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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덕과 황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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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덕은 14세에 스승에게 배우지 않은 부분을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하여, 18세에 <大學>이라는 책으로부터 格物致知(물질을 연구하여 앎에 이름)로서의 자기 학문의 방향을 세웠다. 그의 나이 31세 때에 조광조가 죽었는데, 그 후에 서경덕은 정치권력을 위한 국가시험을 보지 않았으며, 인간과 물체, 하늘과 땅의 이치를 연구하여, 자기 집에서 私的인 제자들을 가르쳤다. 처음에 서경덕은 자기 책조차 쓰지 않았으나, 늦은 해 56세 때 네 개의 논술<原理氣 : 근원적 이치와 기운>, <說理氣 : 이치와 기운을 설명함>, <說太虛 : 커다란 공허를 설명함>, <鬼神生死論 : 죽은 이(鬼)의 정신(神)이 살고 죽는 논의>을 썼으며, 그 외에 몇 개의 다른 작품이 현대에 남아 있다.
서경덕이 말하기를, "이미 오래 전에 삶과 죽음의 원리를 깨달았으니, 마음이 편안하다." 그가 58세에 죽었을 때, 이황은 46세였고, 이이는 겨우 11세였다. 서경덕의 작품은 중국에서 높이 평가되어, <화담집>이 중국에서 王命에 의한 <사고전서총목 : 네 곳간 전집의 총체적 목차>에 소개되어 1772년에 출판됐다. (이남영, <서경덕의 철학사상>// <한국철학사 中>, 155~167쪽)
서경덕의 철학은 현상배경의 眞相구명과 함께, 물질현상의 관찰로부터 시작되어, 형이상학적 사유를 독특하게 전개하고 있다. 그는 어렸을 때 한번은 땅에서부터 공중으로 날아가는 종달새와 그 현상의 원인을 하루종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또 한번은 봄에 살구나무에 삭(싹)이 나지 않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는 나무 밑의 땅을 파고, 물을 뿌려서, 뿌리 위에 거적을 덮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대로 행하였더니, 며칠(몇일) 뒤에 나무의 삭(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땅을 파헤치니, 음기가 통하고 되살아난다."
- 이 설명은 땅 밑에 있는 양기와 음기 사이의 역동적 상호관계를 의미한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날아 오르는 종달새는 하중물질과 공중에서 날아가는 것 사이, 물체의 음기와 종합적 여러 에너지로부터 상승하는 힘의 양기 사이의 상호관계를 뜻한다.
한번은 그가 부채와 바람을 연구하였는데, 서경덕이 말하기를, "바람은 氣(에네르기)이다. 만일 부채를 흔들면, 바람이 발생한다. 계곡사이에 물이 채워지듯이, 부채의 양면 사이에 氣(에네르기)가 채워진다. 고요할 적에는 모이고 흩어지는 모양을 볼 수가 없다. 어떻게 氣가 일찍이 공허로부터 나오게 되는가?" (앞의 책, 167~169쪽, 173쪽)
이와 같이 서경덕은 자연현상의 다양한 변화와 음양의 작용으로서의 모든 물질을 낳는 기초적 근원을 해석하였다. 서경덕의 견해에 의하면, 한 氣(에네르기)로부터 양기와 음기가 분화되고, 하늘은 대체로 양기로부터 형성되었으며, 땅은 대체로 음기로부터 형성되었다. 양기는 항상땅의 공허한 곳으로 발생하며, 땅에는 양기가 함께 있다. 하늘의 움직임은 끝없는 氣의 움직임이다. 氣는 물체 밖에 둘러싸여 있으며, 뭉체는 내부에 상승하는 氣를 적재하고 있는데, 땅은 太虛 속에서 상승과 하강없이 대칭을 균형시키면서, 좌우의 둥근 회전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서경덕은 철학적 詩도 썼는데, 자기의 詩 <무현거문고각 : 줄없는 거문고에 조각함>에서 노래하였다.
"만일 거문고에 줄이 없으면, 고요함이 움직임을 에워싸며, 소리 없이 들으며, 형태없이 보며, 그 심오함을 體感하고, 밖으로는 有로부터 느끼고, 안으로는 無로부터 깨어난다.; 내부의 마음으로부터 체감하여 보게 된다.; 어찌하여 줄만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서경덕은 물체의 感性的 세계뿐만 아니라, 이보다도 이른 無형태와 無音의 [감성적 세계를 향한 형태화]의 잠재적 세계도 일깨우고 있다. 이 자연현상 이전의 세계를 인간의 마음 속에서 살펴 볼 수가 있다. 그의 자연 현상에의 비범한 관찰은 科學學으로부터 형이상학적인 철학적 사유에게로 돌려지면서, 보이는 것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에게로의 그런 기초적인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앞의 책, 169~172쪽, 182쪽)
- 나는 서경덕의 철학이 16세기의 세계 과학과 철학에서 놀라운 발견이라고 평가하며, 그를 코리아의 독특한 유교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 서경덕의 理(이치)는 서양 기독교의 신적인 법칙의 이치와도 상응하고 있다.
