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지산의 새벽달
오늘 함지산 자락은 어제 보다 춥고 어두웠다. 며칠 전 대한이 영상으로 따뜻하게 지나가더니 대한추위는 오늘 부터인지 기세가 대단하다. 겨울이 따뜻해도 사람들은 겨울이 겨울답게 추워야 한다 하고 좀 추우면 너무 춥다고 한다. 날씨도 변덕스럽지만 사람의 마음도 변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어둠과 적막함을 헤치고 1봉을 오르니 둥근달이 두둥실 떠서 올라오는 나를 반겨주었다. 달은 머리위에서 그의 빛을 쏟아 내려 주고 있었다. 보름달에 가까운 달은 밝고 기운차게 떠울라 차거운 밤 하늘에서 함지산 계곡과 산길을 두루 비춰주었고 한겨울을 견더내는 나무들에도 내려주었다.
소나무길을 지날 때에는 한 폭의 동양화를 보여주었고 앙상한 아카시아길을 지날 때는 추상화를 보여주었고 날카로운 불야성의 시가지를 지날 때는 인간이 만든 불과는 다른 고고한 품위의 빛을 비춰주었다.
달은 늙은 나이에 보아도 감정에 젖어져 마음이 차분해지고 진솔해져 내가 나를 볼 수 있게 한다. 나대로 살지 않아온 지난날들- 나답게 대하지 않았던 친구들과 수많은 사람들을 돌아보게 한다. 보고 싶은 사람이 되었는지 안 봐도 그만인 사람이 되었는지 보기 싫은 사람이 되지나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사람은 사귈수록 향기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깝다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있고 말속에 여러 자랑과 거만함이 섞여 있는 사람- 말과 속마음이 다른 사람-
계단으로 이어진 3봉을 오르니 세찬 바람이 얼굴을 때렸고 차고 찬 기운이 다리로 등으로 스며들었다. 집을 나설 때 기온을 보니 영하 8.8도 풍속 4.4였다. 올 겨울의 최고의 추위라 여겼다. 겨울은 기온보다 바람이 더 무섭다. 그러나 지금 이 추위는 작년 1월 16일 K, C 친구들과 문복산을 오를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6부 능선부터 얼어붙은 오르막길을 오르니 눈 쌓인 능선길이 나타나 눈 속을 걸으니 발은 사정없이 시려왔고 스팈잡은 손은 얼음 기둥을 잡은 것 같았었다.
5봉으로 이어진 평탄한 길은 달빛에 밝았고 깊은 겨울잠에 빠진 소나무 기둥들은 내 옆을 빠르게 지나갔고 헤드라이트에 비친 산길도 빠르게 다가왔다. 빠르게 지나가는 것은 그것뿐이 아니다. 나의 인생의 남은 날이다. 오늘이 1월 23일이니 벌써 올 해도 22일이 지나갔다.
정초에 올 해는 큰일이나 돌발적인 일이 내 주변에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했는대 기원을 하니 도로 큰일이 일찍 닥쳤다. 이달 3일에 박해진동문이 돌발사하더니 그 충격이 다 가기도 전에 또 유진모동문이 19일 저세상으로 갔다. 황당한 일이 연초에 두 번이나 오니 올 한 해가 또 어떻게 다가올지 두려워진다.
박해진동문은 1년여 전에 파크골프에 입문하여 하루도 거르지 않고 파크골프에 열중하였고 틈을 내어 발달장애 아동들을 그림으로 교정하여왔고 동문간에도 겸손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좋은 동문이었는데 필드에서 갑자기 쓰러져 말 한마디 못하고 바로 운명하였다 하니 기가 찼다.
유진모동문 또한 동문간에 신의가 있었고 바둑고수라도 거만하지 않았고 바둑하수들에게도 친절히 대국에 임해 주었고 산도 잘 타는 건강한 체질이었는데 샤워후 쓰러져 마지막 유언도 하지 못하고 떠났다 하니 너무 안타까웠다.
예전으로 치자면 이 나이가 죽음에 당하여도 아쉬움이 없다하나 지금으로서는 너무 아쉽고 이른 나이이다.
다시한번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3.3km 지점인 6봉까지 오니 등은 좀 촉촉하였으나 아직 초속 4m 정도의 바람이 얼굴을 때려 추웠고 달은 서쪽하늘로 기울어져 갔다. 달은 더욱 기울고 멀어져 갈 것이고 동쪽 하늘은 하루를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으리라- 또 새로운 하루가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2024. 1. 23 백산 우진권
첫댓글 Iron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