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눈도 뜨지 못한 채 송수화기를 들었다.
아버지다. 새벽 여섯 시에 전화를 해올 사람은 아버지밖에 없었다.
“정자냐? 마침 네가 받았구나. 나다. 장 서방 깨운 건 아니겠지?”
새벽 여섯 시에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하는 사람의 음성치고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대체적으로 자신이 없었다.
“그러잖아도 오늘쯤 전화를 드리려고 했는데, 별일 없으시죠?”
하품을 깨물며 나는 거짓말을 했다.
“응, 그래.”
외국에서 오는 전화처럼 잠시 후에 아버지의 대답이 들려왔다.
“편찮으신 데는 없으시구요?”
“응, 그래. 몸은 괜찮아.”
뭘 또 여쭈어 봐야 하나?
“아참, 지난번 정철이 말이, 우물에 물이 없어 수도가 안 나오더라고 하던데 요샌 어때요?”
“가물어서 통 물이 괴지를 않아. 요샌 식수할 물이 없어 다른 집에 가서 한 들통씩 얻어다 먹는다.”
“여긴 비가 꽤 왔는데요.”
“여기도 왔어. 왔는데 원최 가물어서 그것 갖고는 어림도 없어.”
나는 참을성 있게 짜증과 답답함을 누르며 본론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어떤 사소한 일이든 간에 일 없이 전화를 거는 분이 아닌 것이다.
“저어…… 별 일들은 없지?”
“네, 없어요. 내일 가 뵐까 그러고 있었어요.”
“아, 아니다. 바쁜데 놔둬.”
“바쁘긴 하지만…… 저희 다녀온 지 한 달이나 되었잖아요. 정철이 다녀온 게 보름쯤 되었죠? 장 서방이 내일은 꼭 가자고 해서 그럴까 하고 있었죠.”
나는 또 거짓말을 했다. 일부러 가자 소리하지 않으면 남편은 자기 일에 바빠 내게 아버지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사람인 것이다.
“아니야, 바쁜 사람 왔다갔다할 것 없고…… 내일 정철이나 좀 보내라.”
“걔야말로 바쁘죠. 정철인 보신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하실 말씀이라도 따로 있으신 거예요?”
“아니, 뭐, 풀 좀 같이 뽑았으면 해서…… 그 풀이 말이다. 그게 끝이 없어. 난 그저 종일을 풀하고 씨름하느라고…….”
정말 답답한 양반이셔. 요즘 먹고살기가 얼마나 힘든데 한가하게 풀 뽑으러 갈 시간이 어디 있어.
게다가 대기업이 다 그렇듯이 정철이 얼굴은 평일에도 제대로 보기 어려웠다. 다녀온 지 보름도 안 되는 애를 또 보낼 수는 없다. 말하나마나 정철이는 펄쩍펄쩍 뛸 게 틀림없었다.
“정말 미치겠네. 누나, 나도 낼모레면 서른이에요, 서른. 장가고 연애고 시간이 없어 못 하는데 이거야 원, 오라, 가라, 뭘 사와라, 이젠 아버지 마음대로 그럴 나이도 아니구요. 또 내 사정도 있잖아요. 뭐예요? 누나 때문에.”
아버지의 시골 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강하게 반대했던 정철이는 그런 때마다 나를 비난했다. 내가 모질지를 못해 일이 이렇게 되었다며 모든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모든 책임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지란 말인가. 아버지가 부를 때마다 정철이를 대신해 달려 가든가 아버지를 그곳에서 모셔 오든가…….
처음 아버지가 시골에 집을 하나 봐 두었다고 동행을 요구했을 때는 나도 제법 강한 의사표시를 했었다.
“안 돼요, 글쎄 절대로 안 돼요. 아버지가 여기서 혼자 사시겠다고요?”
정철이는 물론 나보다 더 노골적이었다.
“도대체 여기서 뭘 하시겠다는 겁니까?”
“뭘 하시든 말든 아버진 여기서 못 사세요. 평생 도시생활만 하신 분이, 한두 달은 어떨지 모르죠. 그렇지만 오래 참지는 못하신다구요. 이게 솔직히 집이에요? 집이다 하니까 집이라고 하지.”
차례로 덤벼들듯 반대만 하는 자식들의 시선을 피하며 아버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농사꾼이 이 정도 집에서 살면 부자지 뭐. 이 동네에서는 제일 나은 집인데.”