[참고 : 화담이란 그가 살던 곳 근처의 연못의 명칭이며, 거문고는 코리아의 여섯줄의 민족적 음악기구이다.]
서경덕의 철학은 "氣일원론"으로 불리어진다. 서경덕은 주돈이, 소윤, 장재, 정이, 주시 등과 같은 중국철학자들이 말하지 않은, 氣(에네르기)에 관한 전혀 독특하고도 새로운 창조적 내용을 말하였다. 서경덕은 기존의 지식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적 내용을 말하고 싶었다. 물론 서경덕은 理와 氣에 관한 전통적인 내용을 말하기도 했다.
서경덕의 견해로는, 理(이치)는 氣의 주재(主宰 ; 주체적 머리)이다. 즉 氣의 작용은 올바름을 잃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은 자신의 외부로부터 관리되는게 아닌 것이다. 理는 氣보다 일찍 존재하는게 아니며, 객체적으로 氣와 따로 떨어져서 실현 될 수는 없다. 理는 氣작용의 자체道의 내재적 법칙이다. - 만일 理와 氣가 합일되면, 이 조화는 美妙하다(아름답고 웅장하다). 理의 법칙과 氣의 실체(본체)는 상호작용하고 기능한다. 아름답고 웅장한 작용이 역동적 우주자연에 의해 전개되는 것은 그런 움직임과 고요함 자체의 자기작용의 축(기틀)과도 같다.
양기와 음기는 영원히 태어나고, 변이가 끝나지 않는데, - 그 원인은 바로 커다란 극(太極), 즉 理(이치, 원리)이다. 理의 때에 氣가 갑자기 先天(앞선 우주), 즉 커다란 공허(太虛)로부터 後天(태초의 우주, 天地, 만물, 뒤의 우주)으로 열리어 진다. 氣는 사라지지 않으며, 삶과 죽음,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영혼은 단지 氣의 모임과 흩어짐이다. 향불과 촛불은 눈앞의 공간 속으로 흩어져 가게되지만, 그 남은 氣는 결국은 공간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만물은 짧은 기간 세계 속으로 보내어 지지만, 하나의 氣내부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남영, <서경덕의 철학사상>//<한국철학사 中>, 동명사, 174~195쪽.)
[참고1 : 理는 기초적이고 이른 이치, 형이상학적인 원리, 이론적인 因果법칙적 원리, 올바른 행위의 원인, 윤리원칙의 기반, 도덕적 체계의 이치, 자연법칙의 기초, 세계와 우주법칙의 원리, 올바른 인간성과 선한 인간성의 마음의 이론 등을 뜻한다. - 理는 이러한 포괄적인 이치를 말한다.]
[참고2 : 氣는 자연법칙의 힘, 물질-생명-영혼-정신의 에네르기야, 자연의 감성적 힘, 물체 외부와 내부의 체계적인 물리적 힘의 에너지체계, 우주와 인간 속에서의 보이지 않는 힘의 체계, 특히 인간의 心身의 활동력 등을 뜻한다. - 氣는 이러한 포괄적 힘을 말한다.]
[참고3 : 七情 (일곱 감정)은 기쁨(喜), 화냄(怒), 슬픔(哀), 즐거움(樂) 또는 두려움(懼), 사랑(愛), 미움(惡), 욕심(欲)인데, 이것은 <예기>의 "樂記"에 씌여있다.]
[참고4 : 四端 (네가지 끝, 단정함)은 仁(어짊, 선한 人愛의 덕성), 義, 禮, 智인데, 맹자는 말하기를 측은지심(동감하는 - 곁에 숨은 마음)은 어짊의 끝이고, 수오지심(불의나 욕심을 - 창피해하며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正義(Justice)의 끝이고, 사양지심(부정부패를 - 거절하는 마음)은 고상한 일상관계의 끝이고, 시비지심(이것과 이것이 아닌 마음, 진실과 거짓, 善과 惡을 구별하는 마음)은 지식과 지혜의 끝이다.]
[참고5 : 경(敬)은 진리심에 대한 존경, 주체中心과 正義心에 대한 공경, 인간관계의 존중, 不正義한 행위에 대한 자기자신의 삼가함, 욕심없는 고요함, 인간에게의 사랑, 올바른 氣(에네르기)를 향한 당당한 자연적인 마음(호연지기) 등을 의미한다. - 敬은 이러한 모든 포괄적인 의미를 가르킨다.]
