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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원불사(源佛寺) 원문보기 글쓴이: 단현
단현 :
sati는 기억이 분명한데, 어떤 분은 '사띠는 철저하게 수행용어이기 때문에 기억이라고 번역하면 안된다. 그래서 수행에 맞는 번역을 해야 한다'면서 '마음지킴으로 해야 하지만 나는 마음챙김이라고 번역한다'고 주장하고, 또 어떤 분은 엄연한 'sampajañña 알아차림, satisampajañña 기억하고 알아차림'이라는 알아차림을 두고도 사띠를 알아차림이라고 이중 번역합니다.
이미 양식 있는 학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사띠는 기억이 분명하지만, 영어도 미얀마어도 못하는 어설픈 수행자들이 의욕만 가지고 미얀마나 태국 등으로 날아가, 부족한 시간 동안 교학의 기반 없이 44가지 사념처 수행 중 단지 2가지에 지나지 않는 호흡 경행 겨우 배워온 다음, '호흡 보고 경행 보는데 무슨 기억과 사유가 필요할까? 단지 쉼 없이 흔들리는 정신(mano 意)을 알아차림하거나 챙기는것이다'라고 착각하고, 영어번역도 사띠를 mindful-ness 마음챙김이라고 번역하지 않느냐면서, 사띠를 기억 아닌 알아차림이나 마음챙김이라고 단순한 수행용어로 번역한 이후, 이태것 엉뚱한 번역을 합리화하기 위해 굳이 '기억과 사유'라는 단어조차 '치달리는 생각'으로 번역하는 등으로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전재성 박사님은 사띠가 잊지 않고 새기는 기억이기 때문에 새김이라고 번역하셨다고 하십니다. 건널목에 선 원시인이나 시각장애인이 빨간불에 서야 하고 잘 살펴서 건너야 사고를 피할 수 있다는 예를 들면서, 4념처 수행으로 사띠를 강화하는 기능으로서의 번역어로 주의집중하고 기억 사유하는 뜻을 함께 표현하는데 가장 무난한 단어로 '새김'이라고 번역하신 것이라 하십니다.
기억, 새김 : 나와 대상의 과거나 현재 생활이나 배우고 익힌 것, 부처님의 경율 혹은 수행 등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 강아지를 훈련시키듯 선법을 학습하고 유지시켜 기억하고 사유(생각)를 계속계속 반복적으로 훈련하여, 사띠의 경향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히 굳어지게 하는 것이라는 뜻으로서의 새김.
단현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수행센터나 일상의 수행에서 주로 하는 호흡이나 경행수행에서 사띠의 일부분에 한정된 기능으로서의 알아차림이나 마음챙김이나 지킴을 사용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결코 알아차림이나 마음챙김 등으로 번역해서는 안되며 모든 경전과 글에서 사띠를 기억이나 새김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아래 글은 사띠 번역어에 대한 관심으로 초기불교를 시작한 후 2년이 가깝도록 니까야 속 사띠만 공부하셨다는 봄봄님의 글로서, 니까야에 나타나 있는 모든 사띠를 오직 기억으로 번역해야 할 뿐 알아차림이나 마음챙김 등으로 번역하는 것은 잘못된 번역이라는 것을 여실히 알게 하는 글입니다.
봄봄님은 이 글을 읽은 후 부족하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면 반론이나 지적해주면 대단히 고맙겠다고 합니다. 차제에 사띠의 바른 번역과 불교수행에서의 혼선을 막기 위해서 많은 선지식들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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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에 있는 글을 복사해서 카페에 올리면 글이 붙어버립니다. 그래서 아래 글은 제가 읽기 편하게 변형시킨 부분이 있습니다. 읽으실 분은 원문을 읽으면 더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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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띠sati의 올바른 번역어는 오직 [기억]이다
봄봄 김춘길 http://blog.naver.com/bom6690 2013.03.15
사띠가 뭐꼬?
'이 뭐꼬?'를 話頭로 든다고 합디다. 정확한 의미는 感잡지 못하지만 대략 당면한 (공부) 과제 또는 project쯤(*쯤=感=대략=니밋따)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저런 인연으로 최근 sati가 화두가 되었습니다. 기억에 해당되는 단어인가 하였는데 이런저런 풍문에 기억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기억의 의미가 아닌 어떤 의미가 남쪽에서 들려온 새로운 소식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띠가 뭔지 이 뭐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불교대학이라는 곳에서 배운 내용 중 막상 이 단어 해당될 만한 용어가 잘 보이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北方으로는 잘 전달되지 않고 전승되지 않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대단한 개념이 있었는가?하여 이리저리 자료를 찾다가 '이런 엉터리 내용이 논문이나 책으로도 나오는 구나!'하는 건방진 생각도 한편 들면서 고생하신 것이 눈에 띄는 훌륭한 번역이나 설명이 있어 나름 소화하여 가니 sati는 기억입디다.
그래서 사띠는 기억이라고 나름 정리하고 나니 다른 분들과는 소통이 되지 않고, 사띠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시는 분들의 강의나 글이 자꾸 거슬리기 시작하고, '선입견은 무섭구나.' 하면서도 나도 잘못된 고집을 피우는 것이 아닌지 하는 외로운 느낌마저 들더라구요.
그런데 막상 다른 분들에게 '사띠는 기억이다.'라고 설명할려니 그 과정이 만만찮더군요. 그래서 논문 쓰신 분들과 책을 출간하신 분들이 다시금 존경스러워 지면서 그분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구요. 저도 공부하여 나아간 과정을 다른 분들과 공유하고 제가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이 있으면 법보시 받고자 이렇게 정리하였습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설명이 잘 되지 않네요.
지금부터 언급되는 sati 사띠 念에 해당되는 단어에 1.마음 챙김 2.마음 지킴(보호) 3.알아차림 4.새김 5.수동적 주의 집중 6.주의를 기우림 7.인식 8.기억(회상, 상기, 억념) 등 지금까지 이해하고 알고 있는 번역어를 직접 대입하고 대체하여 해석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의 의견은 최소화하고 가능한 많은 경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I.공부 방법 모색
사전은 많은 정보를 제공합니다. 너무 많아서 질리기도 하지만 만일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자 하신다면 사전은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제가 자주 도움을 받는 佛門網의 佛學辭典에서는 sati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자료 차원에서 올린 것이니 지금은 그냥 그런가 하고 넘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Sati (f.) [Vedic smṛti: see etym. under sarati2] memory, recognition, consciousness, D i.180; ii.292; Miln 77 -- 80; intentness of mind, wakefulness of mind, mindfulness, alertness, lucidity of mind, self -- possession, conscience, self -- consciousness D i.19; iii.31, 49, 213, 230, 270 sq.; A i.95; Dhs 14; Nd1 7; Tikp 61; VbhA 91; DhsA 121; Miln 37; upaṭṭhitā sati presence of mind D iii.252, 282, 287; S ii.231; A ii.6, 218; iii.199; iv.232; It 120; parimukhaŋ satiŋ upaṭṭhāpetuŋ to surround oneself with watchfulness of mind M iii.89; Vin i.24, satiŋ paccupaṭṭhāpetuŋ to preserve self -- possession J i.112; iv.215; kāyagatā sati intentness of mind on the body, realization of the impermanency of all things M iii.89; A i.43; S i.188; Miln 248; 336; muṭṭhasati forgetful, careless D iii.252, 282; maraṇasati mindfulness as to death A iv.317 sq.; J iv.216; SnA 54; PvA 61, 66. asati not thinking of, forgetfulness DhsA 241; instr. asatiyā through forgetfulness, without thinking of it, not intentionally Vin ii.2892. sati (sammā˚) is one of the constituents of the 8 -- fold Ariyan Path (e g. A iii.141 sq.; VbhA 120): see magga 2. -- âdhipateyya (sat˚) dominant mindfulness A ii.243 sq.; It 40. -- indriya the sense, faculty, of mindfulness A ii.149; Dhs 14. -- uppāda arising, production of recollection J i.98; A ii.185; M i.124. -- ullapakāyika, a class of devas S i.16 sq. -- paṭṭhāna [BSk. smṛty'upasthāna Divy 126, 182, 208] intent contemplation and mindfulness, earnest thought, application of mindfulness; there are four satipaṭṭhānas, referring to the body, the sensations, the mind, and phenomena respectively, D ii.83, 290 sq.; iii.101 sq., 127, 221; M i.56, 339; ii.11 etc.; A ii.218; iii.12; iv.125 sq., 457 sq.; v.175; S iii.96, 153; v.9, 166; Dhs 358; Kvu 155 (cp. Kvu. trsln 104 sq.); Nd1 14, 45, 325, 340; Vism 3; VbhA 57, 214 sq., 417. -- See on term e. g. Cpd. 179; and in greater detail Dial. ii.322 sq. -- vinaya disciplinary proceeding under appeal to the accused monk's own conscience Vin i.325; ii.79 etc.; M ii.247; A i.99. -- vepullappatta having attained a clear conscience Vin ii.79. -- saŋvara restraint in mindfulness Vism 7; DhsA 351; SnA 8. -- sampajañña mindfulness and self -- possession D i.70; A ii.210; DA i.183 sq. -- sambojjhanga (e. g. S v.90) see (sam)bojjhanga. -- sammosa loss of mindfulness or memory, lack of concentration or attention D i.19; Vin ii.114; DA i.113; Pug 32; Vism 63; Miln 266.
대략 눈에 띄는 의미는 기억, 인식, 알아봄, 의식, 명료, 념두 쯤 되는 의미인듯 하나 이것으로는 의미를 파악하기 곤란한 듯 합니다. 부정어(asati, -- sammosa, muṭṭhasati)를 통하여 역으로 의미를 추정해 보면 중심되는 의미는 기억인듯 합니다만 팔리어를 英譯한 것을 다시 韓譯함에 한계가 있습니다.
경에서 직접 그 용례를 찾아 봐야겠습니다.
그전에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발간된 존경하는 퇴현 전재성 선생님의『빠알리-한글 사전』에는
sati ① f.[sk. smṛti < sarati ②] 기억. 새김. 챙김. 주시. 주의를 기우림. 인식. 염(念). 억념(憶念). -asamuṭṭha 명료한 새김. -ākāra 새김의 형태. -âdhipateyya 주요한 새김. 새김의 영향. -indriya 새김의 능력. 염근(念根). -uppāda 새김의 발생. -ullapakāyika 신(神)의 한 부류. -cariyā 새김의 실천. 염행(念行). -paṭṭhāna 새김에 머무는 것. 염처(念處). 염주(念住). -vinaya 기억의 진술에 의존해서 범인이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판별하는 방법. 억념비니(憶念毘尼). -vepulla 새김의 광대함. 상세한 새김. 분명한 새김. 분명한 새김. -vepullappatta 분명한 새김을 얻은. -saṃvara<*saŋvara> 새김에 의한 제어. 염율의(染<*念>律儀). -sampajañña 새김과 알아차림. -sambojjhaṅga 새김의 깨달음 고리. 염등각지(染等覺支).<*念覺支> -sammosa. -sammoha 기억의 상실. 새김의 상실. 집중의 결여. 염망실(念亡失) 망념(妄念). ② [sant의 sg. loc] 있으므로. 존재하는 때에. imasmiṃ sati idaṃ hoti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빼끼는 것도 어렵군요. 그대로 빼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안경을 몇번이나 쓰고 벗었는지 저에게는 글자가 너무 작아요. 이런 사전을 쓰신 선생님은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최근 전재성 선생님의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빠알리어-한국어, 한국어-빠알리어사전]이 새로 출간되었을 겁니다. 공부하는 우리 불자님들 韓譯 니까야 초기경전과 빠알리어 사전을 집에 소장하시길 권유합니다. 최고의 자산 입니다.
내용중에 染은 <*念>인 것 같구요. 참고로 *표시는 저의 의견입니다. m밑에 점 있는 글자ṃ와 m위에 점 있는 글자와 ŋ이 글자는 같은 글자인것 같습니다. imasmiṃ sati idaṃ hoti는 此有故彼有 할때의 그 표현입니다.
sati의 의미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韓譯에서는 기억, 인식, 챙김 혹은 새김 漢譯에서는 念 혹은 憶念, 英譯에서는 memory, recognition, mindful-ness가 눈에 띱니다.
네이버에서 기억을 찾아보니
1.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기억에 오래 남다 기억을 불러일으키다 예전의 기억이 희미하다 2. <심리>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3. <컴퓨터> 계산에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시간만큼 수용하여 두는 기능.
**기억은 정보의 입력 저장 출력
참고로 sati(sarati)라는 단어에서 모양은 같으나 뜻이 다른 것이 있습니다.
1. 기억 √smṛ 2. 흐름 √sṛ 3. 있음 √as
또한 글자 모양은 다른데 그 √어근은 같은 것이 있습니다. 격,태,수,..등등 문법적으로.. 다시 퇴현 선생님의 사전을 빼껴보겠습니다. 개정증보판 1013쪽
sar3 [sk. smṛ] 기억하다
갈색으로 표시된 몇 단어 외에 대부분 sar- 혹은 sār-가 포함된 단어는 √smṛ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 빠진 것이 있습니다.
그외에도 많지만 알지도 못하고 여기서 다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최근에 빠알리 문법을 무상보시하는 곳을 보았습니다. [봉선사 산스크리트 편집실 http://cafe.daum.net/sanskritsil] 같이 공부합시다.
어째든 經에서 sar- 혹은 sār-을 몽땅 찾으면 됩니다. 그리고 그 부분을 살펴 보면 됩니다. 어떻게? 얼마나 많은 양을?
찾는 방법은 인터넷 상에서 간단합니다. http://www.bodhgayanews.net/pali.htm 여기에 sar를 쳐 넣으면 이렇게 나옵니다.
[Search term 'sar' found in 5704 pages in all documents]
무슨 의미인지 이해되십니까? 직접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방법은 왠지 아닌 것 같습니다. 방법을 다시 찾아봐야 겠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기는 섭섭하니 아무거나 어...어.. 그래! 1411번 클릭하니 이렇게..
[1411: Pali Canon: sutta pitaka, anguttara nikaya, book 2, record 5834o sahadhammikā vādānupātā gārayhā ṭhānā āgacchanti. Katame cattāro? Anabhijjhañce bhavaṃ dhammapadaṃ garahati, paṭikkosati. Ye ca hi abhijjhālū kāmesu tibbasarāgā samaṇabrāhmaṇā, te bhoto pujjā. Te bhoto pāsaṃsā. Abyāpādañce bhavaṃ dhammapadaṃ garahati, paṭikkosati. Ye ca hi byāpannacittā paduṭṭhama More
1412: Pali Canon: sutta pitaka, anguttara nikaya, book 2, record 5838ssuto hoti tassa tasseva sutajātassa. Tassa tasseva kho pana bhāsitassa atthaṃ jānāti 'ayaṃ imassa bhāsitassa attho, ayaṃ imassa bhāsitassa attho'ti. Satimā kho pana hoti cirakatampi cirabhāsitampi saritā anussaritā. Yāni kho pana tāni gahaṭṭhakāni kiṅkaraṇīyāni, tattha dakkho hoti, analaso tatrūpāyavīmaṃsāya samannāgato alaṃ kātuṃ alaṃ sa More
1413: Pali Canon: sutta pitaka, anguttara nikaya, book 2, record 58437;ni tāni, puthusamaṇabrāhmaṇānaṃ puthupaccekasaccāni seyyathīdaṃ: sassato lokoti vā asassato lokoti vā antavā lokoti vā anantavā lokoti vā taṃ jīvaṃ taṃ sarīranti vā aññaṃ jīvaṃ aññaṃ sarīranti vā hoti tathāgato parammaraṇāti vā na hoti tathāgato parammaraṇāti vā hoti ca na hoti ca tathāgato paramm More]
10개 단위로 나타나는데 저는 위에서 3개만 나타냈습니다. 1412번 record 5838에 보니 sar-라는 단어가 많이 보입니다.
More을 크릭하니 아래와 같이 창이 뜹니다.
Previous Next Pali Canon: sutta pitaka, anguttara nikaya, book: 2, database record: 5838. [BJT Page 072] [x 72/]
4. 1. 4. 5
(Vassakārasuttaṃ)
35. Ekaṃ samayaṃ bhagavā rājagahe viharati veḷuvane kalandakanivāpe. Atha kho vassakāro brāhmaṇo magadhamahāmat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ṃ sammodi.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ā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Ekamantaṃ nisinno kho vassakāro brāhmaṇo magadhamahāmatto bhagavantaṃ etadavoca:
Catūhi kho mayaṃ bho gotama dhammehi samannāgataṃ mahāpaññaṃ mahāpurisaṃ paññapema. Katamehi catūhi?
Idha bho gotama bahussuto hoti tassa tasseva sutajātassa. Tassa tasseva kho pana bhāsitassa tthaṃ jānāti 'ayaṃ imassa bhāsitassa attho, ayaṃ imassa bhāsitassa attho'ti. Satimā kho pana hoti cirakatampi cirabhāsitampi saritā anussaritā.
