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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멋지게 보내셨나요? 음, 저는 이불 빨래만 사흘 내내 했습니다.
에세이스트 57호 신인상 수상자 님들이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오금이 먼저 저려오는데요. 일단 사진부터 올리고 수상 소감과 약력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남기영
1958년 부산 출생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고 또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모두 살아온 인생이 대하소설이 아닌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예쁘게 화장한 얼굴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좀 솔직해보고 싶었습니다. 맨 얼굴로 사람들과 만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가급적 그래보고 싶습니다. 내가 소망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윤 철
1951년 전북 김제 출생
탓하지 않고 좋게 보아주신 것도 고마운데 신인상의 큰 기쁨까지 안겨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첫 마음을 지키는 변치 않는 풋풋함과 잉걸불 같은 열정으로 정진하라는 채찍으로 받겠습니다. 와락 솟구치는 충동에 밑절미 없이 불쑥 들이민 원고였습니다.
장은실
1955년 서울 출생.
<장면1> 탑골공원 뜨거운 여름날 오후, 매미가 찢어지게 울어 제친다. 나무 그늘에서 부채질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70대 남자 노인 1, 2(앞섶을 풀어 헤치고 있다.) 노인1: "여보게 나는 내가 이런 삶을 살게 될 줄은 몰랐다네, 나는 종이 호랑일세, 종이 호랑이. . . ." 노인2: "그래도 당신은 나보다 나. 난 마누라 먼저가고 나서 사는 낙이 없다네, 미국에 간 딸 한테서 연락 온 지도 한참 됐네." 노인1: 그렇구먼. . . 난. . . 음. . . 저기. . . . . .
종이호랑이 노인이 대사를 쳐야 되는데 갑자기 기억이 나질 않는지 대사를 얼버무리며 안절부절 했다. "앗, 올 것이 왔구나." 킥킥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객석 뒤를 서성이며 노인들을 지켜보던 나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그 노인이 어떻게든 위기를 벗어나게 되기를. . .
9년 전 여름. 사회복지사인 나는 연극 시나리오를 쓰고 어르신들과 연기 연습을 하느라 여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알지 못했다. 어르신들과 '자화상' 공연을 위한 연기 연습이 벌써 3개월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문득 연습실 창 너머로 본 하늘가에는 어느 덧 가을빛이 물들고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10월이 왔다. 바람을 타고 은행잎이 바스락거리며 길 위를 떠다니고 있던 어느 날, '자화상'을 무대 위에 올렸다. 나는 공연에 앞서 팜플릿에 작가의 변(辯)을 '침묵 한 조각을. . .'이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썼다. 대학시절, 한때 연기자를 꿈 꾼 적이 있다. 또 작가를 꿈 꾼 적도 있다. 그것 뿐, 나는 시나리오, 연출, 연기에 대해 문외한이다. 단지 어르신들의 곰삭은 침묵 한 조각을 떼어내고 싶었고 힘겹게 오늘을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비추어진 우리들의 얼굴을 함께 들여다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길을 묻지 말라 노인이 길이므로. . .' 여전히 나는 어르신들을 통해 길을 찾고 있고 나를 통해 어르신들의 하루가 의미 있게 되기를 원하는 소망을 품고 있다. 그런 산물로서의 ‘자화상’은 미완(未完)이지만 진실하다. 배우 어르신들의 투혼에 나의 부족한 사랑을 실으며 행여 어르신들의 마음을 헝클어 놓기만 한 건 아닐지 밤잠을 설칠 것 같다.
친절한 시간이 내가 머물고픈 이곳으로 나를 데려다 주었을 뿐, 9년 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지 않다. 무대 위에서 대사를 잊어버린 배우의 당혹스러움과 객석 뒤의 서성임. 그리고 안타까운 기다림. 함께 품었던 열망과 설렘과 부끄러움의 뒤엉킴. 미완이지만 진실을 꿈꾸는 소망까지도 다르지 않다. 달라진 게 있긴 있다. 세월의 두께다. 그 두툼한 창고 속 설익은 잡다한 내용물들이 내 욕망을 어떻게 부추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길을 묻지 않으리라, 한 번씩 자화상을 비춰 보리라. 침묵 한 조각에도 나의 부족한 사랑을 실어보리라 마음먹는다. 오늘도 밤잠을 설칠 것 같다.