“차암 아버지, 아버지가 언제부터 농사꾼이셨어요? 언제 농사란 걸 지어 보셨느냔 말입니다.”
“왜 내가 농사를 안 지어 봤냐?”
“아하하하하…….”
정철이가 느닷없이 큰 소리로 웃었기 때문에, 아버지도 나도 깜짝 놀랐다.
“아이구, 아하하하하… 아버지, 아버지 그게 무슨 농사예요? 그건 취미생활이었죠, 아하하하…….”
아버지는 얼굴이 벌개졌다.
하지만 정철이의 말이 옳았다. 아버지는 전에 우리 온 가족, 그러니까 어머니가 살아 계셔서 네 식구가 함께 살던 집의 손바닥만한 뜨락을 기억하고 계신 것이다.
정년퇴직 전까지, 그리고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지는 학교에서 돌아오시면 겨울을 빼놓은 세 계절을 그곳에서 살았다.
그 뜰은 검정색 윤기를 자랑했다. 뜰의 작은 밭에서 무성한 잎을 매달지 못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무생물뿐이었으리라. 그렇지만 정철이의 말대로 그것은 농사가 아닌 취미나 여가생활이었고 그 취미가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온 식구의 합심 덕분이었다.
그 밭은 온 가족이 긁고 주워 파묻은 가을의 낙엽과, 잡초를 뽑고 버팀목을 세워주며 개숫물을 잊지 않고 뿌려주던 어머니의 정성이 모종을 얻어다 심은 아버지의 부지런함과 어우러져 이뤄낸 작품이었던 것이다.
“웬 전원생활을 하시겠다고 이러시는 거예요? 농사는 정철이 말대로 쉬운 게 아니잖아요, 아버지.”
“알아, 나도 다 안다. 뭐 내가 재미로 이러는 건 아니야.”
아버지가 중도금까지 치렀다는 그 집은 방 둘에 부엌 하나였지만 아닌게 아니라 그 근방에서는 가장 번듯했다. 아버지가 탐낸 것은 집에 딸려 있는 삼 백 평의 밭이었다.
“그래서 나도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잖냐. 우선 저기다 뭘 좀 심어 보고, 자신이 붙으면 저 위 산자락 근처에 아주 괜찮은 밭이 있더라. 그 다음에 그걸 인수해 볼까 했어.”
못마땅한 표정으로 정철이가 꼼꼼하게 집안을 살피며 다니자 아버지는 변명을 하느라 연신 땀을 닦아냈다.
“집주인이 읍으로 나가서 사는 통에 꼬박 이 년을 빈집으로 두었다지. 어차피 들어오기 전에 죄다 손을 봐야지, 그 작정은 있다. 여기 집 공사 해주기로 한 사람들도 일전에 집주인이 소개해줘서 읍에 나가서 만나봤어.”
“수리를 해봤자 거기서 거기죠. 오 년씩이나 아파트에서 사셨는데 이렇게 불편한 데서 어떻게 사시겠다는 겁니까?”
“그래서 저 방 하나는 새마을 보일러로 바꾸기로 했고, 저 우물 있잖냐, 그걸 수도로 바꾸기로 했어. 온수통을 달면 더운물도 늘 쓸 수 있다고 하더라.”
정철이는 끈질기게 트집거리를 찾아 아버지를 공박했다.
“조석은 어떻게 하시려구요? 아, 뭐 그거야 여기서도 동네 아줌마 일당주고 부탁하면 되겠지만, 이런 데서 덜컥 병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병원이 가깝습니까? 우리가 알고 달려온다고 해도 두 시간이 넘잖아요?”
“그거야…… 아파트에 있어도 너희가 모르면 일주일이 갈 수도 있고 보름이 갈 수도 있고… 뭐… 그리고 서울에 있으면 뭐하냐? 여기는 젊은 사람은 죄다 도시로 나가서 늙은이들만 있어. 저녁이면 일 끝내고 대포나 좀 나누고 좋지 않아? 아파트라는 게 정 붙일 데가 있어야지. 여기 몇 번 와보니 이 동네 사람들이 인정이 있어.”
“아파트도 정 붙이기 나름이죠. 노인정도 있고…….”
정철이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투였다.
