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4월19일(日)맑음
▲동악산(動樂山)
해봉(42명)
♠참고
▲동악산(動樂山)
위치:전남 곡성군 곡성읍 월봉리
주봉우리:동악산 북봉
내용 출처:두산세계대백과
높이 735m. 660년(신라 무열왕 7년) 원효가 도림사(道林寺)와 길상암(吉祥庵)을 세울 때
하늘의 풍악에 산이 춤췄다고 하여 동악산이라 한다.
도선이 876년(신라 헌강왕 2) 중건 한 이 절에는 이름처럼 휴정촵유정 등 도인들이 모여
숲을 이루었고, 지환(知還)이 3창한 뒤 조선 말기에 4창 하였다.
수석 절경이 삼남 제일이라는 청류동(淸流洞)은 도림구곡(九曲), 청류구곡으로 불린다.
제1은 쇄연문(鎖烟門), 제2는 낙악대(樂樂臺), 길상사와 청계동 갈림길에 9곡 별유비인간
(別有非人間)이 있다.
임진왜란의 양대박(梁大樸:1544~1592) 과 병자호란의 김감(金鑑:1566~1641) 의병장이
활약한 별천지 무릉도원, 천혜의 요새로 4km에 걸쳐 있는 폭포촵소촵담이 굽이치는 반석
들이 다 지방기념물 제101호이다.
허백련(許百鍊)이 현판을 쓴 도림사 오도문(悟道門)에서 계곡을 향하면 갈랫 길.
오른쪽은 시인 묵객들이 노닐던 단심대, 배넘어재와 동악산 쪽이고 왼쪽은 형제봉과
길상암 쪽이다. 배넘어재 넘어 가파른 암봉 서봉을 지나 왼쪽 형제봉(730m: 옛이름 聖出峰)
까지는 산나물, 산꽃이 깔린 전망 좋고 평탄한 능선길이다.
♡ 도림사(道林寺)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월봉리 신라시대의 사찰.
지정번호 : 전남문화재자료 제22호
지정연도 : 1984년 2월 29일
분류 : 사찰건축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22호로 지정되었다. 도림사는 곡성읍에서 서남쪽
으로 4km 떨어진 월봉리, 동악산 줄기인 성출봉(형제봉)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신라시대인 660년(무열왕 7)에 원효대사가 사불산 화엄사로부터 옮겨지었다고 전해진다.
876년(헌강왕 2)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창을 하였는데 이때 도선국사, 사명대사, 서산대사
등 도인들이 숲같이 모여들어 절 이름을 도림사라 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지환대사가 3창을 하였으며,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가 이 절을 후원하였기
때문에 이름을 신덕사(神德寺)로 부른 적도 있었다고 한다.
현재 절 안에는 법당인 보광전을 비롯하여 응진당,지장전,약사전,칠성각,요사채 등이 있고,
1683년(숙종 9)에 제작된 도림사 괘불(전라남도유형문화재 119)이 소장되어 있다.
절 입구에는 허백련 화백이 쓴 오도문(悟道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 절에서 계곡 깊숙이 2km 떨어진 곳에 길상암(吉祥庵)이 있었으나 1960년대에 폐찰 되고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보광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인 맞배지붕집이며 원형 기둥을 세우
고 포작은 주두 위에만 공포를 올린 주심포집 형식이다. 겹처마, 전면 외2출목, 후면 외1출목
의 주심포 건물로 모로단청이 되어 있다.
도림사가 있는 동악산은 원효대사가 이 절을 창건할 때 온산의 풍경이 음률에 동요되어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렸다고 하여 동악산이라고 하였다고 하는데,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기암괴석을 이루고, 넓은 암반에는 조선시대 이래 근세에까지 많은 시인묵객들이 다녀간 흔
적을 글씨로 새겨놓았다.
해발 735m의 동악산 남쪽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동악계곡(도림계곡), 성출 계곡에는 아홉
구비마다 펼쳐진 반석 위로 맑은 물이 흐르고 노송과 폭포들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어서 전라남도기념물 제101호로 지정되어 있다.
♧ 신행코스
11:30 도림사주차장
12:50 배넘어재
13:30 잘록이
14:05 서봉
14:40 형제봉
15:05 길상암 갈림길
16:30 도림사
총 5시간
☞☞☞95년 61세 정년을 1년을 앞두고 직장의 간부 3박4일 전국산업시찰을 하면서
첫날 도림사 관광호텔에서 일박, 이튿날 새벽 운동 삼아 도림사와 계곡을 관광했던
동악산 산행.