그런데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다. 팔리어를 해독할 수만 있다면 문제가 없는데, 모르니.. 그러면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퇴현 선생님께서 이미 4부 니까야(디가, 맛지마, 앙굿따라, 상윳따)를 한글로 출간했으며 초기불전연구원 또한 번역하셨습니다.
영어가 능숙하시면 http://www.greatwesternvehicle.org/pali/tipitakaindex.html 또는 http://www.metta.lk/tipitaka/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하든지 이 내용은 어느 경에 어느 위치에 있는지 찾아야 되는데, 그 방법은 상단의 Previous를 몇번 크릭하거나 본 경처럼 상단에 있는 경명과 경번호로 찾을 수 있습니다.
본 경은 앙굿따라 니꺄야 제2권 넷의 모음에서 네 번째 장 다섯 번째 경인듯 합니다. 즉 A4:35.
네, 그렇습니다. 저는 대림 스님이 역경하신 앙굿따라 니까야 제2권 123쪽-에서 본 경을 찾았습니다. 그 내용을 또 다시 그대로 빼껴 보겠습니다. 그렇게 寫經한 것과 팔리어를 제공하고 있는 또 다른 http://www.tipitaka.org/romn/을 습관적으로 찾아가서, 경을 모셔와서 아래와 같이 정리합니다.
왓사까라 경(A4:35) Vassakāra-sutta 5. Vassakārasuttaṃ
35. Ekaṃ samayaṃ bhagavā rājagahe viharati veḷuvane kalandakanivāpe. 1.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대나무 숲의 다람쥐 보호 구역에 머무셨다.
Atha kho vassakāro brāhmaṇo magadhamahāmat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ṃ sammodi. 그때 마가다의 대신인 왓사까라 바라문은 세존께 다가왔다. 세존께 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Ekamantaṃ nisinno kho vassakāro brāhmaṇo magadhamahāmatto bhagavantaṃ etadavoca – 유쾌하고도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왓사까라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Catūhi kho mayaṃ, bho gotama, dhammehi samannāgataṃ mahāpaññaṃ mahāpurisaṃ paññāpema. Katamehi catūhi? "고따마 존자시여, 네 가지 법을 구족한 자를 일러 우리는 위대한 통찰지를 가진 자라고 하고 위대한 사람[大人]이라고 천명합니다. 무엇이 넷인가요?"
Idha, bho gotama, bahussuto hoti tassa tasseva sutajātassa tassa tasseva kho pana bhāsitassa atthaṃ jānāti – ‘ayaṃ imassa bhāsitassa attho, ayaṃ imassa bhāsitassa attho’ti. 2. "고따마 존자여, 여기 그는 많이 배운 자여서 듣는 족족 그 말한 것의 뜻을 압니다. '이것은 이 말의 뜻이고 저것은 저 말의 뜻이다.'라고.
Satimā kho pana hoti cirakatampi cirabhāsitampi saritā anussaritā 그는 마음챙기는 자입니다. 그는 최상의 마음챙김과 슬기로움을 구족하여 오래 전에 행하고 오래전에 말한 것일지라도 모두 기억하고 챙깁니다.
yāni kho pana tāni gahaṭṭhakāni kiṃkaraṇīyāni, tattha dakkho hoti analaso, tatrupāyāya vīmaṃsāya samannāgato alaṃ kātuṃ alaṃ saṃvidhātuṃ. 그는 재가의 삶을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여러가지 소임들을 열심히 하는 자입니다. 그는 거기서 숙련되고 게으르지 않으며 그러한 검증을 구족하여 충분히 실행하고 충분히 준비하는 자입니다.
이제 하나 찾은 듯하네요. 앞의 표 중간쯤에 grd. 항에 나오는 것과 같은 글자인 sāraṇīyaṃ를 대림스님은 '기억할 만한'으로 번역하셨고, Satimā는 '마음챙기는 자'로, saritā anussaritā는 '기억하고 챙깁니다'로 번역 하셨네요.
[*蛇足: 그는 최상의 마음챙김과 슬기로움을 구족하여 paramena satinepakkena samannāgato는 다른 경에서는 거의 정형적으로 나타나지만 본 경 원문에는 없는 듯 합니다.
이런 것도 원문과 함께 번역된 경문을 보면 확인 할 수 있는 점입니다. 참고로 이 표현은 아주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분석 경2(S48:10)에서 사띠의 기능을 이와 같이 정의 합니다.
‘‘Katamañca, bhikkhave, satindriyaṃ? Idha, bhikkhave, ariyasāvako satimā hoti paramena satinepakkena samannāgato, cirakatampi cirabhāsitampi saritā anussaritā.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sati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sati하는 자이다. 그는 최상의 sati와 슬기로움을 구족하여 오래 전에 행하고 오래 전에 말한 것이라도 기억하고 상기해낸다.
이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sati에 해당하는 번역어는 기억 혹은 마음챙김인듯 하며, 초기불전 연구원에서는 기억과 마음챙김을 같은 의미로 쓴듯한데, 각묵스님은 주석에서 사띠를 기억이라고 번역해서는 안된다고 강변합니다.
[사띠는 철저하게 수행용어이기 때문에 기억이라고 번역하면 안된다. 그래서 수행에 맞는 번역을 해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번역을 할 것인가. 그래서 ‘운나바 바라문경’에서는 사띠는 우리 마음을 해탈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했죠. 그렇게 문답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해탈과 열반으로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마음을 챙기는 역할을 한다. 혹은 마음이 대상을 챙겨서 해탈 열반으로 지향한다. 이래 되기 때문에 마음챙김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북방에서 안세고 스님은 아나빠나사띠숫따를 안반수의경이라고 옮겼습니다. 아나빠나는 들숨날숨인데 ‘안반’으로 옮기고 사띠를 ‘수의(守意)’로 옮겼습니다. 사띠를 ‘마음을 지키는 것’으로 이해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지킴으로 해야하나 마음챙김으로 옮겼습니다.
이렇게 옛날 스님들 번역과 경전적 근거가 충분히 있기 때문에 사띠를 마음챙김으로 옮긴 것입니다.
(각묵스님, 초기불교이해 강의 음성파일 30:, 제18장 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사념처) (하))]
내용을 읽어 보면 지금까지의 추측이 번역하신 분의 의도와는 다른 것 같기도 하나
계경(戒經 S46.3) 3. Sīlasuttaṃ
‘‘Yasmiṃ samaye, bhikkhave, bhikkhu tathā vūpakaṭṭho viharanto taṃ dhammaṃ anussarati anuvitakketi, satisambojjhaṅgo tasmiṃ samaye bhikkhuno āraddho hoti; satisambojjhaṅgaṃ tasmiṃ samaye bhikkhu bhāveti; satisambojjhaṅgo tasmiṃ samaye bhikkhuno bhāvanāpāripūriṃ gacchati. So tathā sato viharanto taṃ dhammaṃ paññāya pavicinati pavicarati parivīmaṃsamāpajjati. 비구들이여, 비구가 이처럼 멀리 떠남을 갖추어 머물면서 그 법을 계속해서 생각[*기억]하고 계속해서 고찰[*想起/尋]하면 비구에게는 sati의 깨달음의 구성요소[염각지(念覺支)]가 자리잡기 시작한다.[*반복학습→기억] 그래서 비구는 sati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꾸준히] 닦는다. 그러면 비구의 sati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는 이러한 닦음을 통해서 성취된다. 그는 이처럼 sati하여 머물면서 법을 paññā로.. 조사하고 고찰[*伺]하고 철저하게 검증한다. … "
각묵스님 譯 상윳따 니까야 제5권 p300 하단 註.
183)여기서 보듯이 마음챙김(sati)은 들은 법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dhammaṃ anussarati)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설해지고 있다. '계속해서 생각함(anusaraṇa)'은 마음챙김과 같은 어근인 √smṛ(to remember)에다 접두어'anu-'가 붙은 것이다. 물론 마음챙김(sati)은 초기 불전 도처에서 현재를 알아채는 전문적인 의미가 더 강한 것이 분명하지만 본서 "분석 경"1(S48:9) $6의 마음챙김의 기능[念根]의 정의에서 보듯이 마음챙김에는 이러한 기억의 의미가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남방 상좌부 부동의 준거라고 하는 淸淨道論
Visuddhimagga 붓다고사 스님 지음 초기불전연구원 대림 스님 譯 청정도론1. 409쪽에는 이와 같이 설명한다.
제3선의 정형구 [*가운데 sato ca sampajāno]
Ettāvatā ca panesa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ati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ṃvedeti, yaṃ taṃ ariyā ācikkhanti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īti (dī. ni. 1.230; dha. sa. 163).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문다.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 [禪 때문에]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라고 성자들이 묘사하는 제3선에 들어 머문다.
85. Idāni sato ca sampajānoti ettha saratīti sato. Sampajānātīti sampajāno. Puggalena sati ca sampajaññañca vuttaṃ. Tattha saraṇalakkhaṇā sati, asammussanarasā, ārakkhapaccupaṭṭhānā. Asammohalakkhaṇaṃ sampajaññaṃ, tīraṇarasaṃ, pavicayapaccupaṭṭhānaṃ. 172.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기억하기 때문에 마음챙기는 자고, 알아차리기 때문에 알아차리는 자다. 여기서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이 사람에 속하는 것으로 설해졌다. 마음챙김은 기억하는 특징을 가진다. 잊어버리지 않는 역할을 한다. 보호함으로 나타난다. 알아차림은 미혹하지 않는 특징을 가진다. 조사하는 역할을 한다. 탐구함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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쫌 헤갈리네예. 과연 그런지 계속 조사해 보겠습니만 앞서 이 방법은 왠지 아닌 것 같다고 한 이유는 단어 길이가 어느 정도 길면 예를 들어 니밋따(nimitta)정도의 단어만 해도 626개 정도의 자료가 나옵니다. 그러면 그 중에서 4부 니까야에서 관련된 경문을 찾으면 효율적으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글 초반부에 그 의미를 암시해 두었습니다. 흔히 설명하듯 '아나파나 사띠(호흡에 대한 마음집중)의 니밋따는 개인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어떤 사람에게는 목화 솜 또는 솜으로부터 뽑은 실 뭉치, 움직이는 바람 또는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 새벽별 금성처럼...'의 의미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sar-는 사띠의 의미가 아닌 다른 단어가 많아 상당히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 단어를 염두에 두고 한글로 번역된 경을 원문과 함께 읽으면서 사띠의 의미를 찾아 가는 것이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취지에도 맞을 것 같습니다.
II. 경에서 sati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사띠에 대한 직접적인 정의는 경에서 아직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앞서 소개한 분석 경2(S48:10)에서 사띠의 기능으로 나타납니다.
즉 '오래 전에 행하고 오래 전에 말한 것이라도 기억하고 상기해낸다.'라고 과거에 한 것을 기억해 내는 것을 사띠의 기능이라고 하십니다.
이 경문만이 아니고 saritā anussaritā이나, cirakatampi cirabhāsitampi를 검색하면 최소 10곳 이상에서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부지음의 이익 경(A4:243)에서
‘‘Kathañca, bhikkhave, satādhipateyyaṃ hoti?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마음챙김의 통달인가?
‘Iti aparipūraṃ vā ābhisamācārikaṃ sikkhaṃ paripūressāmi, paripūraṃ vā ābhisamācārikaṃ sikkhaṃ tattha tattha paññāya anuggahessāmī’ti – ajjhattaṃyeva sati sūpaṭṭhitā hoti. ‘Iti aparipūraṃ vā ādibrahmacariyikaṃ sikkhaṃ paripūressāmi, paripūraṃ vā ādibrahmacariyikaṃ sikkhaṃ tattha tattha paññāya anuggahessāmī’ti – ajjhattaṃyeva sati sūpaṭṭhitā hoti. ‘Iti asamavekkhitaṃ vā dhammaṃ paññāya samavekkhissāmi, samavekkhitaṃ vā dhammaṃ tattha tattha paññāya anuggahessāmī’ti – ajjhattaṃyeva sati sūpaṭṭhitā hoti. ‘Iti aphusitaṃ vā dhammaṃ vimuttiyā phusissāmi, phusitaṃ vā dhammaṃ tattha tattha paññāya anuggahessāmī’ti – ajjhattaṃyeva sati sūpaṭṭhitā hoti. Evaṃ kho, bhikkhave, satādhipateyyaṃ hoti. '아직 성취되지 않은 선행에 관한 공부지음을 성취하리라. 이미 성취된 선행에 관한 공부지음을 모든 곳에서 통찰지로써 증장하리라.'라고 안으로 마음챙김이 잘 확립된다. '아직 성취되지 않은 청정범행의 시작에 관한 공부지음을 완성하리라. 이미 성취된 청정범행의 시작에 관한 공부지음을 모든 곳에서 통찰지로써 증장하리라.'라고 안으로 마음챙김이 잘 확립된다. '아직 바르게 검증하지 못한 법을 통찰지로써 잘 검증하리라. 이미 바르게 검증한 법을 모든 곳에서 통찰지로써 증장하리라.'라고 안으로 마음챙김이 잘 확립된다. '아직 체득하지 못한 법을 해탈로써 체득하리라. 이미 체득한 법을 모든 곳에서 통찰지로써 증장하리라.'라고 안으로 마음챙김이 잘 확립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마음챙김의 통달이 있다.
‘Sikkhānisaṃsamidaṃ, bhikkhave, brahmacariyaṃ vussati paññuttaraṃ vimuttisāraṃ satādhipateyya’nti, iti yaṃ taṃ vuttaṃ idametaṃ paṭicca vutta’’nti. '비구들이여, 공부지음의 이익, 더 높은 통찰지, 해탈의 정수, 마음챙김의 통달을 위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 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것을 반연하여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satādhipateyya라는 단어는 앞서 사전에서 dominant mindfulness, 주요한 새김. 새김의 영향.으로 소개된 단어인데 이 단어의 뜻을 초불에서는 통달로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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ādhipateyya : [nt.] lordship; domination; power. 이 단어(ādhipateyya, 혹은 -dhipateyy-)를 검색해보면 4부 니까야에 많이 쓰이고 있지는 않습니다.
1: Pali Canon: sutta pitaka, digha nikaya, book 3, record 285799;moneyyaṃ, manomoneyyaṃ. Tīṇi kosallāni: āyakosallaṃ apāyakosallaṃ upāyakosallaṃ. Tayo madā: ārogyamado yebbanamado jīvitamado. Tīṇi ādhipateyyāni: attādhipateyyaṃ, lokādhipateyyaṃ, dhammādhipateyyaṃ. Tīṇi kathāvatthūni: atītaṃ vā addhānaṃ ārabbha kathaṃ katheyya, evaṃ ahosi atītamaddhānanti, an& More
2: Pali Canon: sutta pitaka , anguttara nikaya, book 1, record 5659[BJT Page 268] [x 268/] 3. 1. 4. 10 Tīṇi'māni bhikkhave ādhipateyyāni. Katamāni tīṇi: attādhipateyyaṃ, lokādhipateyyaṃ, dhammādhipateyyaṃ. Katamaṃ ca bhikkhave attādhipateyyaṃ: idha bhikkhave bhikkhu araññagato vā rukkhamūlagato vā suññāgāragato vā iti paṭisañcikkhati: ' na kho panā'haṃ cīvarahetu agārasmā anagāri More
3: Pali Canon: sutta pitaka , anguttara nikaya, book 1, record 5660[BJT Page 270] [x 270/] Katamañca bhikkhave dhammādhipateyyaṃ: idha bhikkhave bhikkhu araññagato vā rukkhamūlagato vā suññāgāragato vā iti paṭisaṃcikkhati: ' na kho panā'haṃ cīvarahetu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na piṇḍapātahetu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na senāsanahetu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na itibhavā More
4: Pali Canon: sutta pitaka, anguttara nikaya, book 1, record 5802=jarāmaraṇena + 1. Jarāya maraṇena [ChS]= [PTS] = [Thai] = [Kambodian] = 182 [BJTS] = opanayiko + 2. Opaneyyako- machasaṃ [ChS]= [PTS] = [Thai] = [Kambodian] = 183 [BJTS] = attādhipako + 3. Attādhipateyyako ca - machasaṃ [ChS]= [PTS] = [Thai] = [Kambodian] = 184 [BJTS] = Sa + 4. So. [ChS]= [PTS] = [Thai] = [Kambodian] = 185 [BJTS] = + *. Tassuddānaṃ. Brahma ānanda sāriputto - nidā More
5: Pali Canon: sutta pitaka , anguttara nikaya, book 2, record 6036[BJT Page 468] [x 468/] 4. 5. 5. 3. (Sikkhānisaṃsasuttaṃ) 45. Sikkhānisaṃsamidaṃ bhikkhave brahmacariyaṃ vussati paññuttaraṃ vimuttisāraṃ satādhipateyyaṃ. Kathañca bhikkhave sikkhānisaṃsaṃ hoti? Idha bhikkhave mayā sāvakānaṃ ābhisamācārikā sikkhā paññattā appasannānaṃ pasādāya, pasannānaṃ bhiyyobhā More
6: Pali Canon: sutta pitaka , anguttara nikaya, book 2, record 6037[BJT Page 470] [x 470/] Sikkhānisaṃsamidaṃ bhikkhave brahmacariyaṃ vussati paññuttaraṃ vimuttisāraṃ satādhipateyyanti iti yantaṃ vuttaṃ, idametaṃ paṭicca vuttanti. 4. 5. 5. 4. (Seyyāsuttaṃ) 46. Catasso imā bhikkhave seyyā. Katamā catasso? Petaseyyā, kāmabhogīseyyā, sīhaseyyā, tathāgataseyyā. Katamā ca bhikkhave petaseyyā? Yebhuyyena bh More
7: Pali Canon: sutta pitaka, anguttara nikaya, book 4, record 6465naṃ datvā kāyassa bhedā parammaraṇā cātummahārājikānaṃ devānaṃ sahavyataṃ upapajjati. So taṃ kammaṃ khepetvā taṃ iddhiṃ taṃ yasaṃ taṃ ādhipateyyaṃ2 āgāmī hoti āgantā itthattaṃ. (2) Idha pana sāriputta, ekacco na heva kho sāpekho dānaṃ deti, na paṭibaddhacitto dānaṃ deti, na sannidhipekho dānaṃ More
8: Pali Canon: sutta pitaka, anguttara nikaya, book 4, record 6466257; kāyassa bhedā parammaraṇā brahmakāyikānaṃ devānaṃ sahavyataṃ upapajjati. So taṃ [PTS Page 063] [q 63/] kammaṃ khepetvā taṃ iddhiṃ taṃ yasaṃ taṃ ādhipateyyaṃ anāgāmī hoti anāgantā itthattaṃ. Ayaṃ kho sāriputta hetu ayaṃ paccayo, yena midhekaccassa tādisaṃyeva dānaṃ dinnaṃ na mahapphalaṃ hoti, na mah More
1번과 2,3번은 같은 내용으로 보입니다. 4번은 제외하고 5,6번은 본 경입니다. 나머지 7,8도 같은 경입니다.
