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비공개 입니다
[신준봉 전문기자의 책과 사람(13)] 수도생활 회고한 '이해인의 말' 펴낸 이해인 수녀 “코로나 시기는 더 넓은 사랑 가꾸는 피정”
나만 옳다는 본성 접고 미운 동료 용서하는 ‘작은 죽음’ 평소 연습
잘못 인정 안 하는 리더와 정치인들 거친 언어, 새해에는 바뀌어야
지난 연말(2020년) ‘국민 이모’ 이해인(76) 수녀가 슬그머니 세상에 또 한 권의 책을 내놓았다.
“수도 생활을 50년 하고 난 제 심정이 어떠냐 물으면 ‘담백한 물빛의 평화를 느낀다’라고 말할 수 있어요. 치우치지 않는, 차별하지 않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런 문장들을 하나의 제사(題辭)로 책 첫머리에 내세운 인터뷰집 [이해인의 말](마음산책)이다. 간략하게 50년이라고 표현한 듯하지만 수녀의 수도자 생활은, 1964년 지금 몸담고 있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입회부터 따지면 꼬박 57년, 1968년 첫 서원을 시점으로 치더라도 53년이다.
그런데도 수녀는 책의 서문 격인 ‘부끄러운 마음 그대로’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대담은 처음이어서 조금 걱정이 됐다고 밝혔다. 민낯을 드러내는 일이어서 부끄럽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어느 날 또 다른 먼 나라로 건너가기 전, 한 인간으로서의 인생 여정을 축약해놓은 것 같아 (책을)읽는 도중 잠시 잠시 멈추어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였”노라고 털어놓았다. 해방둥이로 태어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녀의 모든 것’이 책 속에 들어 있다는 고백이다.
“고통은 골방에 머물 줄 모르는 데서 온다”
책은 자연인이자 수도자로서 이해인이라는 영적 존재의 내면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시의적절하게 전체 11개의 ‘만남’, 그러니까 열한 가지 이야기 갈래 가운데 첫 번째 만남을 코로나에 할애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말이다. ‘코로나 시기의 영성’. 모두가 어려운 코로나 시기일수록 자기 안의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런데 영성(靈性)이라고 해서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지레 거리를 둘 필요는 없다. 수녀가 말하는 영성은 골방의 영성이다. 좋든 싫든 코로나 시기 누구나 감내해야 하는 혼자만의 골방 생활. 그에 필요한 마음가짐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골방의 영성은 무슨 뜻일까. 수녀는 책에서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이 “인간의 모든 고통은 혼자 방에 머물 줄 모르는 데서 온다”는 말을 남겼다고 밝혔다. 생전 수녀와 관계가 돈독했던 법정(法頂, 1932~2010) 스님 역시 수녀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1978년 수녀에게 써 보낸 붓글씨 편지에서다.
“수도자에게 있어서 고독은 그림자 같은 것이겠지요. (…) 수도자의 고독은 단절에서가 아니라 우주의 바닥 같은 것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지요. 말하자면 절대적인 있음 안에 서 있는 자신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요. 배부른 상태에서는 고독을 느끼지 못합니다.”
수도자의 그림자. 우주의 바닥에서 느끼는 고독. 역시 언뜻 와 닿지 않는다. 수녀는 골방의 영성을 이런 교훈으로 해석했다.
“우리는 모두 코로나 수련생이다. 코로나 시기에 깨달은 게 있다면 첫째,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 둘째 그렇기 때문에 나한테서 빠져나와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의식하며 이타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시기를 감안해 전화로 진행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다.
기사 머리에서 수녀를 국민 ‘이모’로 언급했지만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 이후 1983년 세 번째 시집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를 출간해 수녀의 인기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무렵을 상상하면 이모라는 표현은 가당치 않다.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의 “손 시린 나목의 가지 끝에/ 홀로 앉은 바람 같은/ 목숨의 빛깔” 같은 구절이나 역시 대표작인 ‘민들레의 영토’의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같은 문장들. 이런 것들은 세월을 건너뛰어 여전히 싱싱하다.
