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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돌섬 돌고 돌아>
김대기 현령이 파직당하여 망치마을로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망치고개에서 더 넓은 바다와 외로이 떠 있는 윤돌섬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랬던 망치재, 윤씨 성을 가진 세아들이 홀어머니 사랑을 나누도록 징검다리를 놓아둔 효자섬, 거제관광의 일번지 구조라에서 윤돌마을, 망치마을을 윤돌섬을 바라보며 한번 걸어보자
< 승용차 코스>
망치재-황제의 길-망향삼거리-망치마을 바닷가(송악)-해녀의 집-망치마을-양지마을-대덕사-윤돌마을-작은윤돌마을-구조라해수욕장-외도널셔리-약물바위-구조라항 주차
(도보: 연화식당-구조라백화마을-샛바람소리길-언덕바꿈-구조라성-수정봉-군초소체험장-성황당-구조라항 주차장)
<도보코스>
망치버스정류장-망치보호수-해녀의 집-남파랑길(망치해수욕장-윤돌마을-작은윤돌마을-구조라해수욕장-외도널셔리)-샛바람소리길-언덕바꿈-구조라성-수정봉-군초소체험장-성황당-구조라항 버스 정류장)
임진왜란 때 망을 보던 망치재 ( 일명 황제의 길)
망치재에는 황제의 길이라는 비석이 보인다.
춘삼월이면 벚꽃이 만개하여 온통 벚꽃 천지다. 거제에서 가장 벚꽃터널이 좋은 곳이 바로 망치고갯길이다. 봄이면 벚꽃이 피어서 좋고 여름이면 녹음수가 있어서 좋고 가을이면 길가에 꽃무릇이 춤을 추며 벚나무 가로수가 울긋 불긋 단풍이 들어 좋다. 겨울이면 앙상한 나무 사이로 망치항을 바라 볼 수 있어서 좋으며, 또한 조선시대 유배인들의 문학작품을 전시하여 마음을 양식을 쌓기에도 좋다.
100미터쯤 가면 큰 돌에 유배인과 문인들의 시가 전시되어 있다.
이 길은 3.2km정도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황제의 길이라고도 한다. 1968년 5월18일에서 20일까지 국빈방문한 에티오피아 ‘하일레 셀라시’ 황제가 국빈 방문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에티오피아는 황제 친위대를 포함하여 6,037명을 파병하였다. 공식방문을 마치고 거제도 망치고개에서 쪽빛 바다와 윤돌섬과 망치 구조라 해변을 보고 감탄하여 원더풀을 일곱번이나 외쳤다고 한다.
3.2km내내 벚나무 터널이 있다.
터널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펜션촌인 망양마을이 나온다. 원래 양지마을, 새모실이라 하였는데 큰 바다를 바라본다 하여 망양望洋이라하였다. 끝자락에는 토토로(현,필이지)라는 카페가 있었는데 꽁지머리 사장과 촌스러운 화가가 살고 있어 거제에서는 꽤 유명한 인사들이 찾는 곳이기도 했다.
망치望峙마을의 유래
망치고개에서 국도 14호선과 만나는 지점이 망양삼거리이고 서쪽으로 1km가면 망치마을이다. 망치리는 양화마을, 망치마을, 양지마을로 구분된다. 같은 구역에 있으나 윤돌마을은 구조라리 소속이다.
망치마을은 임진왜란 때 망을 보던 곳이며 숙종 14년 (1688) 김대기가 거제현령으로 부임하고 보니 거제현아가 고현에서 거제면으로 옮겨 일반 백성이 왕래하기에 불편하여 새로운 길을 만들기 위해 백성들을 동원하였으나 과도한 부역과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자 안렴사按廉使가 책하여 파직하고 말았다.
파직당한 김현령은 망치마을에서 잠시 머물다 충남 공주로 돌아가 별세하였다. 그러나 둘째 아들 경원은 망치마을이 그리워 가족과 함께 거제로 내려와 양지마을에 정착했다.
