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 메모리 과부하
진화는 인간에게 축구할 능력을 부여하지 않았다.
물론 킥을 할 다리와 파울을 할 팔, 욕설을 내뱉을 입을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그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혼자 페널티킥을 연습하는 것일 뿐일 것이다.
우리가 어느 날 운동장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 경기를 하려면 필요한 것이 있다
상대팀의 열한 명이 우리와 동일한 규칙을 따르며 경기를 한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열 명의 팀원(이들은 전에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들과 호흡을 맞춰 뛰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다른 동물들은 낮선 개체를 만나 의례화된 공격성을 드러낼 때 대체로 본능에 따른다.
세계 모든 곳의 강아지들이 벌이는 개싸움의 규칙은 그들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의 십대에게는 축구 유전자가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완전히 낯선 사람들과 게임을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들이 축구에 대해 배운 일련의 개념들이 서로 완전히 같기 때문이다.
그 개념들은 완전한 상상의 산물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것을 공유한다면 모두가 축구를 할 수 있다.
이보다 규모가 큰 왕국, 교회, 무역망에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되지만, 큰 차이가 하나 있다.
축구의 규칙은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간결하다.
작은 수렵채집 무리나 속모 마음에서 협동할 때 필요한 규칙과 상당히 비슷하다.
각각의 행위자는 규칙을 머릿속에 저장하고도 노래, 이미지, 쇼핑 리스트를 담을 공간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스물두 명이 아니라 수천 명, 심지어 수백만 명이 연과되는 대규모 협력 시스템에서는
도저히 한 인간의 뇌에 담아 두고 처리한 수 없는 막대한 양의 정보를 관리하고 저장해야 한다.
개미나 꿀벌 같은 일부 동물 종의 대규모 사회는 안정되었으며 회복성이 있다
해당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보의 대부분이 유전자에 부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령 꿀벌의 애벌레 암컷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여왕벌이나 일벌로 자라나는데,
그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행태는 DNA에 프로그램이 되어 있다.
여왕의 에티켓이 되었든 프롤레타리아의 근면성이 되었든 말이다.
벌집은 이를테면 수확자, 보모, 청소부처럼 매우 다양한 종류의 일꾼들을 포함하는 매우 복잡한 사회구조를 지닐 수 있지만,
지금까지 법률가 벌이 발견된 예는 없다. 벌들에게는 법률가가 필요 없다.
벌들은 벌집의 헌법을 잊을 위험도, 위험도 없기 때문이다.
여왕벌이 청소부벌들에게 먹이를 제대로 주지 않아도 이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일 일은 없다.
하지만 인간은 으레 그런 짓을 한다.
인간은 단순히 자기 DNA를 복사하고 이를 후손에 전해주는 것만으로는 사회운영에 필요한 핵심정보를 보존할 수 없다.
사피엔스의 사회질서는 가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법과 관습, 절차와 예절을 지탱하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잇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질서는 빠르게 무너질 것이다.
예컨대 함무라비 왕은 사람이 귀족, 평민, 노례로 나뉜다고 포고했는데, 이것은 벌집과는 달리 자연적인 구분이 아니다.
인간의 유전자에는 그런 것의 흔적조차 없다.
만일 바빌론 사람들이 그 '진실'을 마음에 새겨둘 수 없었다면, 사회의 기능은 마비되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함무라비가 후손에게 물려준 DNA 속에는
평민 여성을 살해한 귀족 남성은 은 30세겔을 지불해야 한다는 판결 같은 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함무라비는 아들들에게 제국의 법을 열심히 가르쳐야 했고, 그아들과 손자들도 똑같이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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