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Germany, 獨逸) /프랑크푸르트(Frankfurt)
괴테의 집(Goethehaus)-(Goethe's House) and the Goethe Museum
괴테의 할머니가 구입한 이 괴테의 집(Goethehaus)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에 의해 파괴된 건물을 4년에 걸쳐 복구시켜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전시, 관리하고 있다. 유품들은 폭격을 피해 미리 다른 곳으로 옮겨 두었다가 옮긴 것이다. 4층으로 된 건물 내부의 20여 개의 방은 당시 상류층이었던 괴테와 그 가족의 삶의 흔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잘 보존되어 있다.
1759년 프랑스가 이곳을 점령했을 때 괴테의 집은 프랑스 총독 관저로 사용되었고, 예술을 사랑한 총독은 그 집에 예술가들을 불러들여 공연하도록 했기 때문에 괴테는 일찍부터 연극을 자주 보면서 조형예술에 접할 수 있었다. 14세 때인 1763년 일곱 살난 모차르트의 연주회를 감상했으며, 황제 대관식도 구경했었다.
괴테는 평소 서서 글쓰기를 좋아했고, 그 책상은 뚜겅을 열어 비밀편지를 넣어 둘 수 있도록 했다. 책상 앞 벽에는 로테의 실루엣이 걸려 있고, 괴테가 이 방에 들어서면 눈인사를 건넨 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고 베르테르는 로테가 알베르트와 결혼하던 날 이 실루엣을 치우려고 하다가 그대로 걸어두고 베르테르는 "정든 실루엣 로테여, 이것을 당신 추억으로 남깁니다. 소중히 간직해 주세요."라는 마지막 편지를 쓰고 자살하면서 소설을 끝맺지만 실제로는 로테가 결혼 후 얼마동안 서로 왕래를 했으며 헤어진지 44년만에 바이마르에서 만나기도 했다.
괴테는 "아버지로부터 뼈대와 진실한 생활태도를, 어머니로부터 낙천적인 성격과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받았다"라고 말했으며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괴테는 17세에 이미 여러 외국어를 비롯하여 문학, 역사. 신학, 정치, 법률에서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능통했으며 승마와 무술 실력까지 뛰어나 1775년 바이마르 대공의 초청으로 재상에 이르렀지만 창작면에서도 그처럼 깊고 명석하게 인간의 마음과 창작의 깊은 바탕을 꿰뚫어본 사람은 없었다.
1806년 41세 때 23세인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Christiane Vulpius, 1765-1816)와 결혼하였다. 크리스티아네는 바이마르에서 서류를 보관하고 정리하는 하급관리의 딸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여자이다. 크리스티아네와 결혼하여 가정적인 행복을 맛보았지만 괴테의 만년은 가족들의 잇따른 죽음으로 외로운 생활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파우스트'를 완성하고 자연 연구에도 정진을 계속하며 서정적 창작능력을 끊임없이 유지해 오다가 83세로 생을 마감했다.
▲ 괴테의 아버지 상
1층(Ground Floor)
1층은 부엌(Kitchen)과 식당으로 꾸며져 있어 18세기 명문가의 주방도구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는 곳으로 냄비, 국자 등 주방용품들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노란방(Yellow Palror)과 파란방(Blue Room)으로 꾸며져 있는데, 1층 부엌에는 괴테가 키 작은 어머니를 고려해 직접 고안해서 제작한 사다리 겸 의자도 눈에 띈다.
▲ 괴테의 어머니 상
▲ 노란방
▲ 파란방
▲ Goethe's Kitchen(부엌)
▲ Goethe's Kitchen(각종의 빵틀)
▲ Goethe's Kitchen(우측 하에 의자겸 사다리)
▲ Goethe's Kitchen(물펌프)
▲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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