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박수무당
신성한 매실 758
그러자 윤 보살이란 자가 사내에게 큰소리로 꾸짖었다.
“이봐! 김 씨. 또 꺼냈어? 남의 무덤에서 그런 짓 하지 말했잖아.”
“뭐요?”
“그냥 산짐승 것을 제단에 놓아도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어?”
그의 말에 사내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언제는 사람의 심장을 꺼내 제단 위에 올려야 효험이 있다며? 그게 제일이라고 말한 사람은 윤 보살 아니요?”
“내가? 헐, 어이가 없네.”
“그리고 저건,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그냥 산에서 아무렇게나 버려진 무연고 시신에서 꺼낸 거요.”
권 팀장은 사내가 시신을 훼손했다는 말을 듣고 기겁했다.
‘세상에!’
김유리 또한 사내가 시신에서 심장을 꺼낸 것에 어이가 없었다.
민족의 영산인 이곳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권 팀장은 범인은커녕 골치 아픈 혹 하나를 달고 가야 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끌고 가!”
권 팀장은 사내를 에워싸고 있는 의경에게 단호히 지시했다.
그리고는 점집의 주인에게 조용히 대화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결국, 사내는 의경에 의해 산 아래 세워둔 봉고차로 끌려가고 말았다.
끌려가는 사내에게 누군가 입을 옷을 던져주었다.
이제 점 집에는 권 팀장과 김유리밖에 남지 않았다.
점집 주인인 윤 보살은 권 팀장과 김유리 형사를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그의 방은 본채 기도실 안쪽에 있었다.
아까와는 달리 윤 보살은 권 팀장에게 나긋나긋하게 굴었다.
그는 손수 차를 타서 그들 앞에 두고 합장했다.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조금 전에 추태를 보였던 그 손님과 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니 형사님들께서 쓸데없는 오해는 안 했으면 합니다.”
윤 보살은 금방 차를 비운 권 팀장과 김유리에게 재차 찻물을 따라주었다.
“상관이 없다면 무슨 까닭으로 저자에게 사람의 심장을 제단 위에 두고 기도하라고 시켰습니까?”
이번에는 김유리가 날카롭게 되받았다.
권 팀장은 그가 어떻게 나오나, 하고 헛기침만 했다.
그런데 윤 보살은 손사래를 쳤다.
“무슨 당치도 않은 말씀을 하십니까? 사람의 심장이라뇨? 전 아까 말한 대로 짐승의 심장을 말했을 뿐입니다.”
윤 보살의 거짓말에 권 팀장은 마시던 찻잔을 툭, 하고 바닥에 놓았다.
그의 이마에는 땀이 배어 있었다.
다시 김유리가 물었다.
“어쨌든요. 요즘같이 과학과 의학이 발전한 시대에 왜 그런 미신 같은 행위를?”
“…….”
“솔직히 말씀하세요.”
권 팀장도 다그쳤다.
“사실, 저자는 이 일대에서 꽤 유명한 박수무당입니다. 그가 자신의 영업장소를 마다하고 이곳에 온 이유는 심장병으로 죽은 그의 아들의 환생 때문이었습니다.”
윤 보살의 말에 권 팀장과 김유리는 무언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환생?”
“네, 예수가 부활한 것처럼,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 말입니다.”
윤 보살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하지만 듣는 권 팀장과 김유리는 기가 찼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죽은 사람이 살아나다뇨?”
김유리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두 분은 물론 못 믿으실 겁니다. 하지만 제가 모시는 할아버지께서 분명히 제 귀에 대고 약속하셨습니다.”
‘헉!’
“매달 대보름이 뜬 날, 사람이나 짐승의 신령한 심장을 제단 위에 두고 벌거벗은 채로 일 년을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고요. 그래서 저는 그분에게 들은 대로 전해준 것뿐입니다.”
“할아버지라뇨?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누구긴요. 제가 모시는 할아버지 신이죠.”
윤 보살의 말에 권 팀장은 이번엔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이곳에 미신이 판을 친다고 하더라도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았다.
김유리 역시 더는 이 문제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지 고개를 저만치 돌렸다.
그런데 그 순간, 권 팀장은 아까 그 사내가 한 말 중, 이상한 부분이 기억났다.
“참! 아까 그자가 버려진 시신에서 심장을 꺼내왔다던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권 팀장의 날카로운 질문에 윤 보살은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그거요? 여기서 두 시간쯤 올라가면 천왕봉 밑에 솔봉이 나옵니다.”
“솔봉이요?”
“네, 소나무가 꽤 많이 우거졌다 하여 솔봉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요?”