박두진·구상, 수녀를 시인으로 발굴한 홍윤숙 등 당대의 1급 시인들이 수녀 시의 매력을 찬양했고 과열 취재 경쟁 끝에 취재기자가 수녀원 담장을 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던 수녀는 2008년 직장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아 ‘명랑 투병’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감자바위 영성’, 씩씩한 영성이다.
수녀는 인터뷰 도중 코로나 시기에 더 어렵기 마련인 가난한 이웃들을 보살피는 사회적인 노력을 거론하는 대목에서 거친 언어를 주고받으며 정쟁을 일삼는 정치권을 이례적으로 질타하기도 했다. 이례적이라면 이례적이다. 여권이든 야권이든 입맛에 맞게 해석 가능한 발언이었다.
목소리가 맑다. 건강은 어떠신가?
“큰 어려움은 없지만 이빨에 문제가 생겨 틀니를 했고, 양쪽 다리 모두에 인공관절을 해 넣었다. 암환자다 보니 항상 합병증 두려움이 있다. 건강 염려증으로 약간 우울한 성탄절을 보내고 있다.”
2008년 직장암 수술 이후 명랑 투병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이 어떤 것인지 상상이 안 된다.
“지난해 11월 25일 친오빠가 돌아가셨다. 서울에서 만난 지 2, 3주밖에 안 됐는데…. 곧이어 같이 지내던 수녀 한 분이 돌아가셨고, 그 수녀님을 돌보던 또 다른 수녀님이 심장대동맥박리라는 병으로 기로에 서 있다가 의식을 회복했다. 죽음이 우리 삶 속에 있다는 점을 절감하게 된다. 그래서 죽음에 관계된 책들을 주문해 읽고 있다. [엄마의 마지막 말들], [애도의 문장들], 이런 책들이다. 죽음을 곁에 두고 묵상하면 순간순간 삶에 충실해질 테니 사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에 이르는 투병 과정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어쨌든 끝이 있는 것이라는 사실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수도자로서 존엄한 죽음을 맞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는데 내 허영심이겠지.”
죽음의 정의를 내린다면.
“자신의 본성을 내려놓고 겸손해지는 거다. 수도자인 나도 인간이다 보니 동료의 어떤 행동이 용서가 안 될 때가 있다. 홧김에 확 표현할 수 있지 않나. 그 순간 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일종의 정신적인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교만한 마음에 큰소리치고 내가 옳다고 우기고 싶을 때, 지금 이 사람하고 내가 영원히 사는 것도 아닌데 겸손으로 본성을 극복하자, 평소 정신적인 죽음 연습을 해둬야 나중에 진짜 죽을 때 잘 죽을 수 있어, 스스로 교육한다. 이렇게 몇십 년을 살다 보니 마음이 순해진 것 같다.”
죽음의 공포까지는 아니겠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많은 사람이 불안과 공포에 시달린다.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낼수록 골방의 영성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밖으로 나돌았다. 자신을 잘 들여다보되 바깥의 타자에게도 눈길을 돌려야 한다. 코로나 와중에 넓은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괴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어떻게 남을 위하는 일로 연결되나?
“법정 스님의 편지는 인간의 고독과 한계를 더 깊이 들여다볼수록 그것을 기초로 남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얘기였다. 3년 전 돌아가신 친언니 수녀님이 평생 바깥에 나오지 않는 봉쇄 수도원에 계셨다. 만나 보면 자기한테는 엄격하면서 남에게는 바다 같이 넓고 쾌활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본의 아니게 봉쇄 수도자 같은 삶을 살지 않나. 갇혀 지내다 보니 사람들이 그리워지고 남들에게 인색했던 부분들을 반성하게 된다. 가톨릭에서는 1년을 잘 살기 위해 8박 9일 피정을 한다. 코로나 시기를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피정 기간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혼자 있는 동안 영성을 잘 가꿔 코로나가 풀리면 맨발로 뛰어나가 이웃들을 막 도와주라는 피정 말이다.”
