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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36권
대반열반경_12. 가섭보살품④
여래의 불성,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
대열반의 강의 일곱 가지 중생/
1. 항상 잠겨 있는 것/
2. 나왔다가 다시 빠지는 것/
3. 나와서는 머무는 것/ 난법
[여래의 불성,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
선남자야, 여래는 또 자기의 뜻을 따르는 말이 있다.
여래의 불성은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있다는 것이며,
둘째는 없다는 것이다.
있다는 것은,
32상과, 80종호와, 10력과, 4무소외와, 3념처와, 대자대비와, 수릉엄 등의 한량없는 삼매와,
금강 등 한량없는 삼매와,
방편 등 한량없는 삼매와,
5지인(智印) 등 한량없는 삼매는 있는 것이라 한다.
없다는 것은,
여래의 지난 세상의 선과 불선과, 무기(無記)와, 업과 인과 과와 보(報)와, 번뇌와, 5음(陰)과 12인연 등이니, 이것을 없는 것이라 한다.
선남자야, 유ㆍ무ㆍ선ㆍ불선ㆍ유루(有漏)ㆍ무루ㆍ세간ㆍ비세간(非世間)ㆍ성인ㆍ비성인ㆍ유위(有爲)ㆍ무위ㆍ진실함ㆍ진실하지 못함ㆍ고요함ㆍ고요하지 않음ㆍ다툼ㆍ다투지 않음ㆍ계(界)ㆍ비계(非界)ㆍ번뇌ㆍ비번뇌ㆍ취(取)ㆍ비취ㆍ수기(受記)ㆍ비수기ㆍ유ㆍ비유ㆍ삼세ㆍ비삼세ㆍ시(時)ㆍ비시ㆍ항상함ㆍ무상ㆍ나ㆍ내가 없음ㆍ즐거움ㆍ즐겁지 않음ㆍ깨끗함ㆍ깨끗하지 않음ㆍ색수상행식ㆍ색수상행식이 아님ㆍ 내입(內入)ㆍ비내입(非內入)ㆍ외입(外入)ㆍ비외입(非外入)ㆍ12인연ㆍ비(非)12인연들을,
여래의 불성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라고 하며,
나아가 일천제 불성이 있는 것과 없는 것도 이와 같다.
선남자야, 내가 비록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말하지만,
중생들은 부처님의 이러한 자기의 뜻을 따라서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선남자야, 이런 말은 후신 보살도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2승이나 다른 보살들이겠느냐?
선남자야, 내가 지나간 어느 때에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미륵보살과 더불어 세제(世諦)를 의논할 때에,
사리불 등 500성문은 이런 일을 전혀 알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출세간의 제일의제(第一義諦)이겠느냐?
선남자야, 어떤 불성은 일천제에게는 있고 선근인(善根人)에게는 없으며,
어떤 불성은 선근인에게는 있고 일천제에게는 없으며,
어떤 불성은 두 사람에게 모두 있고,
어떤 불성은 두 사람에게 모두 없다.
선남자야, 내 제자들로서 이와 같은 네 글귀의 뜻[四句義]을 아는 이는 마땅히 논란하기를,
일천제가 반드시 불성이 있느냐, 반드시 불성이 없느냐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여래가 자기의 뜻을 따라서 하는 말이니,
여래의 이러한 자기의 뜻을 따라 하는 말을, 중생이 어떻게 한결같이 이해하겠는가?
[항하 속의 일곱 가지 중생]
선남자야, 마치 항하 속에 일곱 가지 중생이 있는데,
첫째는 항상 잠겨 있고,
둘째는 잠깐 나왔다가 도로 잠기고,
셋째는 나와서는 곧 머물고,
넷째는 나와서는 사방을 두루 살피고,
다섯째는 살펴보고는 가고,
여섯째는 가다가 다시 머물고,
일곱째는 물과 육지에 모두 다닌다.
항상 잠겨 있는 것은, 큰 고기이니 크고 나쁜 업보를 받아 몸이 무거워서 깊은 데 있고, 이 때문에 항상 잠겨 있는 것이다.
