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생각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 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 귀뚤 귀뚜라미 슬피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갑오년 청일전쟁때 모습을 상기하면 청국과 일본군이 우리땅에서 동학군을 협공할 당시를 상상하라)
뜸븍뜸북 논에서 나는 그 소리는 일본군들이 논바닥에서 대포를 쏘던 소리고요
뻐꾹뻐꾹 산에서 나는 그 소리는 청국놈들이 산언덕에서 총을 소던 소리였습니다
독립군으로 나가야 하는 오빠는 여동생에게 서울가서 꽃신사준다며 달래고
철없던 소녀는 기러기가 오가는 북녁땅 만주벌판을 바라보며 눈물짖습니다
기럭기럭우는 소리는 만주에서 독립군이 왜놈을 공격해서 처부셨다는 소식이구요
기뚤기뚤 숲에서 우는 소리는 한숨만 쉬며 안타깝게 기다리는 동포들소리라
지금도 우리에게는 벅찬 시대입니. 900번을 쌓고 도 허물었던 우리역사를 또 다시
반복하여야하는 시대에 정성을 다하여 쌓은 공든 탑은 또 모래성이 될것인지?
"오빠생각" 에 잠겨 있는 민족의 고뇌 20세기 초반부터 시작되어 오랫동안,
동요로만 익히 불려 오던 우리 민족의 애창곡, 뜸북 뜸북으로 시작하는 "오빠생각"입니다
1925년 방정환이 만든 잡지 "어린이 11월 호"에 응모한 12살 어린 나이에 문예작품으로 당선된 최순애 작사의 오빠생각은 당시 동학과 삼일 민족독힙운동과 북만주로 떠나간 당시 한국청년들의 고뇌가 이 어린 소녀의 가슴시린 글귀속에 잠겨있음을 보았습니다.
이 동요 한자락만으로도 우리민족에게는 지난 슬픈 역사가 새겨주 있다는 엄연한 역사 앞에 잠시 머리를 숙입니다.
동화나 동요는 아름다운 것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슬프고 괴로움을 달래는 역할도 한다는 사실앞에 다시금 우리가 잊혀 젔던 역사를 다시금 음미 하여야 할 것입니다.
미국이나 중국같은 대 열강이 민족주의를 소수집단으로 깔아 뭉개 버리려는 강력한 도전앞에 그래도우리는 민족주의로서 오늘에 이르고 있고 앞으로 세계열강과 어깨를 겨누고 살아가여할 글로벌화시대에 임하여 더욱 더 그 결속을 다짐하여 야 만 한다는 것을 직접 체험함으로서 깨달아야 합니다.
최순애 는 누구인가?
1925년 11월, 12살 소녀최순애는(오빠 생각)으로
방정환이 내던 잡지 《어린이》의 동시란에 입선자가 됩니다.
그 다음 해 2006년 4월, 16세 소년 이원수 역시 "나의살던 고향" 으로 시작하는 (고향의 봄)을 지어 방정환의 귀중한 손님이 되고 민족의 가슴을 도려낸 주인공이 됩니다.
이리하여 수원땅최순애 소녀와 마산바닷가 이원수 소년은 서로를 발견하고 급기야 1936년 6월 부부가 됩니다.
〈오빠 생각〉과 〈고향의 봄〉의 천상의 해후(解逅)지요.
이 시 속의 오빠는 뜸북새, 뻐꾹새 등 여름새가 울 때 떠나서 기러기와 귀뚜라미가 우는 가을이 와도 돌아오지 못합니다.
이미 오빠는 만주벌판 어디엔가 슬어저 버린 것입니다.
귀여운 동생에게 약속한 비단구두도 보내주지 못했고 종이한 장 편지도 전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오빠의 부재는 계절의 변화를 더욱 민감하게 감지하도록 만들었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면 계절의 변화도 그토록 새삼스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만 너무도 애절하게 동구밖 나무아레서 기다리는 조국이 있다는 것은 마냥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바라보는 마음이 엿보입니다.
아직도 우리민족은 오빠가 돌아오기를, 비단구두를 사오기를 기다리며
지금도 동네 어귀에서 오빠를 무작정 기다리는 조국이여 동포여!
무작정 기다릴 수 있으면 기다려야 한다.......
1919년 만세운동에 이어 일제는 국모를 서슴없이 죽이던 서슬 퍼런 칼날을 칼집에 꼽고 소위 문화정책이라는 이름아래 우리민족을 길들이는 일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이때에 무수한 민족문화운동이 싹트기는 하지만 너무도 제한적이고 노골적인 탄압의 울타리 안에서만 지세우 는 꼴이라 민족의 문화운동 이라기 보다든 어릿광대 놀음이나 다름없는 나날을 보내는 데 많은 아 쉬움과 재주를 삮히고 말았습니다.
