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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세미나
성도의 정체성과 존재의 목적
하나님 안에서 나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이에 합당한 존재의 목적을 행할 때
우리는 행복하고 보람된 여정을 살아갑니다. (롬13:8b, 갈5:14, 약2:9, 요15:10~11)
강사
신길자 목사
주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 (롬13:10)
본문
고후5:15~21, 전12:13, 딛2:14
일시
10월 16일 금요일 저녁 8시
장소
국수교회 드림터
강의 구성
단락
제목
핵심 본문
변화
1
하나님 안에서 발견한 나 —
성도의 정체성
고후5:15~21, 갈2:20, 레26:12
주의 종
2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삶 —
존재의 목적
전12:13, 딛2:14, 마6:10, 롬13:8~10
믿음,성화
3
말씀이 힘이 되는 의인의 여정 —
기쁨과 참 행복
롬1:17, 합3:17~19, 요15:10~11
믿음성숙
1단락. 하나님 안에서 발견한 나 — 성도의 정체성
성도의 정체성은 하나님 안에서 발견되며, 그 정체성은 곧 하나님을 위한 목적을 향해 나아갑니다.
▍여는 말
오늘 이 자리에 서게 하신 주님과 김 일현 목사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정말 아름다운 교회, 이웃을 전도 초청 할 수 있는 교회로 하나의 목표가 되도록 인도하신 주님과, 이웃사랑을 위해 마을목회를 실천하신 선구자, 존경하는 김 일현 목사님께 받은 감동과 감격이 컸기에 이 앞을 지날 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향하곤 합니다. “우리 국수교회다”
순복하여 선 이 시간, 떨리는 마음이지만 선한 목적을 위해 기도드리며 준비한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한 절 한 절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드립니다.
영성 세미나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입니다. 처음 사랑이 어디서 떨어졌는지 살피고, 회개하며 돌이켜 이전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말씀으로 조명받고 말씀에 순복하겠다는 소중한 결단의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큰 주제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롬13:10)입니다. 이 주제 아래 “성도의 정체성과 존재의 목적”을 고린도후서 5장 15~21절에서 함께 상고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한 문장으로 먼저 말씀드린다면 “하나님 안에서 나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이에 합당한 존재의 목적을 행할 때 우리는 행복하고 보람된 여정을 살아갑니다.” 라고 하겠습니다. 이 한 문장이 오늘 세 단락의 뼈대입니다. 첫째, 나는 누구인가. 둘째,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셋째, 그렇게 살 때 어떤 여정이 펼쳐지는가 입니다.
▍새 피조물이 된 성도
고린도후서 5장 15절입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7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성도의 정체성은 먼저 구속받은 존재, 곧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5:17).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는 존재입니다(요일3:1). 우리는 죄에서 구속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본보기입니다. 바울은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종”으로 알고 표현했습니다. (갈2:20),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 자기 생명을 다해 사명에 충성했습니다. 바울만이 아닙니다. 성경 속 제자들은 모두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정체성을 회복했고, 그 정체성에 존재의 목적을 연결하여 자기 몫을 감당했습니다. 거듭난 성도도 바울처럼 변화된 정체성으로 새 목적을 갖고 사명을 실천합니다.
그러므로 정체성과 존재의 목적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발견된 정체성은 곧 하나님의 뜻을 위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레위기 26장 12절은 말씀합니다. “나는 저희의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내 존재의 목적은 이 뜻을 이루는 일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이 몫을 알고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 곧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주종의 관계 — 자기를 부인하는 종 제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기위해
거듭난 성도에게는 주종의 관계가 바르게 성립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이며, 피값으로 우리를 사신 주인의 종이요, 그리스도의 사신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은 종이라는 말보다 노예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죄인이었던 우리는 사단에게서 놓여 자유케 되어 하나님께 속한 종이 되었습니다. 새 생명을 얻은 주의 백성,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자로서 주의 마음을 품고 그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십자가의 군사들입니다. 군사는 전쟁을 위한 병사입니다. 영적으로 사단의 일을 멸하는 이 싸움에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승전고를 울려야 합니다.