개인 아닌 공동체 차원에서 형편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전 사회적으로 가톨릭의 카리타스, 그러니까 애덕(愛德)이나 자선 같은 행동을 운동처럼 실천하면 어떨까. 꼭 돈만이 아니라 재능 기부도 좋고. 가족처럼 서로 보살피며 마을 단위로 말이다.”
정치판부터 확 바꾸는 수평적 리더십 나와야
수녀의 ‘코로나 처방전’은 이 대목에서 정치권 질타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런 일이 몇 사람만의 이상 갖고는 잘 안 되는 것 같다. 정부 차원에서 움직여야 한다. 맨날 싸움만 하지 말고. 아이들이 신문에서 여당 야당 싸움하는 것만 본다. 공부는 해서 뭐하나,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 정치인들이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새해에는 너무 배움이 없는 사람들처럼 원색적인 비난을 하지 말고 유머도 섞어 가면서 세련된 언어로 싸우면 좋겠다. 공동선을 향해 사심 없이 좋은 나라를 만들어가야 한다. 가끔 김수환 추기경님도 생각나고 법정 스님도 생각난다. 그분들처럼 어떤 지침을 줄 수 있는 분들이 아쉽다.”
정치인들이 스스로 바뀔 것 같지 않다.
“우리 문제는 모두 남 탓만 한다는 거다.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어떤 사람이 잘못하는 모습이 혹시 내 모습은 아닐까, 한 번쯤 골방에 들어가 자신을 살펴보면 어떨까. 어떤 잘못을 했을 때 망신당하거나 매 맞을 각오를 하고 약점을 자랑한다고 할까, 그렇게 사과하는 용기를 내는 리더가 나오면 나라가 좀 나아지지 않을까. 모든 국민이 거짓말인 줄 아는데 정작 본인은 아니라고 하니까 정치가 잘 되는 듯하다가도 퇴보하고….”
책에는 수녀원 안에 이는 변화의 움직임이 소개돼 있다. 전에는 윗사람이 배추를 거꾸로 심으라고 하면 아무 말 못 하고 따랐다면 지금은 안 된다고 말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미국의 경우지만 호칭 변화 사례도 소개했다. ‘원장’ 호칭으로 우월적인 느낌의 ‘슈퍼리어(superior)’를 많이 썼는데 요즘은 보다 동반자적인 느낌의 ‘코디네이터(coordinator)’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수녀는 우리 정치권의 문제를 다시 거론했다.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가 올해로 90년, 10년 후에 100주년을 맞는데 그동안 경험한 우리 수녀원의 원장들은 한결같이 굉장히 수평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같은 공동체의 한 사람인데 단지 책임을 원장을 맡는다는 인식이다. 우리나라는 어떤 영향 때문인지 모르지만 관료적이고 굽신대고 수평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운 전통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가정의 가장들도 예전처럼 하면 안 되고 수동적으로 따르는 모습을 보여줘야 이제는 부인에게 인정받는다. 사회적으로도 어떤 분이 본보기가 될지 모르지만 확 판을 바꾸는 수평적인 리더십이 나오도록 기도를 해야 할 것 같다.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든 변혁이 이뤄지도록 해서 정치판부터 바뀌어야 우리 각자에게 희망이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에 드는 사람만 잘해주거나 권력 있는 사람에게 굽신대지 않고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대하는 수평적인 리더십은 우리 모두가 연구·실천해야 하는 덕목 같다.”
교류하던 사형수 형 집행에 크게 울어
알려진 것처럼 수녀는 80년대부터 사형수들 면담을 다녔다. 그중에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진룸살롱 관련자들도 있다. 교류가 있었던 11명의 사형수 가운데 지금까지 7명의 사형이 집행됐다. 무기수 신창원의 근황이 우리에게 간간이 알려진 것도 수녀와의 만남의 이야기를 통해서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가운데 누가 가장 인상 깊었느냐고 묻자 수녀는 사형수들 이야기를 꺼냈다.