즉 본 경을 제외하면 2,3번 경과 7,8번 경만 검토해 보겠습니다. 같은 단어를 통달, 지배, 우선함, 권위(S55:30).등으로 다르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앞뒤 문맥으로 이해하면 대략 [adhipati: lead] 이끌어 나간다./끌고 간다./(전부는 아니지만 主要因으로서) 상당한 위력을 발휘한다 쯤 되는 의미인듯 합니다.
그러면 본 경으로 다시 돌아와 경에서 말씀하시는 의미는
....를 증장하리라.'라고 안으로 마음챙김이 잘 확립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마음챙김의 통달이 있다라고
'...을 하리라.'라고 수행주제에 대해 sati가 잘 확립되어 있음 = sati가 (앞으로...할 것을) 잘 이끌어 감. =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고서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이후 다시 언급 됨) 본경에서는 sati는 미래에 할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종합하면
사밋디 경 (A9:14)
‘‘Te pana, samiddhi, kiṃpamukhā’’ti? ‘‘Samādhippamukhā, bhante’’ti. "사밋디여, 그러면 느낌은 무엇을 으뜸으로 하는가?" "존자시여, 삼매를 으뜸으로 합니다." ‘‘Te pana, samiddhi, kiṃadhipateyyā’’ti? ‘‘Satādhipateyyā, bhante’’ti. "사밋디여, 그러면 삼매는 무엇의 지배를 받는가?" "존자시여, sati의 지배를 받습니다." ‘‘Te pana, samiddhi, kiṃuttarā’’ti? ‘‘Paññuttarā, bhante’’ti. "사밋디여, 그러면 sati는 무엇을 최상으로 하는가?" "존자시여, 통찰지를 최상으로 합니다."
우선함 경(A3:40) 10. Ādhipateyyasuttaṃ
40. ‘‘Tīṇimāni, bhikkhave, ādhipateyyāni. Katamāni tīṇi? Attādhipateyyaṃ, lokādhipateyyaṃ, dhammādhipateyyaṃ. 비구들이여, 세 가지 우선하는 것이 있다. 무엇이 셋 인가? 자기를 우선하는 것, 세상을 우선하는 것, 법을 우선하는 것이다.
[*1.자신이 이끌어 감:自燈明 2.다른 존재들/세상 보기 부끄럽다.:他燈明 3.가르침이 이끌어 줌:法燈明]
So iti paṭisañcikkhati – ‘āraddhaṃ kho pana me vīriyaṃ bhavissati asallīnaṃ,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passaddho kāyo asāraddho, samāhitaṃ cittaṃ ekagga’nti. So dhammaṃyeva adhipatiṃ karitvā akusalaṃ pajahati, kusalaṃ bhāveti, sāvajjaṃ pajahati, anavajjaṃ bhāveti, suddhaṃ attānaṃ pariharati. Idaṃ vuccati, bhikkhave, dhammādhipateyyaṃ. 그는 [다시] 이렇게 숙고한다.- 나에게 불굴의 정진이 생기고, 마음챙김은 확립되어 잊어버림이 없고, 내 몸은 편안하여 동요가 없고, 마음이 집중되어 하나가 될 것이다. 그는 법을 우선시 하고 해로운 법[不善法]을 버리고 유익한 법[善法]을 개발하고, 비난받을 만한 일을 버리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것을 개발하고, 자신을 청정하게 유지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두고 법을 우선하는 것이라 한다.
뿌리 경(A10:58)
satādhipateyyā sabbe dhammā (마노의 대상인) 모든 법은 sati가 지배한다/lead한다/위력을 발한다.
운나바 바라문 경(S48:42)
다섯 가지 감각기능은 마노[의(意)]를 의지한다. 마노[의(意)]가 그들의 대상[5境]과 영역을 경험한다.
‘‘Manassa pana, bho gotama, kiṃ paṭisaraṇa’’nti? ‘‘Manassa kho, brāhmaṇa, sati paṭisaraṇa’’nti. 5.“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마노[의(意)]는 무엇을 의지합니까?” “바라문이여, 마노[의(意)]는 sati[념(念)]를 의지한다.” ...sati[념(念)]는 해탈을 의지한다. ...해탈은 열반을 의지한다.”
법구경(담마빠다) Dhammapadapāḷi
1. Manopubbaṅgamā dhammā, manoseṭṭhā manomayā; Manasā ce paduṭṭhena, bhāsati vā karoti vā; Tato naṃ dukkhamanveti, cakkaṃva vahato padaṃ. 마노(意)가 앞장서서, 마노가 으뜸되어/주인 노릇하여, 마노가 만든다. 法을 <*마노가 주인 되어 다양한 법 만든다. : 一切唯意造> 마노가 (事理에) 맞지 않게 말하고 행동하면 그것은 苦를 끌고 가는 것, 수레가 바퀴를 데굴데굴 굴려 가듯
**위 세 경을 종합하면 (안팎을) 어떻게 기억sati(했고 어떤 방향으로 lead/하느냐)에 따라서 分枝 즉 一切唯意造나 一切唯心造가 아니라 一切唯念造 ??
그러면 '마노[의(意)]는 sati[념(念)]를 의지한다.'는 해석되는데 'sati[념(念)]는 해탈을 의지한다.'라는 의미는 잘못된 기억은 자기모순에 빠지고 괴로움이고 해탈.열반을 의지하는 방향은 정보(기억)의 충돌이 발생하지 않음-사실이므로- 기억으로 확립되고 정념이라는 의미?
그렇다면 sati는 망념과 정념이 나누어지는 그리고 윤회와 출세간의 分枝 接點 <藏識/유분식(bhavaṅga)/아뢰아식/여래장>으로 확장된 것이 이 근처가 아닌가 하여 기록으로 남겨둡니다.**
앞서 소개된 우선함 경(A3:40)에 나타나는 정형구에서 눈여겨 볼 점이 있습니다.
‘āraddhaṃ kho pana me vīriyaṃ bhavissati asallīnaṃ,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passaddho kāyo asāraddho, samāhitaṃ cittaṃ ekagga’nti. 나에게 불굴의 정진이 생기고, 마음챙김은 확립되어 잊어버림이 없고, 내 몸은 편안하여 동요가 없고, 마음이 집중되어 하나가 될 것이다.
시작된 정진은 → 물러남이 없고, 확립된 기억은 → 잊어버림이 없고, 輕安한 몸은 → 동요가 없고 삼매에 든 마음은 → 그대로(同一) 유지<一行>되고, 안定되어 흔들림이 없음.
먼저 기억은 확립되어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띠의 반대개념의 부정어 즉 2중 부정어인 asammuṭṭhā는 사띠의 동의어에 상당하는데 그 의미가 잊지 않음입니다.
삼매는 대상에 대한 집중이 아닙니다. 도움되지 않는 불선법이 그쳐져서 마음이 평화로운 안정상태입니다.
ekagga라는 단어가 잘못 이해되고 있는 듯 합니다만 여기서는 줄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것과 대비되는 상황을 소개합니다.
마하삿짜까 경 Mn36
Āraddhaṃ kho pana me, aggivessana, vīriyaṃ hoti asallīnaṃ, upaṭṭhitā sati asammuṭṭhā, sāraddho ca pana me kāyo hoti appaṭippassaddho teneva dukkhappadhānena padhānābhitunnassa sato. Evarūpāpi kho me, aggivessana, uppannā dukkhā vedanā cittaṃ na pariyādāya tiṭṭhati. 악기웨사나여, 비록 나에게는 불굴의 정진이 생겼고 나태하지 않았고 마음챙김은 확립되어 잊어지지 않았지만 [*잊지 않아서] 몸은 격동하고 가라앉지 않았나니 [*몸은 동요하여 엄청나게 힘들었지만] 그런 괴로움에[*을] 가득 찬 용맹정진에[*으로] 짓눌렸기 때문이다.
[*오직 苦行으로 버티고 정진하리라.하는 기억sato<존재/있음/입장/흐름/기억/기억의흐름> 뿐?] 악기웨사나여, 이러한 괴로운 느낌이 일어났지만 내 마음을 압도하고 군림하지는 못했다."
[*전재성 선생님 역- 그러나 나에게 물러설 줄 모르는 정진이 있고 끊임없는 새김이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고통스런 노력으로 지쳐있었기 때문에 나의 몸은 격렬하고 불안정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에게 일어난 그러한 고통스런 느낌이 나를 사로잡지는 못했습니다.]
본 경은 부처님께서 菩薩때 시행착오인 苦行수행에 의해서 생겨난 상황입니다. 해석에 혼선이 일부 있습니다만, 사띠는 확립되어 있더라도 즉 념각지는 확립되어 있으나 수행방향(택법,정진)을 잘못잡으면 수행이익이 없음을 보여주시니 주목하여야 할 점입니다.
III. 사띠를 왜 주목하여야 하는 것인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서른일곱 가지 수행법(37조도품)
〔1〕 사념처(四念處). 네 가지 마음챙김. (1) 신염처(身念處). 신체를 있는 그대로 통찰하여 마음챙김. (2) 수염처(受念處). 느낌이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여 마음챙김. (3) 심염처(心念處). 마음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여 마음챙김. (4) 법염처(法念處).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여 마음챙김.
〔2〕 사정근(四正勤). 네 가지 바른 노력. (1) 단단(斷斷). 이미 생긴 악을 끊으려고 노력함. (2) 율의단(律儀斷).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은 미리 방지함. (3) 수호단(隨護斷). 아직 생기지 않은 선은 생기도록 노력함. (4) 수단(修斷). 이미 생긴 선은 더욱 커지도록 노력함.
〔3〕 사신족(四神足). 신통(神通)을 얻기 위한 뛰어난 선정(禪定)에 드는 네 가지 기반. (1) 욕신족(欲神足). 신통을 얻기 위한 뛰어난 선정에 들기를 원함. (2) 정진신족(精進神足). 신통을 얻기 위한 뛰어난 선정에 들려고 노력함. (3) 심신족(心神足). 신통을 얻기 위한 뛰어난 선정에 들려고 마음을 가다듬음. (4) 사유신족(思惟神足). 신통을 얻기 위한 뛰어난 선정에 들려고 사유하고 주시함.
〔4〕 오근(五根). 근(根)은 능력이라는 뜻. 미혹에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다섯 가지 능력으로, 믿음·정진·마음챙김·선정·지혜.
〔5〕 오력(五力). 오근이 실제로 활동하는 구체적인 힘. 곧, 오근은 능력이며 오력은 그 능력의 활동임. 오근과 같이 믿음·정진·마음챙김·선정·지혜이며, 오근보다 진전된 수행 단계.
〔6〕 칠각지(七覺支). 깨달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갈래. (1) 염각지(念覺支). 가르침을 명심하여 마음챙김. (2) 택법각지(擇法覺支). 지혜로써 바른 가르침만을 선택하고 그릇된 가르침은 버림. (3) 정진각지(精進覺支). 바른 가르침을 사유하면서 수행함. (4) 희각지(喜覺支). 정진하는 수행자에게 평온한 기쁨이 생김. (5) 경안각지(輕安覺支). 평온한 기쁨이 생긴 수행자의 몸과 마음이 경쾌해짐. (6) 정각지(定覺支). 몸이 경쾌한 수행자가 정신을 집중·통일시킴. (7) 사각지(捨覺支). 집중·통일된 마음을 평등하게 잘 응시함.
〔7〕 팔정도(八正道).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여덟 가지 바른 길. (1) 정견(正見). 바른 견해로. 연기와 사제에 대한 지혜. (2) 정사유(正思惟). 바른 생각. 곧, 번뇌에서 벗어난 생각, 노여움이 없는 생각,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생각 등. (3) 정어(正語). 바른 말. 거짓말, 남을 헐뜯는 말, 거친 말, 쓸데없는 잡담 등을 삼가함. (4) 정업(正業). 바른 행위. 살생이나 도둑질 등 문란한 행위를 하지 않음. (5) 정명(正命). 바른 생활. 정당한 방법으로 적당한 의식주를 구하는 생활. (6) 정정진(正精進). 바른 노력. 이미 생긴 악은 없애려고 노력하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은 미리 방지하고, 아직 생기지 않은 선은 생기도록 노력하고, 이미 생긴 선은 더욱 커지도록 노력함. (7) 정념(正念). 바른 마음챙김. 신체, 느낌이나 감정, 마음,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여 마음챙김. (8) 정정(正定). 바른 집중.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통일시킴으로써 마음을 가라앉힘.
동의어 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 삼십칠품(三十七品), 삼십칠품경 출처: 네이버
sati, 마음챙김, 念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이 자료로 대신 합니다.
다만 사정근(四正勤)의 (4) 수단(修斷). 이미 생긴 선은 더욱 커지도록 노력함.의 정형구를 찾아 보겠습니다.
uppannānaṃ kusalānaṃ dhammānaṃ ṭhitiyā asammosāya bhiyyobhāvāya vepullāya bhāvanāya pāripūriyā chandaṃ janeti, vāyamati, vīriyaṃ ārabhati, cittaṃ paggaṇhāti, padahati.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은 지속하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하고 증장하게 하고 충만하게 하고 닦기 위해 열의를 일으키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전재성 선생님 역- 이미 생겨난 착하고 건전한 상태를 유지하여 잊어버리지 않고 증가시키고 성만하게 하며 충만하도록 의욕을 생겨나게 하고 노력하고 정근하고 마음을 책려하고 정진합니다.]
앞서 설명한 sati의 2중 부정어인 asammosāya잊지 않음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두 분의 번역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IV. 어떻게 하는 것이 사띠하는 것인가?
이처럼 중요한 사띠를 불자들이 행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간병실 경1(S36:7)
‘‘Kathañca, bhikkhave, bhikkhu sato hoti? Idha,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vedanāsu vedanānupassī viharati…pe…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pe…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sato hoti. 4."비구들이여, 그러면 비구는 어떻게 sati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注視]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sati하면서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sati하면서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sati하면서 머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sati하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와 같이 sati한다."
앞서 37보리분법에서 소개된 4念處를 사띠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세한 것은 대표적인 사띠수행 경전인 대념처경 Dn22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sato hoti와 아주 밀접한 용어인 正知로 번역된 sampajāno hoti를 함께 검토해 보겠습니다.