긴장되시죠? 마음을 편안하게 잡수시고 지넌 호부턴 서비스로 심사평을 올려드리기로 했지요. 그러면,
신인상 심사평
남기영의 「상욱이가 특별하다구요?」
아마도 인터넷 카페 essayist123에 들어오시는 분들은 ‘상욱애비’란 아이디로 글을 올리는 이 심상치 않은 작가를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인연이란 그렇게 우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나는 카페에서 그의 예사롭지 않은 글을 읽었고, 이리저리 연락처를 알아냈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 등단을 권유했다. 사실 이럴 땐 등단이란 절차란 게 없었음 딱 좋겠다. 바로 그의 글을 싣고 싶어 안달이 나버렸단 말이 맞을 거다. 그는 점잖고 침착했다. 얼마 후 그의 원고가 메일로 들어왔다. 어머나! 850매의 책 한 권이 이미 가편집된 상태였다. 약아빠진 나는 처음 몇 장만 읽어보고 등단작을 선정하려 했다. 모니터에 뜬 원고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화장실만 몇 번 들락거리다 보니 날이 밝았다. 그날 아침은 유독 심한 바람에 는개가 날리었다. 는개가 창 안으로 들이칠 리 없건만 내 눈에도 물기가 가시질 않았다. 돌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나도 이제 뭔가를 해야 한다.
유대인계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는 모든 인간적인 윤리와 사회정의는 사람의 얼굴에서 나온다고 했다. 지고의 선과 윤리는 만인의 얼굴들에서 나오는데, 그 수많은 얼굴들은 낯선 타자의 얼굴들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낯설기 때문에 나와 다를 수밖에 없는 무한과 계시의 얼굴이라는 것이다. 이런 얼굴은 인간의 이성적 사유를 넘어 불가능성의 현시다. 그 얼굴은 신의 얼굴이고 우주의 얼굴이고 사회의 얼굴이며 나의 얼굴이다.(윤대선, 『레비나의 타자철학』)
이 아이들은 안 되니까 아이들의 인권이니, 능력을 계발하면 쓸모가 있니, 등등은 이야기하지 말자, 다만 잘 보살펴주는 복지 시설을 만드는 게 아이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다, 라는 주장으로 나를 설득시키기 위해 참 많은 노력들을 하셨습니다.
상욱이는 집에서 교육을 시켰다. 인사하기, 억지 부리지 않기 등등. 그리고 운동을 생활화하고 뭐든 하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제 상욱이가 특별하다고, 천재라고 한다.
사람들은 상욱이가 특별하다고 합니다. 물론 저도 상욱이가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상욱이는 특별하게 타고난 게 아니고 남들보다 특별한 과정을 겪은 겁니다. (…) 의사결정을 할 때 꼭 이유를 물어봅니다. 아이에게 기회를 주는 겁니다. 놀러 가거나 외식할 때 그의 의견을 묻고 그의 결정에 따라주면서 왜?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 사소한 일로도 상욱인 존재감과 프라이드를 느낍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시키면서 그냥 툭툭 칭찬을 던집니다. “네가 없으면 어떡할 뻔했니? 진짜 잘한다.” 그게 상욱이를 특별하게 만들어준 겁니다. 잘한다, 대단하다, 라는 칭찬에 2~3시간씩 책을 소리 내어 읽고, 멋있다, 근육이 생기는데, 라는 소리에 2시간씩 일곱 차례로 나누어 팔 굽혀펴기 50번씩, 윗몸일으키기 50번씩, 누워서 다리 올리기 50번씩, AB슬라이드 40번씩을 땀을 뻘뻘 흘리며 합니다. TV 요리프로그램을 보면서 “맛있겠다. 상욱이도 잘 할 텐데”하면 볶음밥도 하고 설거지도 합니다. 아이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우리 생활에 아이를 동참시켜서 역할을 주고, 자존감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더니 그렇게 잘해줍니다. 이게 특별한가요? 이게 특별하다면 아마 모든 아이들이 다 특별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자립복지공동체 <캠프아라리>를 Making 중이다. 좀더 많은 상욱이를 만나고 싶은 것이다. 상욱이처럼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들에게 진정한 자립의 길을 열어주고 자기의 존엄한 가치를 되찾게 해주고 싶어 한다. 수많은 상욱이가 그에겐 신의 얼굴이고 우주의 얼굴이고 사회의 얼굴이며 자신의 얼굴이다. 그는 비좁은 자아의 땅을 벗어나 저 광막한 우주적 자아의 땅으로 이행해 갔다. 그는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의 윤리학을 이미 실천하기 시작했다. 타자의 윤리학은 신앙에 귀속하는 윤리가 아니라 바로 이처럼 실천의 윤리인 것이다. 자신의 욕망에 탐착한 삶에서 타자의 욕망으로 건너간 삶은 어떤 경위로 효득曉得되는 것일까?