잠깐 나왔다가 도로 잠기는 것은, 이 큰 고기가 나쁜 업보로 몸이 무거우나 옅은 데 있으면서 잠깐 광명을 보며, 광명을 인하여 잠깐 나오고 무거우므로 도로 잠기는 것이다. 나와서 곧 머무는 것은, 지미어(抵彌魚)가 얕은 물에 있으면서 광명을 좋아하므로 나와서는 머무는 것이다.
사방을 두루 살피는 것은, 상어[䱜魚]가 먹이를 구하기 위하여 사방을 살피느라고 이리저리 보는 것이다.
살펴보고 가는 것은, 상어가 멀리 있는 물건을 보고 먹을 것인가 하여 빨리 따라가느라고 보고 나서 가는 것이다.
가다가 다시 머무는 것은, 이 고기가 따라가서 먹이를 얻고 나서 즉시 정지하므로 가다가 머무는 것이다.
물과 육지에 모두 다니는 것은 거북이다.
[대열반의 강의 일곱 가지 중생]
선남자야, 이와 같이 미묘한 대열반의 강에도 일곱 가지 중생이 있으니,
처음의 항상 잠겨 있는 것으로부터 일곱째까지 나오기도 하고 들어가기도 하는 것이다.
1. 항상 잠겨 있는 것
항상 잠겨 있는 것은,
어떤 사람이 이 『대반열반경』을 들으니,
‘여래는 항상 머물러 있어 변하지 않으며,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여 필경까지 열반에 들지 않으며,
모든 중생들이 다 불성이 있고,
일천제들이 방등경을 비방하고 5역죄를 짓고 4중죄를 범하고도 반드시 보리를 이루며,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들도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룬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는 믿지 않고,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말하기를,
‘이 열반의 가르침은 외도의 글이며, 부처님 경전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선지식을 멀리하고, 바른 법을 듣지 않으며,
비록 듣더라도 생각하지 않고,
설사 생각하더라도 선한 일을 생각하지 않으며,
선한 일을 생각하지 않으므로 나쁜 법에 머문다.
나쁜 법에 머무는 것은 여섯 가지이다.
첫째는 악함이며,
둘째는 선이 없음이며,
셋째는 더러운 법이며,
넷째는 업보를 더함이며[增有],
다섯째는 번열함[熱]이며,
여섯째는 나쁜 과보를 받음이다.
이것이 잠긴다고 하는 것이다.
어째서 잠긴다고 하는가?
선한 마음이 없는 까닭이며,
나쁜 짓을 항상 행하는 까닭이며,
다스릴 것을 닦지 않으므로, 잠긴다고 한다.
악하다 함은,
성인이 꾸짖는 까닭이며,
마음에 두려운 까닭이며,
선한 사람이 멀리 떠나는 까닭이며,
중생을 이익되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악하다고 한다.
선이 없다 함은,
한량없는 나쁜 과보를 내기 때문이며,
항상 무명에 얽히기 때문이며,
나쁜 사람과 동무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며,
선한 일을 닦는 방편이 없기 때문이며,
마음이 뒤바뀌어 항상 잘못되므로,
선이 없다고 한다.
더러운 법이라 함은,
몸과 입을 항상 더럽히는 까닭이며,
깨끗한 중생을 더럽히는 까닭이며,
불선한 업을 더하는 까닭이며,
선한 법을 멀리 하기 때문에,
더러운 법이라고 한다.
업보를 더한다고 함은,
위에 말한 세 사람이 행하는 법이, 지옥ㆍ축생ㆍ아귀의 업을 더하고 해탈하는 법을 닦지 못하며,
몸과 입과 마음의 업으로 생사를 싫어하지 않는다.
이것을 말하여 업보를 더한다고 한다.
번열이라 함은,
이 사람이 위에 말한 네 가지 짓을 모두 행하여, 몸과 마음을 시끄럽게 한다.
고요함을 멀리 떠남을 번열이라 하고,
지옥의 보를 받으므로 번열이라 하고,
중생들을 태우므로 번열이라 하고,
선한 법을 불사르므로 번열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신심의 서늘함을 이 사람은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번열이라 한다.
나쁜 과보를 받는다 함은,
이 사람이 위에 말한 다섯 가지를 구족하게 행하였으므로, 죽어서는 지옥ㆍ아귀ㆍ축생에 떨어진다.
선남자야, 세 가지 나쁜 일이 있으므로 나쁜 과보라고 한다.