같은 경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sampajāno hoti? Idha, bhikkhave, bhikkhu abhikkante paṭikkante sampajānakārī hoti, ālokite vilokite sampajānakārī hoti, samiñjite pasārite sampajānakārī hoti, saṅghāṭipattacīvaradhāraṇe sampajānakārī hoti, asite pīte khāyite sāyite sampajānakārī hoti, uccārapassāvakamme sampajānakārī hoti, gate ṭhite nisinne sutte jāgarite bhāsite tuṇhībhāve sampajānakārī hoti.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sampajānakārī hoti. 5."비구들이여, 그러면 비구는 어떻게 분명히 알아차리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正知]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한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한다.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한다. 걸을 때도 설 때도 앉을 때도 잠들 때도 잠에서 깰 때도 말할 때도 침묵할 때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한다.
*(4념처) 정형구입니다. 비슷하면서 다른 정형구를 소개 합니다.
사문과경 Dn02
214. ‘‘Kathañca, mahārāja, bhikkhu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hoti? 65. "대왕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춥니까?
Idha, mahārāja, bhikkhu abhikkante paṭikkante sampajānakārī hoti, ālokite vilokite sampajānakārī hoti, samiñjite pasārite sampajānakārī hoti, saṅghāṭipattacīvaradhāraṇe sampajānakārī hoti, asite pīte khāyite sāyite sampajānakārī hoti, uccārapassāvakamme sampajānakārī hoti, gate ṭhite nisinne sutte jāgarite bhāsite tuṇhībhāve sampajānakārī hoti. Evaṃ kho, mahārāja, bhikkhu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hoti. 대왕이여, 여기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갈 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면서(正知) 행합니다.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합니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합니다.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합니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합니다.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합니다. 걸으면서· 서면서· 앉으면서· 잠들면서· 잠을 깨면서· 말하면서· 침묵하면서도 분명히 알면서 행합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hoti.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잘 갖춥니다.
조금 다른 설명이 있습니다.
난다 경(A8:9)
‘‘Tatridaṃ, bhikkhave, nandassa satisampajaññasmiṃ hoti. Idha, bhikkhave, nandassa viditā vedan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viditā saññā…pe… viditā vitakkā…pe… abbhatthaṃ gacchanti. Idaṃ kho, bhikkhave, nandassa satisampajaññasmiṃ hoti. 마음챙기고 알아차린다. 난다에게 분명하게 지각되는 受들이 일어나고, 머물고, 꺼진다. 분명하게 지각되는 想들이, 思[尋]들이 일어나고, 머물고, 꺼진다(*/돌아간다). 난다에게 (*지금.여기에서 일어나고 머물고 돌아가는 受.想.思를) 마음챙기고 알아차린다.
앞의 두 경을 비교해 보면
I. sampajāno hoti, 또는 sampajānakārī hoti.와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hoti.는 같은 내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간병실 경1(S36:7)이나 사문과 경 D2 대념처경 등에서 나타나는 satisampajaññena에서의 sati-는 II. Kathañca, bhikkhave, bhikkhu sato hoti?에서의 sato와 같은 의미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자 합니다.
sati수행을 위빳사나 수행으로만 단정짓는 분들이 sati를 알아차림으로 오해한 부분이 혹시 이 지점이 아닐까 하여 문제 제기를 하는 것입니다.
사념처(cattāro satipaṭṭhānā 혹은 sati)가 수행차제 중 차지하는 위치
디가 니까야와 맛지마 니까야에서 정형적으로 나타나는 수행 차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 계 정 혜의 정형구 [대림스님 역 맛지마 니까야 1권 56쪽-에서 정리하신 것을 재정리 하였음.]
1) 『디가 니까야』의 23단계 계 ․ 정 ․ 혜의 정형구 2) 『맛지마 니까야』의 15단계 계 ․ 정 ․ 혜의 정형구 [*④⑤⑥ ⑯⑰ 언급 없거나 ⑱⑲⑳ 없는 경우] <*양 니까야의 차제는 유사하나 ⑯⑰은 디가 니까야의 특징>
<戒蘊 : D10 수바 경에 의함>
①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한다. … 그는 법을 설하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梵行)을 드러낸다. ② 이런 법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다른 가문에 태어난 자가 듣는다. … 머리와 수염을 깍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한다. ③ 이와 같이 출가하여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문다. … ④ <짧은 길이의 계 - 모두 26가지로 계를 지님> ⑤ <중간 길이의 계 - 모두 10가지로 잘못된 행위를 멀리함> ⑥ <긴 길이의 계 - 모두 7가지로 삿된 생계를 멀리함> ⑦ 이처럼 계를 구족한 비구는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한다. …
<定蘊 : D10 수바 경에 의함>
⑧ 비구는 감각의 대문을 잘 지킨다. … ⑨ 비구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잘 갖춘다. … ⑩ 비구는 [얻은 필수품으로] 만족한다. …
⑪ 그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 욕심을 버린 마음으로 … 악의가 없는 마음으로 … 해태와 혼침을 버려 …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여 … 의심을 건너서 머문다. (閑居&5蓋의 극복)
⑫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 ⑬ 제2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 ⑭ 제3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 ⑮ 제4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
<慧蘊 : D10 수바 경에 의함>
⑯ 지(知)와 견(見)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⑰ 마음으로 만든 몸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 ⑱ 신통변화[神足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 ⑲ 신성한 귀의 요소[天耳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 ⑳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 ㉑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 ㉒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天眼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 ㉓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
참고: 정형구
D2 사문과 경
‘‘So iminā ca ariyena sīlakkhandhena samannāgato, iminā ca ariyena indriyasaṃvarena samannāgato, iminā ca ariyena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imāya ca ariyāya santuṭṭhiyā samannāgato, vivittaṃ senāsanaṃ bhajati araññaṃ rukkhamūlaṃ pabbataṃ kandaraṃ giriguhaṃ susānaṃ vanapatthaṃ abbhokāsaṃ palālapuñjaṃ. 67.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을 잘 갖추고,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갖추고, 이러한 성스러운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추고, 이러한 성스러운 만족을 잘 갖추어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합니다.
So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paṭikkanto nisīdat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그는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와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 세우며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습니다.
⇒ 다섯 장애(욕심/악의/해태·혼침/들뜸·후회/의심)를 벗어남
불교의 대표적인 수행인 四念處 수행(혹은 들숨날숨에 마음챙김 수행)이 수행차제를 설명하는 이러한 여러 경에서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경우의 수로 분석하면 첫 번째 사념처 수행이 수행 차제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와 두 번째 위의 수행차제와는 다른 수행 차제를 설명한 경설이 있는 경우 세 번째 사념처 수행이 이러한 23단계 혹은 15단계 중 어딘가에 포함되어 있어(or 너무나 당연하여) 직접 언급되지 않는 경우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지만 대표적인 수행이라고 할 수 있는 사념처 수행이나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수행이 수행 차제에 포함되지 않는 첫 번째 경우는 제쳐두고
조금이라도 다른 정형적 수행 차제를 살펴보면
A9:63-(마음챙김의 확립 품)
공부지음을 나약하게 만드는 다섯 가지(殺.盜.淫.妄.酒)를 버리기 위해 4념처(4정근,4여의족)를 닦아야 한다. 5蓋를...5욕락...5취온...5하분결...5악처...5인색...5상분결...5삭막함...5속박... 버리기 위해 4념처(4정근,4여의족)를 닦아야 한다.
마음챙김 경(A8:81)
satisampajañña가 없을 때 ⇒ 양심.수치심 조건 상실. 없으면 ⇒ 감각기능 단속 조건 상실. 없으면 ⇒ 계행 조건 상실. 없으면 ⇒ 바른 삼매 조건 상실. 없으면 ⇒ 여실지견 조건 상실. 없으면 ⇒ 염오.탐욕 빛바램 조건 상실. 없으면 ⇒ 해탈 지견 조건 상실해 버린다.
<*satisampajañña와 양심.수치심, 감각기능 단속, 계는 선후가 아닌 상보/맞물린 관계로 이해됩니다. 즉 성스러운 <계의 조목. 감각기능 단속. satisampajañña. 지족>을 잘 갖추고 나서 閑居 합니다.>
Mn107 가나까 목갈라나 경 (회계사 목갈라나 경/산수 목련 경)
⑦계 → ⑧감각의 대문 → 음식의 적당함 → 깨어있음 → ⑨satisampajañña 마음챙김과 알아차림 → 閑居(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 → ⑪다섯 장애(욕심/악의/해태·혼침/들뜸·후회/의심)를 벗어남 → ⑫⑬⑭⑮
또 다른 정형적 수행 차제를 살펴보아도 閑居(5蓋 제거)이전 특별히 눈에 띄는 항목은 양심. 수치심, 정량 식사, 깨어 있음 정도 인데 sati가 감관 단속과 밀접한 점(별도 설명)을 제외하면 사념처의 위치가 역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어딘가에 포함되어 있어 직접 언급되지 않는 경우을 찾아야 되는데
... 깨어 있음: 취침때 '일어날 시간을 념두에 두고' sato sampajāno uṭṭhānasaññaṃ manasi karitvā
... 卽覺의 구족: satisampajañña 마음챙김과 알아차림 / 알아차리면서 행함. = I. sampajañño hoti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hohi, abhikkante paṭikkante sampajānakārī, ālokite vilokite sampajānakārī, ... '오라, 비구여. 그대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 ․ 正知]을 구족하라. 나아갈 때도 돌아올 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正知] 행하라. .... 깨어있을 때도 말할 때도 침묵할 때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하라.'
... 閑居(수행주제에 대한 기억을 확립):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 5蓋 중 해태와 혼침: 光明想 正念正知 ālokasaññī sato sampajāno
4념처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catusu sati paṭṭhānesu sūpaṭṭhitacitto hoti. = II. sato hoti
→ 제3禪의 正念正知 upekkhako ca viharati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ṃvedeti → 제4禪의 捨念淸淨 upekkhāsatipārisuddhiṃ →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ṃ pāpuṇāti sati sati āyatane. 최상의 지혜로 그 경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그가 마음을 기울이면, <정형구> 그런 원인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그것을 실현하는 능력[*三明 六通 :超越知]을 얻는다. → 明: 宿命通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천안통, āsava漏진통/4聖諦:sacca) {대념처경 : 四念處를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 하나 -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지혜, sati vā upādisese anāgāmitā 취착의 자취<흐름> 남아 있으면 不還果.} → 해탈.열반
**초불에서는 아래 I. III.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正念 ․ 正知]로 번역하였습니다.
I. satisampajañña와 II. 4념처(cattāro satipaṭṭhāna)은 서로 맞물려 있고(身念處 중 하나) 특별하게 구별하지 않고 쓰이기도 하여 비슷한 듯하나 차제가 같지 않거나 의미가 다릅니다.
I. sampajañño hoti = sampajānakārī =>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II. sato hoti= .... a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I. sampajañño hoti는 (행주좌와어묵동정, 受想思를) 기억하여/잊지 않고 알아차린다.이고, II. sato hoti는 그렇게 알아차린 것(身受心法)을 잊지않고 기억한다.는 의미 III. sato sampajāno는 이 둘을 모두 포괄하는 일반적인 표현>
sati라는 단어가 정형적으로 나타나는 어떤 곳에서도 4념처의 위치를 찾을 수 없습니다. 거의 유일한 곳이 아닌가 하는 하나의 경을 소개합니다.
Mn125 길들임의 단계 경 (길들임의 단계에 관한 경/단타부이 경)
1. 지금까지 있던 자리에서 끄집어 낸다.- 강제로 혹은 유도하여 <①여래 출현- 법을 설함- 법을 들음- 믿음이 생김- ②출가>
2. 몸은 이곳에 있으나 마음은 과거 습관과 기억이 남아 있다.-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게 붙잡아 둔다. <⑦계- ⑧감관의 단속- 정량 식사- 깨어있음- ⑨卽覺의 구족- 閑居(수행주제에 대한 기억을 확립)- ⑪5蓋제거- 4념처(신.수.심.법에 대한 기억의) 확립 <2와3의>연결 --- 4념처와 '삼매(心一境-三昧-初禪)'의 맞물린 구조를 주목해야 할 經---
3. 이곳에 적응하는 훈련을 한다. <4禪- 3明>
4. (외부) 자극에 견디고 결국 흔들리지 않게 된다. <해탈.아라한>
219. ‘‘So ime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Vedanāsu…pe… citte…pe…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22. "그는 마음의 오염원이고 통찰지를 무력하게 만드는 이 다섯 가지 장애들을 제거한 뒤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身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문다. 느낌에서 … 마음에서 …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문다." ....
220. ‘‘Tamenaṃ tathāgato uttariṃ vineti – ‘ehi tvaṃ,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āhi, mā ca kāmūpasaṃhitaṃ vitakkaṃ vitakkesi. Vedanāsu… citte…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āhi, mā ca kāmūpasaṃhitaṃ vitakkaṃ vitakkesī’’’ti. 24. "그러면 여래는 더 나아가 그를 다음과 같이 훈련시킨다. '오라, 비구여. 그대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몸과 관련된 생각을 일으키지 마라.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느낌과 관련된 생각을 일으키지 마라.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마음과 관련된 생각을 일으키지 마라.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법과 관련된 생각을 일으키지 마라. ' "
[역자 대림스님 주> '몸과 관련된 생각을 일으키지 마라.'는 Ee의 mā kāyūpasaṃhitaṃ vitakkam vitakkesi를 옮긴 것이다. ... 그러나 Be에는 'mā ca kāmūpasaṃhitaṃ ... '로 나타난다. 이것을 옮기면 '오라, 비구여. 그대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생각을 일으키지 마라. 느낌...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생각을 일으키지 마라.'가 된다. Se도 Be와 같다.]
‘‘So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pe… tatiyaṃ jhāna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25. "그는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 고찰[伺]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은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 제3선을 … 제4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본 경에서는 다른 수행차제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閑居(수행주제에 대한 기억을 확립)- ⑪5蓋제거 후 4禪定이 아니라 4念處가 나타나며 4념처 수행후 初禪은 생략되고 대신 신수심법 4념처 수행 (이 때는 싫다고 밀치지도 좋다고 끌러들지도 않으면서: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다음 단계로 감각적 욕망으로 연결되는 尋<초선의 심소인 尋(vitakka)> -생각-을 떠올리지 마라. 라는 언급후 바로 제2禪으로 연결됩니다. 명시적으로는 나타나지 않으나 4념처 수행이 初禪의 대체 혹은 예비수행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경설 입니다.
깐다라까 경 Mn51에서
自利利他 : 자신도 학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학대하지 않아서 바로 지금‧여기에서 갈애가 없고, [모든 오염원들이] 적멸하고 [안으로 열 받는 오염원들이 없어] 시원하고 [禪과 도와 과와 열반의] 행복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고결하게 되어 머무는 사람인가?에 대한 설명에서
여래 출현 → 법들음 → 믿음 → 출가 → 戒 &/or 知足 → 根團束 → satisampajañña → 閑居 &/or 5蓋 제거 → 4禪 → 3明의 차제에서 전반부 주제인 4念處가 후반부 주제인 自利利他에서 또한 명시적으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맥락을 종합하면 4념처 수행은 定學 혹은 삼매의 예비수행 혹은 초선을 대체하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점은 방등 경 소품 (교리문답의 짧은 경 Mn44)에서
"'三學은 八正道안에 포함되지 않고, 八支聖道가 三學 안에 포함된다.
正語. 正業. 正命은 계온(戒蘊, sīla-kkhandha)에 正精進. 正念. 正定은 정온(定蘊, samādhi-kkhandha)에 正見. 正思惟는 혜온(慧蘊, paññā-kkhandha)에 포함된다.' 와
cattāro satipaṭṭhānā samādhinimittā 四念處- 네 가지 (수행주제에 대한) 기억의 확립이 삼매에 [드는] 표상"이라는 경설과 상응함을 알 수 있으며 사념처가 수행차제 중 점하는 위치는 慧學이 아닌 定學이며 윗빠사나로 한정하여 정의할 수 있는 것은 더욱 더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유학(有學) 경 Mn53
23.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가 계를 구족하면 이것이 그의 실천입니다.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가 감각기능의 문을 잘 지키면 이것도 그의 실천입니다.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가 음식에 적당한 양을 알면 이것도 그의 실천입니다.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가 깨어있음에 전념하면 이것도 그의 실천입니다.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가 일곱 가지 바른 법을 갖추면 이것도 그의 실천입니다.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가 지금 ‧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네 가지 禪을 원하는 대로 얻고 힘들이지 않고 얻고 어렵지 않게 얻으면 이것도 그의 실천입니다."
<*일곱 가지 바른 법: 信. 양심. 수치심. 多聞. 精進. 念(sati). 慧. 明行의 行:실천, 明行의 明:3명>
마지막으로 배제했던 첫 번째 경우(次第로 설명되지 않는 경우)를 다시 검토해보면 五根/五力등 37보리분법에서 중첩적으로 나타나는 sati가 약방의 감초처럼 수행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요청되는 법이라면 기본적으로 확보하여야 할 기능이며 능력. 그 방법이 四處 혹은 들숨날숨을 통한 기억의 확립으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V. 어떤 법을 사띠하여야 하는가?