집을 나서는데 배낭을 멘 이웃집의 106호 중년을 만나,
산행을 즐기는 새로운 동호인을 만난 기쁨에
“어느 산에 갑니까?”
하고 물으니
“아무산에 갑니다!”
“....?”
“우리 통성명이나 합시다! 남도생 입니다.”
했더니
“전, 백 육홉니다!”
“...?”
“저가 아저씨 옆집인 106호 아입니꺼!”
뒤늦게 평소 껄렁한 그의
농으로 한 이야기란 걸 깨닫고
더 묻지 않고 함께 버스를 탑니다.
시민회관 앞은 IMF 한파를 등산으로 극복하려는지 예상외로 많은 인원이 붐빕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백육호가 같은 관광버스에 올랐다는 겁니다.
08시05분에 출발한 42명의 회원을 태운 관광버스, 남해고속도로에 오르자 임 대장이
해발 753m의 동악산 유래와 산행 일정에 대해 잠시 안내방송을 하고 산행비디오를
시청 합니다.
남강휴게소에 잠시 들렸다 곡성 나들목을 빠져 전남 곡성군에 있는 도림사 주차장에
도착한 것이 11시25분.
11시30분, 인원파악과 상견례로 곧 출발합니다.
오른쪽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너럭바위의 계곡을 끼고 올라갑니다.
1300여 년 전 신라 무열왕 2년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도인들이 숲같이 모여들었다는
도림사. 신라 헌강왕 2년에 도선국사가 중건하고 조선말에 네 번 중창한 고찰을 캠코더로
촬영하며 잠시 둘러보고 계곡의 등산로를 따라가다 철다리를 건넙니다.
이틀 전의 비로 계곡은 맑은 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흘러갑니다.
동악산 정상 쪽은 개척이 덜 되어 힘들고 위험해서 ‘배넘어재’로 해서 형제봉을 거쳐
도림사로 내려온다고 했는데 선두의 일부 회원들이 갈림길에서 곧장 형제봉 쪽으로
올라 간 모양이라며 걱정합니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산이어서 계곡과 등산로는 산죽과 온갖 앙증맞은 야생화로 덮여
너무 깨끗합니다. 서너 개의 개울을 건너고 비탈을 올라선 게
12시50분, 바로 ‘배넘어재’입니다.
갈림길에 ‘형제봉1.7km 동악산1.3Km'의 이정표가 세워져 있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왼편으로 난 제법 가파른 능선을 따라 발걸음을 옮깁니다.
간간이 산죽 속에 시들고 있는 진달래, 파랗게 돋아난 고사리와 두릅등이 지천입니다.
13시10분, 잘록이에서 10여명의 후미 그룹이 점심식사를 합니다.
임 대장은 선두그룹을 잡겠다며 먼저 출발, 모두 허기를 메우고 일어서려는데 형제봉
쪽으로 간줄 알았던 듬직한 백 육호씨가 상기된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옵니다.
“어데 갔다 이제 오는 거요?”
“네! 동악 정상을 올라갔다 바로 오는 겁니다!”
며 단독등반을 자랑합니다.
회원들의 대단한 체력이라는 찬탄 속에 눈 깜짝할 사이에 큼직한 서너 숟갈의 밥을
들고는 다시 앞장서 바쁘게 능선을 오릅니다.
집행부가 승낙한 단독 산행이었다면 문제가 없지만...좀 거시기합니다.
14시05분, ‘최악산, 형제봉’의 방향표시가 있는 가파른 작은 암괴의 서봉에 올라섭니다.
캠코더와 카메라로 주변을 촬영하고는 좌측으로 꺾어 내려가 헬기장과 자일이 매달려
있는 암괴를 거쳐
14시40분, 화강석에 방향표시가 되어있는 ‘형제봉(656m)’석비 앞에 올라섭니다.
멀리 북쪽으로 동악산 정상이 보이고
시그널이 메어 있는 하산 길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집행부 정 군이 기다리고 있다 왼편으로 저 아래 설악 공룡능선 축소판 같은
암능을 가리키며 저 능선을 탄다고 합니다.
정 군을 먼저 출발하게 하고
서너 명의 회원이 철 계단과 올망졸망한 암봉을 타고 있는 걸
캠코더의 줌으로 잡습니다.