첫째는 번뇌가 나쁘고,
둘째는 업이 나쁘고,
셋째는 과보가 나쁘다.
이것을 이름하여 나쁜 과보를 받는다고 한다.
선남자야, 이 사람은 위에 말한 여섯 가지를 갖추었으므로,
선근을 끊고,
5역죄를 짓고, 4중죄를 범하고, 3보를 비방하며,
승가의 물건을 사용하며,
여러 가지 법답지 못한 일을 짓는다.
이 인연 때문에 아비지옥에 빠지는 것이며, 받는 몸은 가로 세로가 8만 4천 유순[由延]이다.
이 사람은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죄업이 무거워서 나올 수가 없다.
왜냐하면 마음에 선한 법을 내지 못하므로,
한량없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시더라도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항상 잠겨 있다고 하며,
마치 항하의 큰 고기와 같다.
선남자야, 내가 비록 일천제들을 항상 잠겨 있다고 말하였으나,
일천제가 아니면서 항상 잠겨 있는 이가 있다.
어떤 이들인가?
어떤 사람이 생사를 위하여 보시와 계율의 선한 일을 닦으면, 항상 잠겨 있다고 한다.
선남자야, 네 가지 선한 일이 있으면, 나쁜 과보를 얻는다.
무엇을 네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남을 이기려고 경전을 읽는 것이며,
둘째는 이양(利養)을 위하여 계율을 가지는 것이며,
셋째는 다른 이에게 붙기[屬] 위하여 보시를 행하는 것이며,
넷째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위하여 마음을 두어 생각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선한 일은 나쁜 과보를 얻는다.
2. 나왔다가 다시 빠지는 것
어떤 사람이 이런 네 가지를 닦으면, 이것을 일러 빠졌다가 나오고 나왔다가 다시 빠진다고 한다.
어찌하여 빠진다고 하는가?
3유(有)를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나온다고 하는가?
광명을 보기 때문이다.
광명이라고 하는 것은, 계율과 보시와 선정을 듣는 것이다.
어찌하여 도로 빠지는가?
나쁜 소견이 늘고 교만을 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이런 게송을 말하였다.
어떤 중생 모든 유(有)를 좋아하면서,
유를 위해 선업 악업 짓는다 하면,
이 사람은 열반 길을 잃게 되나니,
이를 일러 나왔다가 다시 빠진다 하며,
캄캄한 생사의 바다 돌아다니며,
해탈을 얻더라도 번뇌가 섞이면,
이 사람은 나쁜 과보 다시 받나니,
이를 일러 나왔다가 다시 빠진다고 하네.
선남자야, 저 큰 고기가 광명을 보기 위하여 잠깐 나왔다가도,
몸이 무거워서 도로 빠지듯이,
위의 두 사람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3유(有)를 좋아하면, 이것을 빠진다 하고,
이 『대열반경』을 듣고 신심을 내면, 이것을 나온다고 한다.
무슨 인연으로 나온다고 하는가?
이 경을 듣고 나서 나쁜 법을 멀리 여의고,
선한 법을 닦으므로 나온다고 한다.
[믿음을 구족하지 못한다]
이 사람이 비록 믿으나 구족하지는 못하니, 무슨 인연으로 믿음을 구족하지 못하는가?
이 사람이 비록 『대열반』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줄을 믿지만,
여래의 몸은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거움이 없고 깨끗함이 없다고 말한다.
여래에게 두 가지 열반이 있으니,
첫째는 함이 있음[有爲]이며,
둘째는 함이 없음[無爲]이다.
함이 있는 열반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없고,
함이 없는 열반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있다.
비록 불성이 중생에게 있음을 믿으나, 반드시 온갖 중생에게 다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선남자야, 믿음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믿음이며,
둘째는 구함이다.
이런 사람은 믿음은 있으나 능히 구하지 못하므로,
믿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믿음에는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들음으로부터 생기고,
둘째는 생각함으로부터 생긴다.
이 사람의 신심은 들음으로부터 생겼고, 생각으로부터 생기지 않았으므로,
믿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도가 있음을 믿는 것이고,
둘째는 얻는 이를 믿는 것이다.
이 사람의 신심은 도가 있는 것만 믿고,
도를 얻는 사람이 있는 것은 믿지 않으므로,
믿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바른 것을 믿고,
둘째는 삿된 것을 믿는 것이다.