그리고 경양재를 짓고 후배 양성에 힘쓰다가 돌아가신 아버님이 보고 싶을 때는 양지마을 뒷산인 북병산에 올라 계룡산 너머 아버지가 만든 고갯길을 보면서 아버지를 생각하고 자신의 호를 망치望峙라 했다. 그러니까 김실령재를 바라본 고개라는 뜻으로 생각되며 김경원의 호인 망치를 따서 양지마을이 망치마을로 바뀌게 되었다.
지금은 이곳에 의성김씨사우가 있으며 거제도 의성김씨 입거제 할아버지를 모시는 곳으로 양지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의성김씨 재실인 대덕사大德寺는 거제현령 김대기 비롯하여 아들 경원(호 망치)이하 의성김씨 거제문중 망치종파 선조를 비롯하여 65위를 모시고 있다.
大德祠( 대덕사 의성반씨 거제사당 )
望峙 府君 神位 ( 망치는 김대기 아들 김경언의 호임)
入巨濟始祖 金大器 府使( 김대기는 거제 현령임)
의성김씨거제파계보: 二一世(몽여)
二二世 (중기,홍기,대기)
二三世(경수,경원,경홍)
파직당한 현령은 아들과 함께 살기 위해 이곳을 오면서 망치고개에서 감응하여 시를 지었다.
春回山舊靑 봄이 돌아오니 산은 옛 같이 푸른데
地得路新名 대지大地엔 길이 생겨 새 이름을 얻었구나.
豈知裳越郡 가뿐히 넘어가는 고을이라고 어찌 알릴까?
不肖復爲萍 다시는 부평초 되어 떠돌지 않으리.
윤돌섬을 팔아 가수가 된 한동엽
망치마을 바닷가에는 남해안에서 보기 드문 송악과 푸조나무(약300년)가 있다. 이곳에서 출발 원점이다. 이백미터 가량오면 해녀의 집이 보이고 아름답게 가꾸어진 향나무를 볼 수 있다. 이 집이 바로 “ 윤돌섬을 팔아 가수가 된 한동엽 본가이다.
본가 사진,
나무사진
망치 바닷가에는 300년 묵은 송악과 푸조나무가 있다. 여기가 윤돌섬둘레길의 출발점이다.
아버님 말씀에 의하면 동엽( 본명 천도)이 어릴적부터 노래를 잘 불러 앞으로 가수가 되겠구나 생각하여 부산으로 음악유학을 보냈다. 1979년 가수 하수영에게 발탁되어 음반을 내어 활동을 했으나 그 때 마침 군입대를 하고 말았다. 3년이라는 공백기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버님 사업을 도왔다.
어느듯 20년이란 세월이 흘렸으나 가수의 꿈을 버릴 수가 없었다. “ 아버지 다시 가수를 하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아버지는 아들의 간곡한 호소에 그만 윤돌섬을 팔고 말았다. 더디어 2010년 발표한 ‘검정고무신’이 좋은 반응을 보여 가수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한동엽 사진
아버님 따라 20년 동안 해녀사업에 전념하다. 한동엽(본명,천도)
‘어머님 따라 고무신 사려가면 멍멍개가 해를 쫓던 날
길가에 민들레 머리 풀어 흔들면 내 마음도 따라 날랐다. ~
잃어버릴라 닮아 질세라 애가 타던 우리 어머니
꿈에서 깨어보니 아무도 없구나 세월만 휭휭
검정 고무신 우리어머님
슬픈 전설을 가진 윤돌섬
해녀의 집을 지나면 망치몽돌해변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구조라바닷가까지가 남파랑길 1코스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이며 6월경 완공할 것이다. 이 길은 바닷가 절벽 위로 길이 있으며 끝날 때까지 윤돌섬을 돌아가면서 보기에 절경 중의 절경이다.
