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인 “저 사실 돌아이예요”…20년차 여배우 주책 통했다
2023.04.12
배정원
신비주의요? 요즘같이 과거사 다 까발려지는 세상에 괜히 고상한 척하면 욕만 먹어요.
연예계 관계자는 최근 여배우들의 예능 출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배우가 베일에 꽁꽁 싸여 사생활은 물론 성격, 취미, 심지어 식성과 주량까지도 비밀로 하던 시절은 지났다. 드라마·영화 홍보차 마지못해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조신한 모습만 보여줬던 것도 옛날얘기. 이젠 예능에서 민낯을 스스럼없이 공개하고,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고, 심지어 남편 흉까지 본다. 내숭은커녕 심한 ‘주책’을 떨수록 인기가 오른다.
한가인은 지난해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에 출연해 예상치 못한 입담을 과시했다. 이 영상은 조회 수 599만 회를 기록하며 예능인 한가인의 시대를 열었다. 사진 문명특급
신비주의보다 허당과 인간미가 매력인 시대. 지난해 한가인(41)이 유튜브에서 의외의 면모를 드러내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섭외 1순위로 떠오른 데 이어 이민정(41), 송윤아(49), 그리고 이제 고소영(50)까지 예능 프로그램에 도전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국을 대표하는 미모의 톱 여배우, 중년에 접어든 40대 이상의 나이, 그리고 기혼자. 이들은 왜 동화 속 요정이 아닌 현실의 아줌마가 되려는 걸까.
📂WHO: 예능 출연한 여배우는 누구?
한가인은 지난 1월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인스타그램 사용법을 몰라 얼굴을 잘라내고 사진을 올린 일화, 남편 연정훈 몰래 손석구 영상을 본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사진 MBC
돌+아이? (제가) ‘돌아이끼’가 좀 있죠. 사람들이 그동안 어떻게 숨겼냐고 해요. 회사에서 엉뚱한 짓 할까 봐 막은 것 같아요. 요즘 아이돌로 활동했으면, (슈퍼주니어) 신동 같은 (개그 캐릭터) 역할일 텐데. 근데 춤을 못 춰요. 노래도 못해.
지난해 배우 한가인이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에 출연해 예상치 못한 입담을 과시하자 대중은 환호했다. 자신을 ‘돌+아이’라고 지칭하며, 남편 연정훈에 대해선 연신 “답답허네” “안 맞아”를 연발했다. 심지어 “내가 어디 가서 빠지는 눈, 코는 아니지”라며 빼어난 미모에 대한 자화자찬까지 늘어놓는다. 데뷔 초 신문 기사의 조신한 인터뷰 멘트에 대해서는 “기억 안 나는 거 보니 지어냈네”라며 자신의 과거 내숭까지 폭로했다. 의자에 엉덩이를 쭉 빼고 걸터앉아 있는 모습에서는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조차 없다. 여배우가 아니라 입담 좋은 동네 언니를 보는 듯한 이 유튜브 영상의 섬네일 제목은 “여러분, 한가인씨 도라이인 거 아셨어요?”다.
한가인의 ‘일탈’은 의외의 ‘홈런’을 쳤다. 해당 유튜브 영상은 599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박카스 광고 또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말수 없는 새침한 인형 같은 모습만 기억하던 시청자들은 그의 반전 매력에 반응했다. 덕분에 몇 년간 한정된 작품에만 출연했던 그는 최근 SBS 예능 프로그램 ‘써클하우스’, JTBC ‘손 없는 날’ SBS ‘싱포골드’ 등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이젠 ‘예능인 한가인’이 어색하지 않다.
이민정은 남편인 이병헌 인스타그램에 장난스러운 멘트를 다는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병헌 사진에 이민정이 “셀카 연습이 필요할듯”이라고 답변했다.
찰진 입담으로는 배우 이민정을 빼놓을 수 없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일상을 공개하는 그는 남편인 배우 이병헌이 올린 사진에 공개 저격하는 멘트를 달아 웃음을 자아냈다. 촬영 중 커피를 마시는 이병헌 사진에 “귀척(귀여운 척한다)”이라고 하거나 비웃음을 남발했다. 이에 이병헌은 이민정에 대해 ‘댓글 자제 요망’이라는 멘트를 달았다. 현실 부부의 모습 덕에 이민정은 지난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게 됐고, 이때의 입담이 또 화제가 되어 ENA 예능 프로그램 ‘오은영 게임’에도 나왔다.
