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보니... 좀 길어졌어요...^^;;)
도덕경 1장은 내가 걷지 않은 길, 내가 부르지 않은 이름에 대해 생각하게끔 해요. 내가 걷고 있는 길이 과연 바른 길일까? 내가 옳다고 믿었던 바가 과연 옳은 것일까? 다른 선택지는 없는 걸까? 이후 이어지는 말들은 계속 이 질문으로 회귀합니다.
노자는 시종일관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말해요. 그릇은 비어 있으므로 쓸모가 있고, 집 또한 비어 있는 방이 있어 완성됩니다(11장). 실로 세상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어 보이는 것이 의미있으며 또 그로 인해 완성됩니다. 우리 삶이 정말 그러한 것 같아요. 우리 마음도 여유가 있어야 힘을 내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죠. 신영복 선생님의 ‘70%의 자리’와도 맥이 통하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반면에 세상은 참으로 현란하고 화려해요. 겉으로 드러난 것, 눈에 보이는 것들로 쉽게 현혹하죠. 노자가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다섯 색·음·맛(12장)은 감각을 마비시킨다죠. 이 부분 읽으면서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하신 상품미학의 폐해가 생각나기도 했네요.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인양 작동하고, 사람들 또한 그게 전부인 것처럼 여기고 살아가요. 요즘 같은 시대에 ‘보이지 않는 것’을 주장하는 말은 답답한 소리거나, 엉뚱한 생각입니다.
노자는 수없이 많은 보이지 않는 것들로 이뤄진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으로서, 끊임없는 자기 검토와 성찰, 비워냄을 주장합니다. 성인은 아무 것도 안 하는 듯 말 없는 가르침을 베풀고, 하늘은 공을 이루고도 뽐내거나 대접받기를 바라지 않고(2장), 성인은 하는 게 없는 듯 하고(3장) 사사로움이 없으며(7장), 하느님(상제) 또한 있는 듯 없는 듯(4장) 하며, 공을 세웠으면 물러납니다(9장). 세상은 ‘무’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보이는 것에 얼마나 현혹되어 살아가는가 생각해보았어요. 또 내가 걷는 길이, 내가 옳다고 믿었던 바가 과연 바르고 옳을까,도 말이죠. 여러 예를 들 수 있겠지만 하나를 꼽자면 MBTI가 생각났어요. 살면서 드러나는 어떤 기질에 이름을 붙이고선, 계속 그 이름을 부르면서 그것이 내 전부라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는 건 아닐까, 말이죠. 꼭 내가 아니라도 타인이든 무엇이든 쉽게 판단하고, 그걸 계속 강화하며 살아가는 건 흔히 일어나는 일이겠죠. 비워내며 산다는 건, 계속해서 이 질문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
-보이는 것들 중 특별히 현혹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나요?
-무언가 확고하게 믿었던 것들이 흔들리고 깨졌던 일이 있나요?
첫댓글 보이는 것에 현혹되는 것과 나를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 비슷하게 닮아있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