만주와 연해주 벌판에서 독립전쟁을 벌리고 있는 그사이에 뜻있는 이들은 하나들씩 밤보따리를 울러매고 북만주에 포진하고 있는 독립군 휘하로 들어갔고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면서 이름한자도 제대로남기지 못한채 지금도 어는 살골짜기에 딩굴고 있는 임자없는 유골이 되어 버렸건만 어느덧 근 100년을 맞이할 지금에도 생각조차 없는 자들로 이 조국은 다시 광복이란 이름으로 다시 피어나고 있으되 언제다시 자취없이 허물어 질날이 닥아설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오빠생각이 동요라고 여기면서 통통거리며 뛰어 놀던 철없는 소년이 이제는 80을 바라보는 지금에 이르러도 이 애절함을 목추겨 주는 사람은 아직도 없습니다.
비단구두를 사갖이고 올 오빠를 기자리는 소녀도 이제는 간곳이 없지만 우리들 민족의 가슴속에는 영원히 그 동네 어귀 그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갑자기 윤동주시인이 생각나네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우리 민족이 누구나 애송하는 윤동주의 서시-序詩-입니다.
간도출신 윤동주는 바로눈앞에서 살아지는 동지들의 모습을 떠 올려 볼 때마다 그들 친구들은 독립군으로 나아가서 슬어저 죽었건만 자신은 동경유학으로 동경시내를 활보한다고 생각할 때 이러한 시를 토해 내지 않고는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을 만큼 고뇌를 씹고 또 씹었을 것임은 그의 처음 쓴 싯귀속에서 그감정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당시는 조국을 생각하는 민족이라면 누구나 가슴을 후벼파는 아픈 심정을 지니며 살아야 했을 것이며 발버둥인들 마다 하였겠습니까?
비록 동경땅에서 유학을 한다고 하지만 한점 부끄럼이 동지들의 벽력같은 그 고함소리를 시로서 표현하려 한 것 같습니다.
이 참담한 판국에서 어찌 12살 소녀인들 민족고뇌의 진통이 왜 없었겠습니까?
노래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 아무나 부를 수 있을 수도 있지만 부르는 사람의 기분과 정서가 가춰지지 않고서는 도저히 부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정서없이 부른 노래들이야흉내에 불과 할 터이지요.
지금 뜸북새는 이나라에서 멸종된지 오랩니다.
많은 침략전쟁에 시달리느라 숨을 곳 없는 논두렁에 살던 듬북새는 자신의 몸둥이를 숨길 만한 여유를 얻지 못하여 살아 집니다.
그마나 이노래는 한동안 금지곡으로 불려진 대도 거처 왓습니다.
"북에서 온 기러기" 라는 문구가 수상하다는 이유였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이유도 찾아 볼 숭벗었건만 단호한 결정은 우리 민족이 그저입술소리로만 중얼 거렸을 뿐 소리내어 부르지 못했습니다.
사상의학(四象醫學)과 우리 한민족이 오랜 역사적으로 체험으로 얻은 교훈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사상의학상 음인(陰人)은 80%로 많고, 양인(陽人)이 적다고하며 특히 태양인(太陽人)은 100
명중 2명 이내 이니 무척이나 희귀하다 합니다.
특히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태음인(太陰人)이 50%로 많다고 하는바 이러한 원인은 자주 있어온 외침을 당하여 혈기왕성하고 의협심이 강한 태양인이 앞장서게 되었다 보니 태양인은 씨가 말라 줄어 들고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태음인은 뒤로 꽁무늬를 빼고 숨어 버려 그 씨가 늘어 나게되니 이러한 역조 현상이 오게 된 모양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 민족만이 아니라 과거 몽고족이나 코사크족괴 이제는 그 자취조차 볼 수 없게된 인디안 부족들같은 이지구상에 서서히 없어지게 되는 종족이나 민족들에게는 공통점이며 앞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지게 되어도 앞장설 사람은 없고 그 틈새를 이용하여 자기이익을 도모하는 데 급급한 자들만 창궐하다보면 이젠 이 민족의 장래도 암담할 뿐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한의학을 하는 분들 역시 단순히 한의학을 해서 허울좋은 인술을 내걸고 돈벌이나 하는 일에 열중하시지 말고 한민족의 연원한 의인(醫人)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민족의학 사상의학을 제안한 이제 마선생의 깊은 뜻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민족없이 한의학도 앞으로 없어 질 것임은 기초상식입니다.
아마도 체질을 변경할 수 있겠거나 아니면 사상의학의 이론이 맞는 다고 가정하였을 때 이 이야기는 성립되는 것이니 부디 의의를 제기하거나 노파심은 잠시 잠재우십시요.
2244=둘이사네 이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