인과 과가 있음을 믿고,
부처님과 교법과 승가가 있음을 믿는 것은,
바른 것을 믿는다 하고,
인도 과도 없고,
3보의 성품이 다르다고 말하며,
부란나(富蘭那) 등의 삿된 말을 믿는 것은,
삿된 것을 믿는다고 한다.
이 사람은 비록 불보(佛寶)ㆍ법보(法寶)ㆍ승보(僧寶)를 믿으나,
3보가 동일한 성품인 줄은 믿지 않으며,
인과 과는 믿으나 얻는 이는 믿지 않으므로,
믿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계율도 구족하지 못한다]
이 사람은 구족하지 못한 신심을 구족하였으므로,
받은 계율도 구족하지 못하였다.
무슨 인연으로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하는가?
인을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얻은 계율도 구족하지 못하였다.
또 무슨 인연으로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하는가?
계율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위의계(威儀戒)이며,
둘째는 종계계(從戒戒)이다.
이 사람은 위의계만 구족하였고, 종계계는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계를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짓는 계[作戒]이며,
둘째는 지음이 없는 계[無作戒]이다.
이 사람은 짓는 계만 구족하였고, 지음이 없는 계는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계를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몸과 입으로 좇아 정명(正命)을 얻음이고,
둘째는 몸과 입으로 좇아 정명을 얻지 못함이다.
이 사람은 비록 몸과 입을 좇으나, 정명을 얻지 못하므로,
계를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구하는 계이며,
둘째는 버리는 계이다.
이 사람은 구하는 계만 갖추었고, 버리는 계는 얻지 못하였으므로,
계를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유를 따르는 것[隨有]이며,
둘째는 도를 따르는 것[隨道]이다.
이 사람은 유를 따르는 계만 갖추었고, 도를 따르는 계는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계를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선한 계이며,
둘째는 악한 계이다.
몸과 입과 뜻이 선한 것을 선한 계라 하고,
우계(牛戒)ㆍ구계(狗戒)를 악한 계라고 한다.
이 사람은 이 두 가지 계에 모두 선한 과가 있다고 믿으므로,
계를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들음을 구족하지 못한다]
이 사람은 믿음과 계율을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닦는바,
들음[多聞]도 구족하지 못한다.
어떤 것을 들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하는가?
여래가 말한 12부경에서 6부만 믿고 6부는 믿지 않으므로,
들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하며,
비록 이 6부경을 받아 가지면서도 읽거나 외우거나 다른 이를 위하여 해설하지 못하며 이익됨이 없으므로,
들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하며,
비록 이 6부경을 받았더라도 논의(論議)하기 위하여, 남을 이기기 위하여, 이양을 위하여 모든 유를 위하여 지니고 읽고 외우고 해설하므로,
들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선남자야, 내가 경전 중에서 들음이 구족함을 말하였다.
어떤 것을 구족하였다고 하는가?
만일 비구가 몸과 입과 뜻이 선하고,
예전부터 화상과 스님들과 덕이 있는 이를 공양하였다면,
이 스님들이 이 사람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내고,
이런 인연으로 법을 가르쳐 주는데,
이 사람이 지성으로 받아 지니고 외우며 익히고,
지니고 외우고 익히고 나서 지혜를 얻으며,
지혜를 얻고 나서 잘 생각하고 법답게 머물며,
잘 생각하고 나서 바른 이치를 얻으며,
바른 이치를 얻고 나서 몸과 마음이 고요하며,
몸과 마음이 고요하고 나서 기쁜 마음을 내며,
기쁜 마음의 인연으로 마음에 선정을 얻고,
선정을 얻었으므로 바른 지견(知見)을 얻으며,
바른 지견을 얻고 나서,
모든 유(有)에 대하여 싫어하여 뉘우치는 마음을 내고,
뉘우치기 때문에 해탈을 얻는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이러한 일이 없으므로,
들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보시를 구족하지 못한다]
이 사람은 이렇게 세 가지를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보시도 구족하지 못한다.
보시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재물을 보시하는 것이며,
둘째는 법을 보시하는 것이다.