“20, 30대의 사형수 형제님들하고 러브레터라도 주고받듯 굉장한 편지를 주고받으며 다들 무섭다고 하는 이 사람들 안에도 어떤 순정이 있구나, 예수님이 잘나고 교만한 의인보다 죄 많아 겸손한 죄인들을 왜 더 챙겼는지를 이해하게 됐다. 그런 사람들이 죽어 장례식을 다녀와서는 내 생애 울 수 있는 눈물을 다 흘렸던 것 같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소유물들을 정리하는 중이라고.
“어쨌든 내 삶을 정리해야 하니까 수녀원에 둬도 되는 것들은 두지만 내가 다녔던 김천 성의여고 안에 있는 내 이름을 딴 문학관에 대부분의 물건을 보낸다. 수녀원 안에 개인 공간인 해인글방 창고에 40, 50년 동안 모아둔 사람들이 보내온 편지가 수십만 통이다. 어떤 영혼의 메아리, 외침이다. 편지를 보냈던 사람 중에 죽은 사람들도 있고, 소녀 미혼모가 글방에 두고 간 아이를 10년 넘게 아이가 없던 부부가 입양하도록 소개한 적도 있다. 그렇게 사랑의 심부름 역할, 심부름 천사의 역할을 시를 통해서 많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게 보람이라면 보람이고 기쁨이고 그렇다.”
여전히 기억력이 뛰어나다는 대목이 책이 있는데, 비결이 있다면.
“머릿속의 서랍 정리를 잘하면 된다. 가령 손님이 온다면 그분에 대해 공부하고, 방문하는 동안 구체적으로 어떤 대접을 할까, 무슨 선물을 할까, 딱딱 규모 있게 정리를 한다. 짧은 시간이라도 허투루 낭비되지 않게 말이다. 이렇게 모든 만남이 무의미하지 않도록 의미를 찾는 연습을 하다 보면 기억력도 좋아진다. 남들이 보면 그냥 하는 것 같지만 내 마음속으로는 다 계산하는 거고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머릿속에 정리가 돼 있는 거다. 손님에게 겨울에는 동백꽃 한 송이를 따서 주고 가을에는 코스모스 한 송이를 책상에다 딱 놓는다. 계절에 따라서 사람들을 어떻게 기쁘게 할까, 그런 궁리를 하다 보니 삶이 탄력 있어진다. 우울증에 빠질 일이 없다.”
세상 사람들에게 응원이 되는 한마디를 하신다면.
“[사계절의 기도]라는 내 기도시집에 실린 ‘우리를 흔들어 깨우소서’라는 작품 가운데 몇 구절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책갈피를 만들었다. ‘나 아닌 그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해주길 바라고 미루는/ 사랑과 평화의 밭을 일구는 일/ 비록 힘들더라도/ 나의 몫으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참됨과 선함과/ 아름다움의 집을/ 내가 먼저 짓기 시작하여/ 더 많은 이웃을/ 불러 모으게 하소서”. 이런 문장이다. 자꾸 남의 탓 하지 말고 내가 아니면 누가 하나, 지금 아니면 언제 하나, 어려운 시기일수록 능동적으로 솔선수범하며 살자는 거다.”
새해 마음먹은 결심이 있나.
“환대다. 내가 좋아하는 격언 중에 이런 게 있다. ‘타인을 냉대하지 말라. 그가 천사일지 모르니.’”
※ 신준봉 문화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 1993년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신문사에서 10년 가까이 문학담당 기자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문학과 인연을 맺었다. 상식의 눈에는 괴짜인 문인들, 그들이 생산한 영롱한 것들을 초롱초롱한 독자들에게 중개하는 일, 제도로서 문학의 생로병사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