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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 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II. 아버지 이름 기도, 아버지 나라 기도>의 줄거리 :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관계하게 된 사람들에게 기도는 숙명이고 운명입니다. 그런데 그냥 자연인의 상태 그대로 바라고 원하는 것을 위해서 기도를 하게 되면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기도를 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기도 생활에서 이처럼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기도를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 자체로 은혜이고 복이고 상입니다. 예수님이 굳이 기도를 가르치신 직접적인 이유가 바로 이 하지 말아야 할 기도를 피하여 제대로 기도할 수 있게 하시려는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II. 아버지 이름 기도, 아버지 나라 기도
(마태복음 6:9~10a)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본문 중심으로 <II. 아버지 이름 기도, 아버지 나라 기도>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위한 기도,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를 위한 기도의 두 가지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이유는 우리의 기도가 외식하는 기도, 중언부언하는 기도로 빠질 수밖에 없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아버지 이름 기도”는 외식하지 않는 진실한 기도를 위함이고, “아버지 나라 기도”는 중언부언하지 않는 기도를 위함입니다. 본문은 이러한 기도를 어떻게 할 수 있는가를 가르쳐주십니다. 우리가 이 두 가지 기도를 날마다 생활화할 때 어떠한 은혜와 어떠한 복이 주어질 수 있는지를 알아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외식이 아닌 진실한 기도에 대하여 가르쳐주신 내용입니다. 외식이 없는 진실한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외식하는 기도란 마음이 다른 대상을 좋아하여 밀착한 상태에서 하나님과는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입술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공경하는 것입니다. 이와 대비되는 외식하지 않는 기도란 결과적으로 내 마음이 하나님께 밀착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과 밀착한 상태에서 기도해야 외식하는 위선자의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심이란 쉽게 말해 ‘내 마음이 하나님과 밀착하게 해주세요.’라는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이 내 마음이 하나님께 밀착하는 것이 될까요? 본문을 통해 그 의미를 붙잡는 것이 중요하고, 그 의미를 기억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 의식이 작용하면 수많은 대상을 의식하게 됩니다. 의식한다는 것은 어떤 대상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것이고, 어떤 대상의 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대상의 있음을 의식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살아있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족을 의식하고, 집을 의식하고, 직장을 의식합니다. 지하철을 타면 내 옆에도 사람이 있고, 내 앞에도 사람이 있음을 의식합니다. 뉴스에서 이런저런 정치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정치인들을 의식하게 됩니다. 또 독일에서 폭염으로 만 이천 명이 죽었다는 등의 뉴스를 들으면서 그것들을 의식합니다.
이렇게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대상을 의식하게 되는데, 의식하는 것을 보면 전부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거나, 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맛보고, 손으로 만지는 것들입니다. 내 앞에 없는 대상이라도 이름이 떠오르면 그 이름과 함께 마지막으로 보았던 이미지가 떠오르면서 의식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생각하면 뉴스에서 보았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불고기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불고기의 이미지와 맛이 떠오릅니다. 승진이나 성공 같은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서도 승진이나 성공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나 의미가 떠오르면서 의식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없이 많고 끊임없이 의식하게 되는 대상 중의 하나로 끼어들어 오시기에 의식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큰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습도 없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맛볼 수도 없으며, 만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름뿐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심이란 ‘내가 수많은 대상들을 의식하는데 하나님 아버지는 이름으로만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이름으로밖에 의식할 수 없는 아버지가 거룩히 여김을 받으셔야 한다.’라는 뜻입니다.
