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바그너가 쓴 유일한 희극 오페라인데 1845년 바그너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마리엔바트(Marienbad)로 휴양을 갔었는데 그곳에서 독일의 역사학자인 게르비누스(Georg Gottfried Gervinus)가 저술한 ‘독일문학사’를 읽으면서 본업이 구두수선공이었던 작가 한스 작스(Hans Sachs)에 관하여 알게 된다.
한스 작스 6.000여 편의 시와 200여 편의 운문(韻文/희곡)을 발표했으며 음악공부에 몰두하여 4.000여 편의 노래를 작곡하였고 최고의 가수인 마이스터징어(Meistersinger)가 되었던 실재인물 이야기이다.
한스 작스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1520년 뉘른베르크 노래학교의 교사, 뮌헨에서 명가수 교습소를 운영하였으며 1544년에는 뉘른베르크 단원을 이끌기도 한다. 바그너는 한스 작스의 이야기에 크게 감명을 받고 마이스터징어의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들기로 마음먹었지만, 정작 작품이 완성된 것은 20년 후인 1867년이었다. 이어 1868년 뮌헨에서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한스 폰 뷜로(Hans von Bülow)의 지휘로 초연이 이루어졌다.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16세기 중반 뉘른베르크를 배경으로 하는데 당시의 뉘른베르크의 모습과 마이스터징어의 전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특히 등장인물 중 한스 작스는 실존인물을 모델로 하였으며 극중의 아리아도 한스 작스의 시를 가사로 만들었다.
또 바그너는 1854년부터 쇼펜하우어의 저서를 읽으면서 깊이 감명 받아 작품에서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음악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쇼펜하우어는, 고통스러운 세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예술이며, 그 중 세계의 거짓된 표상과 무관한 음악이야말로 최상의 것이라고 말했다. 바그너는 자신의 저서 《음악과 극》(1951)에서 기존 오페라의 관습적인 구성요소들인 아리아, 합창, 2중창, 3중창, 레치타티보(Recitativo) 등을 비난했었는데 쇼펜하우어를 읽은 후 이러한 요소들의 가치에 대해 재평가하게 되었고,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서 이 요소들을 거부감 없이 사용했다.
◉레치타티보-서정적으로 이야기하듯 부르는 아리아
극중에서 한스 작스가 일반인들에게 마이스터징어를 뽑도록 하자고 제안하는 장면에서 지금까지 주로 중산층 출신만이 누릴 수 있었던 마이스터징어를 특정 계층 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바그너의 신념이 표현되었다. ◉마이스터징어- 가수 최고의 영예인 장인가수(匠人歌手)
이처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평등한 인간사회와 예술의 가치에 대한 바그너의 신념이 투영된 작품이다. 이와 함께, 이 작품에는 독일정신을 지켜내려는 바그너의 민족주의가 강하게 드러나 있기도 하다.
오페라 장면 1, 2 / 뉘른베르크 성
<작품 구성>
- 제1막 -
뉘른베르크의 성 카테리네 교회에서 포그너의 딸 에바를 본 발터는 그녀의 미모에 반해 다음 날 열릴 노래 경연 대회의 우승자가 그녀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그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할 것을 결심한다. 발터에게 호감을 느낀 에바는 하녀 마그달레나와 친밀한 관계인 한스 작스의 도제 다비트에게 발터를 도와줄 것을 요청한다. 발터는 다비트에게 경연 대회의 규칙을 물어보며 도움을 구한다.
포그너와 베크메서가 등장하고, 베크메서는 포그너에게 에바를 자신의 아내로 허락해달라고 말한다.
포그너는 경연 대회의 규칙을 낭독하면서 우승자에게 에바를 주겠다고 공표하고, 새로운 지원자 발터에 대한 예선이 열린다. 발터는 사랑과 봄에 대한 노래를 부르지만 베크메서는 그의 단점을 과장하여 기록한다. 발터가 노래하면서 의자에서 일어나자, 규칙을 어겼다며 심사위원들이 그를 야유한다.
심사위원들은 발터의 노래를 ‘귀가 찢어지는 소음’이라고 비난한다. 이 부분은 바그너가 자신의 음악에 대한 비판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대사이다. 그러나 한스 작스만은 독창적인 발터의 재능에 깊이 감명을 받는다.
- 제2막 -
다비트로부터 발터가 예선에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은 마그달레나가 급히 에바에게 이 소식을 알리고, 에바는 한스 작스를 찾아가 발터가 우승하지 못한다면 대신 작스가 우승하기를 원한다며 작스를 유혹한다. 발터와 에바의 관계를 짐작한 작스는, 에바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고 이들을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작스의 계획을 모르는 에바와 발터는 야반도주를 계획하고, 작스는 이들을 말리려 한다.
한편 베크메서는 에바의 창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사실 에바는 발터와 함께 도망치기 위해 마그달레나를 대신 방에 남겨두었다. 작스는 베크메서가 실수할 때마다 망치질을 하면서 베크메서를 당황하게 만들고, 창밖으로 마그달레나가 머리를 내밀자 더욱 당황해버린다. 마침 다비트가 등장하여 마그달레나를 보고 베크메서가 자신의 연인을 유혹하려 한다고 오해하여 사람들과 함께 소동을 일으킨다.
분노한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동안 작스는 도망치려던 발터와 에바를 데려오고, 에바는 아버지에게 이끌려 집으로 돌아간다. 소동이 잠잠해지고 야경꾼이 중세의 단조로운 선율을 노래한다.