송윤아는 지난달 유튜브 채널을 공개했다. 직접 커피를 내리고, 귤빵을 굽는 카페 주인 겸 주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by PDC 피디씨
송윤아도 지난달부터 유튜브 채널 ‘by PDC 피디씨’를 통해 브이로그, 토크쇼 등을 선보이고 있다. 제주도에 살면서 카페를 운영하는 콘셉트로, 직접 커피를 내려 손님을 대접하며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 ‘슈룹’ 촬영을 마친 김혜수(52)가 직접 제주도까지 내려가 송윤아와 배우의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영상 두 편은 총 115만 회를 기록했다. 브이로그를 통해서는 귤빵, 귤양갱 등을 만드는 레시피를 공개하며 솜씨를 드러낸다.
이제는 고소영이 그동안 숨겨 왔던 예능감을 보여줄 차례다. 고소영은 관찰 예능 ‘꽃보러, GO소영’을 통해 이전과 다른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 메인 연출은 걸그룹 소녀시대의 ‘소녀 포레스트’ 등을 연출한 김지욱 PD가 맡는다. 현재 구체적인 콘셉트와 촬영 시기를 조율 중이다. 전체 출연진, 편성 채널과 방송 시기는 미정이다.
드라마 ‘완벽한 아내’ 속 고소영. 고소영은 6년 만에 관찰 예능으로 복귀한다.
고소영의 복귀는 무려 6년 만이다. 그가 출연한 마지막 작품은 2017년 KBS 드라마 ‘완벽한 아내’인데 이마저도 10년 만의 복귀작이었다. 고소영은 2010년 배우 장동건과 결혼한 후 활동을 사실상 중단했다. 대신 인스타그램을 통해 일상을 전하며 각종 행사, 화보에서만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래 온 그가 복귀작으로 드라마, 영화가 아닌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을 택했다는 사실에 이목이 쏠린다. 고소영은 2012년 SBS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해 자신을 둘러싼 루머를 언급하는가 하면 남편이 장동건인 기분에 대해서는 “나도 고소영이다”라며 당찬 모습을 보여줬기에 이번 예능에서도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WHAT: 뭐가 달라졌나
심은하는 대표적인 신비주의 여배우. 배우로서 전성기를 누렸던 심은하는 2000년 출연했던 영화 ‘인터뷰’를 끝으로 2001년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은퇴 후 4년 뒤인 2005년 전 국회의원인 지상욱과 결혼했다.
과거 한국 연예계에서 여배우는 신비주의 전략을 고수해 왔다. 작품 홍보 외에는 토크쇼 출연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배우를 볼 수 있는 건 영화나 드라마, 연말 시상식 정도가 전부였다. 괜히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구설에 오르거나, 작품 속 모습과 상반된 모습이 비칠 경우 마이너스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실 여자와는 동떨어진 ‘환상 속의 그대’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런데 최근 매력 척도는 달라졌다. 요즘 시청자는 순진하지 않다. 이제 술 한 잔도 못 한다고 빼는 모습보다는 소주 한두 병은 거뜬히 비운다고 말하는 여배우가 더 많다. 두꺼운 화장을 하고도 “비비크림만 바른 거”라는 뻔한 내숭보다는 자신을 화장빨이라고 밝히는 모습에 친근함을 느끼는 이가 많다. 토크쇼에서 잉꼬부부를 과시하며 관계를 미화하는 것도 비호감이다. 투덕거리는 현실 부부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공감하며 웃는다.
이에 대해 연예계 관계자는 “요즘은 여자가 화장실도 안 간다고 생각할 정도로 순진한 팬은 없다”며 “예전에는 ‘옆 언니가 미스코리아가 됐으면 좋겠어요’라는 식의 속이 뻔히 보이는 내숭이 먹혔는지 모르겠는데 요즘은 오히려 솔직하고, 털털하며, 때론 질투도 하는 인간적인 모습에 더 팬덤이 반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배우 소속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여배우가 예능 스케줄이 잡히면 시나리오를 써줄 정도로 언행을 꼼꼼히 체크하며 할 말, 안 할 말을 일일이 정해 줬지만, 요즘엔 사전 준비가 거의 없다”며 “오히려 ‘너 성격대로 알아서 해라’ ‘괜히 얌전 떨지 말라’고 말할 정도다”라고 말했다.