결국,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심이란 아버지와 따로 이름만 거룩히 여김을 받으셔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식할 수 있는 방법은 이름뿐이기에 내가 하나님을 이름으로 의식할 때, 내 의식 안에서 하나님이라는 대상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면 의식은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의식 안에서 아버지만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셔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심이란 어떠한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쉽게 말하면 내 의식 안에서 아버지만 특별 대우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특별 대우가 어떤 것인지 예를 들어 생각해 봅니다. 제 아들은 외지에 나가 살고 있습니다. 제가 아들을 생각하면 이름과 함께 이미지가 떠오르고 그렇게 아들을 의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뉴스를 들으면 이미지와 함께 의식하게 됩니다. 이렇게 두 대상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의식할 수 있는데, 그 둘이 내 의식 안에서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아들을 이미지로 의식하면 마음이 아들에게로 갑니다. 마음은 좋음으로 만족하고 싶어서 흡입하는 작용이 일어나는 장소입니다. 마음이 아들에게 간다는 것은 아들에게서 만족과 기쁨을 기대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똑같이 이미지로 의식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마음이 조금도 가지 않습니다. 혹시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트럼프가 이란과 전쟁을 일으키고 지연시키고 있기 때문에 기름값이 올라서 사업하기가 힘이 들어 마음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 같은 경우는 이름과 이미지로 대상을 의식한다는 점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아들이나 똑같지만, 마음이 가고 안 가느냐에 있어서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내 의식 안에 들어와 있는 대상들의 대우가 천차만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대상에게는 마음을 엄청나게 많이 주고, 어떤 대상에게는 마음을 적게 줍니다. 또 어떤 대상에게는 일시적으로만 마음을 주고, 어떤 대상에게는 지속적으로 마음을 줍니다. 이러한 많고 적음의 차이와 지속하는 시간의 차이는 굉장히 다양합니다. 어떤 대상에게는 1년을 마음을 주었다면, 어떤 대상에게는 10년이나 20년 마음을 줄 수 있습니다. 내가 의식하는 대상들은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 주느냐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등급이 매겨집니다. 이와 관련하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심이란 아버지 이외의 내 의식 안에 들어와 있는 모든 대상들에게 마음이 제로가 되는 상태입니다. 아버지 이외의 대상에게는 마음이 한 방울도 가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몸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건강 상태를 의식합니다. 외모를 의식합니다. 또 몸으로 마주하는 대상들을 의식합니다. 의식의 대상은 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자매, 친구, 지인, 뉴스에서 보는 정치인이나 연애인, 대한민국에 대한 일들로 넓혀 갑니다. 월급, 수입, 승진, 보너스, 옷, 음식, 여행, 취미가 다 내 의식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대상들인 것입니다. 내 의식에는 이렇게 수많은 대상들이 들어와 있는데 하나님은 이름으로만 의식할 수 있습니다.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신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식하게 되자마자 내 의식 세계에 들어와 있는 그 모든 대상에 대해서는 내 마음의 쏠림이 제로가 되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지 못함이란 의식 안에 들어와 있는 아버지께만 마음이 다 쏠리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마음이 자녀에게 쏠리고, 배우자에게 쏠리고, 일에 쏠리고, 몸에 쏠리고, 내 미래에 쏠려서 분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아버지를 부르고 아버지께 예배하고 기도한다면 위선이고 외식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 5절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일단 하나님 아버지를 의식하게 되면 내 의식 세계 안에서는 오직 아버지께만 마음이 다 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해 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아내 사라와 아들 이삭과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이 소중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의식하자마자 아버지 이외의 모든 대상에 대해 마음이 제로가 되었습니다. 이 상태가 위선 없이 하나님을 관계하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내 마음을 다 드려야 할 분입니다. 반면 내 의식 세계 안에 들어오는 모든 대상들은 내 마음을 한 방울도 주지 말아야 될 것들입니다. 이렇게 구분됨이 바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드리느냐 마느냐, 내 마음이 쏠리느냐 마느냐를 통해 거룩함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의식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잠에서 깨어나서 의식이 작용하면 무엇이 있음을 눈치채고 느낌으로써 의식 세계 안에 수많은 대상들이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자체를 뭐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많은 대상이 들어오는데,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이 아버지 한 분에게만 쏠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있고, 가족이 있고, 건강 문제도 있고, 미래도 있는데 어떻게 아버지께만 마음을 드릴 수 있을까요?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이 일을 위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십자가로 주의 기도를 드립니다. 십자가로 드리는 “아버지 이름 기도”의 구체적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기도합니다. 내가 오늘 하루를 살면서 정해져 있는 바대로 만날 대상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만날 대상들에 대해 ‘의식은 하게 되겠지만 마음은 가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트럼프도 의식하고 아들도 의식하지만, 마음이 가는 것이 다릅니다. 그것을 트럼프와 아들을 같이 취급합니다. 마음이 안 가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은 자라는 사실을 뇌리에 새겨 넣습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기도하고, 삶의 현장에 나가면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함이란 십자가를 안경처럼 쓰고 매사를 대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안경을 쓰고 사장님을 봅니다. 그러면 사장님이 의식은 되고 있지만 십자가를 먼저 보고 있기 때문에 내 마음이 십자가에서 막힙니다. ‘나는 사장님에 대해서 죽은 자다. 사장님에 대해서 기쁨과 만족을 기대하고 바라지 않는다. 내 마음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이다.’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하루 종일 십자가 안경을 쓰고 무슨 대상을 의식하든지 ‘내 마음은 이 대상에 대해 죽었다.’라고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가 끝나고 집에 돌아옵니다. 하루를 돌이켜보면 그렇게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빼앗아 간 대상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다 잡아냅니다. 마음을 빼앗긴 하루를 살아놓고 그대로 잠자리에 들어서는 안 됩니다. 마치 아이들이 밖에서 놀다가 엄마가 부르면 들어와서 씻고, 저녁 먹고, 공부하다가 잠자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루를 살다가 잠자리에 들 때는 우리 마음은 예수님과 함께 반드시 아버지가 계시는 천국으로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땅에 있는 채로, 걱정 고민이 쌓여 있는 채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그 상태 그대로 잠자리에 들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면서 하루 중에 내 마음을 빼앗아 간 도둑들을 다 잡아냅니다. 그 대상은 배우자일 수도 있고, 자녀일 수도 있고, 몸일 수도 있고,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다 잡아내서 마음을 빼앗겼던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확인합니다. 오직 아버지만이 내 의식에서 전부이고 마음을 드릴 유일한 대상이심을 확인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함께 죽고 부활 승천하여 아버지 앞에 마음이 도달한 상태에서 잠자리에 드는 것입니다.
