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서 산문집 {시가 우리를 만나게 했다} 출간
저자 김현서는 시낭송가이자 감성스피치 아카데미 원장으로, 전국시낭송대회 대상, 대한민국시낭송 대상, 사)한국노동문화예술협회 예술인 대상을 수상했다. 시문화연대 대표와 사)한국문학예술협회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알파크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詩토크 콘서트 ‘詩의 무등을 타고 나, 여기 있어라’를 진행하였고, 음반 ‘마음으로 노래하는 詩’를 발매해 콘서트를 개최했다. 유튜브 채널 ‘김현서TV감성아틀리에’를 운영 중에 있으며 시와 낭송을 통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유튜브 채널 ‘김현서TV감성아틀리에’를 운영 중에 있으며 시와 낭송을 통해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시가 우리를 만나게 했다』는 한 예술인의 활동 기록을 넘어선다. 이는 시를 사랑한 한 사람이 어떻게 시대와 사람을 품으며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는 인간적 증언이며, 감성이 메마른 시대에 더욱 소중한 삶의 교과서이다.
--고광이 시인
그녀의 시 사랑은 인간 사랑이다. 인간이 시가 되고, 시가 인간이 되는 세상은 그녀가 꿈꾸는 세상이다. 이토록 시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올지 자못 궁금하다.
--이형권 문학평론가
김현서 낭송가에게 시와 시 낭송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다. 그 운명적인 기회는 한 남자의 아내로서, 세 아이의 엄마로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온다. “둘째 아이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나는 학교 학부모 독서회 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어느 날 파올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대상으로 한 독서 모임이 끝날 무렵이었다. 한 회원이 “건호 엄마는 목소리가 참 예뻐요./ 시 낭송 한번 해보실래요?”(「시는 그렇게 왔다」 부분)라고 권유한다. 이후 김현서 낭송가는 한 달에 한 번씩 시 낭송 모임에 나가면서 전문적인 시 낭송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시 낭송가의 길은 ‘건호’의 엄마를 넘어서 시 낭송가 ‘김현서’라는 주체적 이름을 얻는 계기가 된다.
마이크를 잡던 손의 떨림.
무대에 오르기 전 잠 못 이루던 밤.
두려움에 숨이 막히던 순간들.
그 시간이 한두 번이었을까.
그런데 시낭송과 함께한 세월이
스무 해에 이르고 보니
어린 시절 내가 말했던 꿈들이
어느새 모두 이루어져 있었다.
학생들 앞에서는 선생님이 되었고,
무대에서는 시를 노래하는 가수가 되었다.
--「시는 그렇게 왔다」 부분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 많지만
가장 깊고 따뜻한 울림을 지닌 악기는
사람의 목소리다.
(...)
시낭송은
그 가슴에 시를 모종하는 일,
그리고 그 시가 자라도록
조용히 지켜보는 일이다.
--시 낭송이란」 부분
앞의 글은 시 낭송가로서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현서는 “무대에 오르기 전”에 가졌던 수많은 설렘과 두려움을 거쳐 이제는 “스무 해” 경력을 지닌 베테랑 시 낭송가가 되었다. “학생들 앞에서는 선생님”으로 “무대에서는 시를 노래하는 가수”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러한 시 낭송가의 길은 “어린 시절 내가 말했던 꿈들”이었다. 이제 그 “꿈들이 모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사실 어린 시절 꿈을 모두 이룬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마는, 그녀는 시 낭송가가 되면서 그 꿈을 모두 이루었다고 한다. 이 말 속에는 시 낭송에 대한 그녀의 절실하고 진솔한 마음 자세가 드러난다. 뒤의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시 낭송은 “가장 깊고 따뜻한 울림을 지닌 악기”를 연주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사람의 목소리를 “악기”에 빗대고 시 낭송은 그것을 연주하는 일이라고 한다. 이 멋진 비유는 “시를 모종하는 일”이라는 표현에서 절정을 이룬다. “누군가의 가슴에” 시를 “모종”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시적인 것으로 전환해 준다는 뜻이다. 이때 시 낭송가는, 사람들이 아름답고 진실한 한 편의 시와 같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시심의 전도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 낭송가의 길은 그녀에게 단순한 취미 활동 그 이상의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시 낭송은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폐적 삶에서 벗어나, 주체적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아주 특별한 일인 것이다.
김현서 낭송가의 활동 영역은 매우 넓다. 시 낭송을 직접 연출, 출연하고, 시 낭송 수업을 진행하고, 시인 초청 행사를 기획하거나 참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시 낭송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감성 치유, 언어 순화, 자신감 고양, 치매 예방 등의 효과를 발휘한다. 모두 수긍이 가는 일이지만, 특히 현대인들의 메마른 감성을 치유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주장은 주목할 만하다. 요즈음 시 낭송이 크게 유행하는 것도 이러한 효과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시 낭송이 타자의 사랑 혹은 타자와의 공감을 형성하는 효과가 크다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김현서 낭송가의 활동은 실제로 그러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녀의 발걸음은 광주 지역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현장, 발달장애인 자립지원센터나 정신장애 재활센터와 같이 소외된 곳, 문화생활의 사각지대나 다름없는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 등으로 향해 왔다. 김현서 낭송가에게 시 낭송은 그곳에서 온 맘으로 타자를 사랑하는 일이다.
