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남 마르첼리노 마리아 수사님의 묵상글 중 '신앙여정' 과 공유한, 할 글들
(241001 - )
=== 1 ========================
매형을 떠나보내며 (회상의 편지)
http://www.ofmkorea.org/ofmkfb/562312
이마르첼리노M 2024.10.10 17:13
=== 2 ========================
말씀의 통치를 받아들이려면
http://www.ofmkorea.org/ofmkfb/562358
이마르첼리노M 2024.10.12 06:43
=== 3 ========================
감정 (마음의 정서적 자유를 찾아서)
http://www.ofmkorea.org/ofmkfb/562478
이마르첼리노M 2024.10.16 04:18
=== 4 ========================
가을밤에 쓰는 달빛 소야곡 제 1부 1/2
http://www.ofmkorea.org/ofmkfb/562630
이마르첼리노M 2024.10.21 15:51
=== 5 =========================
가을 밤에 쓰는 달빛 소야곡 제2부 2/2
http://www.ofmkorea.org/ofmkfb/562632
이마르첼리노M 2024.10.21 15:55
=== 6 =========================
=== 7 ========================
=== 8 ========================
=== 9 ========================
=== 1 ===============================================
http://www.ofmkorea.org/ofmkfb/562312
이마르첼리노M 2024.10.10 17:13
매형을 떠나보내며 (회상의 편지)
가을이 깊어 가는 날 먼 길을 떠난 매형을 회상하며
매형의 영정 앞에 이 편지를 드립니다.
가을바람에 실려 오는 그리움,
여름날의 불볕더위를 견딘 초록들이 저녁노을처럼 물들어 가고
들판은 이미 잔칫날이 되었습니다.
사과들이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고
코스모스들이 다투어 창조주께 제 몫의 찬미를 드리던 날
매형의 선종 소식은 나를 회상의 언덕으로 오르게 하였습니다.
감나무의 낙엽이 질 때 떠오르는 얼굴 하나.
먼 길을 떠난 매형과의 기억,
황금벌판을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차창에 스치는 풍경처럼
매형과 함께했던 순간들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붉게 물들어 가는 단풍처럼 추억들을 회상해 봅니다.
첫 만남의 따뜻한 미소,
가난했던 그 시절의 기억,
든든한 버팀목 되어주셨던 그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향에 내려오셔서 우리와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 들이
내 마음속에 석류알처럼 박혀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참으로 힘들었지만,
매형의 따뜻한 손길과 사랑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밥 한 끼를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던 그 시간,
비닐하우스로 생계를 꾸리던 겨울 날의 손 시린 회상들이
이제는 먼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창조적 고통은 아름다운 생명의 모습이며.
진실은 추위 속에서도 피어나는 꽃이라는 믿음아래
분발과 좌절의 되풀이가 얼마나 뼈저린 인간사의
살상인가를 잘 알게 된 이즈음
먼저 떠난 매형이 그립습니다.
슬픈 식욕처럼 정신의 공복감
인색한 저울로 사람을 달아 따지는
몰이해의 사나운 돌팔매들이 남긴 상처들 속에서
먼저 다가서는 만남을 보았습니다.
주님!
서로의 신상을 성실한 관심으로 서로 돌보고 가꾸지 않는다면
사람의 정인들 무슨 값어치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삶도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눈빛은 하나같이 절절하여
염원과 소망의 집을 짓고 부수는 일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사이,
우리의 머리엔 흰 서리가 짙어갑니다.
헐벗은 영혼의 추운 눈시울을
따스한 불가에 녹이고
이슬에 씻긴 과일처럼 신선한 축복
겸허한 충족에 이르게 하소서
존재의 심연에서 생명이 분출되고
생명이 연소 되어
발아에서 열매를 맺기까지
그 자연의 순환에 나를 맡기고
서서히 미래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감정의 부상으로 인하여 기도하게 하시고
고독과 절망과 삶의 낭떠러지와
모든 위급한 처지에서
저희와 동행하신 주님,
먼저 떠난 영혼을 당신의 자비로운 품에 받아주소서
우리의 삶은 자유에 바쳐진 시간이며
삶의 준령은 언제나 능력의 상한선 그 위에 솟아있고
그 높이는 무섭습니다.
존재의 밑바닥까지 아픈 금을 입히는 손길
기도와 헌신, 증여와 부축으로
사람을 길러내는 거기에 생명이 만발하게 하소서
=== 2 ===============================================
말씀의 통치를 받아들이려면
http://www.ofmkorea.org/ofmkfb/562358
이마르첼리노M 2024.10.12 06:43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으로
작은아들, 임신하지 못하는 여인, 창녀, 세리, 나병환자, 죄인, 여자, 흑인, 비종교인, 동성애자, 이들을 쫓아내려는 힘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간다. 그들이 있는 곳에서 당신이 발견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들은 배척이나 추방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하셨다. 불행하게도 나는 여태까지 나에게서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있는 우익과 좌익을 당신의 말씀으로 부수고 들어오셨다.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있는 흔들리는 추를 당신의 말씀으로 고정해 놓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있는 왕들을 몰아내시고 예언자를 받아들이게 하셨다.