“그리고 아버지도 저희들 입장을 생각하셔서 행동을 하셔야지요. 이 구석에 혼자 이러고 계셔 보세요. 자식들 꼴이 뭐가 됩니까? 누나, 안 그래요? 누나나 나나 어떤 소릴 듣겠어요?”
내가 나설 차례였다. 정철이처럼 아버지를 몰아세울 수만도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아버지는 그런 대로 큰딸인 내게 마음으로나마 의지를 해오지 않았나 믿었었다. 그러나 아파트에 계셔도 우리가 모르면 일주일, 보름 모르는 채로 있을 수 있다는 말씀이 대못 되어 박혀 왔다.
그렇다. 우리들 옆에 계시게 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우리의 체면은 중요하고 아버지의 쓸쓸함은 중요하지 않다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노릇이었다.
“그럼 당분간 살아 보세요. 그렇게 원하시니 한번 해보시지요, 뭐. 그러자면 전화부터 신청해야겠어요.”
“원하고 말고도 없어. 난 진작에 마음먹었는데 너희들 봐서 그냥 끌어온 거야.”
아버지가 이사를 강행한 것은 지난 늦가을이었다. 이왕 사놓은 집, 어디 가지 않으니 겨울 지내고 들어가시라고 해도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내 다 계획이 있다. 과수들은 지금 심어야 한다더라.”
“쥐꼬리만한 땅에 과수원까지 차리시려구요?”
“과일나무도 내 다 조사해 놨어. 개량호두하고 개량개암하고 개량대추가 이 동네 땅에는 맞는 것 같더라. 그리고 지금부터 준비해야 봄에 땅을 갈지. 먼저 임자가 귀찮으니까 땅을 막 버려놔서 엉망이야. 땅을 살려야 할텐데…… 그러니 내년 농사는 그렇게 크게 기대는 못해.”
무슨 농군학교에서 갓 졸업한 젊은 농군처럼 아버지는 의욕적으로 수종을 조사하고 묘목을 사들였다.
“이게 다 누나 때문이잖아요. 뭘 이해하는 척해 갖고 이게 뭐예요? 아까 사고 난 차 두 대나 봤죠? 이 길이 그렇게나 위험하다는 거예요. 거기 집 근처 땅들도 걸어 다니기에는 위험하잖아요. 이불 덮고 누워 계셔도 시원찮을 텐데 도대체 이 추운 날 왜 돌아다니시냐 말예요. 낙상이라도 해봐요. 노인네가 어쩔 거냐 말예요.”
정철이가 푸푸 골을 내지 않아도 내 속 역시 편안하지 못했다. 그 겨울의 아버지는 한마디로 청승스러웠다. 얼굴은 상 일꾼처럼 거칠어져 꾀죄죄하고 빨지 못한 빨래더미가 아기무덤만큼 되었다. 어떻게 집수리를 한 것인지, 장작을 때는 아궁이는 노상 연기를 내뱉었고 새로 놓은 보일러의 연탄불은 아버지가 잠깐만 방심하고 놓아두면 후르륵 타서 꺼져 버렸다. 크지도 않은 방이 외풍과 냉기로 앉을 데가 없었다. 아직 씨 한 톨 뿌려 보지 못했는데 아버지는 벌써 영락없는 농사꾼이 되어 있었다.
“사람을 사라고 했잖아요. 빨래를 일일이 져 나를 수는 없고, 아주머니라도 한 분 교섭해 보시라구요.”
“살 사람이 있어야지. 그냥 와서 해준다면 몰라도 돈 받으며 해줄 사람은 없어. 죄다 살만큼은 사는 사람들인데 어디 그러려고 드나?”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세요?”
“밥이야 나 혼자서도 연탄불로 충분히 할 수 있어. 연탄불만 꺼지지 않으면 세 끼 다해 먹을 때도 있고.”
“목욕은요?”
“저 온수통이 별 쓸모가 없어. 물을 빼 쓰면 방바닥이 다 식어 버려.”
“그러니까 뭐 하러 미리 들어오셨냐 말이에요. 날 풀릴 때까지 만이라도 올라와 계세요.”
“아냐아냐, 참을 만해. 이까짓 것,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참을 만했던 것인지, 참을 수밖에 없던 것인지는 몰라도 아버지는 그 겨울을 잘 참아냈다.