📂WHY: 여배우의 투잡, 왜
과거 한국 예능의 대부분은 버라이티 쇼로, 출연자는 ‘댄스 신고식’이라는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했다. 사진 SBS
여배우의 예능 출연이 늘어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리얼리티 또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대세가 됐기 때문이다. 과거 토크쇼 또는 버라이티 방송 중심일 때는 예능 출연을 꺼리는 여배우가 많았다고 한다. 반드시 단상에 올라가 춤을 추거나 전유성 성대모사, 김민종 모창 같은 개인기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연예계 관계자는 “여배우 중 의외로 춤, 노래에 소질이 없는 경우가 꽤 있다”며 “한 때 기획사에서 신인에게는 모창, 성대모사를 필수로 가르치던 시절이 있었는데, 최근엔 이런 요구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이어 “관찰 예능의 경우 특별히 입담이 좋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일상(혹은 정교한 연출이 더해진)을 보여주면 그만이기 때문에 비교적 부담이 덜한 편”이라고 말했다.
관찰 예능에서 드러난 여배우의 드라마 캐릭터와 상반된 반전 이미지는 필수 매력 포인트다. 경수진(35)은 MBC ‘나 혼자 산다’에서 손에 전동 드릴을 들고 목재에 나사를 능숙하게 박아가며 조립하는 모습으로 ‘경 반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서 화려한 스튜어디스 최혜정 역할로 이름을 알린 차주영(32)은 가죽 재킷을 입고 바이크를 모는 터프한 모습으로 화제가 됐다.
경수진은 능숙하게 벽에 못을 박고, 가구를 조립하는 모습으로 화제가 됐다. 사진 MBC
두 번째 이유는 기혼이자 중년 여배우에게 여성 팬덤이 압도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걸그룹을 지탱하는 이모 팬, 언니 팬처럼 여배우에게도 여성 팬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특히 기혼 여배우의 경우 팬의 대부분이 젊은 여성이다. 과거에는 여배우가 결혼하면 연예계 활동을 완전히 접고 은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일타 스캔들’의 전도연(50)처럼 50대에도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주인공을 맡을 정도로 나이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남성 팬이 원하는 청순함과 같은 전통적인 여성성보다는 여성 팬에게 소구하는 공감대 또는 ‘워너비’ 이미지를 구축하는 게 필수다.
차주영은 화제작 ‘더 글로리’에서의 모습과 전혀 상반된 바이크를 즐기는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 MBC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40대 이상 기혼 여성 연예인이 광고 모델로 기용되는 경우는 제품의 타깃 소비자가 비슷한 또래의 여성 또는 해당 여배우를 ‘닮고 싶은 언니’로 여기는 2030세대 여성인 경우가 많다”며 “20대 여배우가 여자 아이돌과 광고 모델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것과 달리 중장년층 여배우는 충성도 높은 여성 팬덤을 확보하면 훨씬 더 장기 집권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결론
결국 여배우의 예능 러시는 타깃 팬덤의 변화에서 이뤄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데뷔해 남성 팬의 환호를 받던 여배우도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팬덤의 성비가 달라진다. 과거에는 이슬만 먹고 살 것 같던 이미지였더라도, 아이를 둘씩이나 낳은 중장년층 여성이 여전히 아무것도 못 하고, 모른다는 식의 내숭을 떠는 걸 이해할 만한 시청자는 별로 없다.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하나둘씩 내려놓는 편안한 모습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과거에는 나이가 들 때까지 로맨스 영화,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활동하는 여배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가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여기에 관찰 예능이라는 신흥 장르가 여배우에게 다양한 모습을 드러낼 멍석까지 깔아주니 앞으로도 여배우의 예능 출연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bae.jungwon@joongang.co.kr
중앙일보 K엔터팀 배정원 기자
# 미시적엔터
# 주책
# 신비주의
# 허당
# 인간미
# 톱배우
# 예능출현
# 돌+아이
# 여배우
# 배우의삶
# 완벽한아내
# 현실부부
# 관찰예능
# 버라이티
# 리얼리티
# 닮고싶은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