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터미널>만큼 영화같은 이야기가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주인공은 앙골라에서 온 루렌도 가족 6명과 이들을 돕겠다고 나선 한국인이다. 이들의 극적인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돼 어떤 결말로 끝날까?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약 1개월째 살아가는 루렌도 가족의 사연 전한 이후, 기적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관련 기사 – 인천공항 ’46번 게이트 사람’을 아십니까) 여러 한국인이 이들 가족을 찾아가 생필품과 긴급 생활비를 전달하고 있다.
루렌도는 자신과 가족에게 이어지는 한국인의 환대를 이렇게 표현했다.
“신이 우리에게 진짜 가족을 선물해준 느낌이에요!”
<셜록>은 앙골라에서 수천 km 날아와 인천국제공항에서 난민 신청을 했다가 불회부 결정을 받은 후, 공항에 발이 묶은 채 살아가는 루렌도 가족 이야기를 29일 보도했다. 변화는 곧바로 나타났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던 전OO 씨는 29일 오전 <셜록> 박상규 기자의 페이스북에 댓글을 달았다.
“제가 오늘 인천공항 1터미널 가는데, (루렌도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요? 46번게이트로 가면 될까요? 밥이라도 한끼 사주고 싶네요. 혹시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을까요? 물건들이요.”
몇 시간 뒤, 전 씨는 페이스북에 새로운 댓글을 남겼다.
“1월 29일 저녁 6시 30분에 칫솔치약 세트 6개, 무릎 담요 2개, 후드 집업 1개, 미니 보온팩(뜨거운물 담아서 쓰는 것) 3개, 사과와 바나나를 (루렌도 가족에게) 갖다드렸습니다.”
루렌도 가족의 사연을 전해들은 한 탑승객이 생필품과 옷, 과일을 루렌도 씨에게 전달했다. ⓒ루렌도 제공
이어 전 씨는 루렌도 가족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적었다.
“여쭈어보니 아이들 옷, 양말, 음식 사먹을 돈이 필요하다고 하세네요. 어머니(바테체)도 옷을 며칠 못 갈아입으신 것 같았어요. 여성 상의도 가져다 드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M이나 L사이즈 입으실 거 같아요.) 기사 나간 이후로 여러 사람들이 이 가족들을 찾아 주시는 거 같긴해요. 저희가 찾아 갔을 때도 어떤 남성 분이 도움 주시러 오셨더라고요.”
전 씨는 <셜록> 기사를 영문으로 번역해 외국인들에게 알리는 일을 할 예정이라고도 말했다.
“미국에 도착하면 기사를 영어로 번역해서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에게도 알리려고 합니다. 새로운 소식 있으면 함께 나누어 주세요.”
루렌도는 감격의 순간을 곧장 카메라에 담았다. 근 한 달간 먹지 못한 신선한 과일과 초콜릿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었다. 추위를 피할 담요와 후드 집업, 미니 보온팩, 양말도 앵글에 담았다. 처음 겪는 한국의 추위를 견디는 데 필요한 물건들이다.
루렌도 가족의 사연을 전해들은 한 탑승객이 루렌도에게 가져다 준 선물 ⓒ루렌도 제공
루렌도는 시민들이 전달한 돈도 사진으로 남겼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식비 등으로 하루 40~50달러씩 쓴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외국으로 떠날 예정인 사람들이 루렌도 가족을 애써 찾아왔다고 왔다.
“(몇몇 시민이) ‘식사비로 쓰라’면서 50달러, 100달러를 손에 쥐여주며 떠났어요.”
이런 일이 벌어지기 이전까지 루렌도 가족이 인천국제공항에서 받은 환대는 믹스 커피 두 봉지가 전부였다. 어느 날 바테체는 공항 바닥에 떨어진 상자를 치우던 청소노동자를 도왔다. 당시 청소노동자는 감사 표시로 믹스 커피 두 개를 줬다고 한다.
믹스 커피 두 봉지는 다른 환대로 이어졌다. 루렌도는 앙골라에서 출발할 때 칫솔을 6개만 챙겼지만, 지금은 ‘칫솔 부자’가 됐다. 여권이 없어 치약, 칫솔을 살 수 없다는 <셜록> 보도 이후 여러 시민이 세면도구 세트를 선물한 덕이다.
희소식은 또 있다.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인천국제공항에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던 바테체를 진료하겠다는 의사가 나타났다. 난민인권센터로부터 바테체의 증상을 들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 쪽에서 도움을 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바테체는 한국에 온 이후 혈뇨 증세와 함께 복통, 매스꺼움에 시달렸다.
루렌도 가족의 단기 목표는 긴급상륙허가다. 출입국관리법 제15조에 따르면 질병이나 그 밖에 사고가 생겨 급히 상륙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면, 30일 범위에서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다만, 출입국 공무원과 항공사 직원 모두에게 허락을 받아야 긴급상륙허가 요청이 가능하다. 의사가 바테체 가족을 문진하고 소견을 작성하면, 이를 바탕으로 루렌도 가족의 변호인단은 에티오피아 항공, 출입국외국인청에 긴급상륙허가를 요구할 계획이다.
생필품 등을 전달한 전OO 씨가 루렌도 부부와 함께 찍은 사진. 전 씨는 “얼굴 없는 후원자가 되고 싶다”며 모자이크 처리를 요청했다. ⓒ전OO씨 제공
진통제로 하루하루 버티던 바테체는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자신들 이야기에 공감하고 직접 도움의 손길을 내민 여러 시민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루렌도는 도움을 준 사람과 한국 시민에게 대신 감사 인사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정말 기뻐요. 신이 우리에게 진짜 가족을 선물해준 느낌이에요.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게 기적의 시작이란 사실을 알고 있어요.”
영화 <터미널>은 다소 억지스럽긴 했지만,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인간애를 담았다. 인천공항의 루렌도 가족에게 벌어진 “기적의 시작”은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까.
<셜록>에는 루렌도 가족을 돕고 싶다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제가 불어를 할 줄 압니다.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루렌도 가족 생활비를 위해 모금을 하면 안 될까요?”
시작은 믹스 커피 두 봉지였으나, 그 끝은 아무도 모른다.
첫댓글 아! 돕는 분들이 생기고 있다니 다행이에요. 긴급상륙허가가 잘 나오면 좋겠는데 그것도 한달이니 장기적으로는 난민심사를 다시 받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왜 처음에 입국거부당했을까요? 제대로 심사가 안되었겠다 짐작은 드는데..공항 출입국외국인청 답변을 기다려요. 지난번 아담님 탄원서처럼 도울 수 있는 방법 생기면 알려주세요. 도울께요.
그럴게요. 난민인권센터 답변을 받아 게시판에 올려뒀으니 한 번 읽어보셔요. 우리대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영서 상태는 어때요?
움직임에 굼뜬 나보다 빠른 사람들이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눈물이 나네요. 그러니 그분들은 오죽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