“일사후퇴 때는 말도 못했는데 뭐.”
일사후퇴 때야 아버지는 청년이었는데 아버지는 그때를 들먹이며 겨울을 넘겼다.
봄기운이 돌았다.
회사 일에 묶여 선볼 시간도 없다는 정철이를 아버지는 일주일 열흘이 멀다며 불러들였다.
“조금씩 조금씩 밭을 갈아놔야겠어. 삽을 넣어 봤더니 땅이 많이 녹았더라.”
“아유 참, 아버지 사람을 사시라고 했잖습니까?”
“사방으로 다리를 놓았는데 그렇게 사람이 없어. 지금부터 조금씩 해놓으면 딱 맞을 거야.”
“제가 삽질을 해봤어야지요.”
“왜 전에 김장구덩이 파봤었잖냐? 사실 여러 집이 모아 트랙터를 쓰기로 했는데 슬금슬금 빠져 버려서 그것도 여의칠 않게 됐어.”
모처럼의 휴일마다 정철이의 손은 물집이 잡혀 엉망이 되어 돌아왔다.
“아, 몰라요 난. 이제 끝이야, 안 가요. 이게 뭐예요? 이 얼굴 좀 보라구요. 부장님이 날보고 농사짓냐고 그래요. 가뜩이나 피곤해 죽겠는데 흙일까지 하니 이거 사람이 살겠어요? 누나가 좋다고 했으니까 누나가 가서 해요.”
할 수없이 남편과 내가 갔다.
밭은 일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제대로 갈아놓은 밭은 겨우 하나고, 두 개는 어찌어찌 뒤엎어 놓기만 한 형국이었다.
“처남은 여태 왜 왔다갔다한 거지? 딱 하루면 끝내겠는데 뭘 그렇게들 절절매는 거야?”
반은 재미 삼아 남편은 호기롭게 밭을 향해 달려갔다. 사위까지 합세 해주니 아버지의 의욕은 더 대단했다.
“아아, 거긴 놔두게 장 서방. 거긴 겨울에 더덕을 묻어 놨어. 이보게 장 서방, 저 돌더미가 죄애 밭 하나에서 나온 거야. 처음엔 내다 버렸는데 그럴 수도 없어.”
“돌도 골라내야 합니까? 염려 마십쇼, 아버님. 아버님은 쉬세요. 보고만 계세요.”
그러나 한 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남편은 두 손 두 발을 번쩍 들었다.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프며 팔이 아파 도저히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다고 했다.
“이상하다? 그래도 군대 있을 때 삽질도 많이 했는데? 여보, 이 손 좀 주물러봐. 물집이 잡혔지? 여기가 다 까졌어. 아야야, 오금이 아파 다리가 펴지질 않네, 펴지질!”
남편은 대단히 엄살을 부렸다.
“아이구, 처남 그 동안 애썼겠어. 아버님은 괜찮으신가 몰라?”
“병나실 거예요. 저러다 덜컥 누우면 난 몰라.”
“확실히 강단이 있으셔. 아이구, 아야야야......”
다행히 아버지는 눕는 일없이 밭갈이를 끝냈다.
“씨도 다 뿌렸다. 한번 와서 보고 가라. 아주 밭이 틀이 잡혔다.”
똑같은 흙이라도 그렇게 달랐다. 뒤집고 으깨고 돌을 골라낸 흙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금방이라도 여기저기서 초록색 싹들이 삐죽삐죽 솟아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가끔씩 전화를 드려보면 아버지는 다소 흥분해 떨리는 음성으로 밭의 상황보고를 잊지 않았다.
“더덕 있잖냐? 겨울에 묻어둔 거. 그래그래, 중간에 있는 거 말이다. 그게 싹이 손바닥 만큼씩 자랐어. 어젠 종일 가지를 세워 주느라고, 그런데 큰일이야. 열무고 뭐고 다른 것들은 싹이 나오질 않아.”
“쭉정이를 뿌린 걸까요? 장 서방이 씨 속아 산 거 아닌가요?”
“그게 아니야. 가물어서 그래. 어지간히 가물어야 말이지.”
“비 왔었잖아요?”
“왔는데, 그것 갖고는 어림도 없어. 밭에 먼지가 푹푹 이니, 싹은 무슨 싹.”