우리는 서경덕의 氣論이 변화의 자연철학에서의 존재론적 본체론이며, 그의 氣不滅論이 그 당시의 유교의 다른 학자들에 비교해서 전혀 독특한 창조적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다음에 이이는 서경덕에 관하여 평가하였다.
"그는 깊이 사색하였고, 넓게 다다랐으며, 그에게는 自得한 많은 아름다운 맛이 있으며, 언어로만 읽혀지는 가르침이 아니다."
서경덕에 의하면, 커다란 공허(太虛)는, 이 충만한 氣 속에서, 先天과 後天의 전체 영역의 하나의 끝없는 공간이다. 그에게는 끝의 외부성이 있지 않으며, 어디든 존재하는 깊은 하나가 있다.
그 당시의 다른 학자 이언적(1491~1553)은 국가 행정부에서 일하면서, 太極의 다른 학자의 해석을 비판하였으며, 중국학자 주시가 이미 <예기>라는 경전에서 뽑아내어 덧붙이고 고쳤던, <대학>이라는 경전을 수정하여 보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황(1501~1570)에 관하여 말하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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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덕의 글씨. 서법공부에서 모본이 될 정도로 뛰어난 서체이다. |
서경덕이 바로 송도 부근의 성거산(聖居山)에 은둔하고 있을 때였다. 자연히 그의 인물됨이 인근에 소문이 났었다.
비가 오는 날 황진이는 서경덕을 찾아간다. 하얀 속치마 저고리, 그 위에 흘러내린 비. 비에 젖은 하얀 비단 속옷이 알몸에 밀착되어 가뜩이나 요염한 기녀의 몸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런 차림으로 계속 비를 맞으며 서경덕이 은거하고 있던 초당으로 들어갔다.
조용히 글을 읽고 있던 서경덕은 오히려 황진이를 반갑게 맞았고, 비에 젖은 몸을 말려야 한다며 아예 황진이의 옷을 벗긴 모양이었다. 옷을 벗기고는 직접 물기를 닦아주는 서경덕의 자세에 오히려 황진이가 부끄러울 판이었다.
황진이의 몸에서 물기를 다 닦아낸 서경덕은 마른 이부자리를 펴 황진이를 눕히고는 몸을 말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다시 글읽기를 계속했다.
날은 어두워졌고 이윽고 밤이 깊었다. 삼경쯤 되자 이윽고 서경덕이 황진이 옆에 누웠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이내 가볍게 코까지 골며 편안하게 잠을 자는 서경덕이었다. 아침에 황진이가 눈을 떴을 때 서경덕은 이미 일어나 밥까지 차린 놓았다.
황진이는 성거산을 다시 찾았다. 의관을 제대로 갖추고 음식을 장만하여 서경덕을 찾아가자 역시 글을 읽고 있던 서경덕이 이번에도 반갑게 맞았고, 방 안에 들어선 황진이는 서경덕에게 큰절을 올리며 제자로 삼아달라는 뜻을 밝혔다.
황진이가 문득 서경덕에게 이렇게 말했다. <송도에는 꺾을 수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사옵니다.> 서경덕이 황진이를 쳐다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첫째가 박연폭포요, 둘째가 선생님이십니다.> 서경덕이 미소를 지으며 셋째를 물었다. <바로 저올시다.> 송도에 있는 것 중 도저히 꺾을 수 없는 세 가지 혹은 가장 뛰어난 세 가지. 송도삼절(松都三絶)은 그렇게 황진이의 입을 통해 만들어졌다.
서경덕이 아무리 도학자이고 뛰어난 사상가라고는 하나 당시의 신분으로 보면 양반이요, 그도 역시 사내다. 그러니 당연히 결혼을 했고 첩까지 두었다. 여자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서경덕을 대하는 그녀의 자세는 스승을 대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오로지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었지 사내로서의 서경덕이 아니었다.
성거산에 은거하여 살던 서경덕이 가끔은 황진이를 그리워했던 모양이다.
마음이 어린 후(後)ㅣ니 하난 일이 다 어리다.
만중 운산(萬重雲山)에 어내 님 오리마난,
지난 닙 부난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서경덕의 시조에서는 분명 여인을 그리는 남자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순수하고 가장 아름다운 현상이다. 서경덕이 이 시조를 부를 때에 누군가가(마당을 쓸던 하인일 수도 있고, 제자일 수도 있다) 들었던 모양이다. 그대로 황진이에게 전해졌다.