윤돌섬을 옛날에는 윤교리도(尹校理島)라 불렸는데 이는 종5품을 가진 윤씨가 귀양 와서 살았던 곳이거나, 윤씨 성을 가진 몇 집이 모여 살아서 지어진 이름이거나 할 진데 확실한 근거는 없다. 아래 내용은 현재 통용되고 있는 윤돌섬의 전설은 효자 아들과 홀어머니 얘기다
망치 고개 밑에는 구조라와 망치 사이의 바다에 아름다운 섬이 두둥실 떠 있는데 이 섬을 윤교리도(尹校理島), 윤돌도(尹乭島), 효자섬 등으로 불렸어지고 있다.
멋진 자태를 뽐내는 윤돌섬...망치와 구조라를 돌고 돌아
아주 오랜 옛날 이곳에 과부 노파가 성이 윤 씨인 아들 삼형제를 거느리고 이 섬에 와서 살게 됐다. 사람들은 이 노파를 윤 씨 부인이라 불렀다.
마침, 이때 거제 북병산 밑 양지마을에 김 씨 성을 가진 어부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어부는 이웃 마을에 절세미인인 '해선'이라는 이름의 해녀와 결혼해 바닷가에서 전복, 소라, 미역, 멍게 등을 따다가 시장에 팔아 정답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해선이가 바다에 나가 물질을 하는데, 난데없는 태풍이 불어 깜짝할 사이에 해선이 탄 배가 떠내려가고 말았다. 아내를 잃은 노인은 저 멀리 사라지고 있는 배만 바라보며 “해선아! 해선아!"하고 애타게 불러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날부터 노인은 달 밝은 밤이면 해선을 그리워하며 해선이 마지막으로 물질했던 바닷가에서 해선을 그리며 달만 멍하니 쳐다봤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이 망월, 또는 김망월, 망월영감 이었다.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진 망월은 움막을 짓고 고기를 낚으며 해선이가 떠나갔던 먼 수평선만 바라보면서 세월을 흘려보냈다.
이즈음 망월의 움막 맞은편 바다 건너에는 윤 씨 부인이 삼 형제를 데리고 섬으로 와 살고 있었다. 멀리서 또는 육지를 오가면서 얼굴을 익히게 된 망월과 윤 씨 부인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그리고 고목나무에 꽃이 피듯 어느새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고, 윤 씨 부인은 바닷물이 빠진 간조(썰물)때면 어김없이 섬을 떠나 망월을 만나러 갔다.
윤 씨 부인이 살던 섬은 거제 북병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려 그 줄기가 하루에 두 번 썰물 때가 되면 물 위로 드러나 배를 타지 않아도 걸어서 맞은편 육지까지 쉽게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이 되자 윤 씨 부인에게 고민이 생기게 됐다. 봄부터 가을까지 간조 때마다 버선을 벗고 육지로 갈 수 있었지만, 한겨울 엄동설한에는 쉽게 바다를 건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윤 씨 부인이 따뜻한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가 망월을 만나러 가는 모습을 애처롭게 생각한 윤 씨 삼형제는 어머니를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어머니가 추운 겨울에도 차가운 바닷물에 버선을 벗지 않고 또 발이 젖지 않도록 징검다리를 만들어 두 사람의 늦은 사랑을 응원했던 것이다. 그 후 사람들은 윤 씨 삼형제가 어머니를 생각하는 효심이 깊다고 해 효자섬이라고 부르다가 윤 씨 삼형제가 살면서 돌다리를 놓았다고 해서 윤돌섬이라 불렀다.
윤돌섬의 추억
이런 슬픈 전설을 가진 윤돌섬은 망치에서 윤돌마을 구조라마을에서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에 두둥실 떠 있다.
망치마을, 윤돌마을, 구조라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어릴 때 1980년대까지 윤돌섬을 헤어가거나 영등시, 영등초시, 영등뒷시에 개발하려 다녔다고 한다.
사진/사진
남자들은 육지와의 거리가 500미터 정도여서 옆구리에 소주병을 차고 윤돌섬으로 헤엄쳐서 다녔고, 아낙네들은 영등시가 되면 배꼽정도로 수면이 낮았기 때문에 충분히 건너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근자에 와서 바다가 오염되어 그 많던 전복, 소라, 해삼 등은 어디가고 미역만 남았다고 한다.