지금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의 폭력을 깨달은 나에게는 달콤하게 속삭일 마음의 여유는 있을 수 없습니다. 때론 소리도 치고 때론 분노도 해야 그것이 인간일 것입니다. 내 자신이 인간임을 스스로 인정할 때, 비로소 누군가를 인정할 수도 있고 존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앞으로도 화살촉이 되어 허공을 가로질러 가야만 할 것 같습니다. 나에게 당신의 심장을 빌려주신다면, 이제까지 깨닫지 못한 새로운 사랑을 경험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사랑은 위대한 전염병입니다.
윤철의 「마중물」
펌프는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작가는 그곳에 여러 번 갔었다. 그럼에도 긴 세월동안 펌프를 보지 못하다가 어느 날 펌프가 눈에 들어왔다. 우연한 만남이었다. 어디 살면서 작심하고 이루어진 만남이 그리 많던가. 어찌 생각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조차 우연이 아닐까?
펌프의 손짓을 따라 다가갔다. 외롭게 서 있는 녹슨 펌프 하나. 땅속에 박힌 파이프 위에 사람 몸통 모양의 수동펌프가 긴 팔을 늘어뜨린 채 올라앉아 있었다.
작가가 펌프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펌프는 손짓을 한다. 그런데 펌프는 외롭게 서 있다. 녹이 슬어있다. 작가가 묘사한 펌프는 눈에 보이는 펌프라기보다는 작가가 느낀 펌프다. 펌프가 손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발이 펌프에 다가간다. 펌프가 외로운 것이 아니라 작가가 외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외롭게 보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펌프의 몸통을 사람처럼 보고 힘없이 긴 팔을 늘어트리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이 순간 펌프는 작가 자신이거나 작가 속의 누구인 것이다.
펌프에 물줄기가 끊어지면 먼저 다른 물을 한 바가지 정도 위에서 붓고 펌프질을 해야 한다. 그래야 파이프에 있는 공기가 뽑혀 나오고, 마침내 깊은 땅속의 샘물이 솟구치듯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 먼저 붓는 물을 마중물이라고 한다.
작가는 눈앞에 있는 낡은 펌프에서 시선을 거두고 자신 안에 있는 펌프에 열중한다. 펌프의 작용을 돕는 마중물에 시선을 고정한다. 작가란 작품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마련이다. 마중물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므로 마중물은 은유가 될 수밖에 없다.
마중물. 그것은 한 바가지 정도에 불과한 보통의 물에 지나지 않지만, 땅속의 숨결을 불러내는 고귀함이 있다. 깊이 숨겨져 있는 열정을 밖으로 뿜어내게 하는 응원의 힘이 있다. 적은 양이지만 깊은 땅속까지 물길을 이어내는 놀라운 힘도 있다. 땅속에서 올라온 물과 섞이면 나를 드러내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겸손과 희생까지 갖추고 있다. 마중물은 실마리며, 응원이고 내세우지 않은 도움인 것이다.