그녀 역시 비록 스승으로 서경덕을 모시고는 있지만 끔찍이도 그를 사모했던 모양이다. 서경덕이 부른 시조에 곧바로 화답한다.
내 언제 무신(無信)하야 님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삼경(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난 닢 소래야 낸들 어이 하리오
서경덕의 시조 종장에 대한 답이다. 나도 당신이 그리운 것을, 당신이 나를 그리며 나뭇잎 소리를 내 발걸음 소리로 착각하는 것까지 내가 어쩔 수 있겠는가, 그만큼 나도 당신이 보고 싶다는 말이다.
청산(靑山)은 내 뜻이오 녹수(綠水)는 님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 못니저 우러 예어 가는고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情을) 나도 몰라 하노라
동짓(冬至)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버혀내어
춘풍(春風)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너었다가
어룬님 오신 밤이어든 구비구비 펴리라
백호 임제는 과거에 급제하여 평양으로 벼슬살이 길을 가다 송도 어귀에서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 술 한잔을 따르며 노래했다고 한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
홍안(紅顔)은 어데두고 백골(白骨)만 묻혔나니
잔(盞) 잡아 권할 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나이다
이 노래 때문에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벼슬이 떨어졌다.. 그 역시 서경덕과 마찬가지로 황진이를 알아본 인물이었다.
사랑은 신분을 초월하는 것도 육체를 초월하는 것도 아니다. 서경덕과 황진이는 이러한 몸론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이를 육체를 초월한 인격자와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두 사람을 모욕하는 행위로 본다.
이 두사람에게는 肉에 앞서 靈의 교감을 더 중요시 한것 뿐 肉을 비하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를 황진이는 부끄러워 한것이다. 영적인 교감없이 미모와 교태로 서경덕을 풀이하려는 것을 서경덕은 일침을 가한 것이다.
호사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육체적욕구를 억누른 서경덕을 인격자로 풀이하지만 이는 두 사람의 진정한 사랑을 모르는 이치다. 육체는 사랑의 도구이지 본질은 아니다.
당 현종이 그의 비 양귀비를 일러 외모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않았다. 그녀를 불러 "解語花" 말귀를 알아듣는 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그녀의 미모를 입에 올렸지만 그녀를 사랑한 현종은 그녀와의 심리적 공감대를 즐긴 것이리라. 비록 왕조의 몰락으로 치달았으나 두사람만의 사랑에 대해서는 첨언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첫댓글 [...氣의 작용은 올바름을 잃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은 자신의 외부로부터 관리되는게 아닌 것이다. 理는 氣보다 일찍 존재하는게 아니며, 객체적으로 氣와 따로 떨어져서 실현 될 수는 없다. 理는 氣작용의 자체道의 내재적 법칙이다..][...氣는 사라지지 않으며, 삶과 죽음,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영혼은 단지 氣의 모임과 흩어짐이다. 향불과 촛불은 눈앞의 공간 속으로 흩어져 가게되지만, 그 남은 氣는 결국은 공간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만물은 짧은 기간 세계 속으로 보내어 지지만, 하나의 氣내부로 돌아가는 것이다....]
모든 근원을 기로서 설명하는 서경덕의 기일원설이 아니겠습니까?...서경덕에게 이기설에서의 理는 氣의 부차적인 정도에 지나지 않는 걸로 인식하는 듯 합니다..이후 조선 중후기에 이기설이 분화발전되어 가지만...저 역시 理는 인간이 인간질서를 위하여 지어낸 윤리에 관한 염원에 지나지 않는, 허울일 뿐이라는 생각이 지배합니다...모든 근원과 원리는 그저 氣만이 작용할 뿐이라고요...저도 한 생각한다고 봐야 할까요?..이기론을 알기도 전인 아주 오래전에...이런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었거덜랑요...어쩜..!!.ㅎ.
그러고 보니, 전일 철학동의 어느 댓글에서 식신 님과 길게 논의했던 죽음과 道와 인간의 윤리 등에 관한 수다스런 제 의견들이 서경덕의 저 간단한 몇 마디 말씀에 다 용해되어 있는 것 같군요...理가 허울일 뿐이란 제 생각으론, 견해분분한 사단과 칠정 조차도 理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인간만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닌 그 모든 이치나 원리와 다름없이, 氣에 종속하는 성정이라 보여진다는 것입니다...물론 견해들이 다르겠지만요...제 생각엔, 형이상하의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저 기에 죽고 기에 살으리랏다...
서경덕이 보통 인물이 아니었군요..궁금했었는데 많은 걸 알게됐습니당..우명님도 츠암 사고의 깊이가 보통이 아니시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