대념처경 Dn22에는 많은 수행주제가 나타나고 여기에 대해 많은 해설서들이 있으므로 그 내용을 반복하지 않고 다른 수행주제를 설명한 경들을 소개합니다.
念sati, 隨念anussati, 隨念處anussatiṭṭhāna
1. 身. 受. 心. 法- 대념처경(D22), 념신경(M119), 출입식념경(M118), 死경.((A6:19/20) maraṇassatisuttaṃ)
‘‘Yo cāyaṃ, bhikkhave, bhikkhu evaṃ maraṇassatiṃ bhāveti – ‘aho vatāhaṃ tadantaraṃ jīveyyaṃ yadantaraṃ assasitvā vā passasāmi passasitvā vā assasāmi, bhagavato sāsanaṃ manasi kareyyaṃ, bahu vata me kataṃ assā’ti. Ime vuccanti, bhikkhave, bhikkhū appamattā viharanti tikkhaṃ maraṇassatiṃ bhāventi āsavānaṃ khayāya. ‘참으로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는 시간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들을 일러 부지런히 살고, 번뇌를 멸하기 위하여 예리하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고 한다.
2. 佛. 法. 僧.. 施. 戒. 天. - 계속해서 생각함 경(A6:9/25), 깟짜나 경(A6:26) 마하나마 경(A6:10/A11:12)
Yāvañcidaṃ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sambādhe okāsādhigamo anubuddho sattānaṃ visuddhiyā sokaparidevānaṃ samatikkamāya dukkh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ya ñāyassa adhigamāya nibbānassa sacchikiriyāya, yadidaṃ cha anussatiṭṭhānāni. 아시는 분.보시는 분.그분.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는 재가의 삶 가운데서 기회 얻음을 깨달으셨습니다. 이것은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게 하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게 하고, 열반을 실현하게 하기 위한 것이니, 그것은 바로 여섯 가지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입니다.
3. 初/2/3禪. 光明想. 不淨. 死體. 제4禪. 念行(正念正知-행,주,좌,와..) 우다이 경(A6:29)
Kati nu kho, ānanda, anussatiṭṭhānānī’’ti? ‘‘Pañca, bhante, anussatiṭṭhānāni. Katamāni pañca? 아난다여, 얼마나 많은 종류의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가 있는가? 세존이시여, 다섯 가지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가 있습니다. 무엇이 다섯 인가요?
1.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제2선을, ...제3禪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이것이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니, 이와 같이 닦고 이와 같이 많이 [공부]지으면 지금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됩니다.
2. ...광명상(光明想)을 마음에 잡도리 합니다. '낮이다.'라는 인식에 adhiṭṭhāti집중합니다. 낮에 [광명을 본 것]처럼 밤에도 [광명을 보고], 밤에 [광명을 본 것]처럼 낮에도 [광명을 보는] 인식에 집중합니다. 이처럼 열려있고 덮이지 않은 마음으로 sappabhāsaṃ cittaṃ bhāveti. 빛을 가진 마음을 닦습니다. ...지와 견을 획득하게 됩니다.
3.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그리고 머리털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이 몸은 살갗으로 둘려싸여 있고 여러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paccavekkhati반조합니다. 즉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게 됩니다.
4.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죽은 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 부풀고 검프르게 되고 문들어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에 upasaṃharati비추어 봅니다. ...내가 있다는 자아의식이 뿌리 뽑게 됩니다.
5.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 제4선에 들어 머뭅니다. ... 여러 가지 요소[*界]를 꿰뚫게 됩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다섯 가지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가 있습니다.
‘‘Sādhu, sādhu, ānanda! Tena hi tvaṃ, ānanda, idampi chaṭṭhaṃ anussatiṭṭhānaṃ dhārehi. Idhānanda, bhikkhu satova abhikkamati satova paṭikkamati satova tiṭṭhati satova nisīdati satova seyyaṃ kappeti satova kammaṃ adhiṭṭhāti. Idaṃ, ānanda, anussatiṭṭhānaṃ evaṃ bhāvitaṃ evaṃ bahulīkataṃ satisampajaññāya saṃvattatī’’ti. 7.장하고 장하도다, 아난다여. 아난다여, 그렇다면 그대는 이것을 여섯 번째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로 호지하라.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마음챙겨서 나아가고 마음챙겨서 물러나고 마음챙겨서 서고 마음챙겨서 앉고 마음챙겨서 눕고 마음챙겨서 업무를 처리한다. 아난다여, 이것이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이니, 이와 같이 닦고 이와 같이 많이 [공부]지으면 마음챙기고 알아차리게[正念正知] 된다.
4. 대중생활에 대해 뒤에서 다시 소개될 사마가마 경 Mn104
54. ‘‘Chayime, ānanda, dhammā sāraṇīyā piyakaraṇā garukaraṇā saṅgahāya avivādāya sāmaggiyā ekībhāvāya saṃvattanti. Katame cha? 21. "아난다여, 이들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할 법이 있으니, 그것은 동료 수행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 무엇이 여섯 가지인가? ..........
① 몸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한다. 이것이 기억해야 할 법이니.. ② 말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한다. 이것이 기억해야 할 법이니.. ③ 마음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한다. 이것이 기억해야 할 법이니.. ④ .. 얻은 것들을 공평하게 나누어 수용하고, 계를 잘지키는 동료 수행자들과 함께 나누어서 사용한다. .. ⑤ .. 삼매에 도움이 되는 그런 계들을 그 동료수행자들과 함께 동등하게 구족하여 머문다. .. ⑥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그 [바른] 견해를 그들과 동등하게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기억해야 할 법이니 동료 수행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
VI. 어떤 것은 사띠하지 말아야 하는가?
불[火] 경(S46:53) satiñca khvāhaṃ, bhikkhave, sabbatthikaṃ vadāmī 그러나 마음챙김은 항상 유익한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본 경의 이 말씀은 문맥상 七覺支를 수행함에 마음챙김은 항상 유익한 것이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되는데 sati는 어떤 경우에도 유익한 것이라는 이해와는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경이 있어 소개합니다.
마니밧다 경(S10:4)
238. Ekaṃ samayaṃ bhagavā magadhesu viharati maṇimālike cetiye maṇibhaddassa yakkhassa bhavane. Atha kho maṇibhaddo yakkh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to santike imaṃ gāthaṃ abhāsi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마가다에서 마니말리까 탑묘의 마니밧다 약카의 거처에서 머무셨다. 그때 마니밧다 약카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의 곁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
‘‘Satīmato sadā bhaddaṃ, satimā sukhamedhati; Satīmato suve seyyo, verā ca parimuccatī’’ti. sati하는 자는 항상 행운이 함께하고, sati하는 자는 행복을 얻습니다. sati하는 자는 매일매일 더 나아지고, 아울러 그는 증오로부터 벗어납니다.
[세존의 게송] ‘‘Satīmato sadā bhaddaṃ, satimā sukhamedhati; Satīmato suve seyyo, verā na parimuccati. sati하는 자는 항상 행운이 함께하고, sati하는 자는 행복을 얻도다. sati하는 자는 더욱 더 나아지나, 결코 증오로부터는 벗어나지 못하도다.
‘‘Yassa sabbamahorattaṃ [rattiṃ (syā. kaṃ. ka.)], ahiṃsāya rato mano; Mettaṃ so sabbabhūtesu, veraṃ tassa na kenacī’’ti. 낮이든 밤이든 언제나 그의 마음 아힘사(해코지 하지 않음)을 기뻐하고, 모든 존재에 자애를 가진 자는 누구에 대해서건 증오를 품지 않도다.
사유 중지<*전환>의 경 Mn20
218. ‘‘Tassa ce, bhikkhave, bhikkhuno tesampi vitakkānaṃ ādīnavaṃ upaparikkhato uppajjanteva pāpakā akusalā vitakkā chandūpasaṃhitāpi dosūpasaṃhitāpi mohūpasaṃhitāpi, tena, bhikkhave, bhikkhunā tesaṃ vitakkānaṃ asatiamanasikāro āpajjitabbo. 위험하다고 성찰했음에도 불구하고 탐.진.치와 연결되는 나쁘고 불선한 사유가 일어나면 그 때는, 비구들이여, 비구는 그러한 사유를 asati하고 amanasikāro주의를 기우리지 말아야 한다.
원한을 제거 함 경1(A5:161)
Yasmiṃ, bhikkhave, puggale āghāto jāyetha, asatiamanasikāro tasmiṃ puggale āpajjitabbo; evaṃ tasmiṃ puggale āghāto paṭivinetabbo.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에게 원한이 생기면 그 사람들에 대해서 마음챙기지 않음과 주의를 기우리지 않음을 닦아야 한다. 이와 같이 그 사람에 대해서 생긴 원한을 제거해야 한다.☸
부당한 대우을 받았다는 기억은 증오를 일으키니 아힘사를 기뻐하고, 자애를 가져야 증오가 없어지고, 이와 같음을 잘 기억하고 念頭에 두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sati가 경우에 따라(vibhajana) 장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조건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VII. 수행시 주의할 점
사띠 수행을 하면 조건 없이, 무조건 이익이 생기는 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요리사 경(S47:8)
‘‘Sa kho so, bhikkhave, bālo abyatto akusalo sūdo na ceva lābhī hoti acchādanassa, na lābhī vetanassa, na lābhī abhihārānaṃ. Taṃ kissa hetu? Tathā hi so, bhikkhave, bālo abyatto akusalo sūdo sakassa bhattu nimittaṃ na uggaṇhāti. 비구들이여, 그러면 그 어리석고 슬기롭지 못하고 능숙하지 못한 요리사는 옷가지를 타지 못하고, 급료를 받지 못하고, 선물을 얻지 못할 것이다. 무슨 이유인가? 비구들이여, 그 어리석고 슬기롭지 못하고 능숙하지 못한 요리사는 이와 같이 자기 주인의 표정을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음식과 음식을 먹은 왕의 표정사이의 因果의 相關성: 心王의 표정, 나타남/nimitta을 살피지 않으면(→x- feedback → 擇法할 수 없음)]
Evameva kho, bhikkhave, idhekacco bālo abyatto akusalo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Tassa kāye kāyānupassino viharato cittaṃ na samādhiyati, upakkilesā na pahīyanti. So taṃ nimittaṃ na uggaṇhāti. 4.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리석고 슬기롭지 못하고 능숙하지 못한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sati하면서 머문다. 그는 이처럼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물지만 마음은 삼매에 들지 못하고 오염원들은 제거되지 않는다. 그는 그 표상을 취하지 못한다.
[*4處念수행이 이익(삼매에 듦, 오염원 제거)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의 본인의 마음(심왕) 표정을 feedback하지 못하는 자: akusalo bhikkhu능숙하지 못한 비구]
‘‘Sa kho so, bhikkhave, bālo abyatto akusalo bhikkhu na ceva lābhī hoti diṭṭheva dhamme sukhavihārānaṃ, na lābhī satisampajaññassa. Taṃ kissa hetu? Tathā hi so, bhikkhave, bālo abyatto akusalo bhikkhu sakassa cittassa nimittaṃ na uggaṇhāti. 5. "비구들이여, 이렇게 어리석고 슬기롭지 못하고 능숙하지 못한 비구는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묾을 얻지 못하고 sati와 알아차림[*satisampajañña]을 얻지 못한다. 무슨 이유인가? 비구들이여, 그 어리석고 슬기롭지 못하고 능숙하지 못한 비구는 이와 같이 자기 마음의 표상을 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感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구니 거처 경(S47:10)
Idhānanda,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Tassa kāye kāyānupassino viharato kāyārammaṇo vā uppajjati kāyasmiṃ pariḷāho, cetaso vā līnattaṃ, bahiddhā vā cittaṃ vikkhipati. 7.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반복적인 注視를]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sati하면서 머문다. 그가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면 몸을 대상으로 하여 몸에 열기가 생기거나 정신적으로 태만해지거나 밖으로 마음이 흩어진다.
[*사띠 수행하는 도중 몸을 대상으로 몸에 열기가 생기거나, 마음이 無氣力해지거나, 外部로 흩어지는 경우]
Tenānanda [tenahānanda (sī.)], bhikkhunā kismiñcideva pasādanīye nimitte cittaṃ paṇidahitabbaṃ. Tassa kismiñcideva pasādanīye nimitte cittaṃ paṇidahato pāmojjaṃ jāyati. Pamuditassa pīti jāyati. Pītimanassa kāyo passambhati. Passaddhakāyo sukhaṃ vedayati [vediyati (sī.)]. Sukhino cittaṃ samādhiyati. 그러면 그는 청정한 믿음을 고취하는 표상[* 확신 되었을 때의 感]으로 마음을 향하게 해야 한다. 그가 청정한 믿음을 고취하는 표상으로 마음을 향하면 환희가 생긴다. 환희가 생기면 희열이 생긴다. 마음에 희열이 있는 자의 몸은 고요[*輕安]하다. 몸이 고요한 자는 행복을 경험한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 [*환희- 경안- 행복- 삼매에 든다.: 정형구 입니다]
So iti paṭisañcikkhati – ‘yassa khvāhaṃ atthāya cittaṃ paṇidahiṃ, so me attho abhinipphanno. Handa, dāni paṭisaṃharāmī’ti. So paṭisaṃharati ceva na ca vitakketi na ca vicāreti. ‘Avitakkomhi avicāro, ajjhattaṃ satimā sukhamasmī’ti pajānāti’’. 그는 이렇게 숙고한다. '내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마음을 향하게 한 그 목적이 이제 성취되었다. 이제 나는 거두어 들이리라.'라고. 그래서 그는 [마음을] 거두어들이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고찰을 하지 않는다. 그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고찰을 하지 않고 안으로 마음챙기면서 나는 행복하다.'라고 꿰뚫어 안다."
['無尋.無伺. 內的 마음<pasādanīye nimitte>을 기억하는 자, 나는 행복하구나' 라고 꿰뚫어 안다.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 제2禪의 정형구 內的 確信/信으로 마음이 모여져서(집중이 아님- 안정됨) (過度 尋.伺.를 거두어 들여) 尋.伺.가 없음으로 인한 즉 사마디에서 생겨난 喜.樂. 본 경의 특징은 四念處와 四禪定을 연결 시키는 經典]
sati 혹은 念覺支의 sati와 念覺支는 어떻게 擇法으로 연결되는가?를 살펴 보겠습니다.
계경(S46:3)
184. ‘‘Ye te, bhikkhave, bhikkhū sīlasampannā samādhisampannā ñāṇasampannā vimuttisampannā vimuttiñāṇadassanasampannā, 3. "비구들이여, 비구가 계를 구족하고, 삼매를 구족하고, 통찰지를 구족하고, 해탈을 구족하고, 해탈지견을 구족한 dassanampāhaṃ, bhikkhave, tesaṃ bhikkhūnaṃ bahukāraṃ [bahūpakāraṃ (syā.)] vadāmi; 비구들을 뵙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된다고 나는 말한다."
savanampāhaṃ, bhikkhave, tesaṃ bhikkhūnaṃ bahukāraṃ vadāmi; 4. "비구들이여, 그러한 비구들의 말을 듣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나는 말한다. upasaṅkamanampāhaṃ, bhikkhave, tesaṃ bhikkhūnaṃ bahukāraṃ vadāmi; 그러한 비구들을 가까이 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나는 말한다. payirupāsanampāhaṃ, bhikkhave, tesaṃ bhikkhūnaṃ bahukāraṃ vadāmi; 그러한 비구들을 섬기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나는 말한다. anussatimpāhaṃ, bhikkhave, tesaṃ bhikkhūnaṃ bahukāraṃ vadāmi; 그러한 비구들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나는 말한다. anupabbajjampāhaṃ, bhikkhave, tesaṃ bhikkhūnaṃ bahukāraṃ vadāmi. 그러한 비구들을 따라서 출가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나는 말한다."
Taṃ kissa hetu? Tathārūpānaṃ, bhikkhave, bhikkhūnaṃ dhammaṃ sutvā dvayena vūpakāsena vūpakaṭṭho [dvayena vūpakaṭṭho (sī. syā.)] viharati – kāyavūpakāsena ca cittavūpakāsena ca. 5.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러한 비구들로부터 법을 배워서 그는 몸이 멀리 떠남과 마음이 멀리 떠남이라는 두 가지 멀리 떠남을 갖추어 머물기 때문이다.
So tathā vūpakaṭṭho viharanto taṃ dhammaṃ anussarati anuvitakketi. 그는 이처럼 멀리 떠남을 갖추어 머물면서 그 법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계속해서 고찰한다."