작가는 마중물에 대해 위와 같은 의미를 부여했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겸손과 희생까지 갖추고 있다. 마중물은 실마리며, 응원이고 내세우지 않은 도움인 것이다.’ 자칫 식상할만한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문단에서 다음과 같이 솔직한 고백을 한다.
나는 한창 공부해야 할 청소년기에 갑자기 어렵게 된 가정형편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힘들게 들어간 대학도 포기하고 공무원시험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만약에 누가 내 인생의 마중물이 되어주었다면? 만약이라는 가정은 항상 허황하기 마련이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멋진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철없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평자는 이 작품의 매력을 여기에서 찾는다. 작가는 자신의 지나온 인생도 펌프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주관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인생을 평가한다. 그 바닥에 깔린 정서는 자신에 대한 연민이다. 이 문단을 읽었을 때 녹슨 펌프가 왜 외롭게 보이는지에 대해 평자는 수긍했다. 지극히 주관적인 글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순간이다.
바라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구부러지고 막힐 때마다 하늘의 도움을 바라며 간절히 기도했었다. 그때마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 같은 도움이 있었기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리라.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마중물이 부어졌을까? 내가 기억하고 감사하는 경우보다 모르고 무심하게 지나친 경우가 더 많았을 것 같다.
작가는 작품의 끝을 감사로 마무리 짓는다.
장은실의 「시간을 건너는 한 가지 방식」
장은실은 대학에 강의를 나가며 동시에 가족상담연구소를 운영하는 사회복사사이며 심리상담사이다. 약력이 꽤 길다. 농도 짙은 삶을 산 듯 보인다. 등단작의 제목도 꽤 긴데 특이하게 감각적이다. 그녀에게 시간은 건너야 할 강물 같은 것이다. 강물을 건널 땐 몸소 헤엄치지 말고 배를 타시라. 누군가 다리를 놨거든 주춤거리지 말고 그 다리로 건너시라. 그러나 어머니의 탯줄이 잘리는 순간, 우린 맨몸으로 시간이란 강물에 내던져졌고, 그 강물엔 불행하게도 배도 없고 다리도 없다. 모두가 허겁지겁 제 몫의 시간을 건너는 것만으로도 경황이 없었을 것인즉,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시간의 강물은 흐름이 천변만화다. 어느 땐 웅덩이에 고인 듯 흘러가지 않고, 어느 땐 호수처럼 찰랑대기만 하고, 어느 땐 질풍노도가 된다.
비가 많은 여름이었다. 그 어느 날, 내게 다정하고 진실했던 그 남자는 말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혼자서 별별 상상을 다하면서 그를 걱정하다가 그리워하다가 종내는 부르르 치를 떨며 증오했다. 나는 아직 그와의 끝을 생각해보지도 못했는데, 이럴 수는 없는 거였다. 비를 맞으며 갈갈이 해진 가슴으로 둘이서 함께 갔던 광화문, 명동 찻집과 인사동 선술집을 밤늦게까지 헤집고 다녔다. 혹시 그가 그곳에서 혼자 말 못할 괴로움에 한숨짓고 있는 건 아닐까, 무조건 위로해주어야지. 괜찮다고 말해주어야지, 그래, 차라리 아무 말도 안하는 게 낫겠지, 몇 번을 다짐하고 수없이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그곳에 갔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길을 걸으면 스쳐지나가는 남자들이 모두 그 남자로 보였다. 내가 그를 모르고 그냥 지나친 건 아닐까, 급히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내가 그곳을 떠난 후 방금 그가 들어섰던 건 아닐까, 다시 되돌아서서 총총히 그와 머물던 곳으로 가보기도 했다. 그렇게 떠다니듯 이 곳 저 곳을 헤매다 어느 선술집 골목 길 모퉁이 담벼락에 쓰러지듯 기대어 망연히 검은 하늘을 응시할 때, 비가 사정없이 얼굴을 때렸다.
아마도 가장 거센 물살은 사랑과 이별의 시간일 것이다. 사랑했던 남자가 말도 없이 떠났다. 그를 기다리거나 찾아 헤매는 시간은 길고도 허랑했다. 그것은 정작 꼭 만나야겠다는 다짐도 기원도 없이 이별의 의식에 불과했으니까.