주님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구원자로, 하나님으로 믿고 섬기고 좇으려면 각기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종의 기본 자세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고백과 같습니다. 내 육체는 이미 주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함께 죽었다는 인정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는 신앙입니다.
새 피조물의 신본주의 자세는 주님 앞에 늘 “예”로 화답하는 순복입니다. 본을 보여주신 주님처럼 말씀에 순복하여 주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종의 몫을 하는 것, 이것이 새 피조물의 정체성입니다.
여러분, 나는 나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습니까? 내 삶의 목적은 어디에 맞춰져 있습니까? 이 질문을 안고 두 번째 단락으로 들어가겠습니다.
2단락.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삶 — 존재의 목적
계명을 지키는 것은 곧 존재의 목적을 행하는 것이며, 그 중심에 이웃 사랑과 전도, 제자화가 있습니다.
▍사람의 본분과 거듭남의 목적
전도서 기자는 사람의 본분을 이렇게 말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 그런데 잠언 19장 23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이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일이라고 증거합니다. 사람을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일이란 무엇입니까? 이웃을 사랑하여 복음으로 그들이 주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 곧 구속사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성령과 동행하는 일입니다.
[요이4, 요삼4 —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녀로 인한 기쁨]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목적도 같습니다. 디도서 2장 14절은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구속하시고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딤전2:4, 겔33:11). 그래서 이웃 사랑의 계명을 주셨고, 우리가 구속 사역에 동참하도록 주님의 멩에를 메고 배우게 하셨습니다. 성경을 기록하신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고 하셨습니다(딤후3:15~17).
▍계명을 지키는 삶 — 두 계명은 하나로
그러면 이 일을 어떻게 실천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십계명 안에 두 계명을 담아 우리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게 하셨습니다. 십계명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앎이며, 믿는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신앙의 지침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대요리문답』 서문에 “십계명을 아는 것은 성경 전체를 아는 것과 같다”고 기록했습니다.
루터는 새 신자가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을 믿어야 하고,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에 답을 주었습니다. 알아야 할 것은 십계명이며, 믿어야 할 것은 사도신경이고, 행해야 할 것은 주기도라고 했습니다.
신학자 하르낙은 우주를 함축한 것이 성경이요, 성경을 함축한 것이 십계명이며, 십계명을 함축한 것이 ○○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 귀 기울이신 성도님들께 묻겠습니다. 동그라미 안에 들어갈 단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두 계명은 결국 하나입니다(롬13:8, 갈5:14).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주님은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나의 계명을 지킨다”고 하셨고(요14:15, 21), 요한복음 14장 24절에서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사랑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도덕적 선행을 넘어,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전도이며 이웃 사랑의 실천입니다. 피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주의 뜻을 실제로 알고 순복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주기도의 화답 —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 존재의 목적이 분명히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 그래서 주기도문은 암송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할 몫이며 약속의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주의 나라를 확장하고, 마귀의 일을 멸하는 이 일에 성령과 동행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그 목적을 8~9가지로 표현합니다. 오셔서 이르시고 가르치시고, 그 일에 십자가를 지시고 본을 보이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34절입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우리가 먹어야 육체의 목숨을 유지하며 일을 하듯,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는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산자의 양식이어야 합니다.
그 뜻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의 지상명령과 사도행전 1장 8절의 약속으로 이어집니다. 성령을 받으면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여 성령의 역사로 제자가 세워지게 하는 사역입니다. 곧 이웃을 사랑하여 말씀을 지키게 하는 것, 이것이 주의 나라 확장으로 사복음서의 핵심 주제입니다. 요한복음은 이것을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주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 양을 치고 먹이는 일, 곧 영의 양식으로 그들도 주의 영이 담긴 제자가 되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장 15절은 우리 삶에 이렇게 적용됩니다.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우리가 다시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를 위해 살게 하려 하심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의 뜻이 이루어지는 주의 나라 확장에 힘쓰는 자입니다.