이 기도를 계속 드리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있음의 존재감을 느껴도 작게 느끼는 사람이 있고, 크게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 좋음의 만족감을 느껴도 전혀 못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 느끼는 사람이 있고, 많이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있음이고 유일한 좋음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문제는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있음과 좋음을 크게 느끼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있음으로 인한 존재감의 크기가 커지도록 바뀌어야 하고, 하나님 좋음으로 인한 만족감의 크기가 커지도록 바뀌어야 합니다. 저는 천 번이고 만 번이고 하나님이 유일한 있음이고 유일한 좋음이라는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똑같은 말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유일한 있음과 유일한 좋음이 날마다 새롭게 들리려면, 내가 십자가로 드리는 아버지 이름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의식의 세계에서 아버지께만 마음이 다 쏠리게 되면 저절로 하나님 존재감이 날마다 커지고, 하나님으로 인한 만족감이 날마다 커집니다.
왜 나는 하나님의 좋음이 느껴지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아버지 이름 기도를 드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여전히 외식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의식의 세계에 들어온 많은 대상 중에 내 마음을 뺏기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기에, 하나님의 유일한 좋음으로 인한 만족감이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주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엄청나게 복된 기도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시기에 내 마음이 하늘로 가서 하나님과 밀착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의식하는 어떤 대상에게도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안경으로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쉬지 않고 기도함이란 쉬지 않고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내가 죽은 자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의식은 하지만 마음이 가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내 마음이 가서 기쁘고 즐거울 것이 없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좋음이기 때문이다.’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주님의 부활 승천을 따라 아버지께만 다 드립니다.
이것이 기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렇기에 기도하지 않으면 백날 천날 말씀을 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똑같은 말만 반복한다고 느끼게 될 뿐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서 느끼는 아버지의 존재감과 아버지로 인한 만족감이 커지지 않으면 저는 동어반복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하나님의 존재감을 어제는 열 개만큼 느꼈는데 오늘은 열다섯 개만큼 느낀다면, 아버지가 유일한 있음이라는 똑같은 말이 새롭게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아버지 나라 기도”입니다. 우리가 의식하는 모든 대상에 대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은 자임을 고백하는 기도를 계속 드려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이 외식하는 기도를 피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아버지 나라 기도는 중언부언하는 이방인들의 기도를 피하여 하나님의 아들답게 드리는 것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우리 의식에는 내 몸, 가족, 직장, 자동차, 돈, 옷을 비롯한 다양한 대상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고백하며 어떤 대상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대상에 대해 죽은 것이고, 특별히 내 의식 안에 들어오는 대상들에 대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삶을 어떻게 사느냐는 문제가 남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 마음이 하늘로 떠나면서 내 의식 안에 들어와 있지만 내가 마음을 조금도 주지 않은 대상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내 마음에서 버려진 것들입니다. 그런데 내 마음에서 버려졌다고 해서 그것들이 우주의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십자가에서 저의 몸과 아내와 아들에 대해서 죽습니다. 마음을 조금도 몸이나 아내나 아들에게 주지 않습니다. 심지어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해서까지도 죽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을 아버지께만 다 드립니다. 그렇다면 저의 몸과 아내와 아들과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일들은 우주의 쓰레기통에 버려지게 되는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나라란 아버지께서 주권적으로 다스리는 영역을 말합니다. 즉, 내가 몸에 대해서 의식은 하지만 마음을 조금도 주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몸에 대해 죽고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도록 아버지에게 마음을 다 드렸습니다. 이제 의식 세계에 들어와 있는 몸에 대해서는 ‘내 마음이 없는 대신에 아버지의 주권이 내려오셔서 내 몸의 36조 개의 세포를 다 다스려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떠나면서 기도하고, 기도하고 떠납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기도는 세상을 떠날 때 드리는 유언 기도와 같습니다. ‘아버지! 이제 내 마음은 예수님 따라 아버지께 다 드리기 위해 몸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직장을 버리고, 일을 버리고, 미래를 버리고, 여행과 취미와 돈과 자동차와 모든 걸 다 버리고 아버지께로 갑니다. 내 의식에 들어와 있지만 마음을 조금도 주지 않고 다 버린 모든 대상들에게 아버지의 주권이 내려와 다스려 주시옵소서. 제 마음 대신에 아버지의 마음이 내려와 이 모든 것들을 다스려 주시옵소서.’라는 기도가 아버지 나라 기도입니다.