뒤따라 된비알을 내려가다
15시5분, ‘형제봉 0.4Km 동악산 배넘어재 2.7Km'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길상암 갈림길 잘록이에 도착.
정 군이 후미 네 사람이 암봉을 안타고 길상암 쪽으로 내려갔다는 소리에
촬영으로 너무 지체 한 것 같아 오른편 길상암 쪽으로 내려갑니다.
푸른 비닐 천으로 지붕을 덮은 흙벽돌집이 보여 길상암인가 싶어 닥아 가니
벌들이 떼 지어 웽웽거립니다. 사람대신 벌들이 차지한 거대한 벌집인가.
멀찍 암치서 촬영하고 그 자리를 피한다.
조릿대 숲을 거쳐 딱다구리의 나무 찍는 소리를 들으며
느긋하게 내려갑니다.
샘물만 흐르는 빈터만 덩그런이 남아 있는 길상암 터(해발510m)에 도착.
잠시 목을 축입니다.
청정의 측도가 되는 이끼 낀 등산로를
따라 조심조심 내려갑니다.
연이어 불어 가는 계곡의 요란한 물살.
올라갈 때 미쳐 보지 못했든 폭포와
시인 묵객들이 풍류를 즐겼던 낙락대의 음각 된 너럭바위를 타고
내려가는 천둥 같은 물소리의 자연 교향악에 잠시 넋을 잃습니다.
도림사 도착한 것이 16시30분.
5시간을 청정한 숲과 물소리와 다양한 야생화와 딱다구리 소리를 듣는
신선놀음을 하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기분 좋은 백육호씨가 시원한 캔
맥주를 삽니다.
17시, 무사산행을 마친 회원전원이 승차한 관광버스는 부산으로 출발합니다.
곡성 나들목으로 들어와 남해고속도로를 달린지 얼마 안 되어
뒤에서 백 육호씨와 항상 떠들썩한 구레나룻이 언제부터인지
호형 호제소리가 들려옵니다.
단독으로 동악산 정상을 밟은 자축으로 술값을 내어놓았는데
어떻게 되었느냐 등, 이런 저런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가고
너무 떠들어 죄송하다는 소리가 되풀이 됩니다.
평소 입심 좋은 떠들썩한 구레나루가 양순이가 되어
“이제, 다른 사람들 생각 좀하고 좀 조용히 하자!”
오늘 강적을 만났다며 머리를 흔드는 모습에 주위에서 폭소가 터집니다.
섬진강 휴게소에 들려 뒷길의 섬진강 변에 올려놓은 폐선을 캠코더로 촬영하는
차분한 마음이 서정적으로 느껴지기보다 오늘의 우리경제를 보듯 안쓰러워 지는 건
나만의 기분 일까요?
지수T/G를 지나자 차량정체, 법수 나들목을 지척에 두고 차량은 완전히 멎어 IMF를 무색
하게합니다. 초만원의 진영 휴게소, 화장실내의 변기 옆의 방뇨, 비빔밥 관광버스에서 내린
한 장년남자가 거북이걸음의 차량행렬의 고속도로를 향해 버젓이 까발리고 소 오줌을
눕니다.
여기저기서 욕설을 퍼부어도 마이동풍,
끝까지 볼일을 보고 태연히 자기 버스에 오르는 그 강심장.
이 사회의 도덕불감증과 추락한 가치관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오늘의 기분 좋은 산행은 귀로의 휴게소에서 맥없이 허탈감으로 바뀌고
길상암 터의 크낙새 소리와 이끼 낀 청정한 하산로는
내 망막에서 희미하게 살아져 갑니다.
예정시간 보다 한 시간 30분 늦은 21시35분,
서 부산 T/G 통과. 시민회관 앞에 하차.
백육호씨가 어디 가서 한잔 하고 가자는걸 간신히 달래어 택시타고 ‘산수탕’앞에 하차.
바로 앞의 호푸 집에서 딱 한잔만 하고 가자는걸 거절할 수 없어 들리니
평소 존경해왔다며 다시 자축의 건배를 하자고.
두어 잔 하고 되풀이 되는 이야기에 계산하고 일어서는데
자기가 내겠다며 외상 달아 놓으라고 큰소리치는 백육호씨,
간신히 달래어 집으로 돌아가는데 혀 꼬부라진 소리로 한마디 합니다.
“형님~~, 존경 합니더!”
산 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