▍멍에를 메고 배우라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11:29). 주님의 멍에는 십자가 사역입니다. 대속 제물이 되어 죄 사함을 입게 하는 멍에입니다. 모든 사람은 원죄를 갖고 태어난 죄인입니다. 목숨보다 소중한 새 생명을 얻어야 이 땅에서도 종의 몫을 할 수 있고, 이웃을 사랑하는 주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거듭남은 오직 말씀과 기도로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주님의 멍에를 메고 나와 말씀을 듣고 배우고 알아 지킬 때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교회는 영혼 구원의 방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심령을 지으시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에, 주의 영이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때 비로소 진정한 쉼을 얻고 새 가치관을 갖습니다.
더 이상 유물사관적인 형이하학적에 소망을 두지 아니하고 영생에 소망을 두게 됩니다. 주 안에서 회복된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존재의 목적을 남의 유익과 교회에 덕세우는 일에 둘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몫을 위한 존재의 목적으로 날마다 주와 동행하는 여정입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배운 성도라면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이 생명에 이르도록 가르쳐 지키게 할 것입니다. 성경 전체를 함축한 십계명을 잘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하나님이신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이웃 사랑에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전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모여 배우고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여 성령으로 깨달아 알고 흩어져 믿음으로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이웃 사랑의 실천과 제자화
우리가 인격을 함양하여 이웃에게 베푸는 도덕적 선행은 전도의 문을 여는 일입니다. 그 일은 결국 이웃을 교회로 초청하여 주님의 제자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우리 교회가 문화사역과 구제사역을 하는 일들이 같은 목표입니다.
이웃 사랑이 곧 하나님 사랑이며, 이웃 사랑의 실천과 제자화가 우리를 거듭나게 한 존재의 목적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씀에 나는 얼마만큼 몫을 하여 주의 나라 확장에 기여하며 살고 있습니까? 전도는 계명을 지키는 일이며, 주의 뜻이이루어지는 일에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본질적인 주 사랑입니다. 이일이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 하신 주의 경륜을 이룰 섭리입니다. 우리는 주께 사랑의 빚을 진 자들입니다. 이 일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이며, 우리가 사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이 길을 걷는 사람의 여정은 어떠할까요? 마지막 단락으로 들어가겠습니다.
3단락. 말씀이 힘이 되는 의인의 여정 — 기쁨과 행복
말씀에 순복하여 존재의 목적을 행하는 자에게는, 어떤 형편에서도 꺾이지 않는 기쁨과 행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이 일의 실천 여부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 하신 말씀으로 확인됩니다. 여기서 “살리라”는 무엇을 말합니까? 삶의 방식, 곧 여정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의 제자로, 주의 종으로 말씀에 입각하여 화답하며 사는 여정입니다.
이 여정은 앎에서 시작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말씀에 의한 앎이 믿음이 되고, 믿음은 행함으로 이어집니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약2:22).하심입니다.
앎이 깊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를 부인하고 주의 일에 십자가를 지고 좇을 수 있다는 연계입니다. 앎은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은혜이고, 범사에 감사이며, 쉬지 않는 기도로 이를 행하게 하는 믿음의 기초석입니다. 영생의 정의를 하나님과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하신 요한복음 17장 3절도 이러한 앎, 믿음과 행함이 일치된 신앙을 뜻합니다.
▍서로 사랑은 이웃 사랑을 위한 것
우리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입니다. 지체들의 서로 사랑은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한 필연입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은 우리끼리만 사랑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서로 사랑입니다. 우리끼리만 사랑하면 주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죄인과 세리와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성령이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가르치는 제사장이며, 자신이 산 제물로서 이웃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사신입니다.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형제의 죄를 용서하며, 새 가치관으로 영혼 구원이라는 본질에 충성하며 삽니다. 세상의 일에 흔들리지 않고, 사랑의 빚진 자로서 바울처럼 자기 목숨을 복음 전하는 일에 아까워하지 않게 됩니다.