아버지는 새벽으로 저녁으로 자주 전화를 해오셨다. 처음 한두 번은 같이 걱정을 하고 비를 내리시지 않는 하늘을 함께 원망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세 번 네 번 계속되니 짜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쩌란 말인가. 내가 안 오는 비를 오게 할 수도 없고, 가뭄대책을 세우는 정부도 아닌데 대체 날 보고 어쩌란 말인가.
그러면서 야금야금 비가 내려주셨다. 포릇포릇 싹이 나고, 모종들은 기운을 차렸다. 끝도 없는 가뭄 타령에서 해방된 것만으로도 큰짐을 벗어 놓은 것 같았다.
아버지가 말하는 그 농사라는 게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아버지는 눈부시게 바빠졌다. 며칠 비가 안 오면 물대주느라 바쁘고, 비가 쏟아지면 고랑 사이로 빗물이 잘 빠져나가게 하느라고 바빴다. 비가 그치면 쓰러진 포기를 일으키고 흙을 털어 내느라 바빴다. 자식 기르는 일보다 더 힘이 들고 정성도 바쳐야 했다.
“일이 끝이 없지 뭐.”
아버지는 지치지 않는 표정으로 말씀했다. 그러나 풀이 아버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날만 새면 아버지는 밭에 나가 풀을 뽑았다.
“내 농사라는 게 뭔지를 조오금은 알 것 같다. 농사라는 게 다른 게 아니야. 풀과의 끝없는 싸움이지 뭐겠냐.”
아버지는 농군이 아니라 풀과의 격전을 위해 나가는 투사 같았다.
“이거이 어떻게 된 게 다음 날 새벽에 나가면 그 자리에 또 나 있지 않아?”
“뿌리째 뽑아야죠.”
“뿌리째 뽑지. 뽑는데, 거참 희한해. 돌을 놔서 표시를 해놨는데 영락없이 그 자리 아니면 그 근처란 말이야. 그것도 하루 새 이만큼 씩 자란다. 정철이가 와서 함께 하루를 뽑아야지, 이게 질금질금 이러니까 뭐가 안돼.”
“정철인 바빠요. 사람을 두엇 쓰세요.”
우리 자식들이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사람을 사라는 소리뿐이었다.
“사람이 없어. 왜 그 위 금숙이네 있잖냐. 씨까지는 뿌렸는데 사람이 없어 못해 먹겠다고 올 농사는 포기해 버리겠다더라. 잡초가 올해는 유난히 극성을 부려서.”
“제초젠가 뭐 그런 거 있다고 하던데요?”
“그게, 그게 안 돼. 내 이야길 들어봐라. 소용이 없어. 밑동이는 그냥 살아 있겠지. 그리고 다른 작물까지 피해가 안 간다고 할 수가 없거던. 그저 손이 제일 확실하지.”
제초제가 그렇게까지 쓸모가 없다면 왜 그것이 시판되고 있겠는가. 제초제를 쓰면 혹시 단 한 포기의 풀도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는 그 점을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적군끼리라도 오래 대치하다 보면 애정이 생기듯이, 존경도 하게 되듯이, 아버지는 풀에게 그런 심정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잘 먹고 잘 자라라. 널리 퍼져라. 기운을 내. 기운을 내서 나하고 또 다시 붙어 보는 거야. 우리는 좋은 적수지. 좋은 맞수를 만난다는 것도 인생에 흔한 일은 아니거던.“
그러나 그것은 아버지가 선택한 아버지의 인생이다. 그 인생의 어디까지 우리 자식들이 동행해 드릴 수는 없다.
정철이를 불러들이려고 할 때마다 나는 다소 매몰차게 대답했다.
“정말 바빠요, 걔는.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을 구해 쓰세요. 장 서방이라도 가드리면 좋겠지만 그때 보셨잖아요? 시간도 없고 일도 못해요. 사람을 쓰세요, 사람을.”
“어디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풀만 아니면 일도 없어 사람이 필요하지 않은데…….”
답답한 일이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직장 다니는 자식을 풀이나 뽑으러 오라고 한단 말인가. 농촌 밥 먹고 자라난 젊은이들도 싫다고 내던진 괭이며 호미를, 시골 물 한 모금 마셔보지 못한 우리 손에 쥐어주겠다는 처사는 백 번 옳지 못했다.
