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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언약/백성
제목 : 언약의 백성답게 삽시다!
성경 : 암6:1-14
찬송 : 502장
저자 : 이삼규목사
출처 : 20190811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암 6:1]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교만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이여 이스라엘 집이 그들을 따르는도다
[암 6:2] 너희는 갈레로 건너가 보고 거기에서 큰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라 너희가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영토가 너희 영토보다 넓으냐
[암 6:3]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포악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암 6:4]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암 6:5]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암 6:6]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암 6:7]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
[암 6: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주 여호와가 당신을 두고 맹세하셨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에 가득한 것을 원수에게 넘기리라 하셨느니라
[암 6:9] 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하여도 다 죽을 것이라
[암 6:10] 죽은 사람의 친척 곧 그 시체를 불사를 자가 그 뼈를 집 밖으로 가져갈 때에 그 집 깊숙한 곳에 있는 자에게 묻기를 아직 더 있느냐 하면 대답하기를 없다 하리니 그가 또 말하기를 잠잠하라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못할 것이라 하리라
[암 6:11] 보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므로 타격을 받아 큰 집은 갈라지고 작은 집은 터지리라
[암 6:12]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서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정의를 쓸개로 바꾸며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며
[암 6:13] 허무한 것을 기뻐하며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뿔들을 취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도다
[암 6:14]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리니 그들이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 너희를 학대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나라 모 재벌 회장이 몸이 아파서 고생을 하다가 매우 어려운 지경에 빠졌을 때 의료진을 향하여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를 1년만 더 살게 해 주십시오. 1년만 더 살게 해 주시면 내가 할 일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돈을 모으는 데는 대단히 성공했지만 돈을 돈답게 써 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1년만 더 살게 해 주면 내가 모은 돈을 한번 멋지게 써 보고 세상을 떠나겠습니다.”
그는 믿지 않는 사람이었음에도 양심에 가책을 느꼈나 봅니다. 그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마음에 가책을 받은 것입니다. 그가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설 때 무슨 면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때 늦었지만 써야 되겠다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1년을 채 살지 못했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그런 가책을 받는데 하물며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그래서 저는 오늘 “언약의 백성답게 삽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강론해 드리겠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삶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눈에 보이는 세상 것들과 육신의 욕망을 좇는 삶입니다. 다른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좇는 삶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좇는 사람은 많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좇는 자는 적습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을 좇는 삶만이 우리로 영생에 이르게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을 기록한 선지자는 아모스입니다. 그는 자신을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아모스 선지자의 고향은 드고아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8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마을입니다. 그는 남 유다 출신이었는데 북 이스라엘을 향해 예언하도록 부름을 받은 선지자였습니다. 주전 800년 경 유다와 이스라엘은 번영과 평화의 시대가 도래 했습니다. 앗수르의 간섭도 없었고, 북쪽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남쪽 유다에서 웃시야 왕이 통치를 하였는데 남북 모두 최대로 영향력을 확장하였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렸습니다. 아모스는 남쪽 출신이었지만 북쪽 이스라엘을 향하여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멋진 건물을 짓는 일은 힘들고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9.11 테러로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것을 보셨지요? 우리 신앙이 무너지는 것도 한 순간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언약의 백성답게 살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타락했습니다. 그들이 언약의 백성답게 살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영적 교만 때문입니다!
[암 6:1]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교만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이여 이스라엘 집이 그들을 따르는도다
하나님은 교만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영적 교만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모스 선지자를 보내서 시온에서 교만한 자와 사마리아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의 머리인 지도자들을 책망하십니다.
인간은 조금만 힘이 생기고, 소유가 풍성해지면 순식간에 하나님을 보지 않고 가진 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알고 계십니다.
시 138:6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
잠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잠 15:25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
잠 16: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잠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잠 21:4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역사에 오명을 남긴 '타이타닉호'는 세계 최대의 여객선으로, 1912년 4월 14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대서양 횡단을 목적으로 처녀항해를 나섰습니다. 2,300여 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승객을 태우고 '타이타닉호'는 유유히 바다 한가운데로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캐나다 동부 해안에 이르렀을 때, 해안 통제소로부터 "빙산주의 !" 라는 무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항해사는 거대한 '타이타닉호'를 너무 신뢰한 나머지 선장에게 보고할 생각조차 않는 것이었습니다. 급박해진 통제소에서는 계속 무전을 보내왔으나 이미 자리를 뜨고 만 항해사는 무전이 오는 것을 알 리 만무했습니다.
이윽고 '타이타닉호'의 최후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간, 선장은 항해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보고를 받았습니다. "전방에 빙산이 있다는 무전을 받았는데 어찌 할까요? 설마 이 '타이타닉호'가 빙산 따위에 눈깜짝이나 하겠습니까?"
