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gave himself)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장20절)
법과 육체를 자랑하는 갈라디아교회와 같은 교회가 많습니다. 아마 서울 특히 강남 쪽은 거의 그렇지 않나 생각을 해 봅니다. 성경지식만 쌓아가는 것이 무슨 계급이나 되는 것처럼... 그렇지만 사랑이 보이지 않잖아요. 만약 한국교회가 사랑만 생산하는 원리가 있다면 죽은 사람의 책 몇 권에 의해 세월호처럼 침몰하지는 않을 겁니다. 육체와 돈을 자랑하는 교회들은 세월호 사건으로 우스갯거리가 되고 교황방문으로 비웃음거리가 된 형국입니다. 교황의 하나 마나한 말이 명언이 되어 긴 꼬리로 남아 있습니다. 용서와 화해를 하라고? 그 단체에 있는 사제들을 모아놓고 그렇게 되는지 실험을 한 번 해 보이시지 않고...잘 될까요? 잘 될 턱이 있나요?
아마 오늘도 있으나마나하고 하나마나한 교회마다 소리가 가득할 겁니다. 생명이 안 되는 말,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말들...그건 짧은 복음 탓입니다. 왜 사람들이 십자가에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만 믿으려할까요? 왜 주신(gave himself) 아들을 버렸다고 바꿔놓았을까요? 버리신 예수와 승천하신 예수와 다시 오실 예수만 믿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실제가 안 되잖아요.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것이 말뿐 능력으로 나타나지 않잖아요. 암만 노래 같이 불러도 믿음과 시인이 짧으니 성령의 흐름에 닿는 코드가 짧아요. 버리신 예수, 하늘에 계신 예수를 믿고 열심을 내다가 지루하니 이제 다시 오실 예수를 믿자 이렇게 나오잖아요.
어떤 얼뜨기들은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도 한답니다. 그럼 그 기도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이루어지겠지요. 그 때까지는 여전히 그리스도가 없으니 아버지도 없어 고아이고 남편이 없으니 과부이며 그 분들이 집이 되어 주지 않으니 나그네겠네요. 그리고도 평안 기쁨 거룩 사랑 이런 것이 있는 척 해야 하니 얼마나 고달픕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도 무효가 되어 있지요. 성령이 보증을 서 주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무리 자신 안에 드러내려 안간힘을 써도 성령이 외면하십니다. 왜요? 믿음이 문제입니다. 버리신 예수만 들었으니까요. 버리신 예수만 믿어요. 하나님이 온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분명히 주십니다.
그런데 그 독생자를 받는 자 곧 그리스도를 주신 하나님을 믿는 자만 구원하십니다(요3:16) 아들을 주신 아버지를 믿고 그 아들을 가진 자들만 영생이 있습니다(요일5:12) 성령의 기름 부음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고 아버지를 압니다(요일2:27)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 십자가로 화평, 성령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감이 현실이 됩니다. 율법이나 육체로 끙끙댈 시간이 없어요. 바로 죽었다고 복창하고 그리스도 안에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만 챙깁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버려 나를 사들여 끌어안고 그 십자가를 넘어 아버지의 사랑의 나라로 옮겨 내가 네 안에 있노라 하시는 그 분의 말씀이 실감이 됩니다. 참 회개, 세례, 죄 사함에 의해 성령이 선물(행2:38)로 내게 임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