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우리가 문자들의 경우를 임의의 기호들의 경우와 비교하지 않았다면,
읽는 과정에서 문자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느낀다는 생각은 결코 일어낮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확실히 어떤 차이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영향이 있고 없고의 차이라고 해석한다.
더욱이 우리가 ㅡ 가령 읽을 때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기 위해 ㅡ
의도적으로 읽을 때 우리는 특히 이런 해석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우리가 아주 의도적으로 문자들의 안내를 받을 때 말이다.
하지만 이 "안내를 받음"이란 결국 내가 단지 문자들을 주의 깊게 바라본다는 데에
ㅡ 그리고 아마도 어떤 다른 생각들을 배제한다는 데에 ㅡ 있을 뿐이다.
우리는 말하자면 어떤 느낌을 통해서
낱말의 모습과 우리가 말하는 소리 사이의 어떤 연결기제(機制)를 인식한다고 착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영향받음의 체험, 인과관계의 체험, 안내받음의 체험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사실 내가 문자들을 보는 것과 말하는 것을 연결하는
지렛대의 움직임을 느낀다는 사실을 의미해야 하기 때문이다.
171.
나는 한 낱말을 읽을 때 하는 경험을 다양한 방식의 적합한 말로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적힌 낱말이 내게 소리를 암시한다고 말할 수 있다.
ㅡ 그러나 또한 우리가 읽을 때는 문자와 소리가 하나의 통일성을 ㅡ 마치 합금처럼 ㅡ 이룬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결합이 가령 유명한 사람들의 얼굴과 그들의 이름 사이에서 일어난다.
우리에게는 이 이름이 이 얼굴에 딱 맞는 단 하나의 표현인 듯이 보인다.)
이런 통일성을 느낄 때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적힌 낱말에서 소리를 보거나 듣는다. ㅡ
하지만 이제 평소 읽기의 개념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서 읽듯이
인쇄된 몇몇 문장들을 그냥 읽어보라.
그리고 읽으면서 그런 통일성이나 영향을 체험했는지 등을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ㅡ 그런 체험들을 무의식적으로 했다고는 말하지 말라!
또한 '더 자세히 주의를 기울일 때' 이런 현상들이 나타났다는 생각에 현혹되지도 말라!
내가 대상이 멀리서 어떻게 보이는지를 기술해야 할 때,
그 대상에 더 자세히 주의를 기울여야 알아차릴 수 있는 것들을 말한다고 해서
그 기술이 더 정확해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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