차츰차츰 아버지로부터 오는 전화의 횟수가 줄어들었다. 풀에게 항복을 했거나 이력이 났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정철이 좀 꼭 보내라. 내 걔한테 따로 할 말도 있고, 좀 그렇다.”
그렇게 해서 보름 전에 정철이가 다녀왔다. 아버지가 특별히 하실 말씀이 있다는데야 어쩔 수 없었다. 돌아가시려고 그러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까지 했다.
“그게 아니에요. 풀 좀 같이 뽑자는 거였어요. 아유 누나, 나 아버지 때문에 미치고 말거야. 어떻게 좀 해요.”
그런 술수를 부릴 줄은 몰랐다. 자식을 속이다니. 자식을 속이면서까지 그 풀을 뽑아내야 하다니. 거기다 다녀온 지 보름도 안 되는 애를 또 불러대다니. 정철인 일곱 살 어린애가 아니다. 나이 서른인 것이다.
“정철인 그만 부르시구요, 장 서방하고 내일 저희가 가죠. 그래도 기대하지는 마세요. 장 서방이 어디 일할 줄 아나요? 그렇다고 제가 잘 하나요?”
전화 속에서 아버지는 머뭇거렸다.
“아니야 그만 둬. 내가…… 너희들 고생시키자고 시작한 일도 아닌데…… 그만들 둬라. 뒤에 금숙이 아버지가 사람 알아봐 준다고도 했고…… 그러니 좀 기다려 보지. 내일 더운데들 애써 올 생각 말고.”
“그래요, 그럼. 내일은 그만 두죠 뭐. 사람 구해질지도 모르고.”
“그래, 그럼 전화 끊으마.”
“아참, 그리고 아버지. 이번 농사 끝나면 그만 두세요. 집은 별장으로 쓰든지 하고 올라오셔야지 안 되겠어요.”
“얘, 무슨 그런?”
“병 나실까봐 안 되겠어요. 농사 짓는다고 사람만 곯겠어요. 가을걷이로 끝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계세요. 그럼 끊어요.”
“얘, 그게 아니다. 정자야! 그게 아니야, 곯긴 누가 곯아? 난 괜찮대두!”
아버지는 황급히 음성을 높였고 나는 황급히 송수화기를 놓았다. 아버지에게 간다는 일은 꿈도 꾸지 않는 남편이라서 기실 나는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송수화기를 놓고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낭패감이 휘몰아쳐 왔다.
내가 이렇다니, 어쩌면 이럴 수 있다니.
자식들이란 게 어쩌면 이다지도 간교한 것일까.
마치 내 자식에게 배신당한 것처럼 나는 나의 음흉한 수작에 몸서리가 쳐졌다. 어깨와 마음이 함께 무거웠다. 아버지가 원하여 가셨다고 해서 자식인 내가 이렇게까지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쨌건 그분은 우리들의 아버지였다.
내일 가야겠어. 남편이 안 가면 버스를 타고라도 가야겠어. 아버지가 풀 뽑으러 오라고만 우리를 노상 부르셨을 리는 없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놀다가만 오더라도 아버지가 우리에게 바라셨던 것은 단지 그것뿐이었을 거야.
“내가 왜 안 가? 언제 당신이 나보고 가자 소리나 해봤어?”
저녁 때 들어온 남편은 의외로 아버지편이 되어 나를 나무랐다.
“거어, 자식이라고 아들 하나 딸 하나밖에 없는 분이 얼마나 섭섭해 하셨겠어?”
“아유, 꽤는 생각해 주네요? 사위는 자식 아니에요? 당신이 먼저 가 보자고는 못해
요? 난 한치 건너 두 치라서 당신한테 말하지 못했어요. 마음이야 아버지가 옆 아파트에 살고 계실 때보다 더 자주 가고 싶었단 말예요.”
“시끄러워요. 남 핑계대지 내일 간다고 전화나 넣어.”
“가면 되지 전화는 무슨 전화예요. 아침에도 전화했었는데.”
“속상해서 술이라도 들고 계실지 알아?”
“그렇게 장인 어른 생각하면서 자기는 손 없어요? 손가락에 붕대 감았어요?”
남편은 어이없어 하며 송수화기를 들었다. 번호를 꾹꾹 누른 다음 남편은 목소리를 가다듬기 위해 흠흠 기침까지 했다.
