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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있는 한국과학영재학교.
카이스트는 올해 치러지는 2010학년도 대입에서 올림피아드 대회 등 각종 경시대회 수상실적을 전혀 반
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달 5일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카이스트의 입시 개혁안을 발표한 서남표 총장은 대신 전체 모집 정원의 18%인 150명을 학교장 추천을 받아 별도로 선발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올해부터 카이스트 부설로 전환한 한국과학영재학교도 2010학년도부터 경시대회 성적 반영 비중을 대폭 줄이고 2011학년도부터는 경시대회 실적을 아예 반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카이스트의 입학사정관을 한국과학영재학교에 배치해 농어촌 출신의 잠재력 있는 학생을 직접 발굴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올림피아드 대회 과열로 인해 생기는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공공의 적이 된 수학-과학 올림피아드'
http://blog.joins.com/n127/10603765 )
1991년 개교한 부산과학고는 2003년 한국과학영재학교로 바뀌었습니다. 올해로 과학영재학교 전환 7년
째를 맞이했습니다. 이 학교는 과거 7년간 입시를 어떻게 치렀을까요.
[출처=한국과학영재학교 홈페이지]
2003년부터 매년 144명을 선발하고 있는 한국과학영재학교는 중학교 재학생이나 졸업생 또는 이에 상응
한 자격을 갖춘 학생이면 학년에 관계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습니다. 전형은 1단계 '기록물평가', 2단계 '창의적 문제 해결력 검사', 마지막 3단계 '과학 캠프 심층면접'을 실시합니다. 각 단계를 통과해야 다음 단계를 볼 수 있습니다.
1단계 '기록물 평가'는 서류전형과 다름 없습니다. 지원자 중 1800명 정도를 가려냅니다. 이들 1단계 통과자는 '창의적 문제 해결력 검사'라는 2단계 전형을 거치는데 이는 수학, 과학 지필시험과 같습니다. 지필시험을 통해 210~220명을 뽑아 3단계 '과학캠프 심층면접'을 봅니다.
서남표 총장이 2011학년도 입시부터 아예 반영하지 않겠다고 한 경시대회 수상 실적은 지금까지 정원의 12배 이상을 선발하는 1단계 서류전형에서만 적용될 뿐, 합격과 불합격을 좌우하는 지필시험과 심층면접
에서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올림피아드 대회 등 수상 실적은 현재도 한국과학영재학교 합격 여부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죠('과학고와 과학영재학교 무엇이 다른가'
카이스트가 2010년부터 올림피아드 수상 실적을 반영하지 않고 입학사정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강조
하기 위해 올 3월 카이스트 부설로 전환한 한국과학영재학교를 슬쩍 끼워넣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
다.
서 총장은 앞으로 한국과학영재학교 입시에도 입학사정관 제도를 도입할 것이라고 했죠.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요.
한국과학영재학교는 신입생을 선발하며 각 단계별 전형의 배점과 사정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
고 있습니다. 단지 1단계는 '기록물에 의한 영재성 평가', 지필고사인 2단계는 '수학, 과학 분야의 창의적
해결 능력 평가', 최종 3단계는 '과학적 문제 해결력, 창의성, 인성 종합 평가'한다고만 적고 있습니다.
입시 설명자료에 따르면 그 이유는 "이미 입시를 준비하는 연령이 초등학교로 내려가 있는 상황에서 그
점수만을 목표로 한 '점수 따기 공부를 하게 될 우려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사교육 때문'이라는 것
이죠.
전형 기준이 없는 입시가 공정성을 가질 수 있을까요.
지필시험 2단계 전형은 수학과 과학(물리, 화학, 생물, 지학) 시험을 봅니다. 3단계 전형에 임할 학생을
총점으로 가리는지, 다른 과목 점수는 낮아도 특정 한 과목만 잘 보면 뽑힐 수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
다. 3박4일간 합숙하며 치러지는 '과학캠프 심층면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단계별 전형위원회가 결
정한다고만 합니다. 결정 사항은 전혀 공개되지 않습니다. 밀실 사정의 소지가 있는 것이죠.
지난해 여름에 치러진 두 영재학교, 서울과학고와 한국과학영재학교 최종합격자 발표 후 수험생들 사이
에 우스개 소리가 돌았습니다. "서울과학고에 응시자 중 합격한 학생은 왜 합격했는지 고배를 마신 학생은
왜 떨어졌는지를 알지만 한국과학영재학교의 경우 합격자도 불합격자도 왜 걸리고 왜 떨어졌는지를 잘 모
르겠다"는 말입니다.
응시한 학생들은 사정기준도 모른 채 '맨 땅 헤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이렇게 해서 사교육은 줄어들었을까요.
한국과학영재학교 2009학년도 입시 2단계 전형이 치러진 지난해 7월 13일 대전의 한 고등학교.
학교 안에 관광버스 4대가 줄지어 서있었습니다. 이날 시험을 보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태우고 온 차량
입니다. 버스 옆에 걸린 플래카드에는 학원 이름이 선명하게 나옵니다. 서울에 있는 한국과학영재학교 입
시 전문학원입니다. 플래카드에 쓰인 내용에 따르면 2008학년도 한국과학영재학교 입시에서 이 학원 출신
이 51명이나 합격했다고 합니다. 과장이 있을 수 있지만 정원 144명의 38%를 차지합니다. 또 이 학원 홈페
이지에 따르면 2009학년도 입시에서는 49명(정원의 34%)이 합격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날 시험이 치러진 학교 안에는 이 학원 뿐만 아니라 서울의 여러 영재학교 입시 전문학원에서 나온 관
계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2009학년도 입시에서 49명 합격시켰다고 주장하는 이 학원은 한국과학영재학교(많은 사람들은 부산영
재고라고 부름) 입시를 대비하기 위한 1년짜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입시가 매년 6월말에서 8월
사이에 치러지기 때문에 전년도 9월부터 다음해 8월까지 이어집니다. 강의 시간은 1주일에 보통 15시간이
지만 많을 때는 20시간이 넘습니다. 수학과 과학을 줄기차게 파는 것이죠. 당연히 수강료도 비쌀 수밖에 없
습니다.
이런 학원에 중학생들이 몰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국과학영재학교 전형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
에 학생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철저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학교가 제시하는 '창의적 문제 해결력'이
라는 알쏭달쏭한 기준이 되레 수험생들을 더 많이 학원으로 내모는 것이 현실입니다.
서남표 총장의 '입학사정관 제도 도입' 발언 후 교육과학기술부는 과학고도 같은 제도를 도입할 계획을
내비쳤습니다. 대입에서도 아직 정착되지 않는 제도를 과학고에까지 도입한다면 학생과 부모는 다시 혼란
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대비할까요. 답은 너무나 뻔한 것 아닙니까.
지금까지 못고친 입시와 사교육비 문제, 하루 아침에 쉽게 고칠 수 있을까요. 교육과학기술부 관료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같은 사람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