▍말씀이 힘이 되어 꽃피는 여정
하박국 3장 17~19절은 이를 잘 보여 줍니다. 삶에서 모든 것을 잃었지만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겠다고 합니다. 그 다음 구절이 우리를 일으켜 줍니다. “주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을 다니게 하시리로다.” 주의 백성이 된 천국 백성은 이웃을 사랑하고 살리는 사람의 본분을 감당하도록 믿음으로 서게 하심을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시편 119편 106절은 주의 율례와 규례를 지키기로 정하고 맹세한다고 고백합니다. 이 맹세가 목숨을 다해 사랑하라는 순복에 “예”로 화답하는 충성입니다. 아무리 주의 말씀이 내 가는 길에 빛이며 내 발에 등불이라고 해도 내가 지키지 않으면 모래 위에 짓는 집과 같습니다. 다른 상황이 닥치면 다시 흔들려 존재의 목적을 잃고, 그 일에 매달려 기쁨과 감사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존재의 목적을 행하며 시편 119편 106절과 하박국 3장 19절을 더욱 새기고 좇을 때 우리의 신앙은 깊어집니다.
시편 23편도 같은 것을 말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지상명령을 주시며 세상 끝까지 함께 하시겠다 하신 약속, 곧 성령의 내주하심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 이하는 사망이나 기근이나 핍박이나 천사나 그 무엇이라도 주님과 우리의 사랑의 줄을 끊을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1~13절에서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의 의미에 적용을 바로 해야 합니다. 어떤 시련이 온다할지라도 우리가 주를 사랑하여 이웃사랑의 실천을 하는일에 있어서는 결단코 포기하지 않고 피흘리기까지 살리는 일에 존재의 목적을 두고 사랑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곧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는 기록목적의 말씀과 같음을 뜻합니다.
바울사도가 부음이 가까웠음을 알고 임박했을 때에도 성도들에게 “복음에 힘써라” 하던 그 음성이 우리 심령에 새겨집니다.
새 피조물의 새 가치관은 신본주의 자세로 주종의 관계를 세우고, 종의 몫으로 사람의 본분을 행하며,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사랑으로 일어서 푯대를 향하여 달리게 합니다. 말씀으로 날마다 성화되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내주하심의 은혜입니다. 이 사랑의 힘은 세상이 알 수 없고 줄 수 없는 오직 주님만의 권능이며, 그래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성도로 세워 주십니다.
▍기쁨의 약속
그렇다면 이 길에 무엇이 있습니까?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15:10~11).
충만한 기쁨은 말씀에 순복할 때 주께서 주시는 참 행복입니다. 계명을 지키며 주님이 베푸신 사랑을 알고 그 사랑에 감사하여 이웃을 사랑할 때, 성령의 말씀에 순복하여 제자를 세울 때 주어지는 기쁨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 고백합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이런 성도로 성숙해 가는 날들이 우리의 성화의 여정이며 은혜로 주신 참 행복함으로 자족하며 할 수 있는 존재의 목적입니다.
▍결단 — 국수교회의 오늘과 내일
우리 국수교회에도 이 길을 걷는 성도님들이 많이 계심을 압니다. 강단에서 매주 애통해하며 가슴에 손을 얹으시는 목사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 소원과 기도를 읽습니다. 서로 사랑이 더욱 빛을 발하여 교회에 덕을 세우고 남의 유익을 위해 사는 자들이 더 많아져 날마다 구원얻는 자의 수가 많아지기를 간절히 구하는 애절함입니다. 이를 보는 우리 성도들은 그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서로 사랑으로 이웃사랑의 실천을 행하여 전도하며 구제하여 남의 유익을 위한 사랑실천에 더 달려가고 달려갈 것입니다.