이러한 고백을 조금이라도 하고 세상을 마친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 3 ===============================================
감정 (마음의 정서적 자유를 찾아서)
http://www.ofmkorea.org/ofmkfb/562478
이마르첼리노M 2024.10.16 04:18
우리의 몸과 마음의 정서를 깊이 살펴보면 감성과 감정의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감정이 부상을 입게 되면 감성도 영향을 받아 내면이 어둡습니다. 내면이 어두우면 평화가 깨지고, 내면의 평화가 없으면 희생양을 찾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관계를 어렵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게도 아무것도 아닌 것을 지키느라고, 또 위로부터 받은 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며 그것을 가지고 하느님과 사람과 모종의 거래를 하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진리가 왜곡되고 진실이 둔갑하는 곳에서는 하느님이 미움을 받습니다. 관계를 금 가게 하고 단절의 원인을 제공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자신은 매우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와 당신의 메시지를 내쫓기고 버려진 계층의 사람들이 왜 먼저 알아듣는다고 생각하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자만심에 가득 찬 이들은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하느님을 이용할 뿐 말씀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탐욕과 위선의 현장에는 의미와 가치가 사라진 실재하지 않는 문화를 실재하는 것처럼 포장하여 승자와 패자를 갈라놓는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킵니다. 깨어진 부분과 가난한 부분들까지 개별적으로 돌보시는 아버지의 자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 그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제외시키고 차별하는 배타적 제도는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가난과 겸손으로 육화를 드러내시는 예수께서는 결정적 죽음 이전의 작은 죽음이 인간의 감정을 거처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감정의 단계를 묵살하거나 무시하면 그것들이 더 깊은 형태의 변장을 하고 다른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폭력으로 사람을 괴롭힙니다. 분노 조절 장애와 위궤양과 우울증은 감정을 선으로 통제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렇게 되면 분노의 희생자가 되거나 온갖 종류의 정신질환에 시달리게 됩니다.
깊이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필 수 없습니다. 느낌이 깊을수록 사랑도 깊어집니다. 감정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며, 옳은 것도 틀린 것도 아닙니다. 감정은 몸의 언어입니다. 자기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기 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표시입니다. 내면의 사정을 외부로 드러냄으로써 자신을 표현하려는 언어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자신을 표현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이 감정은 통제되지 않으면 폭력으로 관계를 해칩니다. 감정은 사랑하기 위해서 값을 치러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낄 때마다 머리와 가슴과 몸속에 있는 신비들을 붙잡고 씨름해야 합니다. 자신과 만나는 일이 쉽지 않더라도 매일 매일 자기와 만나 씨름해야 합니다. 나의 감정은 정말로 신비롭습니다. 감정의 사계절을 매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말씀에 굴복하려는 멈춤과 머무름이 없다면 그것들이 나를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통제되지 않은 감정은 결국 폭력으로 모든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갈 것입니다. 하느님과 너와 피조물과의 관계는 사라지고 홀로 남아 죽음의 계곡에서 신음할 것입니다. 자만심이 만든 감정은 기어이 전쟁으로 생을 마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삶으로 변화시키는 영성은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놓아버리라고 가르칩니다.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고 벌거벗고 충분히 가난해질수록 깊은 만족에 이르게 합니다. 나와 내 것이 사라진 거기에 해방과 자유가 있고 하느님 안에 있는 진짜 내가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처음에 가난을 통하여 자유를 얻는 법을 깨달았지만, 나중에는 자유롭기 위해서 가난을 선택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과의 연결은 가난한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느님으로 사랑받고 있음을 아는 것도 가난한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는 증명할 필요도 포장할 필요도 없고 다른 누구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무엇을 남겨놓지 않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여백과 자유의 공간이 사라지면 감정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어릴 때 저항할 수 없었던 억압된 분노와 상처들은 나이가 들면서 폭력의 싹을 키워 다른 사람과 소통을 어렵게 하고 어울릴 줄 모르게 하고 독점과 소유로 지배의 칼을 휘두르다가 외톨이로 생을 마감하게 합니다.
정서적 자유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관계적 선과 연결되어 있을 때 누리는 자유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야말로 하느님 나라의 실상이며 인간은 여기서 상처와 억압된 분노를 잊어버립니다. 두려움과 자기방어, 증오에 대한 근거를 잊어버립니다. 부정적 성향은 그 뿌리와 싹을 잘라야 합니다. 즉 생각과 감정에서 잘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틀림없이 부정적 행동과 태도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 4 ===============================================
가을밤에 쓰는 달빛 소야곡 제 1부 1/2
http://www.ofmkorea.org/ofmkfb/562630
이마르첼리노M 2024.10.21 15:51
1
찬 바람이 부는 어느 가을날
지나온 세월의 굴곡을 보는 듯 거칠어진 아버지의 손으로
억새들의 하얀 머릿결을 쓰다듬는 손길을 보았습니다.
찬바람이 가슴속을 파고드는 밤,
가녀린 여인들의 가슴 시린 사연을 떠 올리며
공감의 창을 열어 놓고 동반과 부축의 길을 찾고 있습니다.