이 사람이 비록 재물 보시는 행하지만 구함이 있기 때문에,
비록 법으로 보시하지만 구족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숨기고 모두 다 말하지 않으며,
다른 이가 이길까 두려워하므로,
보시를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재물 보시와 법 보시에 각각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성스럽고,
둘째는 성스럽지 못함이다.
성스러운 것은 보시하고 나서 과보를 바라지 않는 것이며,
성스럽지 못한 것은 보시하고 나서 과보를 바라는 것이며,
성스러운 것은 법 보시가 법을 증장하기 위함이며,
성스럽지 못한 것은 법 보시가 유(有)를 증장하기 위함이다.
이 사람은 재물을 늘리기 위하여 재물을 보시하고,
유를 증장하기 위하여 법을 보시하는 것이므로,
보시를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 이 사람이 6부경을 받고서도,
법을 받는 이를 보고 나서 이바지하고,
법을 받지 않은 이에게는 이바지하지 않으므로,
보시를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지혜를 구족하지 못한다]
이 사람은 위에 말한 네 가지를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닦는 지혜도 구족하지 못한다.
지혜의 성품은 분별하는 것인데,
이 사람은 여래가 항상한지 무상한지를 분별하지 못한다.
여래는 이 열반경에서 말하기를,
‘여래가 곧 해탈이며,
해탈이 곧 여래이며,
여래가 곧 열반이며,
열반이 곧 해탈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런 이치를 능히 분별하지 못한다.
범행(梵行)이 곧 여래이며,
여래가 곧 자비희사(慈悲喜捨)이며,
자비희사가 곧 해탈이며,
해탈이 곧 열반이며,
열반이 곧 자비희사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런 이치를 분별하지 못하므로,
지혜를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 불성을 분별하지 못하니,
불성이 곧 여래이며,
여래가 곧 함께하지 않는 법이며,
함께하지 않는 법이 곧 해탈이며,
해탈이 곧 열반이며 열반이 곧 함께하지 않는 법이다.
이런 이치를 분별하지 못하므로,
지혜를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 고ㆍ집ㆍ멸ㆍ도의 4제를 분별하지 못한다.
4진제(眞諦)를 분별하지 못하므로 성인의 행을 알지 못하고,
성인의 행을 알지 못하므로 여래를 알지 못하고,
여래를 알지 못하므로 해탈을 알지 못하고,
해탈을 알지 못하므로 열반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지혜를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다섯 가지를 구족하지 못하면]
이 사람이 이러한 다섯 가지를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두 가지 일이 있다.
첫째는 선한 법을 증장하는 것이고,
둘째는 악한 법을 증장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악한 법을 증장한다고 하는가?
이 사람은 자기가 구족하지 못한 것을 보지 못하므로,
스스로 구족하였노라 말하면서 집착하는 마음을 내어,
동등한 이에게 자기가 수승하다고 하며,
자기와 같은 나쁜 동무를 가까이하며,
가까이하고 나서 다시 구족하지 못한 법을 들으며,
듣고 나서 마음이 기쁘고 거기에 마음이 물들어서, 교만을 일으키고 방일한 짓을 행하며,
방일함을 인하여 집에 있는 이를 가까이 하고,
집에 있는 이의 일을 듣기를 좋아하며,
청정하게 출가한 법을 멀리 떠난다.
이런 인연으로 나쁜 법을 증장하고,
나쁜 법이 증장하므로 몸과 입과 뜻 등에 부정한 업을 짓고,
3업이 부정하므로 지옥ㆍ축생ㆍ아귀를 증장한다.
이것을 일러 잠깐 나왔다가 도로 빠진다고 한다.
잠깐 나왔다가 도로 빠진다 함은, 나의 불법 가운데서 누구인가?
제바달다ㆍ 구가리(瞿伽離) 비구ㆍ완수(惋手) 비구ㆍ선성 비구ㆍ저사(低舍) 비구ㆍ만수(滿宿) 비구ㆍ자지(慈地) 비구니ㆍ광야(曠野) 비구니ㆍ방(方) 비구니ㆍ만(慢) 비구니ㆍ정결(淨潔) 장자ㆍ구유(求有)우바새ㆍ사륵(舍勒) 석종(釋種)ㆍ상(象) 장자ㆍ명칭 우바이ㆍ광명 우바이ㆍ난타 우바이ㆍ군(軍) 우바이ㆍ영(鈴) 우바이 등이다.