우리의 겨울은 늘 시로 시작된다.
지적장애 자립지원센터에서 우리 친구들과 시를 낭송하며 맞는
여덟 번째 겨울이다.
시월에는 영화제의 불빛 아래에서 축하의 시를 건넸고,
지금은 작은 손으로 크리스마스 모빌을 만들며
한 해의 끝자락을 알록달록 매만지고 있다.
흔들리는 종이 조각들 사이로
우리의 시간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리면 시간은 까마득한 안개처럼 멀어지지만
그날의 마음은 아직도 또렷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음이 교실을 채우고,
나는 그 이유를 몰라 같이 서성거리던 시간들.
--「여덟 번째 겨울, 느리게 빛나는 마음들」 부분
그리고 나는 시낭송으로 그 자리에 섰다.
나종영 시인의 「아, 오월 광주는 끝나지 않았다」를 낭송하며
끝나지 않은 시간을 불러냈다.
이어 주먹밥을 나누었다.
소금과 김치, 보리밥으로 허기를 달래던 그날의 주먹밥은
44년의 시간을 지나 조금 더 따뜻하고 풍성한 모습으로 우리 손에 쥐어졌다.
휴일임에도 많은 청소년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조용히 안도했다.
아직 우리는 괜찮다고, 그래서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고.
--「내가 고향이 되어야 할 시간」 부분
앞의 글에서 혹독한 “겨울”을 “늘 시로 시작한다”라는 구절은 뜻깊다. 이 “겨울”은 실제의 계절일 수도 있지만, “지적장애 자립지원센터”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겪는 시련의 삶을 상징한다. “여덟 번째 겨울”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김현서 낭송가는 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사회에서 극단적으로 소외된 사람들과 “시”를 나누며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만난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음”은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고 치유하는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다른 글의 한 구절 “상처 난 마음의 자리에 분홍의 말, 초록의 말,/ 희망이 되는 언어들을 하나씩 채워 넣기로 한다.”(「시를 안고 가는 길」 부분)는 부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타자들이 시 낭송을 통해 상처를 극복하고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은 감동적이다. 뒤의 글은 김현서 낭송가의 활동이 정의로운 역사를 향해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말해준다. “광주”는 이제 민주주의와 이음동의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고유명사를 넘어 보통명사의 역할을 한다. 정의의 역사가 오늘의 의미 있는 사건으로 살아있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자주 호명되어야 한다. 그것은 “44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이 시대를 비추는 “희망”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현서 낭송가는 의미 있는 역사의 현장에서도 시 낭송 전도사의 역할에 충실하다.
책 속의 문장
배꼽시계가 꼬르륵 울리면 금방이라도 노래가 터질 것 같은 감꽃을 주워 먹고, 떨어진 꽃을 실에 꿰어
세상에 하나뿐인 목걸이를 만들던 날들. 그곳은, 아빠가 남겨준 마지막 놀이터였다.
아빠는 아이가 세 살 되던 해, 먼 길을 떠나셨다. 여덟 남매를 두고 차마 멀리는 못 가시고 삐비꽃 하얗게 피던 마을 앞산으로 가셨다.
--「오동나무 꽃으로 오신 당신」 부분
마이크를 잡던 손의 떨림, 무대에 오르기 전 잠 못 이루던 밤. 두려움에 숨이 막히던 순간들. 그 시간이 한두 번이었을까. 그런데 시낭송과 함께한 세월이 스무 해에 이르고 보니 어린 시절 내가 말했던 꿈들이
어느새 모두 이루어져 있었다.
학생들 앞에서는 선생님이 되었고, 무대에서는 시를 노래하는 가수가 되었다.
--「시는 그렇게 왔다」 부분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 많지만 가장 깊고 따뜻한 울림을 지닌 악기는사람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에 시를 실어 몸짓과 표정의 언어를 더할 때, 시는 비로소 입체가 되어 누군가의 가슴에 닿는다.
시낭송은 그 가슴에 시를 모종하는 일, 그리고 그 시가 자라도록 조용히 지켜보는 일이다.
--[시 낭송이란」 부분
그리고 나는 시낭송으로 그 자리에 섰다. 나종영 시인의 「아, 오월 광주는 끝나지 않았다」를 낭송하며
끝나지 않은 시간을 불러냈다.
이어 주먹밥을 나누었다. 소금과 김치, 보리밥으로 허기를 달래던 그날의 주먹밥은 44년의 시간을 지나 조금 더 따뜻하고 풍성한 모습으로 우리 손에 쥐어졌다. 휴일임에도 많은 청소년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조용히 안도했다. 아직 우리는 괜찮다고, 그래서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고.
--「내가 고향이 되어야 할 시간」 부분
--김현서 산문집 {시가 우리를 만나게 했다}, 도서출판 지혜, 값 2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