늘 말씀드리듯이 내가 마음을 쓰면 생각하게 되고, 판단하게 되고, 좋음을 기대하게 됩니다. 마음의 기능이 좋음을 빨아들여 만족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미 내 몸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36조 개에 이르는 세포 하나하나까지 창조주 하나님께서 있게 하셨고, 주권자 하나님께서 이미 다 손대고 계십니다. 그런데 내가 마음으로 몸에 관여합니다. 마음으로 자녀나 배우자에 대한 일에 관여합니다. 마음으로 대한민국에 대해 관여합니다. 마음으로 국제정세에 대해 관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주권과 충돌이 일어납니다.
이와 관련하여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기도는 아버지의 나라와 아버지의 주권이 임하게 해달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제가 전혀 방해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내 마음이 땅에 머물러 있으면 아버지가 다 있게 하시고,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고, 사랑하여 이끄시려 계획하신 모든 대상들에 대해 충돌을 일으킵니다. 그렇기에 ‘내 생각과 내 바람이 아버지와 충돌을 일으키지 않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하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아주 멀리 있습니다. 그러나 뉴스를 통해서 접하며 자꾸만 의식하게 됩니다. 이란과의 전쟁 때문에 기름값이 자꾸 오릅니다. 그런데 나는 십자가에서 죽은 자입니다. 이는 곧 트럼프에 대해서도 죽은 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트럼프에 대한 뉴스를 보며 ‘이 사람이 왜 이러지?’라고 마음을 쓰고 신경 쓰는 그 자그마한 양이라도 예수님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서 아버지께 쏠리게 합니다. 그리고 트럼프에 대해서는 ‘아버지 주권이 임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민주당 지지자다. 혹은 국민의힘 지지자라고 말하더라도 마음으로 좋아하고 싫어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으로 민주당을 지지하거나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면 신앙인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사회와 나라에 대해 믿는 사람으로서 책임이 있지 않느냐?’라고 말합니다. 그 책임이 있으니까 마음이 떠나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대한민국에 관심하고, 민주당을 지지하고,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것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주권이 내려와서 대한민국을 이끌어가시고, 민주당을 이끌어가시고, 국민의힘을 이끌어가시는 게 훨씬 더 낫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따위가 마음 쓰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나라를 위한다면 우리 마음은 떠나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떠난 그 자리에 아버지의 주권이 내려오실 수 있어야 합니다. 자꾸 하나님의 주권을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의 주권 속에는 전지전능하심이 들어있고 사랑하심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의 관심에는 전지전능도 없고 사랑도 없습니다. 죄와 저주에 찌든 이익만 추구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내 몸이나 미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에 대해서도 대한민국과 이 지구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따위가 뭐라고 마음을 쓰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주권이 내려오셔야 하고, 아버지의 뜻과 계획이 내려오셔야 합니다. 책임이 있으니까 마음이 떠나서 아버지의 주권이 내려오시게 하라는 것입니다. 역사에 대해, 사회에 대해, 나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면 마음은 떠나야 합니다. 대한민국에 조금도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조금이라도 주는 한 하나님의 주권과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내 마음이 땅에 남아서 가족을 관심하고 대한민국을 관심한다고 해도 아버지의 주권은 내려오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가룟 유다가 아무리 악함을 드러내도 아버지의 주권은 악한 가룟 유다를 이끌어가셨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아무리 악함을 드러내도 아버지의 주권 밖에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내 마음이 뱀처럼 땅에서 기쁨을 얻으려 하고, 의식하는 모든 대상 여기저기에 마음을 흩뿌리고 다니는 삶을 살 때도 아버지의 주권은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내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도 아버지의 주권은 내려오십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내려오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무슨 차이가 있다는 것일까요?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압니다. 그런데 내 마음이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지 못해서 아버지께 마음을 다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 주권의 첫 번째 과제는 나를 고치시는 것이 됩니다. 