[*:배운 법이면서 배운대로 그렇게 생활하는 그 法을 잇따라 반복적으로 기억을 되살리고 떠올린다. (이렇게 배운 것을 익히는 중 때로는 망각하여 무슨 짓을 한지도 모를 때도 있지만 그러나 반복해서) 학습을 하는 중 그 법을 잊지않아 기억되는 때가 있다. 그 때가 념각지가 시작된 것
-본 경의 이 구절을 근거로 사띠란 알아차림은 물론 아니지만 배운 법을 기억하는 것으로만 정의하시는 분들도 있습디다. 오래 전에 한 행동과 말도 모두 기억하고 생각해는 것 또한 사띠. 몸등을 이러이러한 것이구나라고 기억하는 것 또한 기억. 이러한 기억이 과연 타당한지 혹은 이러한 기억을 하게 된 수행과정이 적절한지 여러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택법]
‘‘Yasmiṃ samaye, bhikkhave, bhikkhu tathā vūpakaṭṭho viharanto taṃ dhammaṃ anussarati anuvitakketi, 6. "비구들이여, 비구가 이처럼 멀리 떠남을 갖추어 머물면서 그 법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계속해서 고찰하면 satisambojjhaṅgo tasmiṃ samaye bhikkhuno āraddho hoti; 비구에게는 sati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자리잡기 시작한다. satisambojjhaṅgaṃ tasmiṃ samaye bhikkhu bhāveti; 그래서 비구는 sati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꾸준히] 닦는다. satisambojjhaṅgo tasmiṃ samaye bhikkhuno bhāvanāpāripūriṃ gacchati. 그러면 비구의 sati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는 이러한 닦음을 통해서 성취된다. So tathā sato viharanto taṃ dhammaṃ paññāya pavicinati pavicarati parivīmaṃsamāpajjati. 그는 이처럼 sati하여 머물면서 법을 통찰지로 조사하고 고찰하고 철저하게 검증한다."
[*(전재성 선생님 역) 그는 그와 같이 멀리 떠나서 그 가르침을 기억하고 사유한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승이 멀리 떠나 그 가르침을 기억하고 사유하면, 그 때 새김의 깨달음 고리가 시작 된다. 수행승이 새김의 깨달음의 고리를 닦으면, 그 때 수행승의 새김의 깨달음의 고리는 원만해진다. 이와 같이 새김을 닦으면서 그는 그 가르침을 지혜로 고찰하고 조사하고 탐구한다.]
‘‘Yasmiṃ samaye, bhikkhave, bhikkhu tathā sato viharanto taṃ dhammaṃ paññāya pavicinati pavicarati parivīmaṃsamāpajjati, 7. "비구들이여, 비구가 이처럼 sati하여 머물면서 그런 법을 통찰지로 조사하고 고찰하고 철저하게 검증하면 dhammavicayasambojjhaṅgo tasmiṃ samaye bhikkhuno āraddho hoti; 비구에게는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자리잡기 시작한다. dhammavicayasambojjhaṅgaṃ tasmiṃ samaye bhikkhu bhāveti; 그래서 비구는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꾸준히] 닦는다. dhammavicayasambojjhaṅgo tasmiṃ samaye bhikkhuno bhāvanāpāripūriṃ gacchati. 그러면 비구의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는 이러한 닦음을 통해서 성취된다. Tassa taṃ dhammaṃ paññāya pavicinato pavicarato parivīmaṃsamāpajjato āraddhaṃ hoti vīriyaṃ asallīnaṃ. 그가 이처럼 법을 통찰지로 조사하고 고찰하고 철저하게 검증할 때 불굴의 정진이 일어난다."
‘‘Yasmiṃ samaye, bhikkhave, bhikkhuno taṃ dhammaṃ paññāya pavicinato pavicarato parivīmaṃsamāpajjato āraddhaṃ hoti vīriyaṃ asallīnaṃ, vīriyasambojjhaṅgo tasmiṃ samaye bhikkhuno āraddho hoti; vīriyasambojjhaṅgaṃ tasmiṃ samaye bhikkhu bhāveti; vīriyasambojjhaṅgo tasmiṃ samaye bhikkhuno bhāvanāpāripūriṃ gacchati. Āraddhavīriyassa uppajjati pīti nirāmisā. 8. "비구들이여, 비구가 이처럼 법을 통찰지로 조사하고 고찰하고 철저하게 검증하여 불굴의 정진이 일어나면 비구에게는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자리잡기 시작한다. 그래서 비구는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꾸준히] 닦는다. 그러면 비구의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는 이러한 닦음을 통해서 성취된다. 정진을 시작한 자에게는 비세속적인 희열이 일어난다."
*사띠의 의미를 여러 측면에서 모색하면서 남겨 두었던 저의 기록입니다.
갈색은 각묵 스님 譯입니다. 이런저런 여러가지 망상들이 많았습니다. 그 과정을 남겨두었습니다. 참고만 하십시오. 여기서는 망각하여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와 사띠하고 있는 경우를 함께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말룽까뿟따 경(S35:95)
‘‘Taṃ kiṃ maññasi, mālukyaputta, ye te cakkhuviññeyyā rūpā adiṭṭhā adiṭṭhapubbā, na ca passasi, na ca te hoti passeyyanti? Atthi te tattha chando vā rāgo vā pemaṃ vā’’ti? ‘‘No hetaṃ, bhante’’. 6."말룽까뿟따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가 보지 못했고 전에도 본 적이 없으며 지금 보지도 못하고 앞으로도 보지 못할, 눈으로 알아야 하는 형색들이 있다면, 그대는 그것들에 대한 욕망이나 탐욕이나 애정을 가지겠는가?"
<*경험하지 않은 眼識의 色에 대하여 -전에도 보지 못했고, 지금도 보지 않고, 앞으로도 보지 못 할 그것들에 대한[*선입견도 없고, 선입견을 가질 소지도 없는 곳에서] 욕망. 탐욕. 애정이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
‘‘Ettha ca te, mālukyaputta, diṭṭhasutamutaviññātabbesu dhammesu diṭṭhe diṭṭhamattaṃ bhavissati, sute sutamattaṃ bhavissati, mute mutamattaṃ bhavissati, viññāte viññātamattaṃ bhavissati. 12. "말룽까뿟따여, 그대가 보고 듣고 감지하고 알아야 하는 법들에 대해서 볼 때는 단지 봄만이 있을 것이고 들을 때는 단지 들음만이 있을 것이고 감지할 때는 단지 감지함만이 있을 것이고 알 때는 단지 앎만이 있을 것이다."
<*그대가 보고.듣고.감지하고.앎/見聞覺知의 대상들에서 볼 때는 다만 봄만이 있게 될 것이고, 들을 때는 단지 들음만이. 감지할 때는 단지 감지함만이. 알 때는 단지 앎만이 있게 될 거다.>
.... ‘‘Imassa khvāhaṃ, bhante, bhagavatā saṃkhittena bhāsitassa vitthārena atthaṃ ājānāmi –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간략하게 설 하신 것의 자세한 의미를 다음과 같이 앎니다.
‘‘Rūpaṃ disvā sati muṭṭhā, piyaṃ nimittaṃ manasi karoto; Sārattacitto vedeti, tañca ajjhosa [ajjhosāya (sī.)] tiṭṭhati. 형색을 보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는 애욕에 물든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거기에 묶여 있습니다.
‘‘Tassa vaḍḍhanti vedanā, anekā rūpasambhavā; Abhijjhā ca vihesā ca, cittamassūpahaññati; Evaṃ ācinato dukkhaṃ, ārā nibbānamuccati. 형색에서 생겨난 여러 가지 느낌들은 그에게서 증장하고 마음을 어지럽히는 욕심과 불쾌함도 그러하나니 이처럼 괴로움을 쌓는 자에게 열반은 아주 멀다고 말합니다.
‘‘Saddaṃ sutvā sati muṭṭhā, piyaṃ nimittaṃ manasi karoto; Sārattacitto vedeti, tañca ajjhosa tiṭṭhati. 聲을 듣고 있으면서도 (그러함 卽 듣고 sa- 있다는 -ti 것을) 망각하여, '좋다.'라는 感에 意가 흔들립니다. [그 感에] 묶인 마음은 [感에 대한 情을]느끼고, 그것에 묶입니다.
<*다만 소리를 듣고 있을 뿐 인데, 좋네.하는 感을 mano가 만들면 물든citta가 느끼고, 그것에 묶입니다.>
‘‘Tassa vaḍḍhanti vedanā, anekā saddasambhavā; Abhijjhā ca vihesā ca, cittamassūpahaññati; Evaṃ ācinato dukkhaṃ, ārā nibbānamuccati. 이처럼 感情-소리와 함께 變成된 여러가지 것들- 이 증폭 되면 [즉] 끌리고, 밀치고 하여 마음이 어지럽게 됩니다. 이러한 것은 고통을 쌓는 것이 되니, 열반과는 아주 멀다고 말합니다.
‘‘Gandhaṃ ghatvā sati muṭṭhā, piyaṃ nimittaṃ manasi karoto; Sārattacitto vedeti, tañca ajjhosa tiṭṭhati. 다만 냄새를 맡고 있는 지今.여기[心]에 있지[念] 못하니, 좋은 냄새네 하고 마노가 注意를 기울입니다. 이 感에.動.한 心.마음은 [느낌을] 느끼면, 그것에 기대어 확 자리 잡습니다. ......
‘‘Na so rajjati rūpesu, rūpaṃ disvā paṭissato; Virattacitto vedeti, tañca nājjhosa tiṭṭhati. 色에 感動하지 않고, 形色을 보면서 [오직 보고 있을 뿐이니 그 본 것을 다만] 굳건히 기억합니다. 마음은 덤덤하여 매여있지 않으니 느낌을 느끼나, 그것에 혹하지 않습니다.
‘‘Yathāssa passato rūpaṃ, sevato cāpi vedanaṃ; Khīyati nopacīyati, evaṃ so caratī sato; Evaṃ apacinato dukkhaṃ, santike nibbānamuccati. 이처럼 形色을 보고, 色과 관련한 受도 느끼지만 줄지 늘리지는 않으면서, 이렇게 '다만 기억 할 뿐!'하면서 흘러 흘러 갑니다.
[*줄어들지 쌓지 않으면서, 이렇게 그는[기억은] 매여서 머무르지 않고 흘러 흘러 유행 합니다. evaṃ so caratī sato ↔ na sarati : [sar + a] remembers; moves along. 因緣의 흐름과 同行하는 기억 paṭissato ↔ sati muṭṭhā]
이처럼 괴로움을 쌓지 않으니, 열반은 멀지 않다고 합니다.
‘‘Na so rajjati saddesu, saddaṃ sutvā paṭissato; Virattacitto vedeti, tañca nājjhosa tiṭṭhati. 마음 챙기면서 소리를 듣고 소리에 물들지 않는 자는 애욕에 물들지 않은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거기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Yathāssa suṇato saddaṃ, sevato cāpi vedanaṃ; Khīyati nopacīyati, evaṃ so caratī sato; Evaṃ apacinato dukkhaṃ, santike nibbānamuccati. 그는 소리를 듣고 아울러 느낌도 감수하지만 [괴로움은] 소멸하고 쌓이지 않나니 그는 이처럼 마음챙기며 유행합니다. 이처럼 괴로움을 쌓지 않는 자에게 열반은 가깝다고 말하나이다.
VIII. 수행이익
대념처경에 수행의 이익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시는 것을 소개합니다.
차례대로 경 Mn111
95. ‘‘Puna caparaṃ, bhikkhave, sāriputto sabbaso ākiñcaññāyatanaṃ samatikkamm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17. "비구들이여, 다시 사리뿟따는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So tāya samāpattiyā sato vuṭṭhahati. So tāya samāpattiyā sato vuṭṭhahitvā ye dhammā [ye te dhammā (sī.)] atītā niruddhā vipariṇatā te dhamme samanupassati – ‘evaṃ kirame dhammā ahutvā sambhonti, hutvā paṭiventī’ti. 18. "그는 그 증득에서 마음챙기며 출정(出定)한다. 그는 그 증득에서 마음챙기면서 출정하여 과거에 소멸하고 변해버린 그 법들을 관찰[隨觀]한다. '이와 같이 이 법들은 없었는데 생겨나고, 있다가는 사라진다.'라고.
So tesu dhammesu anupāyo anapāyo anissito appaṭibaddho vippamutto visaṃyutto vimariyādīkatena cetasā viharati. So ‘atthi uttari nissaraṇa’nti pajānāti. Tabbahulīkārā atthitvevassa hoti. 그는 그 법들에 대해 홀리지 않고 저항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매이지 않고 벗어나고 자유롭고 한계가 없는 마음으로 머문다. 그는 '이보다 높은 벗어남이 있다.'라고 꿰뚫어 안다. 그것을 많이 닦았기 때문에 반드시 그것이 있다고 확신했다."
96. ‘‘Puna caparaṃ, bhikkhave, sāriputto sabbas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samatikkamma saññāvedayitanirodhaṃ upasampajja viharati. 19. "비구들이여, 다시 사리뿟따는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상수멸(想受滅)을 구족하여 머문다. Paññāya cassa disvā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그리고 그의 통찰지로 [진리를] 보아서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였다."
So tāya samāpattiyā sato vuṭṭhahati. So tāya samāpattiyā sato vuṭṭhahitvā ye dhammā atītā niruddhā vipariṇatā te dhamme samanupassati – ‘evaṃ kirame dhammā ahutvā sambhonti, hutvā paṭiventī’ti. 20. "그는 그 증득에서 마음챙기며 출정(出定)한다. 그는 그 증득에서 마음챙기면서 출정하여 과거에 소멸하고 변해버린 그 법들을 관찰[隨觀]한다. '이와 같이 이 법들은 없었는데 생겨나고, 있다가는 사라진다.'라고.
So tesu dhammesu anupāyo anapāyo anissito appaṭibaddho vippamutto visaṃyutto vimariyādīkatena cetasā viharati. So ‘natthi uttari nissaraṇa’nti pajānāti. Tabbahulīkārā natthitvevassa hoti. 그는 그 법들에 대해 홀리지 않고 저항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매이지 않고 벗어나고 자유롭고 한계가 없는 마음으로 머문다. 그는 '이보다 높은 벗어남이 없다.'라고 꿰뚫어 안다. 그것을 많이 닦았기 때문에 그것이 없다고 확신했다."
*비상비비상처와 상수멸에서도 작동하는 것이 sati인 것으로 이해되는 경입니다. 이 경지가 어떤 것인지는 짐작 할 수 없어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것만 기록해 둡니다.
실현해야 할 법 경(A4:189)
‘‘Katame ca, bhikkhave, dhammā satiyā sacchikaraṇīyā? Pubbenivāso, bhikkhave, satiyā sacchikaraṇīyo. 3."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마음챙김으로 실현해야 할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전생의 거주처가 마음챙김으로 실현해야 할 법들이다." *전생을 기억하는 명지를 3明의 하나인 宿命通이라고 합니다. 그 전생의 거주처 즉 숙명을 기억하여 아는 지혜는 사띠로 실현된다는 경설 입니다.
IX. 그외 기록들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면서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의 의미를 흔히 코 끝이나 인중에 대한 집중으로 설명하시는데 이 용어는 들숨날숨을 통한 사띠 수행에만 적용되는 용어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수행주제 혹은 話頭-장차 대面할 全 과정-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나서'라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고씽가 법문의 큰 경 Mn032 2. Mahāgosiṅgasuttaṃ
Api ca mamapi suṇātha yathārūpena bhikkhunā gosiṅgasālavanaṃ sobheyya. Idha, sāriputta, bhikkhu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o nisīdat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 ‘na tāvāhaṃ imaṃ pallaṅkaṃ bhindissāmi yāva me nānupādāya āsavehi cittaṃ vimuccissatī’ti. Evarūpena kho, sāriputta, bhikkhunā gosiṅgasālavanaṃ sobheyyā’’ti. 또한 그대들은 나의 말에 귀를 기우려라. 이와 같은 비구들이 고씽가 사라 숲을 밝힐 것이다. 사리뿟타여, 여기 비구는 오전에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와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 세우고 다음과 같이 전면에 마음챙김을 '벗어나지 못한 번뇌로부터 해탈하기 전에는 이 가부좌를 결코 풀지 않겠다.'라고 확립한다. 이런 비구들이 이 고씽가 사라 숲을 밝힐 것이다.
*사띠를 마음 지킴으로 이해하시는 분들이 혹시 이 부분을 간과한 것이 아닌지 하여 앞서 소개한 난다경을 소개합니다.
난다 경(A8:9)
Tatridaṃ, bhikkhave, nandassa indriyesu guttadvāratāya hoti. Sace, bhikkhave, nandassa puratthimā disā āloketabbā hoti, sabbaṃ cetasā samannāharitvā nando puratthimaṃ disaṃ āloketi – ‘evaṃ me puratthimaṃ disaṃ ālokayato nā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issantī’ti. Itiha tattha sampajāno hoti. 비구들이여, 여기서 이렇게 난다는 감각기능의 문을 보호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난다가 동쪽 방향을 보게 되면 마음을 완전히 집중한 채 난다는 동쪽 방향을 본다.- 내가 동쪽 방향을 볼 때 탐욕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이 흐르지 않기를!- 이라고 온 마음을 집중 하면서 그는 이처럼 여기서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온 마음을 집중 ⇒ 분명하게 앎 ⇒ 感官을 보호] [*여기서도 sampajāno hoti로 나타납니다. 즉 앞서 설명한대로 차제가 다릅니다.]