“어라?”
“안 받아요?”
“다른 집이야.”
남편이 다시 꾹꾹 번호를 눌렀다.
“죄송합니다. 또 잘못 걸렸군요.”
“천천히 잘 눌러 보세요.”
“아니야, 잘 눌렀어. 왜 자꾸 다른 집이지? 웬 아주머니가 받네?”
나는 송수화기를 건네 받았다.
“거기 이륙사팔 아닙니까? 서울서 가신 김 선생님 댁요.”
아버지 집이 맞았다. 어떻게 된 노릇인가. 깊은 저녁에 여자가 와 있다니 그런 일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틀림없다. 번개같이 예감이 스쳐갔다. 새어머니가 되실 분이다. 아버지가 생각을 고쳐 우리에게 굳이 올 필요까지 없다고 한 것도 다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혼자 사신 세월이 그럭저럭 오 년. 아버지에게는 긴 세월이었는지도 모른다. 잔치를 원하실까? 아니면 조용히 두 분이서 지금까지와 같이 사시는 것을 원하실까. 좌우지간 잘 되었다. 언제나 마음 한 편에 짐이 되어 남아 있던 조석이며 빨래 같은 일상사를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주 짧은 순간에 많은 계산과 생각이 지나갔다. 나는 남편에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남편도 사정을 알아챘다는 듯이 벙긋벙굿 웃으며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어 치켜올렸다.
“저어, 아주머니는 누구세요? 저희 아버지 어디 가셨나 보죠?”
곧 저쪽에서 거침없이 응답이 왔다.
“아이구, 따님이시구랴. 아버지가 가시긴 어딜 가시겠수? 아까 낮에 밭에서 쓰러지셔갖구는.”
“네? 쓰러지셔요? 어떻게요?”
잠시의 달콤한 상상은 끝났다.
남편의 차는 미친 듯이 토요일 밤의 도로를 질주했다.
내 탓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탓이다. 농사 지으신다고 하셨을 때 말리지 못한 것, 제대로 보살펴 드리지 못한 것 모두 내 탓이었다.
“질질 짜지 말라니까? 중풍은 무슨 중풍이야? 더위 잡수신 거라고 하잖아. 왜 사람이 그렇게 방정맞아?”
그러는 남편의 얼굴은 긴장으로 잔뜩 굳어져 있었다.
아버지 집의 부엌에는 전화를 받아준 아주머니 외에도 동네 사람 여럿이 나와 서성이며 수군거리는 중이었다. 남편은 구두를 벗어 내던지며 뛰어 들어갔다.
“허구한날 뙤약볕에서 씨름을 하시니, 내 언제 쓰러지셔도 한번은 그러시겠다 싶었어.”
“농사를 처음 하시니 요령이 없으셔서 그래요.”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드느라 부엌이 소란스러웠다.
“들어가 봐요. 저녁 참에 용복이네서 미음을 끓여다 드렸는데 영 그것도 잡숫지를 못하네.”
“고맙습니다. 동네 분들이 계셔서 저희들이 마음놓고 있었지요. 죄송스럽고 고맙…….”
“어서 들어 가봐요. 별일은 아니지만 워낙 노인네가 되어서. 요새 한가한 집이 없으니까 우리도 제대로 도와 드리지 못해 죄송해서 죽겠구만.”
들어갈 일도 없었다.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아버지는 힘겹게 문지방을 넘어 나오고 있었다.
“글쎄 누워 계시라는데 왜 이러십니까?”
“아닐세, 나 죽을 병 들지 않았어. 더 늦기 전에 돌아들 가. 누가 이 밤에 달려오라고 했나. 요즘 사람들이 어디 시간에 자유가 있다고, 더위 좀 먹었다고 달려오긴 뭘 와?”
“그럼 같이 올라 가시든지요. 농사짓는 거 반대 안 할 테니까 가셔서 보약이나 한 제 달여 드시고 다시 시작하세요 아버님.”
그러시라고 동네 사람들이 함께 와와거렸다. 그새 꾸부정해진 모습으로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아녜요 아녜요. 농사짓다 보면 더위도 먹고 그러는 거죠. 다아 제가 미련해서 이랬지요. 너희는 어서 올라 가아.”
아버지는 남편의 팔을 뿌리치고 동네 사람들을 가르며 휘적휘적 창고로 걸어갔다.
