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장의 권한 어디까지인가?
박경선(대구대진초등학교장)
세간에 사람들은 학교장이라면 학교 일을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언론계, 무슨 대학 교수 연구팀, 무슨 협의회 등을 거론하며 좋은 책이 출간되었으니 학교에서 한두 권 구입해달라는 전화가 많다. 그 한두 권 가격이 2~30만원이라는데 초등학교 경영에서 2~30만원은 큰돈이며, 그런 책을 사려면 다른 곳의 경비를 줄여야 하고 도서선정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내용이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한들 힘없고 가난한 교장은 죄송하다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좋은 책을 서점에 내거나 인터넷으로 홍보하지 않고 일선 학교로 일일이 전화하여 사달라고 하는 분들의 과잉친절에 부담감만 느끼는 것이 학교장의 권한이다. 따져보면 학교장의 권한? 과연 있기나 할까싶다. 재량휴업일을 선생님들과 의논하여 가장 적절한 시기를 정해서 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도 학부모들은 재량휴업일을 왜 하필 그날 하느냐 항의를 한다. 대다수의 의견에 따라가는 경우가 아니라 각자 자신에게 맞추기를 바란다. 방과후 강사 채용 심사나 계약직 심사 등에서도 학교장은 아예 위원 자격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교장이 권한을 휘두르는 것처럼 생각하고 부탁을 한다. 그런 자격은 아예 없는 것이 고맙고 속 편한 자리가 교장의 권한이다.
‘교사의 최고 권위는 인격이요, 최선의 교육 방법은 사랑이다.’는 좌우명을 교장실에 걸어둔 한 초등학교 교장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본다.
작년까지만 해도 식당으로 썼던 자리였는데 강당을 따로 지어 강당 아래층으로 식당이 옮겨가는 바람에 교실 두 칸 크기의 비워진 공간이 생겼다. 현재 도서실이 5층에 있어서 접근성이 좋은 1층으로 옮겨오면 학생들이 쉽게 도서실을 이용할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여기에 전시장을 차리면 전교생 작품 발표나 개별 작품 발표, 또는 학부모나 주민들의 작품 발표 공간으로도 좋겠다.’ 싶어 선생님들과 학교 운영위원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교장의 의도를 알고는 전시장이 좋겠다는 의견들이었다. 하지만 학교의 주인공은 학생들인 만큼 전교생 865명에게 설문 조사를 해보았다.
「우리 학교 1층에 교실 2칸 크기의 공간이 생겼어요. 여러분이라면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싶나요?」하고 질문했는데 학생들의 대답은 다양하였다. 게임방, 레고방, 만들기방, 실내 트램폴린장, 권투교실, 문구점, 편의점, 수영장, 작은 동물 사육장, 수면실, 요리 실습실, 미술관, 거울 달린 무용실, 사진 전시실, 그림 전시실, 학생 휴게실, 대기실, 학부모 쉼터, 숙제방, 예절실, 특별교실, 게임방, 영화관, 체력 단련장, 봉봉 타는 곳, 로봇교실 등 그 대답이 개성 있고 재미있었다. 통계를 내어보았더니 그래도 도서실 이전이 183표로 가장 많았다.
이런 통계를 가지고 4,5,6학년 전교회장단 임시회의를 열었다. 전교생이 응답한 통계치를 제시하며 회장단들이 토론을 해보도록 하였다. 그 결과 45명의 회장단 중 32명이 도서실 이전을 반대하며 여러 가지 다른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발표를 하였다.
“저는 도서실을 5층에 그냥 두고 1층에는 방과후교실, 무용실을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도서실은 조용한 곳에 있어야하는데 1층으로 내려가면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시끄러워 책 읽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등 반대 의견을 제시하며 작품 전시실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많았다. 고학년 학생들의 내심은 고층의 도서실이 자기네 교실 가까이 있어서 이용하기에 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여기서 학교장 권한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회장단 숫자보다 전교생 숫자가 더 많으므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도서실을 1층으로 옮기자고 결론을 내리는 거였다. 이렇게 전교생의 의견을 수용하며 학교 신문에 각반 별로 서너 명의 의견을 추려서 싣고 학교장 의견도 실었다.
<사랑하는 우리 대진 어린이 여러분! 교장은 어린이 여러분의 의견을 다 들어주고 싶어요. 수면실, 수영장, 요리 실습실 등, 특히 봉봉 타고 노는 방을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마 그런 교실이 생기면 교장이 제일 먼저 달려가 매일 매일 봉봉을 타고 싶어요. 그리고 거울 달린 무용실에서 춤추는 내 모습을 비쳐가며 춤을 추면 얼마나 신날까요? 또 실내 수영장을 만들면 교장은 매일 매일 수영 연습을 해서 똥배 살을 빼고 싶어요. 하지만 학교 시설은 모자라고 돈은 없어요. 꼭 필요한 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답니다. 그래서 교장은 우리 학교를 도와 줄 여러 기관을 알아보고 있어요. 달서구청에서는 작년에 우리 학교에 900만원을 지원해주었기 때문에 올해는 지원해 줄 돈이 없다고 합니다. 한 가지 희망은 대구시 교육청에서 도서실 현대화 사업 지원을 받을 수 있겠다 싶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재정 지원의 희망이 보이면 그때까지만 상설 전시장이나 학부모 쉼터 등으로 사용하겠습니다.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면 곧 도서실을 1층으로 옮겨서 그런대로 소박한 도서실을 꾸려나가겠습니다. 그때까지만 기다려 줄 수 있겠지요?>
학부모 총회 때, 가족독서 사진전을 펼친 이야기도 해본다. 총회에 오신 모든 학부모들이 사진 평가 심사단이 되어 잘 된 사진 밑에 스티커를 붙여 우수 작품을 가리게 하였다. 여기서 스티커를 많이 받은 작품은 학교 독서 다짐장 표지 모델로 사용하고 그 다음으로 스티커를 받은 작품은 다짐장 안쪽에 모델로 사용할 예정이다. 이렇게 학교 운영의 어느 하나도 교장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세상은 왜, 학교장을 괴롭히려고 하는가? 학교 실정을 자기 방식대로 해석해버리는 세상에 오늘날의 교장들을 슬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폭력은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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