“그 솔봉을 넘으면 공동체 마을이 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그 마을에서 한 달에 한 명꼴로 시신을 솔봉 밑에 버리거든요.”
권 팀장이 깜짝 놀라 재차 물었다.
“허락도 없이 시신을 버려요?”
“네, 확실합니다.”
김유리도 끔찍한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 다음엔요? 어떤 일이 벌어졌죠?”
“ 그걸 우연히 본 이후로 아까 그놈이 보름달이 뜬 날만 되면 일부러 가서 시신의 심장을 꺼내오곤 했습니다.”
윤 보살의 말에 권 팀장과 김유리의 눈이 빛났다.
“정말입니까?”
“네, 저도 한두 번 봤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볼 때마다 시신은 모두 불에 그슬려 있었어요. 게다가 시신의 이마엔 이상한 숫자도 있었고요.”
윤 보살의 말에 권 팀장은 원지 둔치에서 화형당한 피해자가 생각났다.
“분명히 시신이 불에 그슬려 있었습니까?”
“네, 확실합니다.”
“이마엔 혹 666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고?”
“네, 맞습니다.”
“그 공동체 마을이라는 데가 어디쯤입니까?”
권 팀장은 윤 보살 앞으로 지도를 내밀었다.
그는 지도를 보더니 정확하게 그 장소를 손가락으로 찍었다.
권 팀장은 김유리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넌 어떻게 생각해?”
김유리는 뭔가 짚인 게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제 생각은 조금 있다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보다 팀장님. 이분께 오늘 우리가 온 목적을 확인하는 게 순서가 아닙니까? 오토바이…….”
“오토바이?”
김유리의 말에 그제야 권 팀장은 자신들이 이곳에 온 이유가 생각이 났다.
“아! 그렇지. 미안. 내가 아까 벌거벗은 그놈 때문에 정신이 잠시 나갔어. 하하.”
그제야 권 팀장은 정색하고 윤 보살에게 입구에 버려진 오토바이를 거론했다.
혹 범인들이 이곳에 머무르거나 지나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윤 보살도 정색하며 말했다.
“전 모르는 일입니다. 오토바이도, 그 젊은이들도 온 적이 없어요.”
“거짓말 아닙니까?”
“아니, 부처님과 할아버지 신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그래도 한 번 더 기억해보시죠? 여기서 오토바이가 발견되었다니까요.”
그가 그래도 모른 척하자, 권 팀장은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시간도 많이 흘렀고 눈 때문에 더 이상의 수색은 무의미했다.
권 팀장은 철수를 결정했다.
그런데 그가 끝으로 알려준다며 한 방향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저기?”
“네, 저기라면 솔봉 쪽을 말씀하는 겁니까?”
“그렇죠.”
“그 청년들이 여기서 솔봉으로, 그곳에서 공동체 마을도 갈 수도 있잖습니까.”
“알겠습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권 팀장은 김유리와 점집을 서둘러 나왔다.
그런데 그는 솔봉 밑의 공동체 마을이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서울에서 내려온 최림은 경찰서로 곧장 가지 않았다.
대신 민채원이 일했던 J시 유치원부터 갔다.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민채원이 민서라와 동일 인물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유치원은 아이들의 점심 식사 전이였다.
인형 같은 아이들 여럿이 유치원 마당에서 바깥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 옆에 이십 대 초반쯤 보이는 젊은 교사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계십니까?”
최림은 공손하게 그녀에게 인사했다.
하지만 여자는 약간 당황한 듯 말꼬리를 흐렸다.
“아뇨. 오늘 출장 가셨는데요. 무슨 일이시죠?”
최림은 미리 연락하고 올 걸, 하며 후회했다.
그런데 민채원에 관하여 물을 거라면 평교사가 더 낫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
최림은 그녀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려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경찰이 왜요? 혹 원장님에게 나쁜 일이 있나요?”
최림은 불안해하는 그녀에게 자신이 방문한 목적을 그대로 말했다.
그러면서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은 여기 얼마나 근무하셨죠?”
“일 년이 다 되어갑니다만, 왜요?”
“아! 별 건 아닙니다. 작년부터 있었다면 혹시 민채원 선생이라고 아십니까?”
그제야 그녀는 마음을 놓는 것 같았다.
“작년에 계셨죠. 하지만 작년 연말에 이곳을 나갔습니다.”
나태주는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민채원을 알고 있었다.
이제 관건은 그녀가 민채원을 얼마만큼 아는지에 있었다.
“민채원 씨에 관하여 조금 상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최림의 말에 그녀는 시계를 보았다.
아마, 아이들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는 모양이었다.
“30분 후에 저기 저 앞 카페 보이시죠? 이따 그리로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