낙엽은 소리 없이 흩어지고,
은은한 달빛은 그녀들의 슬픔을 어루만지며 밤을 비춥니다.
그녀들의 눈물은 이슬처럼 맺히고,
그 고요한 바람 속에 작은 희망의 속삭임이 들립니다.
2
가을,
손 시린 회상의 그리운 얼굴들
슬픔 속에서도 빛나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피어납니다.
낙엽이 쌓여가는 길 위에 흩어졌던 그리움
험준한 등산길을 헐떡이며 걷던 날
사람의 추위를 신의 제단에 올리며
한없이 안으로만 품었던 그들의 비애
베개를 적시며 쓸어내린 기억의 조각들이 스치며 지나갑니다.
주저앉고 싶었던 절망과 애환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강인하게 피어난 소망의 얼굴들.
삶의 질곡에서 아직은 지쳐있는 모습을 봅니다.
여전히 견뎌내야 하는 일상의 무게 속에서
작은 희망을 찾아내려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3
찬 바람이 불어오는 이 계절,
결코 지치지 않는 가슴이여!
가을 들국화처럼 계속 피어나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손길,
가을 정원에 꽃들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꽃들을 보려고 거기에 갔습니다.
여름날 강인한 열정으로 피어나는 노랑 나리꽃
순백의 송이로 환하게 웃는 함박꽃
가을 하늘 아래 맑고 깨끗하게 피는 들국화
보랏빛 눈망울에 맑은 이슬 담은 물망초
수수하고 담백한 코스모스
꽃들은 다투지 않고
저마다의 색깔과 진한 향기로 창조주를 찬미하면서
생명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4
나는 그들의 염원과 진홍의 사랑에 실려 오는 전율,
사슴처럼 슬픈 눈망울을 보았습니다.
더는 기다릴 수 없는 생명의 충일로
마침내 가슴을 쪼개고 마는 석류의 파열 속에
유리를 입힌 듯 반짝이는 붉은 홍옥들의 눈망울을 보았습니다.
5
한 개비 성냥으로 능히
지옥의 불바다를 부를 수 있는 위험한 불씨
죄의 끈질긴 유혹과
목덜미에 휘휘 감기는 고독과 외로움
좌절에 기울었던 그만큼이나
헐벗은 영혼의 추운 눈시울을
따스한 불가에 녹이고 싶은 마음을 보았습니다.
제2부로 ---
=== 5 ===============================================
가을 밤에 쓰는 달빛 소야곡 제2부 2/2
http://www.ofmkorea.org/ofmkfb/562632
이마르첼리노M 2024.10.21. 15:55
제2부 시작
6
사랑하는 건 부끄러운 감정이 아닙니다.
속으로만 삭이던 말을 밖으로 내 보내도 괜찮습니다.
슬픈 여인들의 얘기가 어디 한두 가지에 그치겠습니까?
슬픔속의 종자 같은 그녀들의 내심에 핀 지순한 소망의 꽃잎들
속마음을 비추는 벌거벗은 촛불 앞에
미사가 끝난 후
텅 빈 성당의 쓸쓸한 제대처럼 고요히 비쳐 오는 시간을 압니다.
7
생명을 낳은 모성이여!
가시덩굴에서 피는 장미를 보십시오.
눈부신 그 기쁨을 보십시오.
빛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기쁨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자유도, 예술심도, 상냥함도, 기도의 말들도
그리고 달과 별들도 친구들도 남아있고
소중한 시간과 여기에 더하여 사랑하는 사람이 남아있습니다.
8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슴이여!
밤사이에 떨어지는 나뭇잎의 건조한 작은 음향에도 무심할 수 없는
섬세한 감정의 살결이여!
그대들이 치른 산욕의 수고,
절대의 진통으로부터 하나의 생명을 품어내던 그때
어두운 육체에서 온통 빛투성이의 축복이 커다랗게 소리치던
모성의 영광을 기억하십시오.
9
얼마쯤은 늘 상처 입은 가슴
한 번씩 손이시린 노여움과 덤불이 탈 때 같이
뜨거운 혼란에 휘말리는 그대들의 비애
그대들의 눈물
불면의 밤을 보내던 날
창문을 때리던 빗줄기의 그 사나운 주먹질에도
삶의 애환과 무게를 돌아보게 하지는 않았을까요?
인색한 저울로 사람을 달아 따지는
이반과 몰이해의 사나운 돌팔매들이 부산히 바람을 가르고 다가올 때
아무도 이를 막아줄 방도를 찾을 길 없어
하늘로 두 손을 모으고 기도의 향을 올리던 일을 잊지 마십시오
10
이제는 다른 사람을 위해 옷섶 가득히 가장 맑은 눈물을 담아 보내고
부디 다함 없는 축원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자신의 체온으로 얼어붙은 영혼을 녹여주려는 꽃들이여!
주고 또 주어도 매번 줄 것이 모자라는 헌신에의 조바심
동반의 여정에 부축의 손길로
생명을 품어 기르는 그대들이 있어
아직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2024년 10월 21일 새벽에 2부 끝
=== 6 ===============================================
=== 7 ===============================================
=== 8 ===============================================
=== 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