*사띠를 집중으로 번역함에 대해서:
이 또한 과거의 습관으로 되돌아가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즉 목적을 잊지 않으려고(=sati) 수행주제에 마음을 묶어둔다.의 다른 표현으로 생각됩니다.
길들임의 단계 경 Mn125
‘‘‘Evaṃ, devā’ti kho, aggivessana, hatthidamako rañño khattiyassa muddhāvasittassa paṭissutvā mahantaṃ thambhaṃ pathaviyaṃ nikhaṇitvā āraññakassa nāgassa gīvāyaṃ upanibandhati āraññakānañceva sīlānaṃ abhinimmadanāya āraññakānañceva sarasaṅkappānaṃ abhinimmadanāya āraññakānañceva darathakilamathapariḷāhānaṃ abhinimmadanāya gāmante abhiramāpanāya manussakantesu sīlesu samādapanāya. Tamenaṃ hatthidamako yā sā vācā nelā kaṇṇasukhā pemanīyā hadayaṅgamā porī bahujanakantā bahujanamanāpā tathārūpāhi vācāhi samudācarati. Yato kho, aggivessana, āraññako nāgo hatthidamakassa yā sā vācā nelā kaṇṇasukhā pemanīyā hadayaṅgamā porī bahujanakantā bahujanamanāpā tathārūpāhi vācāhi samudācariyamāno sussūsati, sotaṃ odahati, aññā cittaṃ upaṭṭhāpeti; tamenaṃ hatthidamako uttari tiṇaghāsodakaṃ anuppavecchati. ‘‘Yato kho, aggivessana, āraññako nāgo hatthidamakassa tiṇaghāsodakaṃ paṭiggaṇhāti, tatra hatthidamakassa evaṃ hoti – ‘jīvissati kho [nu kho (sī. ka.)] dāni āraññako [rañño (sī. pī.)] nāgo’ti. 악기웻사나여, 그 코끼리 조련사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폐하.'라고 관정한 끄샤뜨리야 왕에게 대답하고는 숲 속의 습관을 제어하고 숲 속의 ...생각[*기억과 생각]을 제어하고 숲 속의 근심과 피로와 열병을 제어하고 마을에 사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습관을 길들이기 위해 땅에다 큰 기둥을 박고 야생 코끼리의 목을 거기에 묶는다. 그러면 코끼리 조련사는 부드럽고 귀에 즐겁고 사랑스럽고 가슴에 와 닿고 온화하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한다. 악기웻사나여, 야생 코끼리는 코끼리 조련사가 하는 부드럽고 귀에 즐겁고 사랑스럽고 가슴에 와 닿고 온화하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들으면 들으려 하고 귀를 기우리고 이해하려 애쓴다. 그러면 코끼리 조련사는 다시 건초와 물로써 보답한다. 악기웻사나여, 야생 코끼리가 그가 주는 건초와 물을 받아먹으면 코끼리 조련사는 '이제 왕의 코끼리는 살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
Seyyathāpi aggivessana, hatthidamako mahantaṃ thambhaṃ paṭhaviyaṃ nikhaṇitvā āraññakassa nāgassa gīvāyaṃ upanibandhati. Āraññakānañceva sīlānaṃ abhinimmadanāya, āraññakānañceva sarasaṅkappānaṃ abhinimmadanāya, āraññakānañceva darathakilamathapariḷāhānaṃ abhinimmadanāya, gāmante abhiramāpanāya, manussakantesu sīlesu sampādanāya1 evameva kho aggivessana, ariyasāvakassa ime cattāro satipaṭṭhānā cetaso upanibandhanā honti. Gehasitānañceva sīlānaṃ abhinimmadanāya, gehasitānañceva sarasaṅkappānaṃ abhinimmadanāya, gehasitānañceva darathakilamathapariḷāhānaṃ abhinimmadanāya, ñāyassa adhigamāya nibbānassa sacchikiriyāya. 숲속의 습관을 제거하고, 숲 속의 기억과 생각을 없애버리고 숲 속의 근심과 피곤과 고뇌를 제거하고 마을에서 즐기며, 사람들에게 맞는 습관을 길들이기 위해 땅위에 큰 기둥을 박고 숲 속의 코끼리의 그 목을 붙잡아 매듯, 네 가지 sati의 확립은 재가 생활의 습관을 제거하고, 재가 생활의 기억과 생각을 없애버리고, 재가 생활의 근심과 피곤과 고뇌를 제거하고 바른 길을 얻게 하고 열반을 실현시키기 위해 성스러운 제자의 마음을 붙잡아 맨다.
*본 경과 같은 내용/단어를 [초불의] 앙굿따라 니까야와 상윳따 니까야에서는 '재가 생활의 sarasaṅkappānaṃ기억과 생각을 없애버리고'라고 번역한 것을 그후 발간된 맛찌마 니까야에서는 '치달리는(재빠른) 생각'으로 번역한 것은 기억이라는 의미를 굳이 뺄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본 경에서는 그 부분[숲 속의 ...생각[*기억과 생각]을]에 대한 번역이 누락(...)되었습니다.
*II.네 가지(身受心法)에 대한 바른 기억이 확립되도록 I.(네 가지에) 마음을 꽉 붙들어 맨다. 과거의 습관 기억 생각 근심 피곤 고뇌 제거하고 →[지금여기]→ 미래의 바른 길 얻고 열반 실현하기 위해 즉 잘못된 기억(妄念)을 바른 기억(正念)으로 물갈이 하고 정화하기 위한 수행으로서 sati수행 이것은 다음 경과 관련 있는 것 같습니다.
Mn33 소치는 사람에 대한 큰 경, A11:18 소치는 사람 경
‘‘Kathañca, bhikkhave, bhikkhu na gocarakusalo hoti? Idha, bhikkhave, bhikkhu cattāro satipaṭṭhāne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na gocarakusalo hoti.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방목지(*소들에게 안전한 행동영역)에 능숙하지 못한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방목지에 능숙하지 못하다.
*수행자에게 안전한 행동영역은 4념처*
괴로움을 일으키는 법 경(S35:244)
‘‘Tassa ce, bhikkhave, bhikkhuno evaṃ carato evaṃ viharato kadāci karahaci satisammosā uppajjanti, pāpakā akusalā sarasaṅkappā saṃyojaniyā, dandho, bhikkhave, satuppādo. Atha kho naṃ khippameva pajahati vinodeti byantīkaroti anabhāvaṃ gameti. 10. 비구들이여, 비구가 이렇게 행동하고 이렇게 머물 때 그가 이따금씩 마음챙김을 놓아 버리기 때문에 족쇄와 관계된 기억과 사유가 있는 나쁘고 해로운 법[불선법]들이 일어나게 되면 비록 마음챙김이 느리게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는 즉시에 그것을 버리고 제거하고 끝장내고 존재하지 않게 한다.☸
<*satisammosā 마음챙김으로 번역된 sati와 기억으로 번역된 sara-는 모두 기억 √smṛ 살아가는 도중 (바르게) 기억한 것과 기억할 것을 깜빡깝빡 잊어 버려 족쇄와 연결되는 (바르지 못한) 기억과 생각이 때때로 일어나지만 다시 (바른) 기억이 되살아 나는 것은 느릴지라도 일단 (바른) 기억이 다시 생겨나면 족쇄와 연결된 기억과 생각은 빨리 제거된다.>
귀로 들음 경(A4:191) : *반복학습의 효과를 보여주시는 경
So muṭṭhassati [muṭṭhassatī (sī.)] kālaṃ kurumāno aññataraṃ devanikāyaṃ upapajjati. Tassa tattha sukhino dhammapadā plavanti [pilapanti (sī. syā. kaṃ. pī.)]. Dandho, bhikkhave, satuppādo; atha so satto khippaṃyeva visesagāmī hoti. Sotānugatānaṃ, bhikkhave, dhammānaṃ, vacasā paricitānaṃ, manasānupekkhitānaṃ, diṭṭhiyā suppaṭividdhānaṃ ayaṃ paṭhamo ānisaṃso pāṭikaṅkho. 그는 [배운 것을] 잊어 버리고(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죽어서, 어떤 神의 무리에 태어난다. 그곳에서 행복한 그에게 [전생에 배운 법들] 법문의 구절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비구들이여, 그에게 기억이 [되살아 나는 것은] 느리나, 그 중생은 특별함으로 빨리 인도된다. 비구들이여, [今生에서] 반복적으로 들은 법들, 말로서 친숙해 진 것들, 마음으로 숙고한 것들, 견해로 완전히 꿰뚫은 것들에서 기대되는 [來生] 1번째 이익이다. ......
api ca kho opapātiko opapātikaṃ sāreti – ‘sarasi tvaṃ, mārisa, sarasi tvaṃ, mārisa, yattha mayaṃ pubbe brahmacariyaṃ acarimhā’ti. So evamāha – ‘sarāmi, mārisa, sarāmi, mārisā’ti. 그러나 [먼저 그곳에] 화현한 자가 [나중에 그곳에] 화현한 그에게 '존자여, 당신은 기억 하십니까? 우리는 전생에 청정범행을 닦았지 않습니까?'라고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그러면 그는 기억난다고 말한다.
Dandho, bhikkhave, satuppādo; atha so satto khippaṃyeva visesagāmī hoti. 비구들이여, 그에게 기억이 [되살아 나는 것은] 느리나, 그 중생은 특별함으로 빨리 인도된다.
Seyyathāpi, bhikkhave, dve sahāyakā sahapaṃsukīḷikā [sahapaṃsukīḷakā (syā. kaṃ.)]. Te kadāci karahaci aññamaññaṃ samāgaccheyyuṃ. Añño pana [samāgaccheyyuṃ, tamenaṃ (sī. syā. kaṃ. pī.)] sahāyako sahāyakaṃ evaṃ vadeyya – ‘idampi, samma, sarasi, idampi, samma, sarasī’ti. So evaṃ vadeyya – ‘sarāmi, samma, sarāmi, sammā’ti. 비구들이여, 마치 [어릴 때] 흙장난 하고 놀던 두 친구가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서로 만난 것과 같다. 그러면 [그 흙장난을 두고]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여보게, 이것을 기억하는가? 여보게 이것을 기억하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다른 친구는 '여보게 기억 한다네! 여보게 기억 하고 말고!'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삼매 경2(A4:93)
자신을 返照하여 내적 心.止.(cetosamatha)와 增上.般若.法.觀(adhipaññādhammavipassanā)을 얻지 못했다. 라고 알게 되면 sati와 sampajañña를 행해야 한다.
*즉 止.觀.(을) 雙(으로 얻기 위한)修행은 사띠 수행.
1. 14. 4. 2. Etadaggaṃ bhikkhave mama sāvakaṃ bhikkhūnaṃ satimantānaṃ yadidaṃ ānando, 마음챙김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아난다가 으뜸이다. [* 기억에서는 아난다가 최고이다.] [*하단 註 112) 아난다 장로는 부처님 말씀을 수지한 뒤에 그것을 호지하는 마음챙김(dhāraṇka-sati)이 다른 장로들보다 더 강했기 때문에 마음챙김을 가진 자(satimā)들 가운데서 으뜸이라 한다.(AA.i.286)]
A5:15
Kattha ca bhikkhave satibalaṃ daṭṭhabbaṃ: catusu satipaṭṭhānesu. Ettha satibalaṃ daṭṭhabbaṃ. 네 (곳- 신.수.심.법에 대한) 확립된 기억에서, 이곳[四處]에서 (비구 본인의) 기억력을 보아야 한다.
* 네 가지가 아닌 세 가지 새김의 토대에 대한 유일한 經 [*전재성 선생님 역]
여섯 감역에 대한 분석의 경 Mn137
311. ‘‘‘Tayo satipaṭṭhānā yadariyo sevati, yadariyo sevamāno satthā gaṇamanusāsitumarahatī’ti – iti kho panetaṃ vuttaṃ; kiñcetaṃ paṭicca vuttaṃ? 22. ‘고귀한 님이 닦는 세 가지 새김의 토대가 있는데, 그것을 닦음으로써 고귀한 님은 스승으로서 무리를 가르칠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은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인가?
Idha, bhikkhave, satthā sāvakānaṃ dhammaṃ deseti anukampako hitesī anukampaṃ upādāya – ‘idaṃ vo hitāya, idaṃ vo sukhāyā’ti. Tassa sāvakā na sussūsanti, na sotaṃ odahanti, na aññā cittaṃ upaṭṭhapenti, vokkamma ca satthusāsanā vattanti. Tatra, bhikkhave, tathāgato na ceva anattamano hoti, na ca anattamanataṃ paṭisaṃvedeti, anavassuto ca viharati sato sampajāno. 1) 수행승들이여, 스승은 제자들을 애민히 여기고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자비를 드리워 제자들에게 ‘이것이 그대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이것들이 그대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라고 가르침을 설한다. 그런데 그의 제자들은 잘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잘 귀를 기울이지 않고, 지혜로운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빗나가서 스승의 가르침으로부터 등을 돌린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에 대하여 여래는 만족하지 않아 만족하지 않는 것을 느끼지만, [*逆 번역:판본의 출입] 동요하지 않고 새김을 확립하고 알아차린다.
Idaṃ, bhikkhave, paṭhamaṃ satipaṭṭhānaṃ yadariyo sevati, yadariyo sevamāno satthā gaṇamanusāsitumarahati.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첫 번째 새김의 토대가 있어, 고귀한 님은 그것을 닦으며, 그것을 닦음으로써 스승으로서 무리를 가르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앞서 소개된 경에 나오는 律을 소개합니다. 량이 좀 많습니다만
주목할 단어: sati, sarāmi, sarati, sāraṇīya / saraṇīya / sārānīya 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사마가마 경 Mn104
47. ‘‘Kathañcānanda, sammukhāvinayo hoti? Idhānanda, bhikkhū vivadanti dhammoti vā adhammoti vā vinayoti vā avinayoti vā. Tehānanda, bhikkhūhi sabbeheva samaggehi sannipatitabbaṃ. Sannipatitvā dhammanetti samanumajjitabbā. Dhammanettiṃ samanumajjitvā yathā tattha sameti tathā taṃ adhikaraṇaṃ vūpasametabbaṃ. Evaṃ kho, ānanda, sammukhāvinayo hoti; evañca panidhekaccānaṃ adhikaraṇānaṃ vūpasamo hoti yadidaṃ – sammukhāvinayena. 14. "아난다여, 어떤 것이 ① 직접 대면하여 수습하는 것인가? 아난다여, 여기 비구들이 '이것이 법이고, 이것은 법이 아니다. 이것은 율이고 이것은 율이 아니다.'라고 분쟁을 일으킨다. 아난다여, 그 비구들은 모두 화합하여 모여야 한다. 함께 모여서 법도를 만들어야 한다. 법도를 만들고 나서 그에 따라서 공사를 가라앉혀야 한다. 아난다여, 이렇게 직접 대면하여 수습해야 한다. 이와 같이 직접 대면하여 수습함으로써 여기 어떤 대중공사들은 가라앉게 된다."
48. ‘‘Kathañcānanda, yebhuyyasikā hoti? Te ce, ānanda, bhikkhū na sakkonti taṃ adhikaraṇaṃ tasmiṃ āvāse vūpasametuṃ. Tehānanda, bhikkhūhi yasmiṃ āvāse bahutarā bhikkhū so āvāso gantabbo. Tattha sabbeheva samaggehi sannipatitabbaṃ. Sannipatitvā dhammanetti samanumajjitabbā. Dhammanettiṃ samanumajjitvā yathā tattha sameti tathā taṃ adhikaraṇaṃ vūpasametabbaṃ. Evaṃ kho, ānanda, yebhuyyasikā hoti, evañca panidhekaccānaṃ adhikaraṇānaṃ vūpasamo hoti yadidaṃ – yebhuyyasikāya. 15. "아난다여, 어떤 것이 ② 다수결에 따르는 것인가? 아난다여, 만일 그 비구들이 그 대중공사를 그 처소에서 가라앉히지 못하면 그 비구들은 많은 비구가 머무는 그런 처소로 가야 한다. 거기서 모두를 화합하여 모여야 한다. 함께 모여서 법도를 만들어야 한다. 법도를 만들고 나서 그에 따라서 공사를 가라앉혀야 한다. 아난다여, 이렇게 다수결에 따른다. 이와 같이 다수결에 따라 여기 어떤 대중공사들은 가라앉게 된다."