- 제3막 -
작스의 작업장에 발터가 찾아와, 자신이 꿈꾼 노래에 대해 말하자 작스는 그의 노래를 인정하면서 마이스터징어의 규칙을 따를 것을 충고한다. 두 사람이 퇴장한 후 베크메서가 등장하여, 작스가 받아 적은 발터의 시를 보고 위대한 작스가 지은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것을 훔친다. 작스가 등장하자 베크메서는 간밤의 일을 항의하고, 작스는 결국 그 시를 베크메서에게 넘겨준다. 에바 역시 작스의 작업장으로 찾아와 발터를 만나려 하고, 발터가 기사복장으로 등장하자 작스는 아침에 부른 노래를 들려달라고 청한다. 발터의 노래에 감동한 에바가 작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작스는 그 시에 대한 보증인으로 다비트를 지정하면서 다비트의 지위를 승격시켜준다. 지위가 승격되면서 결혼할 수 있게 된 다비트와 마그달레나, 에바와 발터, 작스가 아름다운 5중창을 부른다. 도제(徒弟)들과 소녀들이 즐겁게 춤추며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경연 대회가 시작되고, 베크메서가 발터의 시를 노래하지만 관중들의 야유만이 돌아올 뿐이다. 화가 난 베크메서는 이 시를 지은 것이 한스 작스라고 말하고, 작스는 사실 자신이 아니라 발터가 지은 것이라고 말한다.
발터가 등장해 노래하고 관중들은 그 노래의 아름다움에 환호를 보낸다. 에바가 그에게 승리의 월계관을 씌워주고, 포그너는 그에게 마이스터징어의 지위를 허락한다고 말한다. 발터가 마이스터징어가 되기를 거부하자, 작스가 독일정신의 가치를 역설하며 그를 설득하고, 마침내 발터가 마이스터징어가 되자 청중들은 독일 예술의 영원성을 노래한다.
<주요 음악>
- 제1막 전주곡 -
바그너의 전주곡 중 가장 인기 있는 곡 중 하나로, 극의 진행을 미리 보여주는 동시에 음악적인 아름다움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웅장한 주제로 시작된 음악은, 사랑의 주제와 발터의 자부심의 주제로 이어진다. 웅장한 첫 주제는 많은 극작품에서 인용되기도 했으며, 사랑의 주제는 20세기 초반 할리우드 영화 음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마침내 다시 웅장한 첫 주제로 돌아와 금관과 타악기의 장엄한 음향으로 서곡이 마무리되고, 휴지부 없이 1막의 교회음악으로 이어진다.
- 2막 ‘폭동의 노래(Darf ich mich Meister nennen- Zum Teufel mit dir, verdammter)’ -
다비트가 에바를 대신하고 있는 마그달레나에게 세레나데를 부르는 베크메서를 보고 분노하는 장면으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나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를 연상시키는 우스꽝스럽고 소란스러운 장면이다. 소박하게 시작된 다비트의 선율이 성난 군중들의 목소리와 뒤섞이면서 요란한 소동이 벌어지고,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제시된 후 소란이 잦아든다.
야경꾼이 나팔 소리와 함께 조용한 선율로 11시를 알린다.
- 한스 작스의 노래, ‘망상이야, 망상!(Wahn, Wahn!)’ -
쇼펜하우어의 대변자로서의 한스 작스의 면모가 돋보이는 이 노래는, 2막에서 벌어진 소동을 회상하는 노래로 ‘반(wahn) 모노로그’라고 불리기도 한다.
인간의 광기와 허상을 한탄하는 이 노래에는 세계의 허상에서 벗어나 고귀한 인간성을 회복하려 하는 쇼펜하우어적인 면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색적인 가사와 느리고 장중한 느낌의 선율이 바리톤의 음색과 어우러져 철학적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잠시 격렬하게 진행되던 선율은, 현악의 피치카토와 함께 깨달음의 기쁨과 성찰의 고요함으로 이어진다.
- 3막 5중창 -
발터가 새로운 노래를 선보이고, 이에 흡족한 작스가 그의 실력을 인정하면서 이 노래에 대한 보증인으로 다비트를 내세운다. 도제의 신분으로는 보증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작스는 다비트의 신분을 승격시켜 준다. 이로써 마그달레나와 결혼할 수 있게 되어 기쁨에 찬 다비트와 마그달레나, 희망에 부푼 에바와 발터,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고 진정한 사랑을 이루게 해 준 작스의 심정이 어우러진 5중창이 펼쳐진다. 모두가 기쁨에 들떠 부르는 이 5중창은 모든 오페라의 5중창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손꼽힐 정도로 각 인물들의 감정이 생생하게 묘사되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 발터의 승리의 노래, ‘아침은 장밋빛으로 빛나고(Morgenlich leuchtend im rosigen Schein)’ -
드디어 경연 대회의 무대에 오른 발터가 부르는 노래로, ‘상의 노래’라고도 불린다.
한스 작스의 집에서 아침에 불렀던 노래이지만, 가사를 들고 있던 코트너가 가사를 적은 종이를 떨어뜨리면서 중간에 즉흥연주 같은 선율이 삽입되기도 한다. 고음의 선율에 장식음이 많아서 매우 난이도의 높은 노래이다. 바그너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이탈리아 오페라 테너에게 잘 어울리는 곡이지만, 바그너 특유의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노래해야 하기때문에 풍부한 성량을 필요로 하는 곡이다.
감미로운 선율과 현악의 아르페지오가 어우러져 사랑의 기쁨을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