곳에다녀오셔서ᆞ제마음이더뿌듯하네요ᆞ같이하지못해죄송한마음도들고요ᆞ선호회장님ᆞ처음으로회장되고추진한일이라걱정많이하더니ᆞ큰일하셨어요ᆞ옛날상집간부내공이묻어있네요ᆞ직포과동지들한데뭉쳐정말좋은일하셨어요ᆞ큰박수보냅니다ᆞ짝짝짝ᆞ♥♥♥
생글생글 그 얼굴 못봐서 아쉬웠음, 몸은 괞찮은 거지?
지금도 마음이 짠하고 울림이 오네요 원풍동지들 우리 기억할것응 기억하고 잊지 맙시다 우리가 9,27을
잊지 못하듯 이것이 살아 움직이는 역사 이지요 , 역사를 미래의 희망으로 만들어 가야지요. 힘들 냅시다.
언니, 대구에 계시는 거죠?
몸도 편치 않으신데다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야 할텐데...
건강 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함께하지 못해 죄송해요 ~~~
사업하느라 많이 바쁘다며?
그 동네 가면 당연히 보였던 얼굴 못봐 섭섭하긴 했지만 사업번창하기 바래^^
호남에 있는 최금숙씨와 모든 분들
박순희언니 선순이언니 순애언니 금자언니 선금이언니 금순이언니 직포과 분들과 함께 동행할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너무나 가슴이 뭉클하고 먹먹했습니다.
개별적으로 가기는 정말 먼 곳이였고 남은 아홉명도 가족들 품에 하루라도 빨리 안겨야 할텐데요.
거세고 차디 찬 바다 속이 얼마나 추울까요 우리의 아이들이 좋은 곳에 가서 편히 잠들었으면 좋겠네요.
모든 분들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추운 날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날 되세요.
그러게요, 뭉클하고 먹먹하고...
그 시간을 함께 해주신 전방 동지들 덕에 더 좋은 시간이었네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