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 이후 총선에 이르기까지 공영방송이 보여준 편파‧불공정성은 사안에 따른 선택적 지각 현상의 차원을 넘어서는 거대화한 방송권력의 횡포 내지 남용이며 권언유착의 고리를 단절시키지 못하여 빚어진 공영방송의 시대착오적 어용화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과 그 친위세력에 대한 비판적 견해는 무시한 채, 오로지 국회와 야당의 비난에 초점을 맞춰 시청자의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켜 버린 공영방송의 편파적 방송과 여론보도 행태는 과거와는 다른 공영방송의 공정성을 기대했던 시청자와 국민의 신뢰를 차디차게 외면하는 행위였다. 이러한 공영방송의 배신행위를 축구 시합 중에 있은 선수의 부정행위에 대한 양팀 관중의 인식 차이에 비유하며 선택적 지각 현상이라 해석하는 혹자의 견해는 지극히 몰가치적이다.
그러한 해석은 미국 방송들의 ‘페어니스 독트린(fairness doctrine)´처럼 최소한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방송이 각 정치세력에게 똑같은 비중을 할애하는 기계적 공평성이라도 보장되는 상황에서라야 적절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탄핵정국 이후 공영방송의 탄핵 관련 보도와 방송이 시간적으로 공평했다거나 적절한 반론의 기회를 부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총선을 어떻게든 탄핵의 연장선상에 위치시켜 탄핵세력에 대한 여론재판으로 몰아가려 한 집권세력의 선거전략과 그에 따른 선거결과에 탄핵안 가결 이후 편향적이고 선정적인 보도태도로 일관한 공영방송이 아무런 기여를 한 바 없다고 단언할 사람 역시 드물 것이다.
더욱이 탄핵에 대한 반대정서와 위기의식을 부추기는 선정적 보도를 반복한 공영방송이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다수 측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대통령의 위법‧위헌행위를 옹호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불법시위대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한 것은 정부권력과 밀착한 방송권력이 급기야 탄핵안 가결 이후 권력 공백기 동안 자신들의 이해 확대를 위해 국민에게 의사결정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의심을 품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물론 방송의 공정성은 몰가치적 중립성이나 기계적 균형과는 다르다는 입장에는 필자도 동의하는 바이다. 방송의 공정성은 진실성, 객관성, 균형성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민주적인 여론 형성에 기여하고, 역사의 발전방향과 공공의 선에 합치할 때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자유민주주의체제 하에서 매체는 각기 나름대로의 정치적 입장을 가지는 것이므로 오히려 정치적 입장을 명확히 하고, 선거기간 동안에는 매체의 정치적 활동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견해에도 일정 부분 수긍한다. 하지만 사적 매체인 신문과는 달리 공영방송은 국민의 수신료와 세금으로 운영되고, 대통령의 사장 임명권을 통해 정부의 통제를 받으며 전파라는 공공재를 사용하므로 정치적 입장이나 선택이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따라서 공영방송은 전파라는 공공재를 매개로 한 공익사업의 성격이 짙을 뿐만 아니라 모든 시청자들이 동등한 주주이기 때문에 다수의 뜻에 따라 소수의 견해를 침묵시킬 수도 없고, 시청자와의 정치적 입장 차이를 무시한 정치적 선택을 함부로 해서도 아니 되며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견해를 국민 또는 시청자의 이름을 빌려 정당화하는 일은 더더욱 행하여서는 안 된다. 이는 공영방송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 의의와 주인인 시청자의 요청을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비록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헌법재판소에서 심리가 계속 중이지만 탄핵을 둘러싸고 찬성측과 반대측으로 나뉘어 벌인 정치적 대결은 총선이 끝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탄핵반대의 국민정서를 선거에 이용한 집권세력의 승리는 결코 공정하다거나 바람직스럽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이제 지난 일에 연연하기 보다는 국익과 상생을 추구하기 위해 여야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여야 한다. 정치권이 하나가 되어 급진주의와 모험주의를 배제하고, 갈등과 혼란을 치유하며 안보와 경제를 튼튼하게 자리매김 하는 일이 급선무다.
아울러 이를 위해 기능하여야 할 공영방송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이제 방송권력의 남용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특정계층에 대한 왕따식 소외와 권언유착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일방적 정권 편들기를 중단하고 스스로 개혁의 대상이 되라는 것이다.
편파‧불공정 시비로부터 당당하고, 공영방송의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혁의 주체로 목소리를 높이기 보다는 스스로 몸을 낮춰 개혁의 객체가 됨으로써 과감한 혁신을 통해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는 길뿐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 국민이 원하는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방송의 개혁은 필수불가결한 선결요건이다. 방송의 개혁 없이 정치의 개혁이란 있을 수 없다.
첫댓글 동감 또 동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