지금은 경남기념물제239호(거제윤돌섬상록수림)로 지정되어 출입이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 레져스포츠(카약) 동호회 팀들은 이곳을 왕래하면서 윤돌섬 해식동굴을 인터넷에 올리곤 한다.
윤돌섬 동쪽에 위치한 해식동굴
본인은 일년에 한 두 번 윤돌마을 바닷가에 개발하려 온다. 해삼, 군소, 소라, 고등류와 파래, 김, 우뭇가사리, 톳, 미역, 청각, 모자반 등 해조류가 지천으로 갈려 있었으나 최근에는 점점 줄어드는 현상이다.
윤돌마을 박연차 별장을 지나 구조라해수욕장으로
윤돌섬 앞에 있다고 하여 윤돌마을이라고 이름 지어진 마을에는 예부터 7가구가 살았으며 지금도 7가구가 살고 있다. 한 집을 제외하고는 모두 펜션집이다. 그리고 토박이 우경완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외지인이다.
윤돌섬 바로 앞이라 경치가 수려하여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하여 요즘은 주춤한 편이다. 펜션을 질려 새로 조성된 둘레길을 가노라면 전 구간에 걸쳐 윤돌섬과 마주한다. 사백미터 쯤 가면 작은 윤돌마을이 나오고 카페와 네 다섯채의 펜션과 마주한다. 그런데 바닷가 500여평의 별장에는 노무현 형님 노건평과 박연차의 사연이 있는 곳이다.
~ 2007년 월조선에 기사된 내용을 보면 ~
朴회장은 지난 大選 전인 2002년 4월에 健平씨 소유의 경남 거제시 구조라리에 있는 별장을 매입했습니다. 거제도 별장을 매입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002년 3월 말경 정산개발의 鄭承榮 전무로부터 「健平씨가 거제도에 있는 자신 명의의 땅 1300평과 건물 2棟(동)을 10억원에 사달라고 한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저는 거제도로 내려가 건물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해안가인데다 주위 경관이 상당히 좋더군요. 저는 말년에 이곳에서 낚시나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에서 그 건물과 땅을 매입하게 된 것입니다』
부동산을 사기 위해 거제도에 내려가보니 경치가 좋고 낚시를 즐기기에 적당해 그곳에서 말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배트남에 1994년 진출하여 혁혁한 공을 세워 명예영사로 추앙받았으며 한국과 베트남 교역에 큰 역할을 한 박연차 회장 74세의 일기로 이 세상과 하직하고 작은윤돌마을 별장은 주인을 잃은 채 그대로 있습니다.
노건평-박연차로 이어지는 말이 많은 땅...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증언; 윤돌마을 우경완씨에 의하면 노건평씨가 소유하고 있을 때는 자주 내려와 같이 사냥도 다녔다고 합니다. 고로 노건평씨 땅이 확실함.
구조라 해수욕장과 화장터
작은 윤돌마을을 지나면 바다로 가는 길이 있다. 그 곳에 가면 넓은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서 화장火葬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화장火葬은 고려시대나 신라시대에 임금, 귀족, 스님 등에 의하여 행하여 왔으나 일반인들은 거의 행하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화장은 스님들이 죽은 후 나무로 태우는 다비식茶毘式을 하고 사리舍利를 탑에 봉안하는 의식이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윤돌 우경완, 구조라 강연기씨의 증언에 의하면 구조라 해안 서쪽 끝에 바위가 있는데 여기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연고가 없는 사람이나 못쓸 병에 걸린 사람 등을 이곳에 가지고 와서 장작으로 단을 쌓고 화장을 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배터지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려 무서웠다고 한다. 같은 거제도 출신이지만 우리마을에는 없는 생소한 풍습이다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구조라해수욕장의 화장터
~ 바다로 세계로 축제가 열리는 구조라 해수욕장~
둘레길 끝자락의 14호 국도선 옆에 구조라해수욕장 전망대가 나온다. 여기서 한 장 찰각하고 들레길 따라 바다로 내려가면 하얀 백사장의 속살을 드러낸다. 백사장 끝에 돌무덤이 있는데 그곳이 화장터이다.
