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영화에서 중요한 모티브가 되어 스토리 전개에 도움을 준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에 쓰인 '대화(Conversation, 존 윌리엄즈 작곡)'를 실현시키는 중요한 모티브가 되고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영화에서 다양하게 사용되는 내러티브 전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음악의 경우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언급될 것이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소설과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죽는 장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소설(1912)과 영화(1971)가 이미 주어진 상태에서 만들어진 오페라(1973)에서는 죽음을 암시하고 있을 뿐 죽음의 장면은 생략되어 있다. 즉 소설을 현실이라고 한다면 오페라는 그 현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모차르트 오페라 '돈지오반니'에서 끝 장면-돈 지오반니가 죽은 다음 그에 대한 윤리적 입장과 권선징악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부분-을 생략하여 연출하는 경우도 이와 유사하다.
마크 허먼의 '브래스트 오프'는 광부들의 밴드연습이 한창일 때 광산을 폐쇄할 것을 의논하는 회의가 진행되는 장면을 연습 장면과 교대로 보여주는 교차편집이 사용되었다. 이로써 관객은 두 상황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때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 장소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 번갈아 보여지면서 들리는 사운드는 연습 장소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음악, 즉 연습 장면에 일치시킨 음악이다. 실제 회의 장소에 있다면 들을 수 없는 소리이므로, 이 때의 음악은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교차편집의 경우 대부분이 그렇듯이 관객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지속시간이 매우 짧은 경향이 있는데, 이는 푸가의 Stretto 효과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의 끝 장면은 떠나는 여자를 따라가는 남자의 모습을 롱샷으로 잡은 고정된 화면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진다. 두 개의 흰 점으로만 보이는 그들이 잠시 멈추었다가 서로 멀어져가기 시작할 때에 가벼운 느낌으로 전환되는 음악은 여자가 남자의 구혼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영화적 처리 또는 음악적 처리에 무감각한 관객이라면 이 장면을 이해하기 어려운데 영화가 해피엔딩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케네스 앵거의 '스콜피오 라이징'은 '지옥의 천사들'이란 모터사이클 그룹의 한 젊은이가 모터사이클을 작동시키는 모습은 엄숙한 의식처럼 보이지만, 사운드트랙으로 연주되는 평범한 노래 '블루 벨벳'은 그의 동성애를 풍자하는 가사를 담고 있다. 잉그마르 베르히만 '어두운 유리를 통해'의 한 장면은 가사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음악만으로 풍자한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딸이 아버지가 자신의 병을 소재로 삼아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장면에서 들리는 첼로의 고상한 선율은 아버지의 비열한 의도를 반어적으로 비꼬는 듯하다.
우리에게 시각의 세계와 청각의 세계는 필연적으로 동반되어 지각된다. 자아와 타자와의 관계에서 친밀함이란 시각적이고 동시에 청각적이다. 언어로부터 우리는 그 사람의 표정과 말투를 함께 연결시켜 인식하고 기억한다. 영화의 화면은 말과 그 말의 청현상적 근원을 알려주는 음악 없이는 온전한 것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음악이 배제된 화면일 경우 우리는 그 화면의 내면세계를 감지할 수 없을 것이다.
인물을 구축하는 음악의 경우, '길'과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선택했다. '길'에서 음악은 인물의 성격과 정서를 표현하는 역할에 중점이 주어져 있고,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의 음악은 주로 내러티브와의 긴밀한 연관속에서 인물을 대신하는 라이트모티브로 사용된다. 이미지에 작용하는 음악을 살피기 위해서는 '가위손'과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를 선택했다. '가위손'은 음악이 이미지로부터 거리를 두게 하는 결정적 계기로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블루'에서는 음악이 예시 정도의 소극적 기능 뿐 아니라, 극 전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내러티브를 이끌어준다. 주인공이 작곡을 한다는 설정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악상을 내적 독백의 형태로 그려내는 음악으로 하여금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구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조셉 보그스의 '영화보기와 영화읽기'에서 영화음악의 기능을 '일반적 기능'과 '구체적 기능'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일반적 기능'은 동화면에 구조적 리듬을 부여하고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켜 영상 이미지 전달 효과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영화 전체를 통해 구조화된 시각리듬과 그것의 정서적 패턴을 분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리듬을 중시한 경우와 정서를 중시한 경우를 구별해서 살피는 것은 유용한 일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죠스'의 테마는 가속도가 붙는 리듬으로 식인상어가 금방이라도 다가올 듯한 공포를 박진감 있게 자아낸다. 'E.T'의 주제곡 또한 외계인과 우정을 나누는 어린아이의 천진함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비로운 느낌의 음악이 쓰여 관객의 뇌리에 깊이 새겨지는데 배경음악은 주로 영상이미지에 부합하여 그 분위기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의식의 흐름을 다룬 영화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사랑'에서 지오반니 푸스코의 음악은 정신분열증이나 편집증적인 심리상태를 묘사한다. 조성음악에 비해 불협화음이 계속되는 현대의 무조음악은 선율이 흐른다는 느낌보단 소음과 같은 음향효과의 기능을 통해 듣는 이로 하여금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음향효과의 기능이 의식상태를 묘사하는 것이면 다음은 의식상태를 그대로 드러내 독백의 기능을 하거나 그것을 상징적으로 대신하는 기능을 찾아볼 수 있다.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의 도서관 장면을 살펴보자. 도서관은 물론 조용한 곳이다. 그러나 천사는 그 곳에서 책을 읽으면서 각기 다른 언어로 중얼거리는 '생각'과 악보를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악을 듣게 되며 이는 물론 베를린이 보이지 않는 천사들에 의해 정찰되고 있는 영화적 전제 아래 가능한 것이다.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생각과 선율을 들을 수 있는 건 각 인물의 독백을 듣는 것과 같다.
전쟁의 참상을 그린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예가 초월적 사용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을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하는 경우는, 같은 장면 위로 모차르트나 베토벤 교향곡의 느린 악장이 흐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초월적 사용'의 예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이 세계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다른 세상을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순영 한국국제예술원 작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