49. ‘‘Kathañcānanda, sativinayo hoti? Idhānanda, bhikkhū bhikkhuṃ evarūpāya garukāya āpattiyā codenti pārājikena vā pārājikasāmantena vā – ‘saratāyasmā evarūpiṃ [evarūpaṃ (sī. syā. kaṃ. pī.) evarūpāya-iti vuccamānavacanena sameti. vinayenapi saṃsandetabbaṃ] garukaṃ āpattiṃ āpajjitā pārājikaṃ vā pārājikasāmantaṃ vā’ti? So evamāha – ‘na kho ahaṃ, āvuso, sarāmi evarūpiṃ garukaṃ āpattiṃ āpajjitā pārājikaṃ vā pārājikasāmantaṃ vā’ti. Tassa kho [tassa kho evaṃ (sabbattha)], ānanda, bhikkhuno sativinayo dātabbo. Evaṃ kho, ānanda, sativinayo hoti, evañca panidhekaccānaṃ adhikaraṇānaṃ vūpasamo hoti yadidaṃ – sativinayena. 16. "아난다여, 어떤 것이 ③ 기억을 일깨워 수습하는 것인가? 아난다여, 여기 비구들이 '존자는 빠라지까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그런 계를 범한 것을 기억합니까?'라고 어떤 비구를 빠라지까나 빠라지까에 근사한 그런 법을 범했다고 질책한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도반들이여, 나는 빠라지까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그런 계를 범한 것을 기억이 없습니다.'라고. 아난다여, 그런 비구에게는 이렇게 기억을 일깨워 수습해야 한다. 아나다여, 이렇게 기억을 일깨워 수습한다. 이렇게 기억을 일깨워 수습함으로써 여기 어떤 대중공사들은 가라앉게 된다."
[*pārājika: 바라이죄(波羅夷罪)]
50. ‘‘Kathañcānanda, amūḷhavinayo hoti? Idhānanda, bhikkhū bhikkhuṃ evarūpāya garukāya āpattiyā codenti pārājikena vā pārājikasāmantena vā – ‘saratāyasmā evarūpiṃ garukaṃ āpattiṃ āpajjitā pārājikaṃ vā pārājikasāmantaṃ vā’ti? (So evamāha – ‘na kho ahaṃ, āvuso, sarāmi evarūpiṃ garukaṃ āpattiṃ āpajjitā pārājikaṃ vā pārājikasāmantaṃ vā’ti. Tamenaṃ so nibbeṭhentaṃ ativeṭheti – ‘iṅghāyasmā sādhukameva jānāhi yadi sarasi evarūpiṃ garukaṃ āpattiṃ āpajjitā pārājikaṃ vā pārājikasāmantaṃ vā’ti.) [( ) etthantare pāṭho cūḷava. 237 natthi tassapāpiyasikāvāreevetena bhavitabbaṃ] 17. "아난다여, 어떤 것이 ④ 정신질환 상태였음을 인정하여 수습하는 것인가? 아난다여, 여기 비구들이 '존자는 빠라지까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그런 계를 범한 것을 기억합니까?'라고 어떤 비구를 빠라지까나 빠라지까에 근사한 그런 법을 범했다고 질책한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도반들이여, 나는 빠라지까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그런 계를 범한 기억이 없습니다.'라고. 그가 이와 같이 부정함에도 그들은 '이보시오, 존자가 빠라지까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그런 계를 범한 것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잘 알아내야 합니다.'라고 추궁한다.
So evamāha – ‘ahaṃ kho, āvuso, ummādaṃ pāpuṇiṃ cetaso vipariyāsaṃ. Tena me ummattakena bahuṃ assāmaṇakaṃ ajjhāciṇṇaṃ bhāsitaparikkantaṃ [bhāsitaparikantaṃ (sī. syā. kaṃ. pī.)]. Nāhaṃ taṃ sarāmi. Mūḷhena me etaṃ kata’nti. Tassa kho [tassa kho evaṃ (syā. kaṃ. ka.)], ānanda, bhikkhuno amūḷhavinayo dātabbo. Evaṃ kho, ānanda, amūḷhavinayo hoti, evañca panidhekaccānaṃ adhikaraṇānaṃ vūpasamo hoti yadidaṃ – amūḷhavinayena.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도반들이여, 나는 그때 실성하여 정신이 나가있었습니다. 내가 실성하여 사문답지 않은 행동과 말을 많이 저질렀나봅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내가 실성하여 이것을 행했습니다.'라고. 아난다여, 그런 비구에게는 정신질환 상태였음을 인정하여 수습해야 한다. 아난다여, 이렇게 정신질환 상태였음을 인정하여 수습한다. 이와 같이 정신질환 상태였음을 인정하여 수습함으로써 여기 어떤 대중공사들은 가라앉게 된다."
51. ‘‘Kathañcānanda, paṭiññātakaraṇaṃ hoti? Idhānanda, bhikkhu codito vā acodito vā āpattiṃ sarati, vivarati uttānīkaroti [uttāniṃ karoti (ka.)]. Tena, ānanda, bhikkhunā vuḍḍhataraṃ bhikkhuṃ [vuḍḍhataro bhikkhu (sī. syā. kaṃ. pī.)] upasaṅkamitvā ekaṃsaṃ cīvaraṃ katvā pāde vanditvā ukkuṭikaṃ nisīditvā añjaliṃ paggahetvā evamassa vacanīyo – ‘ahaṃ, bhante, itthannāmaṃ āpattiṃ āpanno, taṃ paṭidesemī’ti. So evamāha – ‘passasī’ti? ‘Āma passāmī’ti. ‘Āyatiṃ saṃvareyyāsī’ti. (‘Saṃvarissāmī’ti.) [( ) vinaye natthi] Evaṃ kho, ānanda, paṭiññātakaraṇaṃ hoti, evañca panidhekaccānaṃ adhikaraṇānaṃ vūpasamo hoti yadidaṃ – paṭiññātakaraṇena. 18. "아난다여, 어떤 것이 ⑤ 고백하는 것인가?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질책을 받든 질책을 받지 않든 간에 죄를 범한 것을 기억하고 드러내고 공개한다. 아난다여, 그 비구는 원로 비구를 뵈러 가서 한쪽 어깨로 윗옷을 입고 발에 절을 올리고 쪼그리고 앉아 합장한 채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존자시여, 저는 이러이러한 계를 범했습니다. 그것을 고백합니다.' 다른 [비구는] 말한다. '[범한 것을] 봅니까?' '봅니다.' '앞으로는 [다시 짓지 않도록] 단속하겠습니까?' '단속할 것입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고백한다. 이와 같이 고백함으로써 여기 어떤 대중공사들은 가라 앉게 된다."
52. ‘‘Kathañcānanda, tassapāpiyasikā hoti? Idhānanda, bhikkhu bhikkhuṃ evarūpāya garukāya āpattiyā codeti pārājikena vā pārājikasāmantena vā – ‘saratāyasmā evarūpiṃ garukaṃ āpattiṃ āpajjitā pārājikaṃ vā pārājikasāmantaṃ vā’ti? So evamāha – ‘na kho ahaṃ, āvuso, sarāmi evarūpiṃ garukaṃ āpattiṃ āpajjitā pārājikaṃ vā pārājikasāmantaṃ vā’ti. 19. "아난다여, 어떤 것이 ⑥ 그의 악행을 판결함인가? 아난다여, 여기 비구들이 '존자는 빠라지까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그런 계를 범한 것을 기억합니까?'라고 어떤 비구를 빠라지까나 빠라지까에 근사한 그런 법을 범했다고 질책한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도반들이여, 나는 빠라지까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그런 계를 범한 기억이 없습니다.'라고.
Tamenaṃ so nibbeṭhentaṃ ativeṭheti – ‘iṅghāyasmā sādhukameva jānāhi yadi sarasi evarūpiṃ garukaṃ āpattiṃ āpajjitā pārājikaṃ vā pārājikasāmantaṃ vā’ti. So evamāha – ‘na kho ahaṃ, āvuso, sarāmi evarūpiṃ garukaṃ āpattiṃ āpajjitā pārājikaṃ vā pārājikasāmantaṃ vā; sarāmi ca kho ahaṃ, āvuso, evarūpiṃ appamattikaṃ āpattiṃ āpajjitā’ti. 그가 이와 같이 부정함에도 그들은 '이보시오, 존자가 빠라지까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그런 계를 범한 것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잘 알아내야 합니다.'라고 추궁한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도반들이여, 나는 빠라지까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그런 계를 범한 기억이 없습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나 나는 이러한 사소한 계를 범한 것은 기억합니다.'라고.
Tamenaṃ so nibbeṭhentaṃ ativeṭheti – ‘iṅghāyasmā sādhukameva jānāhi yadi sarasi evarūpiṃ garukaṃ āpattiṃ āpajjitā pārājikaṃ vā pārājikasāmantaṃ vā’ti? So evamāha – ‘imañhi nāmāhaṃ, āvuso, appamattikaṃ āpattiṃ āpajjitvā apuṭṭho paṭijānissāmi. Kiṃ panāhaṃ evarūpiṃ garukaṃ āpattiṃ āpajjitvā pārājikaṃ vā pārājikasāmantaṃ vā puṭṭho napaṭijānissāmī’ti? 그가 이와 같이 부정함에도 그들은 '이보시오, 존자가 빠라지까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그런 계를 범한 것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잘 알아내야 합니다.'라고 추궁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도반들이여, 내게 묻지 않아도 나는 이러한 사소한 계를 범한 것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내게 물었는데 어찌 내가 이런 빠라지까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그런 계를 범한 것을 인정하지 않겠습니까?'라고.
So evamāha – ‘imañhi nāma tvaṃ, āvuso, appamattikaṃ āpattiṃ āpajjitvā apuṭṭho napaṭijānissasi, kiṃ pana tvaṃ evarūpiṃ garukaṃ āpattiṃ āpajjitvā pārājikaṃ vā pārājikasāmantaṃ vā puṭṭho [apuṭṭho (syā. kaṃ. ka.)] paṭijānissasi? Iṅghāyasmā sādhukameva jānāhi yadi sarasi evarūpiṃ garukaṃ āpattiṃ āpajjitā pārājikaṃ vā pārājikasāmantaṃ vā’ti. 다른 자가 말한다. '도반이여, 그대는 묻지 않았다면 이러한 사소한 계를 범한 것도 인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묻는다고 어찌 그대가 이런 빠라지까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그런 계를 범한 것을 인정하겠습니까? 이보시오, 존자가 빠라지까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그런 계를 범한 것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잘 알아내야 합니다.'라고.
So evamāha – ‘sarāmi kho ahaṃ, āvuso, evarūpiṃ garukaṃ āpattiṃ āpajjitā pārājikaṃ vā pārājikasāmantaṃ vā. Davā me etaṃ vuttaṃ, ravā me etaṃ vuttaṃ – nāhaṃ taṃ sarāmi evarūpiṃ garukaṃ āpattiṃ āpajjitā pārājikaṃ vā pārājikasāmantaṃ vā’ti. Evaṃ kho, ānanda, tassapāpiyasikā hoti, evañca panidhekaccānaṃ adhikaraṇānaṃ vūpasamo hoti yadidaṃ – tassapāpiyasikāya.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빠라지까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그런 계를 범한 것을 기억합니다. 제가 너무 성급하고 당황하여 빠라지까나 빠라지까에 가까운 그런 계를 범한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라고. 아난다여, 이렇게 그 사람의 악행을 판결한다. 이와 같이 그 사람의 악행을 판결함으로써 여기 어떤 대중공사들은 가라앉게 된다."
53. ‘‘Kathañcānanda, tiṇavatthārako hoti? Idhānanda, bhikkhūnaṃ bhaṇḍanajātānaṃ kalahajātānaṃ vivādāpannānaṃ viharataṃ bahuṃ assāmaṇakaṃ ajjhāciṇṇaṃ hoti bhāsitaparikkantaṃ. Tehānanda, bhikkhūhi sabbeheva samaggehi sannipatitabbaṃ. Sannipatitvā ekatopakkhikānaṃ bhikkhūnaṃ byattena [byattatarena (sī. pī. ka.)] bhikkhunā uṭṭhāyāsanā ekaṃsaṃ cīvaraṃ katvā añjaliṃ paṇāmetvā saṅgho ñāpetabbo – ‘Suṇātu me, bhante, saṅgho. Idaṃ amhākaṃ bhaṇḍanajātānaṃ kalahajātānaṃ vivādāpannānaṃ viharataṃ bahuṃ assāmaṇakaṃ ajjhāciṇṇaṃ bhāsitaparikkantaṃ. Yadi saṅghassa pattakallaṃ, ahaṃ yā ceva imesaṃ āyasmantānaṃ āpatti yā ca attano āpatti, imesañceva āyasmantānaṃ atthāya attano ca atthāya, saṅghamajjhe tiṇavatthārakena deseyyaṃ, ṭhapetvā thullavajjaṃ ṭhapetvā gihipaṭisaṃyutta’’’nti. 20. "아난다여, 어떤 것이 ⑦ 짚으로 덮는 것인가? 아난다여, 여기 비구들이 싸우고 말다툼하고 분쟁에 휘말려 사문답지 않은 행동과 말을 많이 하게 되면 그 비구들은 모두 화합하여 모여야 한다. 모여서 어느 한쪽 편을 드는 비구들 중에서 더 학식이 높은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로 윗옷을 입고 합장한 채 승가 대중에게 고해야 한다. '존자들이여, 승가 대중은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우리는 싸우고 말다툼하고 분쟁에 휘말려 사문답지 않은 행동과 말을 많이 해왔습니다. 만일 승가 대중이 허락해주신다면 이 존자들과 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 존자들의 잘못과 제 자신의 잘못 가운데 중대한 잘못과 신도들과 관련된 잘못을 제외하고 어떠한 잘못이라도 승가 대중 앞에서 짚으로 덮어두는 방식으로 고백합니다.'라고.
‘‘Athāparesaṃ ekatopakkhikānaṃ bhikkhūnaṃ byattena bhikkhunā uṭṭhāyāsanā ekaṃsaṃ cīvaraṃ katvā añjaliṃ paṇāmetvā saṅgho ñāpetabbo – ‘Suṇātu me, bhante, saṅgho. Idaṃ amhākaṃ bhaṇḍanajātānaṃ kalahajātānaṃ vivādāpannānaṃ viharataṃ bahuṃ assāmaṇakaṃ ajjhāciṇṇaṃ bhāsitaparikkantaṃ. Yadi saṅghassa pattakallaṃ, ahaṃ yā ceva imesaṃ āyasmantānaṃ āpatti yā ca attano āpatti, imesañceva āyasmantānaṃ atthāya attano ca atthāya, saṅghamajjhe tiṇavatthārakena deseyyaṃ, ṭhapetvā thullavajjaṃ ṭhapetvā gihipaṭisaṃyutta’’’nti. 그러면 반대쪽 편을 드는 비구들 중에서 더 학식이 높은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로 윗옷을 입고 합장한 채 승가 대중에게 고해야 한다. '존자들이여, 승가 대중은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우리는 싸우고 말다툼하고 분쟁에 휘말려 사문답지 않은 행동과 말을 많이 해왔습니다. 만일 승가 대중이 허락해주신다면 이 존자들과 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 존자들의 잘못과 제 자신의 잘못 가운데 중대한 잘못과 신도들과 관련된 잘못을 제외하고 어떠한 잘못이라도 승가 대중 앞에서 짚으로 덮어두는 방식으로 고백합니다.'라고.
‘‘Evaṃ kho, ānanda, tiṇavatthārako hoti, evañca panidhekaccānaṃ adhikaraṇānaṃ vūpasamo hoti yadidaṃ – tiṇavatthārakena. 아난다여, 이렇게 짚으로 덮어둔다. 이와 같이 짚으로 덮음으로써 여기 어떤 대중공사들은 가라앉게 된다."
마치면서
sati와 함께 남쪽에서 들려온 아름다운 소식에 기뻐합니다. 그러한 소식을 전해주시고 역경해주신 퇴현 전재성 선생님, 초기불전 연구원의 대림 스님과 각묵 스님을 비롯하여 여러 관련 단체와 법사님들과 논문을 송출해 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특별한 언급이 없는 경우 초불 譯입니다. 어렵게 번역하신 경을 sati에 대해서 임의적으로 바꾼 점 용서구합니다.
사띠라는 단어에 대해서 많은 의견들이 있고 지금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압니다. 잘못 기억하고 있고, 그 잘못된 기억에 바탕 하여 또 다시 잘못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것을 반복적인 注視를 통하여 바른 기억으로 물갈이 淨化하는 것이 사띠 수행이 아닌가 합니다.
'사띠의 의미는 기억이다.'라고 저는 너무나 단순하게 이해되었습니다. 혹시 저의 고집이 보이시면 법다운 설명을 청합니다. 학자도 아니고 팔리어도 모르는 재가불자가 부처님 법 만나 공부하는 과정으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봄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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