이런 사람을 잠깐 나왔다가 도로 빠진다고 한다.
마치 큰 고기가 광명을 보려고 나왔다가 몸이 무거워서 빠지는 것과 같다.
3. 나와서는 머무는 것
둘째 사람은 행을 구족하지 못한 줄을 깊이 깨닫고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선지식을 가까이 하고,
선지식을 가까이하므로 듣지 못한 것을 즐겁게 물으며,
듣고 나서, 받아 가지기를 좋아하고,
받고 나서, 잘 생각하기를 좋아하며,
잘 생각하고 나서는, 법답게 머무르므로 선한 법이 증장하고,
선한 법이 증장하므로 다시는 빠지지 않는다.
이것을 일러, 머문다고 한다.
나의 불법 가운데서는 누구일까?
이른바 사리불ㆍ대목건련ㆍ아야교진여 등 다섯 비구, 야사 등 500비구, 아누루타(阿樓陀)ㆍ동자 가섭ㆍ마하가섭ㆍ십력 가섭ㆍ
수구담미(瘦瞿曇彌) 비구니ㆍ파타라화(波吒羅花) 비구니ㆍ승(勝) 비구니ㆍ실의(實義) 비구니ㆍ의(意) 비구니ㆍ발타(跋陀) 비구니ㆍ정(淨) 비구니ㆍ불퇴전 비구니ㆍ
빈바사라왕ㆍ욱가(郁伽) 장자ㆍ수달다(須達多) 장자ㆍ석마남(釋摩男)ㆍ빈(貧) 수달다ㆍ서랑장자자(鼠狼長者子)ㆍ명칭 장자ㆍ구족(具足) 장자ㆍ사자(師子) 장군ㆍ우바리(優波離) 장자ㆍ도(刀) 장자ㆍ
무외(無畏) 우바이ㆍ선주(善住) 우바이ㆍ애법(愛法) 우바이ㆍ용건(勇建) 우바이ㆍ천득(天得) 우바이ㆍ선생(善生) 우바이ㆍ구신(具身) 우바이ㆍ우득(牛得) 우바이ㆍ광야(曠野) 우바이ㆍ마하사나(摩訶斯那) 우바이 등이니,
이러한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들은 머문다고 할 수 있다.
어떤 것을 머문다 하는가?
선한 광명을 항상 보기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인연으로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시거나 나시지 않거나 간에,
이런 사람은 끝내 나쁜 업을 짓지 않는다.
이것을 머문다고 하는데,
마치 저미어(低彌魚)가 광명을 보기 좋아하여, 잠기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는 것과 같다.
이런 대중들도 그와 같으므로 내가 경전 중에서 게송을 말하였다.”
어떤 사람 바른 뜻을 잘 분별하여
지성으로 사문 과보 항상 구하며
일체의 생사 업보 꾸짖는다면
그 사람은 법답게 머문다 하리.
한량없는 부처님께 늘 공양하고
한량없는 오랜 세월 도를 닦으며
세상 낙을 받더라도 방일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법답게 머문다 하리.
선지식을 친근히 하여 바른 법 듣고
속으로 잘 생각하며 법답게 있어
광명을 즐겨 보고 도를 닦으면
해탈을 얻고 나서 편안하리라.
“선남자야, 지혜를 구족하지 못하는 것에 무릇 다섯 가지가 있는데,
이 사람이 그것을 알고 선지식을 친근히 하면,
그 선지식은 이 사람이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은 생각 중, 어느 것에 치우쳐 많은가를 관찰한다.
만일 이 사람이 탐욕이 많은 줄을 알면, 부정관(不淨觀)을 말하여 주고,
성내는 일이 많은 줄을 알면, 자비관(慈悲觀)을 말하여 주고,
어리석은 생각이 많은 줄을 알면, 수식관(數息觀)을 가르쳐 주고,
나에 집착함이 많은 줄을 알면, 18계(界) 등을 분석하여 준다.
이 사람이 듣고 나서, 지극한 마음으로 받아 지니며,
마음으로 받아 지닌 뒤에는, 법답게 수행하고,
법답게 수행하여서는, 몸[身]과, 받음[受]과, 마음[心]과, 법[法]의 4념처관(念處觀)을 차례로 얻고,
이 관(觀)을 얻고 나서, 차례차례 12인연을 관찰한다.