이곳이 거제에서 백사장이 가장 좋으며 풍경이 아름다워 ’바다로세계로’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옛날에 아름다웠던 모래해변은 6.25사변 시 UN군 전용해수욕장으로 쓰기도 했고, 고현에 포로수용소 짓는다고 모래를 퍼가서 모래 반 자갈 반이 되어 형편없이 되었으나 1980년 모래를 부어 해수욕장으로 면모를 일신하니 전국에 청소년들이 모여 고고장으로 변하기도 했다.
본인도 1980년대 초 이곳을 방문하여 친구들과 고고파티를 벌린 기억이 생생하다.
~샛바람소리길, 구조라성, 수정봉둘레길 따라~
옛날 방풍림으로 이용했던 시리대(신우대)소리길
구조라해수욕장 끝자락에 특이한 구조를 한 카페가 있다. 외도 김창호
사장님의 며느리가 운영하는 카페인데 온실형으로 특이한 모양을 하고 정원도 함께하여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차 한잔하고 100m 쯤 가면 샛바람 소리길이라는 팻말이 나온다. 거기서 직행하면 샛바람소리길이고 바닷가로 직진하면 900m쯤에 약물바위가 있다. 여기서 물 한 모금하고 돌아와 샛바람소리길에서 표지판따라 올라가면 시릿대 오솔길이다. 남해안 해안가에 자생하는 시릿대는 담뱃대나 활시위를 만드는데 사용하다가 근자에 와서 샛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 목적으로 조성되었다. 조금 오르면 언덕바꿈 사진촬영지가 보인다. 윤돌섬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한장 찍어본다.
3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웅장한 구조라성벽이 나온다. 최근에 복원했는데 연인들이 사진찍기에 좋다. 구조라성은 1490년 왜적을 방어하기 위해 건설하였는데 구조라항에는 병선을 배치하여 구조라진 있었기에 구조라성의 이름을 구조라진성이라 한다.
다들 여기에서 돌아가는데 지금부터 진짜 알짜베기 볼거리가 있다. 약 15분 정도 오르면 정상이 나온다. 100명이 조망할 수 있는 큰 테크가 있어 1월1일 이면 이곳에서 해맞이 행사가 행해진다. 내도, 외도, 해금강, 홍도, 날씨가 좋으면 대마도가 눈앞에 보인다.
정상에서 동쪽 방향으로 십 여분 내려오면 군초소체험관이 있다. 거제에는 동해남부 섬지방으로 1960~80년대에 간첩이 자주 출몰하여 곳곳에 군 초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쓸모가 없어 방치되어 있거나 교육용으로 일부 이용하고 있다. 수정봉 아래 위치한 군 초소는 그 규모가 상당하기에 체험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 한 컷하고 다사 구조라성으로 오른다. 좀 길이 험하긴 해도 그냥 갈 수 있다. 구조라성 서쪽 편에 성황당이 있다. 팽나무 밑에 움막이 있고 안내판과 옷가지들이 보인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 도교 등이 있기 수 천 년 전부터 있었던 원시종교이다. 인간이 자연재해에 대비가 미약했던 시절 ‘샤먼’은 죽은 자의 영혼을 저 세상으로 인도하는 역할과 예언자, 치유자, 제사를 주제하는 사람으로 절대자의 역할을 했다. 지금 같으면 공자나, 예수, 석가와 같은 존재이다. 조금 걸어 내려오면 거제 관광의 일번지 구조라항이다.
.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함께하는 구조라 관광마을~
구조라항의 처녀총각 등대
거제도 동남쪽에 자리 잡은 구조라 마을은 주변에 아름다운 경관과 역사와 문화가 함께 상존한다. 구조라 마을은 임진왜란 전후해서 진과 성을 쌓아 왜적을 방어했으며, 목장을 두어 가축을 기르기도 했으며 일본 통신사들이 출발하는 곳이기도 했다.
구조라 마을의 옛 이름은 항리項里였는데 이는 장고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다른 이름 조라助羅는 자라 목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조라에는 역사 문화 관광이 함께한다.