내가 마음을 아내에게 두고, 아들에게 두고, 여러분에게 두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이 하늘로 올라오게 하시기 위해서 내가 마음을 두고 있는 대상을 치십니다. 그 대상에게 문제가 생기게 하시고 내 마음이 움츠러들게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마음을 주지 못하게 하십니다. 나를 고치시기 위해서 내 마음을 주고 있는 대상들을 손보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십자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있는 자가 우선적인 하나님의 대상이 됩니다. 나를 고치기 위해서 내가 마음을 두고 있는 내 아들이 이유 없이 당합니다. 내 아내가 나 때문에 당합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을 회수하시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내가 자발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고백하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를 날마다 함으로써 마음을 하나님께 다 드렸다면 어떨까요? 이제 아버지의 주권이 내 안으로 편안하게 들어오시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주권은 순전히 내가 관계하는 이들을 위해 쓰이게 됩니다. 아내를 위해, 아들을 위해, 여러분을 위해, 대한민국을 위해 쓰이게 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넘어 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로 퍼져나가며 결국 지구 전체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학자들은 여섯 단계만 지나면 지구 전체가 연결된다고 하는데 그 말대로 하나님의 주권이 나로부터 뻗어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로 올라가 아버지 이름을 위한 기도를 날마다 드립니다. 그럼으로써 아버지로 인한 존재감과 만족감으로 충만해서 마음이 하늘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면 내 몸이 있기 때문에 관계를 맺게 된 모든 대상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게 됩니다. 악하면 악한 대로,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그 대상에게 하나님이 갖고 계신 주권적 계획이 고스란히 임하시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는 것입니다. 내 몸이 있기 때문에 관계하게 되는 지구상의 80억 인구가 있습니다. 내 의식 세계 안에 들어오는 모든 대상을 통해 맺어지는 관계입니다.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여섯 단계를 거쳐서라도 이어지는 이러한 관계를 ‘내 나라’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기도는 ‘내 나라’가 ‘아버지의 나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 이름 기도가 내 안에서 제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내 마음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만 다 드려지면, 내 몸이 있어서 관계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아버지의 주권적 계획이 다 이루어져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내 마음이 땅에 남아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을 회수하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십니다. 내 마음이 분산되어 있는 대상들을 두들겨 패셔서라도 마음을 회수해서 아버지가 계신 하늘로 오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하나님이 창조적으로 세워두시고 자발적으로 의지하신 주권적 계획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내가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몸을 위해,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마음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내 미래에 대한 아버지의 창조적이고 주권적인 계획, 대한민국을 위한 아버지의 창조적이고 주권적인 계획,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창조적이고 주권적인 계획은 나로 인해 방해받지 않아야 합니다. 내 마음이 땅에 남아 있어서 방해받지 않도록 예수님 따라 하늘로 올라갈 때, 아버지께서는 세워두신 주권적인 계획들을 고스란히 다 이루어 나가실 것입니다.
주의 기도는 복된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세상에 없습니다. 아버지 이름 기도와 아버지 나라 기도를 제대로 드렸을 때 내게 임할 은혜가 지금 천국에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기도를 제대로 못 드림으로써 내려오지 못한 은혜가 천국 창고에서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습니다. 아버지 이름 기도, 아버지 나라 기도를 쉬지 않고 드림으로써 주어지도록 계획된 모든 은혜가 실제로 내게 임하는 것을 경험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로 드리는 두 가지 기도, 아버지 이름 기도와 아버지 나라 기도로 복 받으십시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십자가 덕분에 아버지 이름 기도와 아버지 나라 기도를 온전히 드릴 수 있게 된 이 놀라운 축복을 이제까지 10%나 활용했을까요? 20%나 썼을까요? 오늘부터 이 놀라운 축복을 70% 이상 쓰는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십자가로 기도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버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