“장 서방 자네가 좀 와.”
아버지 지시대로 남편은 꾸러미 꾸러미 묶은 보퉁이를 계속해서 져 날라 왔다.
“그건 차에 실어.”
트렁크가 잘 닫히지를 않았다.
“내일 올지 모르겠다 싶어서…… 오전 중에 꾸려놓기를 잘했지.”
저 손바닥만한 밭 한구석에서 가을이 되기도 전에 수확된 게 그렇게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네 이웃들하고 나눠 먹어라. 무공해 식품이다. 난 약 뿌리지 않았다. 그랬더니 모양이 좋지는 않아.”
“어떻게 이렇게 많지요? 믿어지질 않아요.”
“그러니 땅은 정직하다고 하지 않냐? 농민들이야 요새 같아서는 뿌린 대로 거두지도 못하긴 한다만, 어쨌든 그거야 세상 탓이지 땅이야 정직하지, 안 그러냐?”
남편은 트렁크를 소리내어 쾅 닫고 아버지에게 정중하게 간청했다.
“그러시지 말고 올라가셨다가 보신이 된 다음에 내려오세요, 네?”
그러세요 그러세요, 다시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권고를 하느라 시끄러워졌다.
“아녜요, 며칠을 비워 내가 없어 보세요. 저 풀들이 살판났다고 할텐데, 그땐 저도 혼자 감당 못해요. 제가 여기서 지키고 있어야 해요. 얘들아, 어서 올라가라. 열두 시가 다 되겠다. 어서들 떠나. 난 괜찮다. 이젠 정말 괜찮아졌어.”
“아버지, 고집 좀 부리지 마시구요.”
“아니야, 난 안 돼. 내가 지키고 있어야 한대두. 넌 몰라. 모른다, 저 풀을.”
아아 저놈의 풀, 어쩌란 말인가 저놈의 풀.
잘 읽었습니다. 어느 단면에는 내 얘기 같은 것도 있고.... 이런 작업 하시느라 소식이 없으셨군요. 사실 그래요. 이 소설의 아버지처럼 농사도 못 지으면서, 어떤 때는 정말 잡풀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생명인데...인간들의 에고가 가증스럽기도 하구요.--저도 처음엔 자주 오지 않는 아이들을 원망했으나..
아니에요 선생님. <풀>은 제가 30대에 썼던 옛날 작품이에요. 우리 아버지가 오래 전에 강화도에 들어가셔서 8년 동안 사신 적이 있어요. 그때 거기 동네 분들 이야기가 소재가 되었지요. 그동안 동화를 한 개 썼어요. 금호 선생의, 과수원 집 아이, 그 시리즈에 속하는 거예요. 언제고 선생님을 봬야 할 텐데요.
첫댓글 농촌은 지금 농번기겠지요. 농번기일 테고, 아버지도 문득 생각나 '풀'을 올려 보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어느 단면에는 내 얘기 같은 것도 있고.... 이런 작업 하시느라 소식이 없으셨군요. 사실 그래요. 이 소설의 아버지처럼 농사도 못 지으면서, 어떤 때는 정말 잡풀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생명인데...인간들의 에고가 가증스럽기도 하구요.--저도 처음엔 자주 오지 않는 아이들을 원망했으나..
요즘은 제가 오히려 오지 말라고 했어요. 주말 밖에 시간이 없는 아이들이 올 때면 길이 막혀 몇 시간씩 걸리니, 차라리 우리 내외가 가끔 시간 내서 아이들을 찾아 보기로 했거든요. 외로움, 병원 문제, 모두 시사하는 바 큽니다.
아니에요 선생님. <풀>은 제가 30대에 썼던 옛날 작품이에요. 우리 아버지가 오래 전에 강화도에 들어가셔서 8년 동안 사신 적이 있어요. 그때 거기 동네 분들 이야기가 소재가 되었지요. 그동안 동화를 한 개 썼어요. 금호 선생의, 과수원 집 아이, 그 시리즈에 속하는 거예요. 언제고 선생님을 봬야 할 텐데요.
풀은 왜그리 빨리 자랄까요 ? ^^* 우리 아이들도 잡초 처럼 자랐으면 ....
그러게, 망치소리네 아해들 님만 빨리 안 크는 것 같다. 어서 어서 자라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