선장도 항해사의 말에 맞장구치듯이, "하나님이라도 감히 이 배를 어찌할 수 없을걸세. 항해를 계속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수 km도 못 가서 '타이타닉호'는 그 거대한 몸체를 바다에 내맡기고 말았습니다.
승객 2,300명 중 단 700여 명 만이 살아남은 이 사건은 인간의 힘이 얼마나 미약한가 하는 사실, 그리고 인간의 교만이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초래케 하는가 하는 사실을 보여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은 최고로 부강한 때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마음에 교만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물질의 풍요를 누리고 나라가 부강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축복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소유는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생사화복의 주인이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일이 잘 될 때에도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머리를 숙이고, 일이 잘 안 될 때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겸손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잠 16:19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은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 때문에 멸망당합니다.
영적 게으름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 하고 배부르고 넉넉해지고 싶어 합니다. 문제는 배부름과 넉넉함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배부름 때문에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암 6:4]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약한 자들을 희생시키며 누리는 화려한 생활을 언급합니다. ‘상아(象牙)상에 누우며’ 여기에 상아상이란 코끼리의 상아를 박아 장식한 침상을 의미합니다. 솔로몬 왕이 만든 보좌도 상아로 만들었던 것을 봅니다. 화려함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왕상 10:18 왕이 또 상아로 큰 보좌를 만들고 정금으로 입혔으니
북쪽 나라 아합 왕도 상아 궁을 지었습니다.
왕상 22:39 아합의 남은 행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건축한 상아궁과 그가 건축한 모든 성읍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값비싼 상아 장식을 위하여 백성이 눈물로 경작한 밀, 포도주, 그리고 올리브기름을 탈취하였습니다. 즉 상아 상 이면에는 농민층의 경제적인 몰락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기지개를 켜며’ 이것은 만취되어 대자로 누워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즐겨 먹는 고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먹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부드럽고 특급 고기를 즐겼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거기에 음악이 빠질 수가 없지요.
[암 6:5]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비파’는 울림통이 있는 현악기를 말합니다. ‘악기를 제조하며’ 이것은 악기를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악기를 연주하며 작곡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다윗이 악기를 연구한 음악 전문가였음을 상기하며 다윗처럼 작곡하고 악기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면서 다윗의 힘, 다윗의 부, 그리고 다윗의 예술을 누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음악과 어울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술입니다.
[암 6:6]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들은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포도주를 넘치게 마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귀한 기름’을 몸에 발랐습니다. 여기에서 귀한 기름은 압착식으로 짠 올리브기름(엑스트라 버진)을 의미합니다. 지도자들은 농민들을 착취하여 얻은 기름을 자신들의 사치를 위하여 사용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치생활을 즐겼던 그들에게 요셉의 환난에 대해서는 관심 밖의 일이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상태가 어떠하였습니까? 폭풍 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게으름에 빠져 사치와 호화로운 생활에 빠져 있을 때 요셉(이스라엘)에게 환난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 게으름과 사치와 방종에 빠져 살던 그들에게 임할 심판이 무엇입니까?
[암 6:7]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
가장 먼저 심판을 받게 되는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의 머리인 지도자들입니다.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상아 침상에서 술에 취해 기지개 켜는 소리를 질렀는데 이제 그 소리가 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부에 취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시 우리도 세상 것에 취하여 영적 게으름을 피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잠언 기자는 경고합니다.
[잠 30: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불러야 하고 성령의 새 술에 취해야 합니다.
영적 무지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날은 지식과 정보의 시대로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것을 알아도 여호와를 알지 못한 인생은 무지한 인생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했지만, 말씀을 버리고 자기들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암 6:12]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서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정의를 쓸개로 바꾸며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며
그들은 정의를 쓸개로 바꾸며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암 5: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
[암 5: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그런데 그들은 반대로 나갔습니다. 그들은 허무한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면 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잊으면 영적 둔감함에 빠지게 되고 영적 무지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날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사람들도 여호와를 아는 지식보다 세상 지식에 더 열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 무지에 깊이 빠진 사람들은 자신이 망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망하고 난 뒤에야 깨닫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멸망을 가져오는 영적 무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똑똑하다고 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한 인생은 멸망하고 맙니다. 영적 교만과 영적 게으름, 나아가 영적 무지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최대의 장애물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은 언약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고도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불경건한 자들처럼 헛되고 무가치한 욕망을 좇았습니다. 영적으로 교만했고, 영적인 게으름과 나아가 영적 무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과 은혜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의 뜻을 받들어 경건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이 다 됩시다. 언약 백성은 겸손해야 합니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언약 백성답게 살아가는 우리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