“네 마음을 안다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내가 사라진 그 남자에게 해주고 싶어 가슴 졸였던 그 말을 그가 내게 하고 있었다. 뼈아픈 상실감과 수치심 속에서도 여름은 속절없이 지나갔고 비도 끝났다. 가을이 오고 덕수궁 돌담길에 낙엽이 구르기 시작할 무렵 나는 “비겁한 자식, 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를 놓아줄 수 있었다. 정작 그 아픈 시간에 그녀의 손을 잡아준 것은 이문세의 노래였다. 그리고 그녀는 아주 오래도록 이문세의 목소리에 기대 시간의 강을 건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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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남기영 선생님, 윤철 선생님, 장은실선생님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문운이 가득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환영 합니다. 당장은 문단의 말석으로 오신 세분 선생님들,
허나 곧 선배들 제치고 추월해 가시는 필력 또한 기대하겠습니다.
조 선생님 늘 감사합니다.
우리 신인상 수상자들은 거의 선생님께서 가장 먼저 반겨주신 듯합니다.
새들은 알에서 깨어나는 순간 자기를 돌봐준 존재를 엄마로 안다던데
선생님은 우리 모두의 엄마이십니다.
감사합니다. 기회를 주신 여러 선배님들~
밀어주시고 끌어주시는 만큼 노력하겠습니다.^^
아~~~ 상욱애비님께서 드디어 등단을 하셨군요~~~축하합니다. 남 기영 선생님~~ 윤철 선생님, 장은실 선생님 두 분도 함께 등단을 축하합니다. 모두 쟁쟁하신 분들이라 진자루 갈수록 주눅이 드네요. 힣 지는 요즘 글도 제대로 못 쓰고 있는데....-_-''
상욱애비님, 이렇게 부르니까 엄청 웃기지 않아요? 하여튼 아이디 중에 걸작입니다.
네~~감사합니다. 얼떨결에 한 등단에, 이렇게까지 좋게 봐 주시니
몸 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남기영선생님 윤철선생님 장은실선생님 세 분의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세 분 선생님, 신인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프로필에 기가 팍 죽습니다.^^
새롭게 내 딛은 발걸음, 멈추는 날 없기를 바랍니다. 책 받으면 제일 먼저 읽겠습니다.^^*
이렇게 축하들을 해 주시니 ~~ ㅎㅎㅎ
감사합니다.
남기영선생님, 윤철선생님, 장은실선생님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래오래 저희들과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네, 오래오래 좋은글을 읽고, 쓰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남기영 선생님, 윤철 선생님, 장은실 선생님 신인상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근디~~ 우짤꼬 대단하신 분들이 등단 하신께로 숨질이 가빠져오내여...ㅎ
우짜꼬?
ㅋㅋ
감히~
엄감생심....
열심히 따라가겠습니다.^^
남기영선생님, 윤철선생님, 장은실선생님 환영합니다.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드립니다.^^
세 분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환영합니다.
새 식구를 맞는다는 것은 집안에도 경사~~^^*
감사합니다. 경사라고 해 주시니
어른들 앞에서 춤이라도 추며 재롱부려야 하는데~~ㅎㅎㅎ
세분의 등단을 축하합니다.
네,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아직 어설픈 피래미 입니다.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남기영 선생님, 윤철 선생님, 장은실 선생님 등단 축하드립니다.
네,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분에 넘치는 과분한 평이 몸둘바를 모르게 합니다.
문학의 길을 동경만하고 감히 들어올 생각을 하지도 못 했었는데~
내 생각을 어떻게 알리는게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어떨결에(?) 여기까지 오게된것 같습니다.
열심히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세분의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이번호가 기다려 집니다. ^^
네, 감사드립니다.^^
세 분 선생님(남기영, 윤철, 장은실)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애쓰셨습니다.
선생님들의 수필이 선생님을 구원하고, 또 독자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겠지요.
몹시 기다려집니다.
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