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대낮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우산을 펼쳐든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떤 사람은 가방을 머리에 이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순간 생각해보니 가방에 넣어둔 신문이 생각났다. 그걸 꺼내어 두손으로 받쳐들고는 돌격 앞으로 했다.
신문을 대한지 어언 반세기도 넘는가 싶다. 요새 말로 '라때세대'라서 그런지 다른 매체보다는 여전히 신문이 더 친숙하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서는 바깥날씨가 아주 좋거나 큰 불 밑에서는그런대로 읽을 수 있으나 흐린 날에는 읽기가 어려워서 큰 타이틀만 건성으로 보고는 밀쳐둔다. 그랬다가는 해가 밝게 비추면 한꺼번에 읽기도 하고 외출할 때는 가방에 넣어서 때를 기다리기도 한다.
신문을 처음 접한 건 중학교 때 아버지와 함께 관사에서 살 때였는데 당시 공무원들은 신문사의 강권으로 신문을 의당 구독했던 것 같다. 요새처럼 Internet, TV는 흔치 않아서 노래는 Radio로 들었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신문을 읽은 인텔리들의 입을 통해서였다. 당시 신문은 대체로 漢字여서 잘 읽을 수는 없었으나 얼추 짐작해서 읽었고 어른들의 말씀과 대조해보았다.
그 무렵 읽고 난 신문지(구문)는 참 으로 쓸모가 많았다. 벽지를 바르거나 장판지를 새로이 깔 때는 초벌로 신문지로 발랐다. 허기야 가난한 집에서는 신문지로 도배를 하기도 했었다. 그런가하면 화장지가 없어서 코를 풀거나 용변 뒷처리는 대체로 신문지로 했었는데 코를 풀고나면 코잔등에 인쇄잉크가 묻어있기도 했었다. 일꾼들은 신문지를 구해서 엽초나 봉초를 밀이사 피웠다.
고교시절 공부깨나 하는 모범생들은 Newsweekly 같은 영자신문을 읽었지만 나는 어깨너머로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의 사진을 주로 보았었다. 그 무렵 某신문에 난 기사로 난처한 적도 있었다. 어느 날 학교엘 갔더니 친구들 몇 명이 다가와서는 '너 경찰서에 잡혀간줄 알았더니...'하면서 놀려대었다. 그 길로 해당 신문을 찾아보니 쌍나팔에 '선승某란 놈이 사직공윈에서 여자를 희롱했다'는기사였다.
대학시절에는 도서관 신문대에서 대모기사를 집중적으로 보았었다. 그런가운데 신문에 대한 특별한 추억도 있다. 절친의 아버지가 지역사회의 언론인이었고 당시 기관지 행세를 하는 ㅇㅇ신문지국장이었다. 친구는 학교가 끝나면 관내 각 기관에 우편으로 신문을 부치는 일을 했었다. 가끔은 내가 그를 도와서 그 일을 했었고 매월 말 일에는 친구의 오토바이를 타고 관내 각 기관을 돌아다니며 수금을 했었다. 그 날은 친구가 술밥을 거하게 샀었다.
군대생활을 할 때는 신문을 읽는 것보다는신문지를 활용했던 추억 두가지가 각별하다. 하나는 술값내기 신문지 찢기였고 다른 하나는 신문지로 추위를 막았던 일이었다.신문지 찢기는 잭인들에게 신문지를 같은 면적으로 찢어서 나누어준 다음 적힌 숫자를 견주어서 제일 적은 숫자가 술밥값을 뒤집어썼다. 또 다른 것은 겨울철 RCT훈련을 나갈 때면 신문지를 군복 안에 끼워넣으면 한결 보온이 되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쪽잠을 청할 때 얼굴 위에 신문지를 덮으면 보온도 되고 차광도 되었었다.
교직에 처음 들어왔을 때 스스로를 엎그레이드할 요량으로 Korea Times를 어거지로 구독했었다. 영어실력이 짧아서 먼저는 한국일보를 읽고나서 영자신문을 어림잡아 읽었었다. 그런데 영어과선생님들이 영어전공도 아닌 놈이 영자신문을 보는 것을 몹시 못마땅해 하는것 같았다. 그리고 또 못마땅해 한 사람은 아내였는데 잘 보지도 않으면서 뭐하려 돈는 돈대로 나가고 치우기만 성가시다고 투덜댔었다.
그로부부터 세월이 많이 흘러서 퇴직하게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신문을 보고있다. 요새는 Digital시대라서 유튜브나 인터넷 매체가 대세를 이룬 가운데 Analog시대의 신문을 읽는 사람이 확연히 적고 '구석기시대를 사는 사람같다'고도 한다. 그래도 내 딴에는 차분한 마음으로 비교적 화실한 정보나 논리적인 지식을 얻는 Mass-Media는 역시 신문인 것 같다. 그래서 아직도 신문을 읽고 있으며 읽고난 신문지는 재활용으로 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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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민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