또 우리 교회에는 받은 달란트대로 문화사역, 선교사역, 구제사역등으로 전도의 선한 열매를 맺혀 주님의 애통함을 기쁨으로 올려 드리고 흥왕되고 확장 될것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베이컨은 말했고, 체코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이며 교육자인 코메니우스는 인생을 학교라고 했습니다. 태아기부터 사망기에 이르기까지 시기마다 발달 과업이 있다고 했습니다. 코메니우스는 남녀노소 누구나 배울 권리가 있다고 했고, 그 교육의 가장 높은 자리에 하나님의 명령인 영생을 두었습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학교에서 주님의 멍에를 메고 배웁니다.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우리 국수교회 성도님들과 온 세상에 제자들을 통해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 교회의 미래는 밝고, 더 많은 제자화로 기쁨이 충만해질 것입니다.
▍맺는 말
오늘 말씀을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첫째, 새 피조물이 된 성도의 정체성은 주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둘째, 그 존재의 목적은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를 우리 삶에서 실현하는 것, 곧 두 계명을 지켜 이웃을 사랑하고 제자 삼는 것입니다. 셋째, 말씀에 순복하여 사는 의인의 여정에는 말씀이 힘이 되고 주님의 기쁨이 충만하게 임합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존재의 목적을 행하는 것이며, 그것이 곧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는 주의 경륜을 이루어 가는 섭리라고 했습니다.두계명의 사랑으로 주의 뜻이 이루어져 창2:1~3절의 예언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계21:1~5
마귀를 진멸한후 새하늘과 새 땅에서 한 분 신이신 주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며 안식에 이르게 되어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의 정체성과 존재의 목적으로 이루실 주의 경륜입니다.
어린 시절 소풍 가기 전날 밤의 설렘, 소풍 날의 기쁨과 감사를 기억하십니까?
성도의 여정은 그 소풍과 같습니다. 천 상병 시인의 「귀천」처럼, 이 세상 소풍을 마치는 날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고백할 수 있는 성도의 여정으로 주의 뜻이 흩어져 있는 세게의 각 교회와 성도가 된 우리를 통하여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날 주님이 세상의 여정이 어떠했느냐고 물으실 때, 그렇게 고백할 수 있다는 설렘이 오늘 우리의 여정을 이끕니다.
오늘 이 말씀이 “주님의 사랑으로 꽃피운 참 행복”의 여정으로 인도하는 은혜로 맺히셨으리라 믿습니다. 이것이 김일현 목사님의 목회 철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길은 기도와 말씀에 의한사랑입니다.
끝으의한국수교회의 모든 사역과 존경하는 목사님의 모든 사역을 응원 드립니다.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고, 전도하여 바르게 가르쳐 제자가 될 수 있도록 자랑스러운 국수교회와 섬기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더욱 행복합니다. 모이게 하는 서로 사랑은 흩어져 이웃 사랑의 실천을 위함임을 다시 한번 강조, 은혜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 사람의 본분 =전12:13, 마28:19-20, 소금과 빛의 직임.
⊙ 하나님의 뜻 = 레26:12, 딤전2:4, 겔33:11
⊙ 어떤 존재로 무엇을 위한 새 피조물인지 =고후5:15-21,
⊙ 거듭나게 하신 목적 =딛2:14
• ⊙ 기록목적, 딤후3:15-17
• ⊙ 주의 뜻: 딤전2:4 / 레26:12, 벧전2:21
• ⊙ 주종의 관계 성립: 마 11:29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
• ⊙ 다짐과 성령의 인도: 시119:105~106 / 시23:4
• ⊙ 두 계명의 섭리, 이웃 사랑으로 하나 롬13:8~10 / 갈5:14 / 약2:8
• ⊙ 존재의 목적: 마 6:10 (주기도문)/ 눅10:25-28 / 요14:15, 21, 24
• ⊙ 말씀이 힘이 되어 꽃피움: 빌4:11-13 / 롬8:35~39 /
• ⊙ 견고한 믿음: 롬1:17 / 합3:17-19 / 골1:24
• 보람, 행복, 기쁨 : 요15: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