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의 본 소돔과 고모라 창19:12-29.
성경은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를 구약과 신약에서 언급한다. 신약의 언급을 보면, 마10:14-15절에서 주님은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가 그 고을 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라 하신다. 또 유1:7절에서는 복음을 받아 들이지 않는 자들은 분명 멸망 당할 것인데 그 모델로 소돔과 고모라를 등장시킨다. 마지막으로 베드로는(벧후2:6) 소돔과 고모라를 경건치 아니한 자들에게 보이신 ‘모델’이라 한다.
그럼 구체적으로 소돔과 고모라를 통해 멸망 당하는 자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농담’이다. 즉 그 땅의 멸망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롯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다(창19:14,16,26). 그리고 16절에서 롯은 지체하고 있었다. 즉 그의 가족들과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던 것이고, 이는 그들의 마음은 세상의 물질에 마음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지만 그러나 그 말씀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보다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물질에, 자신의 원함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던 롯이 구원을 받는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우리는 창19:16절과 29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6절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다.”고 하신다. 그리고 29절에서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 보내셨더라고 하신다.” 이런 의미다. 창18장에서 아브라함의 중보가 있었다. 그런데 그 중보는 그의 가족인 롯에 대한 중보다(이것은 영적으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중보를 의미한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때 그의 중보로 말미암아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구원하셨다. 마찬가지로 소돔과 고모라가 모델이 된다는 것은 우리 역시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세상에 살아간다. 그리고 롯의 가족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농담처럼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구원을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십자가 사건)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자비하심을 베풀어 주시고 끝내 멸망에서 구원해 내신다.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아이와 같이 순전한 젖을 사모하며 살아가야 하며(벧전2:2), 티도, 흠도, 아무 탈이 없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벧후3:14). 그러나 원치 않게 우리의 눈이 세상을 바라보며 지체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끝내 구원하신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 없는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 소망하기는 그 끝없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알기 원하며 그 분께로 이끌려 가기를 오늘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