이와 같이 관찰하고 난 다음에는, 난법(煖法)을 얻는다.”
[난법]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이 다 난법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 법이 화합한 것을 중생이라고 이르니, 수명[壽]과 난기[煖]와 알음알이[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이 뜻을 따른다면 모든 중생이 먼저부터 난법이 있었는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난법이 선지식으로 인하여 생긴다’라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대가 물은 난법은 모든 중생과 일천제까지 모두 있다고 하는 것이지만,
내가 말하는 난법은 방편으로 인하여 얻는 것이니,
본래는 없다가 지금에 있는 것이다.
이런 이치로 모든 중생들이 먼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대는 모든 중생에게 모두 난법이 있다고 말할 것이 아니다.
선남자야, 이러한 난법은 색계의 법이며, 욕계에 있는 것이 아니니,
만일 모든 중생이 있다고 말하면, 욕계의 중생에게도 있어야 하나,
욕계에는 없는 것이므로, 모든 중생에게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색계에는 비록 있더라도, 모든 중생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내 제자에게는 있고,
외도에게는 없으니,
이런 뜻으로 모든 중생에게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니다.
선남자야, 모든 외도들은 6행(行)만 보지만,
나의 제자는 16행을 구족하였으니,
이 16행은 모든 중생에게 반드시 다 있는 것이 아니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시는 난법은 어째서 난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제 성품이 따뜻한 것입니까,
다른 것 때문에 따뜻한 것입니까?”
“선남자야, 이 난법은 제 성품이 따뜻한 것이며,
다른 것 때문에 따뜻한 것이 아니다.”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를,
‘마사(馬師)와 만숙(滿宿)은 난법이 없다.
왜냐하면 3보에 신심이 없는 탓으로 난이 없다’라고 하셨으니,
신심이 난법인가 합니다.”
“선남자야, 신심이 난법이 아니다.
왜냐하면 신심으로 인하여 그 뒤에 난법을 얻는 까닭이다.
[난법은 지혜이다]
선남자야, 난법이라고 함은 곧 지혜이다.
왜냐하면 4제를 관찰하기 때문에 16행이라고 하며,
행은 곧 지혜이다.
선남자야, 그대가 묻기를,
‘무슨 인연으로 난이라고 합니까?’라고 하는데,
선남자야, 난법은 곧 8성도(聖道)의 불의 모습[火相]이므로 난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마치 나무를 비벼서 불을 낼 때에,
먼저 따뜻한 기운이 있고, 다음에 불이 나고, 나중에 연기가 나듯이,
무루의 도도 그와 같다.
따뜻하다고 함은 16행이며,
불은 수다원과이고,
연기는 도를 닦는 자리에서 번뇌를 끊는 것이다.”
가섭보살은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난법은 함이 있는 법이다]
“세존이시여, 이 난법은 또한 유(有)의 법이며 함이 있는 법이니,
이 법은 과보로 색계의 5음을 얻으므로 유라 하고,
인연이기 때문에 함이 있는 것이라고 하겠으니,
만일 함이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무루의 도가 되겠습니까?”
“선남자야, 그렇다. 그대의 말과 같다.
선남자야, 이 난법이 비록 함이 있는 법이며. 유의 법이지만,
도리어 함이 있는 법과 유의 법을 파괴하는 것이므로. 무루도의 모습이 된다.
선남자야, 사람이 말을 탔을 때에 사랑하면서도 채찍질하듯이,
따뜻한 마음도 그와 같아서,
사랑하기 때문에 태어나고,
싫어하기 때문에 행을 관찰한다.
그러므로 비록 유의 법이며.
함이 있는 법이지만 바른 도의 모습이 된다.
난법을 얻는 사람은 73종류로서 욕계가 열 가지이다.
이 사람은 온갖 번뇌를 구족하고 1분을 끊기 시작하여 9분까지 이르며,
욕계와 같이 초선(初禪)으로부터 무소유처(無所有處)까지도 그와 같다.
이것을 73종류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난법을 얻고 나서.
다시 선근을 끊거나. 5역죄를 짓거나. 4중죄를 범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