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 When the Day Comes
한국영화, 장르:드라마 개봉:2017.12.27
감독:장준환, 각본:김경찬, 제작:우정필름
주연:김윤석,하정우,유해진,김태리,박희순,이희준,
관객:7,183,959명(2018.02.05.현재)
1.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박종철”(1964.04.01.~1987.01.14.)은 민주운동가로 부산에서 출생하여 혜광고등학교졸업 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언어학과 학생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86년 노동자학생연대 투쟁에 참여하던중 청계피복노조합법화 요구 시위로 구속되어 집행유예2년 선고를 받고 3개월만에 출소된바 있다. 1987년1월13일 자정, 박종철의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 6명에게 긴급 체포되었다. 대한문화연구회 선배이며 민추위 지도위원인 “박종운”을 체포하기 위해 연락책인 박종철을 연행한 것이었다. 취조실로 끌려간 박종철은 잔혹한 폭행과 전기고문과 물고문 등에 시달렸지만 끝내 박종운의 소재를 말하지 않았다.결국 1987년1월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11시45분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으로 긴급 호송되었지만 이미 사망한 후 였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1987년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에 의해서 최초로 나왔다. 그러나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냉수를 몇컵 마신후 심문을 시작하였는데 친구의 소재를 물으며 책상을 “탁”하고 쳤더니 갑자기 “억”하는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 부속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하였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중앙대 내과전문의 오연상 부검의는 대공분실 509호 사건현장에서 고문에 의한 사망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1월14일밤 경찰은 은폐목적으로 시체를 화장할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최환부장검사가 사체 보존명령을 내리고 사건 지휘또한 안상수 검사가 하였다.
1월15일 오후6시, 한양대학교병원에서 실시한 부검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의 황적준박사와 한양대학교 박동호교수가 참여 하였고, 부검결과 온몸에 피멍과 엄지와 검지간 출혈흔적과 사타구니,폐 등이 훼손되고 복부팽창과 폐에서 수포음이 들렸다. 부검결과를 놓고 경찰의 회유와 협박을 받았던 황적준 박사의 언론공개로 당시 치안본부장이 구속되었다. 고문치사 사건 축소 은폐를 위해 경찰은 가족허락없이 벽제 화장터에서 시신을 화장해 버리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당시 전민련 이부영 상임의장과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노력으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조작을 폭로하였으며, 이 사건을 조작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뇌물이 오간 정황까지 드러나 문제의 심각성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에서 6월항쟁이 시작되었으며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2. 영화 1987년
1987년 1월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취조를 받던 22세의 대학생 “박종철”군(여진구역)이 사망하였다. 중앙대학교 용산병원 의사가 긴급하게 대공분실에 도착하였지만 학생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대공분실 “박처장”(김윤석역)은 “치안본부장”(우현역)을 통하여 서울지검 “최검사”(하정우역)에게 사체 화장 허가서를 요구하였다. 최검사는 상부의 강압에 의해 허가서에 도장은 찍어 주었지만 부검명령서를 발부하여 부검만큼은 반드시 하도록 단서를 달았다.
한양대학교병원에서 실시한 부검에는 한양대 의대교수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의와 함께 참여하였고 유족대표로는 박종철의 “삼촌”(조우진역)이 증인으로 참여하였다. 부검결과 고문치사가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치안본부 대공분실은 서둘러서 시신을 화장해 사건을 덮으려고 했다. 치안본부를 찾은 중앙일보 기자가 우연하게 대공분실에서 대학생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긴급타전함으로서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안기부장”(문성근역)은 박처장과의 만남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조용하게 수습될 것을 요청했지만 사건이 공개됨에 따라 중앙일간지들의 경쟁을 보도지침만으로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중앙일보에 이어 동아일보 “윤기자”(이희준역)의 집요한 사건추적에서 최검사가 남겨둔 자료를 기반으로 고문치사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공안통 박처장의 기세에 눌려진 최검사는 검사직을 사임하고 변호사로 나선다.
사건이 확대되자 대공분실 “조반장”(박희순역)과 형사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가해자로 책임지고 감옥에 들어갔다. 교도소 교도관으로 근무중인 “한병용”(유해진역)은 동아일보 해직기자로 수감중인 “이부영”(김의성역)과 외부인사로서 도피중에 있는 “재야인사”(설경구역)의 연결고리로 비둘기 역할을 하고 있다. 한병용 또한 수사관들의 추적망에 걸려 있어서 조카인 “연희”(김태리역)가 대리전달자로 나섰다. 연희는 87학번 신입생으로 “이한열”(강동원역)과 만나면서 정보의 중요한 비둘기 역할을 하였다.
조반장을 끝으로 박종철고문 치사사건이 종료될 것으로 보았던 박처장은 중앙일간지 “사회부장”(오달수역)의 신념과 기자들의 추적을 통한 언론공개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정인기역)의 폭로로 그 전모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이어 이한열 학생이 최루탄에 맞아 다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함으로서 민주화 운동은 횃불을 넘어 전국적인 소요로 치달았다. 결국 박처장과 남영동 대공분실 형사들이 줄줄이 체포되면서 공안통치의 공포에도 해가 지고 있었다.
감추고 은폐하려 하였던 공안정치의 막장인 고문통치가 종식되면서 영화는 끝이 났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죄없이 고문당하고 죽거나 장애인이 되었는지 알수 없다. 영화는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진행되었다. 수많은 호화배우들이 캐스팅되어 역사의 한페이지를 만들어 갔다. 국민들의 생활 건너편 어두운 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세상밖으로 전달되기 위해 누군가는 엄청난 고통속에서 외롭게 죽어야만 했다. 진실이 밖으로 나왔을 때 이제 그러한 일들은 멈추어야 했다. 그러나 1987년 이후, 모든 고문과 폭압은 완전히 궤멸된 것인지 여전히 알수 없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영화에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 저항할 힘도 없이 폭력에 방치된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그리스도의 고난과 희생앞에서도 무기력함을 드러내었던 비겁한 제자들이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진리가 바르게 선포되어야 할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가장 바른 실현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순종하며 살아갈 때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의와 공평이고 자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