외도, 해금강, 내도로 가는 유람선돠 도선
샛바람소리길과 구조라성, 수정봉, 군초소체험장, 성황당 관광 코스길
구조라해수욕장과, 윤돌섬, 선창마을 휴양지
주차장, 먹거리, 구경거리, 쉴거리가 함께한다.
망치 송복금 할머니의 거제도 타령
학동학을 한 마리 타고/고동기미(수산마을)을가서 고동하나 주어 먹고/
망태(망치)와서 망을 보온께/윤돌가서 윷을 한방 놀고/구조라 가서 국을 한그릇 사 묵고/지세포 가서 쥐를 한 마리 잡아서/배숲개(옥림)가서 배를 하나 따 묵고/장승포 가서 새 장을 봐서/마산가서 마차를 타고/부산으로 가논께부대해서(마음이 부풀어서)/일본 시모노세끼로 건너갔네
혜학이 넘쳐나는 타령이다.
<<< 윤돌섬 돌고 돌아 여행 메모 >>>
여행 팀
윤돌섬둘레길( 남파랑길 1코스)은 걷기만하는 코스가 아니다. 망치재에서 망양삼거리까지는 대중교통이 없기에 도보로 걷기가 불편하다. 양지마을에 있는 김대기 현령과 그의 아들이 모셔져 있는 의성김씨사우는 코스가 좀 복잡하다.
그리고 수정봉아래에 있는 병영초소체험관에서 성황당까지의 길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좀 험란한 길이다. 수정봉에서 저 멀리 현해탄을 바라보면 외도, 내도, 해금강, 홍도와 일본의 대마도 한눈에 보인다. 일반관광객은 구조라성에서 돌아가나 수정봉과 군초소체험관 그리고 구조라성에 위치한 성황당을 필히 보아야 할 코스이다.
구조라에는 봄이면 초등학교에 춘당매가 피어 가는 길손을 잡아두고, 여름이면 각종 해산물이 출렁거리며 ‘바다로세계로’축제가 열리며, 샛바라소리길 구조라성은 연중 관광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구조라 관광 약도
망치에서 구조라까지는 남파랑길 거제 1코스이다.
윤돌섬 둘레길 교통정보
◎ 대중교통 이용법
-고현출발
1회차 : 05:40~학동~양화~망치(06:30)~구조라~능포
2회차 : 09:50~수월~옥포~장승포~망치(11:30)
3회차 : 13:27~중곡동~옥포~장승포~망치(14:20)
-능포출발
1~30회 : 30분 간격으로 출발함 (06:50~21:30) 종점은 학동,양화,구조라이므로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함.
문의처: 삼화여객(055-632-2192), 세일교통(055-638-4100)
◎ 승용차 정보
구천마을-망치재( 망치정수장)-황제의 길-망양삼거리-망치해수욕장-망치보호수 도착-망치마을-양지마을-대덕사-윤돌마을-작은 윤돌마을-구조라전망대-구조라해수욕장-외도 널서리-샛바람소리길-약물바위-구조라선착장 주차
☞ 도보안내 : 연화식당출발-샛바람소리길-언덕바꿈 촬영지-구조라성 성곽 관찰-수정봉 오르기-군 초소 체험-구조라성내 성황당 답사- 구조라항 도착
☞맛집 : 구조라성, 샛바람소리길, 수정봉,구조라해수욕장, 외도,해금강,내도 유람선 출발지, 어판장, 낚시터 등이 몰려 있는 곳으로 20여 곳의 맛집과 거제특산물 판매점이 있는 곳이다. 특히 동해남부 현해탄에서 직접 잡아 올린 생선요리는 일품이다.
☞ 숙소
윤돌섬 주변의 마을( 망치, 망양, 윤돌, 구조라)은 해변을 끼고 있기에 풍경이 수려하여 거제에서 가장 많은 펜션촌을 형성하고 있다.펜션은 200여개로 럭셔리한 펜션도 많이 있다.
글과 사진 옥건수 010-4488-2280
경남 거제시 장평1로5길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